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 유일의 국립박물관 국립나주박물관, 그리고 반남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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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지역 유일의 국립박물관 국립나주박물관, 그리고 반남고분군..

by 정산 돌구름 2014. 6. 18.
전남지역 유일의 국립박물관 국립나주박물관, 그리고 반남고분군..

 

2014년 6월 15일, 일용일..

전남관광지 남도순환버스 <남도한바퀴>를 타고 전남지역 유일의 국립박물관인 국립나주박물관을 둘러본다.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12번째 지방박물관으로 2010년12월 착공, 3년 만인 2013년11월22일 개관하였다

1층에는 제1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있고, 카페와 도록이나 기념품을 판다. 지하 1층에는 수장전시와 고고학 자료실이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5세기 무렵 형성된 마한 문화의 유물을 볼 수 있다.

크게 역사의 여명, 마한의 형성, 영산강유역의 고분문화, 강의길 바다의 길 등 4개 존으로 나누어져 있다..

역사의 여명 - 전라남도를 가로지르는 영산강은 예로부터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제공하여 문화 발전의 바탕이 되었다.

영산강 유역에 사람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때는 약 8만 년 전으로 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이 발전하면서 세력을 키운 여러 집단들이 모여 작은 나라를 이루게 되었다.

마한의 형성 - 고대 한반도에는 기원전 1세기부터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있었다.

그중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지역에 자리잡은 마한은 가장 강성하였다.

50여 개의 작은 나라들이 모인 연맹체였던 마한은, 한강유역에서 성장한 백제에게 주도권을 뺐겼으나,

6세기 중엽까지 영산강유역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였다.

마한 사람들은 가을 추수 후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춤과 노래를 즐겼으며, 옥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영산강 유역의 고분문화 - 영산강유역에는 마한인들이 남긴 수백 기의 무덤이 남아 있다.

이 무덤에는 독널무덤 즉, 거대한 항아리 2개를 붙여 만든 관이 부장되어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이러한 독널 안에서 발견된 금동관과 금동신발, 봉황장식이 달린 큰 칼, 창, 화살 등은 마한문화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독널무덤의 발전과 소멸은 영산강 지역 마한의 성쇠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강의길, 바다의 길 - 영산강은 예로부터 서남해안과 연결된 중요한 뱃길로 많은 물산이 왕래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청해진은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는 배들이 드나드는 길목이었고, 고려시대 나주는 영산강 뱃길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뱃길을 따라 성, 제사지, 창고와 같은 유적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고, 침몰된 배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당시 생활모습을 보여준다..

 

 

 

 

 

 

 

 

 

 

 

 

 

 

 

 

 

 

 

 

 

 

 

 

 

 

 

 

마한시대의 뛰어난 문화, 예술적 수준을 볼 수 있는 금동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고고학, 지역사와 관련한 특별전을 연 1-2회 개최한다.

4월29일~7월6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역사속의 가족편지' 특별전은 편지글을 통해 옛 선조들의 가족사랑을 엿볼 수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특별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는 정도전과 정조대왕, 박세당, 김익 등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가족과 주고받았던

편지글을 비롯하여, '원이 엄마의 편지'로 널리 알려진 안동 이응태 무덤 출토품 등 100여점의 유물이 공개되었다.

이와함께 조선전기의 대학자였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등 세사람의 유학자들이 무려 35년 동안 주고받았던

편지 모음집인 '교학상장(敎學相長)'도 전시되고 있다..

 

 

 

 

 

 

지하층에 위치한 제2전시실에서는 고분의 발굴과 유물의 보존처리 과정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고고학의 세계, 과거 인류가 남겨놓은 흔적을 통해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고고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과정을 알아보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영암 자라봉 고분 토층단면을 볼 수 있으며, 한국의 고분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보이는 수장고는 발굴,기증,구입 등 박물관에 입수된 문화재들이 어떻게 관리, 보관되고 있는지 수장고를 직접 살펴볼 수있는 체험공간이다.

또한 문화재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문화재의 보존처리, 과학적인 분석, 문화재등록과 검색 과정도 체험식 전시를 통해 경험해볼 수 있다..

 

 

 

 

 

 

 

 

 

 

 

마한 목지국 마지막 거점으로 추정되는 신촌리 고분군..

자미산 기슭 구릉지대인 대안리, 덕산리, 신촌리 일대에 30여기의 옹관고분이 있는 것을 신촌리 고분군이라 한다.

신촌리 고분군은 1917~1918년에 발굴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이곳 반남면 일대 고분군은 20기가 복원되어 있다.

제6호분은 봉토(封土)의 길이가 40m, 높이 6m로서, 봉토의 북반부가 높고 원형이며 남반부는 낮고 평평한 사각형이다.

일본 고분에서 볼 수 있는 전방후원분식(前方後圓墳式)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출토유물로는 철검·철살촉·청동제반지·유리옥 등이 있다.

신촌리 제9호분에서 독무덤 5개가 나왔으며, 껴묻거리로 환두대도·금동관·철손칼 등이 있다.

5, 6세기에 이루어진 지방호족의 가족묘나 군신묘로 보이는데, 마한 목지국의 마지막 거점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시대의 고분군, 덕산리 고분군..

덕산리의 서남쪽에 위치한 자미산(紫薇山)의 남쪽으로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에 분포되어 있는 10기의 삼국시대 고분이다..

1·2·3·4·5호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7·8호분은 인멸되었다.

1호분은 1939년에 일본인 야쓰이 세이이치(谷井濟一)에 의해 조사되었지만 그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2호분은 1939년 (有光敎一)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매장시설은 밝혀지지 않았고 봉토에 혼입된 돌화살촉 1점만이 알려졌을 뿐이다.

3호분은 1939년 아리미쓰 교이치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거대한 도량을 가진 직경 45m 내외의 분구 안에서 3기의 옹관(甕棺)과 함께

몇 점의 토기와 쇠 화살촉·은방울·유리구슬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4호분은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분구 위쪽에 옹관 2기가 안치되어 있고,

몇 점의 토기와 함께 큰칼·쇠 화살촉·손칼·철도끼·구리팔찌·유리옥 등이 출토되었다.

5호분은 1939년 아리미쓰 교이치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그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