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관광지 순환버스 남도한바퀴(제6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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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발길 머무는 곳에

전남관광지 순환버스 남도한바퀴(제6호차)

by 정산 돌구름 2014. 6. 16.

전남관광지 순환버스 남도한바퀴 제6호차..

 

2014년 6월 15일, 일요일. 맑고 무더운 날씨..

남도한바퀴 6개의 코스중에서 나주, 강진, 장흥, 해남방면을 여행하기 위해  주말 남도순환버스 6호차에 올랐다.

스에 오르면 버스기사님이 날짜가 찍힌 목걸이와 남도한바퀴 팜플렛을 준다.

버스 이용객임을 알리는 목걸이는 입장료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증표이다.

22개 시·군으로 이루어진 전남의 곳곳에 아름답고 역사가 깊은 곳들이 많지만 이곳을 하루에 돌아보기는 쉽지 않다.

전남의 주요관광지를 짧은 시간동안 돌아보고 싶은 여행자를 위해 지난 5월13일부터 전남관광지순환버스 <남도한바퀴>가 운영되고 있다.

총 6대의 순환버스는 각각 광주종합버스터미널(유스퀘어), 순천터미널, 목포터미널에서 출발한다.

5개시 17개군으로 이루어진 전남을 둘러보는 전남관광지 순환버스 <남도한바퀴>는 힐링(치유)여행, 생태 및 자연 체험, 청소년 현장 학습

등을 주제로 전남의 생태, 역사, 문화 관광지로 구성돼 가족과 함께 여행하기 좋다.

전국 각지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남을 찾고, 손쉽게 관광지를 둘러보도록 마련한 광역단위 여행버스로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3개 코스와

주말 3개 코스 등 총 6개 노선으로 편성해 27개 관광지를 운행하고 있다.

각 코스별 이용요금은 9,900원이며, 승차권 구매는 광주·목포·순천 등 출발하는 버스터미널 매표창구와 목포·순천·광주·송정역 등 기차역,

그리고 인터넷 구매는 버스타고(www.bustago.or.kr), 코레일, 웹투어, 하나투어, NEXTOUR 홈페이지에서 구입할 수 있다.

9,900원짜리 티켓 한장으로 하루동안 전남 주요 관광지를 여행하는 남도한바퀴 이용객들을 위해 경유하는 관광지 입장료를 할인해 준다.

관광지 순환버스 운행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순천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50분과 오후 12시20분,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오전 9시20분에 각각 출발한다. 여기에 토~일요일 추가로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10분, 목포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50분,

순천버스터미널에서 오전 9시10분에 각각 출발한다..

 

 

1호차(순천·보성·장흥 방면)

  순천버스터미널(08:50) 출발, 순천역(08:50)~순천만정원(09:15)~보성 태백산맥문학관(11:40)~장흥 편백숲우드랜드(14:00)~

  정남진토요시장(16:10)~순천역(18:50)~순천버스터미널(19:00)을 매일(월요일 제외) 운행한다.

2호차(순천·보성·장흥 방면)

  순천버스터미널(12:20) 출발, 순천역(12:30)~장흥 토요시장(13:40)~보성 녹차밭(15:10)~순천 낙안읍성(17:10)~

  순천만 자연생태공원(18:30)~순천역(21:00)~순천버스터미널(21:10)을 매일(월요일 제외) 운행한다.

3호차((순천·여수·광양 방면)

  순천버스터미널(09:10) 출발, 순천역(09:20)~순천만정원 또는 순천만갈대밭 선택(09:40)~여수 이순신광장(12:20)~여수엑스포해양

  공원 또는 오동도 선택(13:25)~이순신대교(16:50)~먹거리타운~순천역(19:10)~순천버스터미널(19:20)을 주말(토,일) 운행한다.

4호차(영암·장흥·해남·진도·목포 방면)

  목포버스터미널(08:50) 출발, 목포역(09:00)~영암KIC(09:30)~장흥토요시장(11:45)~해남 땅끝마을(14:25)~진도타워(16:45)~

  목포 갓바위공원(18:15)~목포역(18:55)~목포버스터미널(19:05)을 주말(토, 일) 운행한다.

