정다산유적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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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산유적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by 정산 돌구름 2014. 6. 18.

정다산유적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2014년 6월 15일, 일요일.. 버스타고 찾아간 곳은 강진 다산초당(茶山艸堂)..

정다산 유적지인 다산초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선 후기 주택으로 사적 제107호(1963년1월21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정약용(丁若鏞)이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실학사상의 산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여 사적 제107호(정다산유적 丁茶山遺蹟)로 지정받았다.

건물은 도리단층기와집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1970년, 1971년,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으며,‘茶山艸堂’이라는 현판은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정석(丁石)·약천(藥泉)·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다조(茶竈) 등 다산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다산초당에는 터에 비해 너무 크다 싶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초당’이 있고, 그 양옆으로 역시 기와를 이은 동암과 서암,

그리고 좀 떨어진 동쪽 산마루에 천일각이 있다.

 

 

강진 다산초당으로 가는 주차장가의 우물..

다향소축(茶香小築)은 바로 위쪽의 전통한옥 민박집의 이름이다..

 

민박집을 지나 오른다..

 

주차장에서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골목길은 돌담길의 정겨움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판매하는 곳을 지난다.. 

 

다산초당과 백련사 가는 길목..

 

뿌리의 길, 오랜 세월의 흔적들..

 

성균진사 해남윤공 종진의 묘..

윤종진은 다산초당을 세운 귤원처사 윤단의 손자이며, 정약용의 ㅍ제자이기도 하다..

 

돌계단을 올라서면..

 

다산초당 서암(西庵)..

1808년 지어져 잡초속에 흔적만 남아있던 것을 1975년 강진군에서 재축하였다..

 

서암은 윤종기 등 18명의 제자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차와 벗하며 밤 늦도록 탐구한다는 뜻으로 다성각(茶星閣)이라고도 한다..

 

다산초당과 서암..

 

손수 써서 새긴 ‘정석(丁石)’ 은 단아한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고, 다산의 기꺼움과 이곳에서 꾸려갈 생활에 대한 결의를 느낄 수 있다..

 

 

다산초당은 조선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머문 곳으로 초가집이었던 것을 기와로 복원하였다..

정약용(丁若鏞)이 1801년(순조 1년)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년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실학사상의 산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여 사적 제107호(정다산유적)로 지정받았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도리단층기와집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1970년, 1971년,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茶山艸堂(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정석(丁石)·약천(藥泉)·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다조(茶竈) 등 다산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온 때는 그가 40세 되던 해인 순조1년(1801년)년 겨울이며, 처음 4년간은 강진읍 동문밖의 주막집이 유배지였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오자 강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죄인 취급하여 멀리하였다고 전한다.

다산은 그 주막집 한칸짜리 방을 사의재(四宜齋)라고 이름 지어 자신을 추스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앞마당의 넓적한 바위, 이 바위는 그가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이던 곳이라 하여 다조(茶竈, 차 부뚜막)라 불린다..

 

다산초당(茶山艸堂)이란 글씨도 추사 김정희의 친필을 모각(模刻)하여 현판을 걸었다..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정약용은 1762년 음력 6월 16일에 진주목사를 역임했던 정재원과 윤선도의 손녀인 해남 윤씨 사이에서 4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정재원은 첫번째 부인 남씨에게서 큰아들 약현을 낳았고, 둘째부인 윤씨에게서 약전, 약종, 약용 3형제와 딸 한 명을 낳았다.

그가 태어난 경기도 양주 마현은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수려한 곳이었다.

그의 부친은 음사(陰仕)로 진주목사를 지냈으나, 고조 이후 3대가 벼슬이 없는 선비인 포의(布衣 )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정약용은 부친 정재원에게 기초적인 학문을 배웠으며, 어릴 때부터 병약했기 때문에 나가서 뛰어노는 것보다 책 읽는 것으로 소일했다.

천연두를 앓아서 그 당시 신의로 불리던 몽수 이헌길에게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일곱 살 때에 「산」이라는 시를 짓고 열 살 이전의 어린 시절에 지은 시를 모아 <삼미자집(三眉子集)>이라는 책을 엮었다.

정약용은 9남매를 낳았는데 6남매가 천연두로 죽고, 자신도 천연두로 고생했기 때문에 의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훗날 홍역이 창궐하여 많은 아이들이 죽자, 그는 홍역 치료법을 기록한 <마과회통>을 저술하기도 했다.

한국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 과학지식을 도입하였다.

1910년(융희 4) 규장각 제학(提學)에 추증되었고, 1959년 정다산기념사업회에 의해 마현(馬峴) 묘전(墓前)에 비가 건립되었다.  

저서에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가 있고, 그 속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마과회통(麻科會通)>, <모시강의(毛詩講義)>, <매씨서평(梅氏書平)>, <상서고훈(尙書古訓)>,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

<상례사전(喪禮四箋)>, <사례가식(四禮家式)>, <악서고존(樂書孤存)>, <주역심전(周易心箋)>, <역학제언(易學諸言)>,

<춘추고징(春秋考徵)>,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이 실려 있다..

 

다산초당의 회랑을 돌아 오른쪽 연못이 보이는 곳으로 가면 문 위에 또 하나의 현판이 붙어 있다.

‘관어재(觀魚齋)’, 즉 다산초당 측면에 붙은 문을 열고 연못 속에서 노닐던 물고기를 바라보던 곳이다..

 

다산초당 옆에는 조그만 연못을 만들고, 나무 홈을 파서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그 못으로 폭포수가 떨어지게 하였다.

다산은 또, 만덕산 앞으로 흐르는 탐진강에서 돌을 주워서 연못 가운데 탑처럼 쌓았으며,

못 주변에는 백일홍과 대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하게 하였다..

 

그 탑의 이름은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다..

 

다산초당 동암(東庵)..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거처하던 건물로 여기에서 저술작업을 하단 곳이다..

송풍루(松風樓)라고도 불리며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권의 책을 갖추고 손님을 맞으며 기거하던 곳이다..

 

다산은 초당에 있는 동안 대부분을 이곳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하였고,

목민관이 지녀야 할 정신과 실천방법을 적은 목민심서(牧民心書)도 여기에서 완성하였다고 한다..

 

 

1976년 서암(西庵)과 함께 복원하였는데 현판중 보정산방(寶丁山房)은 추사의 친필을 모방한 것이고..

 

다산동암(茶山東庵)은 다산의 글자를 집자한 것이다..

 

 

천일각(天一閣)..

 

1975년에 강진군에서 건물을 세웠다..

 

강진만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은 다산 정약용이 가족을 생각하며 그리운 마음을 달랬던 곳이다.

다산과 함께 천주교 신자로 몰려 유배를 떠난 형 정약전은 16년의 흑산도 유배생활에 그곳에서 병들어 생을 마감하였다..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

 

다산과 혜장이 서로 찾아 오가던 이 오솔길..

 

정약용 남도유배길 제2코스인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

 

이 오솔길은 동백숲과 야생차가 무척 아름다운 길이다..

 

고갯마루 쉼터..

 

백련사와 해월루를 가는 길이다..

 

깃대봉 능선 갈림길을 지나서..

 

긴 통나무계단길을 내려서면는 소나무 숲길..

 

그 너머에 백련사가 기다린다..

초혼<조아람 전자바이올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