5호차(담양·곡성 방면)

  유스퀘어(09:20) 출발, 광주역(09:35)~소쇄원(10:05)~식영정(10:40)~죽녹원(11:30)~메타쉐콰이아길(13:25)~곡성 기차마을

  또는 도림사(14:40)~광주역(18:20)~유스퀘어(18:40)을 주말(토, 일요일) 운행한다.

6호차(나주·강진·해남·장흥 방면)

  유스퀘어(08:10) 출발, 송정역(08:25)~국립나무박물관(08:55)~영랑생가 시문학관(10:25)~해남 두륜산케이블카(11:45)~

  다산초당(14:55)~장흥토요시장(16:35)~송정역(18:55)~유스퀘어(19:10)을 주말(토, 일) 운행한다.

 

이른 아침,

6개의 코스중에서 나주, 강진, 장흥, 해남방면을 여행하기 위해  물과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고, 유스퀘어에서 도착한다.. 

 

미리 버스타고에서 예매한 버스표를 발급받아 34번 개찰구로 향한다..

인터넷에서 카드로 예매하는데 당일 아침 결재한 카드를 가지고 매표소에 가면 버스표를 발급하여 줌으로 편리하다.. 

 

8시 5분이 되니 34번 개찰구에서 탑승을 시작한다..

 

8시10분, 21명을 태우고 U-스퀘어를 출발한 버스..

8시25분 송정리역에서 또 다른 여행객 2명을 태워, 23명만이 탑승하여 자리가 넉넉하다..

 

첫번째 도착한 곳은 국립나주박물관(國立羅州博物館)..

 

전남지역 유일의 국립박물관이자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12번째 지방박물관으로 2010년12월 착공, 3년만인 2013년11월22일 개관했다.

 

국립나주박물관은 영산강과 나주지역 고대문화의 형성, 발전, 소멸의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속이다.

 

1층에는 제1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있고, 카페와 도록이나 기념품을 판다. 지하 1층에는 수장전시와 고고학 자료실이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5세기 무렵 형성된 마한 문화의 유물을 볼 수 있다.

크게 역사의 여명, 마한의 형성, 영산강유역의 고분문화, 강의길 바다의 길로 나누어져 있다..

 

역사의 여명 - 전라남도를 가로지르는 영산강은 예로부터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제공하여 문화 발전의 바탕이 되었다.

영산강 유역에 사람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때는 약 8만 년 전으로 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이 발전하면서 세력을 키운 여러 집단들이 모여 작은 나라를 이루게 되었다.

마한의 형성 - 고대 한반도에는 기원전 1세기부터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있었다.

그중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지역에 자리잡은 마한은 가장 강성하였다. 50여 개의 작은 나라들이 모인 연맹체였던 마한은, 한강유역에서

성장한 백제에게 주도권을 뺐겼으나, 6세기 중엽까지 영산강유역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였다.

마한 사람들은 가을 추수 후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춤과 노래를 즐겼으며, 옥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영산강 유역의 고분문화 - 영산강유역에는 마한인들이 남긴 수백 기의 무덤이 남아 있다.

이 무덤에는 독널무덤 즉, 거대한 항아리 2개를 붙여 만든 관이 부장되어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이러한 독널 안에서 발견된 금동관과 금동신발, 봉황장식이 달린 큰 칼,창,화살 등은 마한문화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독널무덤의 발전과 소멸은 영산강 지역 마한의 성쇠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강의길, 바다의 길 - 영산강은 예로부터 서남해안과 연결된 중요한 뱃길로 많은 물산이 왕래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청해진은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는 배들이 드나드는 길목이었고, 고려시대 나주는 영산강 뱃길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뱃길을 따라 성,제사지,창고와 같은 유적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고, 침몰된 배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당시 생활모습을 보여준다.

 

 

 

 

 

  

 

 

 

  

 

마한시대의 뛰어난 문화, 예술적 수준을 볼 수 있는 금동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고고학, 지역사와 관련한 특별전을 연 1-2회 개최한다.

4월29일부터 7월6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역사속의 가족편지' 특별전은 편지글을 통해 옛 선조들의 가족사랑을 엿볼 수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특별기획한 이번 전시에서는 정도전과 정조대왕, 박세당, 김익 등 조선 사대부들이 가족과 주고받았던 편지글을

비롯하여, '원이 엄마의 편지'로 널리 알려진 안동 이응태 무덤 출토품 등 100여점의 유물이 공개되었다.

이와함께 조선전기 대학자였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등 세사람의 유학자들이 무려 35년동안 주고받았던 편지 모음집인

'교학상장(敎學相長)'도 전시되고 있다..

 

 

 

 

 

지하층에 위치한 제2전시실에서는 고분의 발굴과 유물의 보존처리 과정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고고학의 세계, 과거 인류가 남겨놓은 흔적을 통해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고고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과정을 알아보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영암 자라봉 고분 토층단면을 볼 수 있으며, 한국의 고분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보이는 수장고는 발굴,기증,구입 등 박물관에 입수된 문화재들이 어떻게 관리, 보관되고 있는지 수장고를 직접 살펴볼 수있는 체험공간이다.

또한 문화재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문화재의 보존처리, 과학적 분석, 문화재등록과 검색 과정도 체험식 전시를 통해 경험해볼 수 있다..

 

 

 

 

 

마한 목지국 마지막 거점으로 추정되는 신촌리 고분군..

자미산 기슭 구릉지대인 대안리, 덕산리, 신촌리 일대에 30여기의 옹관고분이 있는 것을 신촌리 고분군이라 한다.

신촌리 고분군은 1917~1918년에 발굴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이곳 반남면 일대 고분군은 20기가 복원되어 있다.

제6호분은 봉토(封土)의 길이가 40m, 높이 6m로서, 봉토의 북반부가 높고 원형이며 남반부는 낮고 평평한 사각형이다.

일본고분에서 볼 수 있는 전방후원분식(前方後圓墳式)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출토유물로는 철검·철살촉·청동제반지·유리옥 등이 있다.

신촌리 제9호분에서 독무덤 5개가 나왔으며, 껴묻거리로 환두대도·금동관·철손칼 등이 있다.

5, 6세기에 이루어진 지방호족의 가족묘나 군신묘로 보이는데, 마한 목지국의 마지막 거점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시대의 고분군, 덕산리 고분군..

덕산리의 서남쪽에 위치한 자미산(紫薇山)의 남쪽으로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에 분포되어 있는 10기의 삼국시대 고분이다..

 

1·2·3·4·5호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7·8호분은 인멸되었다.

1호분은 1939년에 일본인 야쓰이 세이이치(谷井濟一)에 의해 조사되었지만 그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2호분은 1939년 (有光敎一)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매장시설은 밝혀지지 않았고 봉토에 혼입된 돌화살촉 1점만이 알려졌을 뿐이다.

3호분은 1939년 아리미쓰 교이치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거대한 도량을 가진 직경 45m 내외의 분구 안에서 3기의 옹관(甕棺)과 함께

몇 점의 토기와 쇠 화살촉·은방울·유리구슬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4호분은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분구 위쪽에 옹관 2기가 안치되어 있고,

몇 점의 토기와 함께 큰칼·쇠 화살촉·손칼·철도끼·구리팔찌·유리옥 등이 출토되었다.

5호분은 1939년 아리미쓰 교이치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그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두번째 코스는 아름다운 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와 시문학파기념관이다..

 

영랑생가 입구의 탑골샘..

 

 

 

강진 영랑생가..

 

김영랑이 1903년에 태어나 1948년9월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45년간 살았던 집이다.

영랑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생가는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전남도기념물 제89호(1986년2월17일)로 지정되었다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2호(2007년10월12일)로 지정되었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을 시멘트기와로 보수하였고, 기단부와 벽체는 시멘트로 발라 원형을 잃어버렸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인 초가지붕이다..

 

강진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김영랑(金永郞),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평범하게 살길 바랬던 부모의 뜻과는 달리 예술적인 기질로 시를 쓰고,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사랑채를 내주었다고 한다..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고,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결혼하였으나 1년반 만에 사별하였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으며, 이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 간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이듬해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며 크리스티나 로세티, 존 키츠 등의 시를 탐독, 서정세계를 넓혔다.

그러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서 귀국하여 고향에 머물며 은거하였다.

1930년 박용철·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여 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야(除夜)>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다.

<내 마음 아실 이>,<가늘한 내음>,<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고, 1935년에는 첫 시집인 <영랑시집>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金起林)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저항 자세를 보여주었다.

8·15광복 후에는 민족운동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시의 세계와는 달리 행동파적 일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

  

  

집 뒤편에는 장독대가 놓여져 있고..

 

언덕에는 오래된 동백나무와 대나무 숲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5월이면 생가의 마당에 조성된 모란이 만개한다..

 

본채에서 10여 m 떨어진 왼쪽에 사랑채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가지붕이다..

 

 

 

한국문학 사상 최초의 문파문학관으로 건립된 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

2012년3월5일 개관한 시문학파기념관은 개관과 더불어 한국문학관협회 회원자격을 부여받은데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시행

<2012 작가 파견 공모사업>에서도 66개의 기존 문학관과 경쟁해 전국 7대 문학관에 포함되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지난해 <시가 꽃피는 행복한 마을, 강진> 프로젝트가 정부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15억 원의 국비 확보를 시작으로,

영랑생가 시콘서트 2년 연속 국비사업 선정, 제1종 문학전문박물관 등재, 호남권 거점문학관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전시실과 북카페로 이루어져 있어 희귀도서 뿐만 아니라 영랑을 포함 9명의 시문학파의 유물과 저서가 전시되어 있다..

 

 

 

 

   

 

 

 

아름다운 골목길을 빠져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전남관광지 순환버스는 전문 가이드가 함께 탑승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육을 받은 버스기사들의 안내로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그곳에서 각 지역의 문화해설사들의 전문적인 설명을 듣는 여행이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긴 두륜산케이블카..

두륜산케이블카는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카(미륵산, 1,975m)에 이어 국내에서 두번째로 긴 케이블카로 케이블의 길이가 1,600m이다.

8분 정도를 소요되어 케이블카의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정원이 51명으로 콩나물 시루이다..

위로 오르면 일출과 일몰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닿는데, 이웃한 강진, 완도, 진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내려다보이며 멀리

광주의 무등산까지 남도 땅의 아름다운 산세를 한눈에 아우르며, 푸른 다도해 위로 띄엄띄엄 놓여 있는 섬들의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두륜산에 오르면 한라산이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제주 한라산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전망대에서 왼쪽으로 내려다보면 한반도를 닮은 모양의 땅이 만들어져 있다.

가을 단풍철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니 그때 방문할 계획이라면 이른 아침에 찾아가는 것이 줄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덜 수 있으며,

날씨가 맑은 날을 택하여 가야 이곳 전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8분정도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도착하여 해남, 완도 일부지역에서만 자생하는 백소사나무의 산책길을 따라 고계봉으로 향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뜨거운 햇빛에 지치기도 하지만 전망대에서 볼 아름다운 해남의 모습을 기대하며 모두들 끝까지 올라간다.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니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눈앞에 해남 풍경이 펼쳐져 있다.

비록 안개가 껴있긴 하지만 진한 녹색으로 물든 산들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아름다운 해남의 풍경을 감상한 후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

 

아름다운 해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고계봉을 오르기 위해 두륜산 케이블카를 탔다.

9,000원의 탑승료는 <남도한바퀴>여행객들에게는 7,000원으로 할인이 된다.. 줄을 서서 11시40분 케이블카를 탄다..

 

케이블카 상부 역사에 도착하면 열쇠를 판매한다..

 

사랑과 언약의 열쇠..

 

고계봉, 아래에서 보면 먼 듯 바라보이지만 계단과 경사로가 다니기 편하게 되어 있어 그리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다..

 

28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산책로를 따라 두륜산 봉우리 중 하나인 고계봉으로 올라가는데 만들어진 길이 근사하다..

 

전망데크에서 바라본 상부역사..

 

고계봉 정상이다...

 

정상에서의 기쁨을 만끽한다..

  

 

 

고계봉 전망대..

 

전망데크에서 바라본 고계봉..

 

 

전망대 관광홍보관..

 

홍보관 내부..

 

전망대에서 바라본 상부 역사, 그너머로 삼산면 들판..

 

양촌저수지, 삼산면 용동리 들판..

 

577봉 너머로는 주작산~덕룡산으로 이어지는 땅끝지맥 능선...

 

동으로는 흥촌저수지와 해남 북일면 들판, 그 너머로 강진만..

 

북일면 들판과 강진만 사내호...

 

남으로는 땅끝지맥으로 이어지는 두륜산 노승봉과 가련봉, 그리고 두륜봉..

 

그너머로 대둔산 중계탑...

 

 

 

 다시 케이블카로 내려서며..

 

 

주말 20분 간격으로 운행하지만 10여분만에 배차, 12시30분 케이블카로 하산한다...

 

올라오는 케이블카..

 

해남 유스호스텔.. 

 

아름다운 야생화..

 

바로 아래 주차장의 해남식당에서 점심..

 

8,000원짜리 백반에 막걸리 한병, 남도의 맛깔스럽고 푸짐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남도한바퀴>는 이런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버스는 다시 네번째 코스인 강진 정다산유적지 다산초당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골목길은 돌담길의 정겨움이 있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목..

 

뿌리의 길...

 

그리고 돌계단..

 

다산초당 서암(西庵)

1808년 지어져 잡초속에 흔적만 남아있던 것을 1975년 강진군에서 재축하였다..

 

암은 윤종기 등 18명의 제자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차와 벗하며 밤 늦도록 탐구한다는 뜻으로 다성각(茶星閣)이라고도 한다..

 

다산초당..

‘다산초당(茶山艸堂)’이란 글씨도 추사 김정희의 친필을 모각(模刻)하여 현판을 걸었다..

 

조선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머문 곳으로 초가집이었던 것을 기와로 복원하였다..

 

정약용(丁若鏞)이 1801년(순조 1년)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년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실학사상의 산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여 사적 제107호(정다산유적)로 지정받았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도리단층기와집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1970년, 1971년,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茶山艸堂(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정석(丁石)·약천(藥泉)·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다조(茶竈) 등 다산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온 때는 그가 40세 되던 해인 순조1년(1801년)년 겨울이며, 처음 4년간은 강진읍 동문밖의 주막집이 유배지였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오자 강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죄인 취급하여 멀리하였다고 전한다.

다산은 그 주막집 한칸짜리 방을 사의재(四宜齋)라고 이름 지어 자신을 추스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정약용은 1762년 음력 6월 16일에 진주목사를 역임했던 정재원과 윤선도의 손녀인 해남 윤씨 사이에서 4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정재원은 첫번째 부인 남씨에게서 큰아들 약현을 낳았고, 둘째부인 윤씨에게서 약전, 약종, 약용 3형제와 딸 한 명을 낳았다.

그가 태어난 경기도 양주 마현은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수려한 곳이었다.

그의 부친은 음사(陰仕)로 진주목사를 지냈으나, 고조 이후 3대가 벼슬이 없는 선비인 포의(布衣 )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정약용은 부친 정재원에게 기초적인 학문을 배웠으며, 어릴 때부터 병약했기 때문에 나가서 뛰어노는 것보다 책 읽는 것으로 소일했다.

천연두를 앓아서 그 당시 신의로 불리던 몽수 이헌길에게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일곱 살 때에 「산」이라는 시를 짓고 열 살 이전의 어린 시절에 지은 시를 모아 <삼미자집(三眉子集)>이라는 책을 엮었다.

정약용은 9남매를 낳았는데 6남매가 천연두로 죽고, 자신도 천연두로 고생했기 때문에 의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훗날 홍역이 창궐하여 많은 아이들이 죽자, 그는 홍역 치료법을 기록한 <마과회통>을 저술하기도 했다.

한국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 과학지식을 도입하였다.

1910년(융희 4) 규장각 제학(提學)에 추증되었고, 1959년 정다산기념사업회에 의해 마현(馬峴) 묘전(墓前)에 비가 건립되었다.

저서에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가 있고, 그 속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마과회통(麻科會通)>, <모시강의(毛詩講義)>, <매씨서평(梅氏書平)>, <상서고훈(尙書古訓)>,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 

<상례사전(喪禮四箋)>, <사례가식(四禮家式)>, <악서고존(樂書孤存)>, <주역심전(周易心箋)>, <역학제언(易學諸言)>,

<춘추고징(春秋考徵)>,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이 실려 있다..

 

다산초당의 회랑을 돌아 오른쪽 연못이 보이는 곳으로 가면 문 위에 또 하나의 현판이 붙어 있다.

‘관어재(觀魚齋)’, 즉 다산초당 측면에 붙은 문을 열고 연못 속에서 노닐던 물고기를 바라보던 곳이다..

 

그리고 다산초당 옆에는 연못을 만들고, 나무 홈을 파서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그 못으로 폭포수가 떨어지게 하였다.

그는 또한 만덕산 앞으로 흐르는 탐진강에서 돌을 주워서 연못 가운데 탑처럼 쌓았으며,

못 주변에는 백일홍과 대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하게 하였다..

 

그 탑의 이름은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다..

 

손수 써서 새긴 ‘정석(丁石)’ 은 단아한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고, 다산의 기꺼움과 이곳에서 꾸려갈 생활에 대한 결의를 느낄 수 있다..

 

다산초당 동암(東庵)..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거처하던 건물로 여기에서 저술작업을 하단 곳이다..

 

송풍루(松風樓)라고도 불리며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권의 책을 갖추고 손님을 맞으며 기거하던 곳이다.

다산은 초당에 있는 동안 대부분을 이곳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하였고,

목민관이 지녀야 할 정신과 실천방법을 적은 목민심서(牧民心書)도 여기에서 완성하였다고 한다..

 

1976년 서암(西庵)과 함께 복원하였는데 현판중 보정산방(寶丁山房)은 추사의 친필을 모방한 것이고..

 

다산동암(茶山東庵)은 다산의 글자를 집자한 것이다..

 

천일각(天一閣).. 1975년에 강진군에서 건물을 세웠다..

 

강진만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은 다산 정약용이 가족을 생각하며 그리운 마음을 달랬던 곳이다.

다산과 함께 천주교 신자로 몰려 유배를 떠난 형 정약전은 16년의 흑산도 유배생활에 그곳에서 병들어 생을 마감하였다..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

 

정약용 남도유배길 제2코스인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

 

통나무 계단을 따라 부드럽게 백련사로 넘어간다.. 시간이 촉박하여 빠른 걸음으로 다녀와야 한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는 800m 거리..

 

긴 내리막 계단길을 따라간다..

 

백련사가 바라보인다..

 

백련사는 통일신라 문성왕1년(839년) 무염(無染)스님이 창건하였다.

만덕산 백련사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만덕사(萬德寺)로 불렀지만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 불교를 숭상하였기에 원묘국사 요세(了世)스님에 의해 사찰의 교세는 확장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은 천시되었고 백련사는 퇴보하기 시작했다.

남해안 일대는 약탈을 목적으로 자주 출몰하는 왜구들에 의해 점점 폐사될 지경으로 내몰렸고 사찰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게 되었다.

1170년경 주지 원묘에 의해 중수되기도 했지만, 1426년 주지 행호스님이 2차 중수를 하면서 백련사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430년부터 대대적인 불사가 시작되었고, 효령대군은 왕위를 세종에게 양보하고 전국유람을 하면서 백련사에 들어 8년동안 기거하였다.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면서 탑과 사적비(事蹟碑)를 세웠다..

 

백련사 사적비(白蓮寺 史蹟碑)..

1681년(숙종 7)에 탄기 스님이 절의 사적이 오래되어 없어져 버릴 것을 염려하여 세웠다고 한다.

비문의 내용은 절의 위치와 연혁, 원묘국사의 백련결사, 원묘국사비와 사리탑 등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귀부는 목을 짧게 조각하고 긴 수염을 늘어뜨려 움츠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등위의 귀갑(龜甲) 안에는 5~6잎의 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중앙에는 굵게 양각한 덩쿨무늬를 배치하여 사각형의 비좌를 에워싸고 있다.

옥개석은 아래면에 서까래와 부연을 조각하고 윗면을 우진각지붕 형태로 하고 용마루에는 용을 조각했다.

비문의 앞면에는 조종저(趙宗著)가 짓고 낭선군 이우가 글씨를 쓰고 낭원군 이간이 두전(頭篆)을 쓴 비문을 음각했다.

비석 옆면에는 덩쿨과 꽃무늬를 조각하고 뒷면에는 비의 건립과 관계된 스님과 시주자, 장인들의 이름이 있다..

 

백련사 천불전..

 

천불이 새로이 조성되어 있다..

 

응진당(應眞堂)은 대웅보전 왼쪽 언덕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안에는 'ㄷ'자형 불단을 만들고 그 위에 상을 안치하였다.

중앙에 석가모니불상을 비롯하여 아난과 가섭 등의 16나한상을 봉안하고, 본존상 뒷벽에는 후불탱화인 영상회상탱을 걸었다.

응진이란 '존경받을 만하다', '공양받을 만하다'라는 의미로 응진당을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한다.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다문제일의 아난과 두타제일의 가섭이 협시를 이루며, 16나한상 및 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 있다.

 

절에서는 응진전으로 부르고 있으나 현판은 응진당으로 적혀 있으며, 주간에는 화반을 두었는데 무늬는 연꽃과 코끼리를 새겼다..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다문제일의 아난과 두타제일의 가섭이 협시를 이루며, 16나한상 및 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 있다.

나한은 부처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인데, 나한상들은 제각각 독특한 표정과 자유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다..

 

명부전(冥府殿)은 대웅보전 바로 왼쪽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1775년(영조 51)에 지은 '시왕전중수기', 1942년에 쓴 '명부전중수', 1969년에 쓴 '명부전중수기' 등 3점의 중수기록 기문이 걸려있다.

명부란 저승세계를 뜻하여, 지옥중생들을 구제하는 지장보살님과 십대왕들을 모시게 된다.

지장보살은 중생들이 죽은후에 지옥,아귀,축생,수라,사람,하늘의 육도 윤회에서 영원히 헤매며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안에는 내부에는 ㄷ자형 불단을 조성하고 지장상을 비롯하여 무독귀왕, 도명존자 및 시왕상과 판관, 녹사, 인왕상 그리고 사자상 등

지장보살의 권속을 봉안하였다..

 

백련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앞면 3칸 옆면3칸의 팔작지붕이며, 1702년에 중건되었다.

백련사의 사역을 알려주는 <백련사대법당중수기>와 <해탈문중수기>가 현판형식으로 걸려있다..

 

‘대웅보전’ 현판 글씨는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의 글씨인데 그가 1755년 진도로 유배된 이후 어느 때인가 이곳에 들러 쓴 듯하다.

 

대웅보전 불단은 삼세불의 삼존불을 모시고 항마촉지인을 결한 석가불을 주존으로 왼쪽에는 약사불, 오른쪽은 아미타불이 협시하고 있다.

석가불은 현재불, 약사불은 과거불, 아미타불은 미래불을 상징하여, 부처님의 영원성을 나타낸다..

 

삼성각(三聖閣)은 대웅보전 오른쪽에 있는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기단은 자연석을 사용하였는데 제법 반듯반듯한 돌을 1단 쌓았으며, 널찍한 자연석을 놓고 민흘림으로 다듬은 원형기둥을 세웠다.

현재 건물은 불기 2543년인 1999년에 새로 지었다. 어칸 종도리에 먹으로 쓴 상량문이 남아 있다..  

 

내부에는 뒷벽에 붙여 일자형 불단을 조성하고 독성탱을 중심으로 칠성탱과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만경루(萬景樓)는 백련사 주출입 통로 정면에 있는 누각이다.

원래는 만경루 밑을 지나 대웅보전 앞마당으로 도달하는 누하진입방식이었으나 지금은 누각 왼쪽에 난 계단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며 대웅전의 동일 축선상 맞은편에 있다.

‘만경루’의 현판은 대웅보전의 현판과 마찬가지로 이광사(李匡師)가 썼고,

안에는 1817년(순조17) 응언(應彦) 스님이 지은 '만덕사고려팔국사각상량문'이 걸려 있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

1962년12월3일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백련사 앞에 군데군데 자생하고 있는데 1.3ha에 약 1,500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주변에 비자나무·후박나무·푸조나무가 곁들여 자라고, 밑에는 차나무가 있다...

 

백련사의 동백나무는 높이가 7m에 달하며, 밑에서 가지가 갈라져 관목이 되는 것이 많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으로 꽃은 2~3월에 피고, 가지 끝에 1개씩 달린다.

꽃잎은 5∼7개가 밑에서 합쳐져서 비스듬히 퍼진다.

동백나무는 한국의 남쪽 난온대지방 식생의 대표수종으로 열매는 삭과로 둥글고 청홍색이며, 검은 갈색의 종자에서 머리기름을 낸다..

 

이곳 동백나무숲을 지나 다산초당으로 가는 오솔길이 있는데 옛날 정약용(丁若鏞)이 백련사를 왕래할 때 이용하던 길이라고 한다..

 

다시 돌아와 돌담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주차장가의 우물..

다향소축(茶香小築)은 바로 위쪽의 전통한옥 민박집의 이름이다..

 

남도한바퀴 6호차의 마지막 코스는 정남진 장흥토요시장..

 

건너편으로 억불산..

 

마음씨 좋은 며느리와 고약한 시아버지의 전설이 서린 억불산 며느리바위..

여자가 아들을 업고 있는 바위. 장흥 사람들은 이 바위를 며느리 바위라고 부른다..

 

장흥토요시장은 2005년7월 전국 최초 토요시장으로 개장돼 2008년 전국우수시장 박람회에서 가장 성공한 전통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관광형 전통시장인 장흥토요시장, 세월호 참사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다시 공연을 시작하고 있다..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은 그 동안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연을 토요일마다 운영돼 주말 1일 평균 5천여명,

지난해에는 6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매년 1천억원의 지역 특산물을 판매해 지역경제 활성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장흥토요시장에서는 시장 곳곳에 위치한 정육점에서 한우를 구입하고 마음에 드는 식당으로 가서

개인당 3,000원의 상차림 값을 내면 그곳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고 한다.

소고기+키조개+표고버섯=장흥삼합.. 한우와 키조개, 표고버섯으로 성공한 곳이기도 하다..

 

장흥장날인 2일과 7일에 토요일이 더해지면 장날보다 토요시장이 훨씬 더 두드러진다..

 

다우리 음식거리..

장흥으로 시집 온 이주 여성들이 떠나온 고국의 먹을거리를 펼치는 장터이다..

 

SBS드라마 <대물>에서 백성민대통령(이순재 분)도 곰탕맛에 반해버린 하도야의 아버지인 하봉도(임현식 분)가 운영하는 3대곰탕집..

 

전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1960년대 분위기를 연출한 세트장이다.. 이후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국비를 지원받아 새롭게 단장한 전통시장..

 

 

장흥군 읍면별 토품장터..

 

목포에서 출발한 남도한바퀴 4호차..

 

이곳 장흥의 젓줄, 탐진강 수변공원에서는 매년 물을 테마로 하는 여름 축제인 장흥 물축제가 펼쳐진다.

2014년 장흥물축제는 8월2일부터 1주일간 열린다고 한다..

 

전남관광지 순한버스 <남도한바퀴>..

6호차를 타고 하루 동안 돌아본 나주, 강진, 해남, 장흥...

촉박함에 느긋하고 여유있게 돌아볼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동안 전남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다.

9,900원으로 떠나는 전남의 하루 여행, 2014년 전남여행은 전남관광지 순환버스 <남도한바퀴>를 적극 추천한다...

 <숨어우는 바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