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의 무등산 무돌길 제5길(독수정~경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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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무등산길

봄이 오는 길목의 무등산 무돌길 제5길(독수정~경상리)..

by 정산 돌구름 2013. 3. 23.
봄이 오는 길목의 무등산 무돌길 제5길(독수정~경상리)...

 

탐방일 : 2013년 3월 23일(토)

주요코스 : 산음(독수정)~함충이재~정곡리 정자~절골~경상리 정자(약4km)

무돌길 소개

  무돌길이란 무등산 자락의 재를 넘어 마을과 마을을 잇던 길로 1910년대에 제작된 지도를 바탕으로 발굴 복구한 길이다.

  무등산을 돌아간다는 의미의 옛말인 ‘무돌뫼’에서 유래된 말로 무등산 자락의 마을과 마을, 재와 재를 넘어 한바퀴 돌아보는 옛길이다.

  광주의 랜드마크인 무등산 자락길로, 200~400m 높이의 무등산 자락을 걸으면서 전통문화 유적과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보성 태백산맥 문학기행길과 무안 갯벌낙지길, 남원 흥부길과 익산 금강생태탐방길 등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012년3월8일,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10선」에 선정됐다.

  국내외 관광객들이 트레킹을 즐기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체험할 수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는 걷기여행

  작가, 생태전문가, 탐방로 및 관광 전문가 등 다양한 인사가 참여해 서면심사와 현지답사 등을 거쳐 선정되었다.

  무등산 무돌길(51.8㎞)은 2011년 11월 그 모습을 드러냈다.

  주말마다 2만여명이 몰리면서 광주 도심과 가깝고 높낮이가 일정해 어린이·노인들의 나들이길로도 호평을 받고 있다.

  무등산을 끼고 있는 광주시와 화순군, 담양군 등 3개 지자체가 2009년부터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와 함께 조선말 고지도 등 옛 문헌을

  뒤지고 현지조사를 거쳐 사라진 마을을 넣어 이었다.

  광주구간 26.8㎞, 담양구간 8㎞, 화순구간 17㎞로, 무등산 자락에 남아있는 돌담·샘·정자·제철유적지 등 역사·문화유적지와 쉼터도 많다..

 

 

담양 남면사무소에 주차를 하고 도로로 나서면, 남면사무소 앞 버스승강장...

 

무등산 순환버스가 이곳을 지난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지난번 마무리하였던 4코스의 마지막, 5코스가 시작되는 연천교...

 

연천교를 건너 독수정원림으로..

 

아직은 새싹이 돋지 않아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61호 독수정원림...

마을 뒤 나지막한 산허리에 유달리 숲이 우거진 곳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독수정원림이다.

무등산으로부터 북쪽을 향하여 뻗어나간 한 지맥이 내와 부딪쳐 구릉을 이룬 곳에 느티나무와 회화나무·왕버들·소나무·참나무·서어나무

등의 거목(巨木)에 둘러싸여 독수정이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100여년 됨직한 배롱나무·매화나무·살구나무·산수유나무 등의

노거목이 있어 속세를 떠난 느낌이 든다..

 

고려 공민왕 때 북도안무사 겸 병마원수를 지낸 전신민(全新民)은 조선이 건국되자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음을 굳게 맹세하여 서울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 숨어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언덕 위에 북쪽을 향한 정자를 지어 이른 아침마다 북쪽 개경(開京)을 향하여 울며 절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독수정이라는 이름은 이태백(李太白)의 시 “이제시하인 독수서산아(夷齊是何人獨守西山餓)” 즉, ‘백이숙제는 누구인가. 홀로 서산에서

절개를 지키다 굶어 죽었네’에서 따온 말이다.

전신민은 고려가 멸망하자 두문동 72현과 함께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며,

그 뜻을 혼자라도 지키겠다는 뜻으로 독수정을 건립하였다..

 

전신민은 물이 흐르는 남쪽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뒤쪽 정원에는 소나무를 심고 앞의 계단에는 대나무를 심어 수절을 다짐하였다.

또한 정자의 방향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 이유는 송도를 향하여 아침마다 조복을 입고 곡배하며 자신의 충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정면 1칸과 후퇴(後退)를 온돌방으로 꾸몄다.

정면과 측면 모두 3칸의 중앙에 재실이 있는 팔작지붕으로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상태이다.

창호는 띠살창인데 측면은 2분합문, 정면은 4분합문의 열 개로 하여 걸쇠에 걸게 하였다..

 

독수정을 중심으로 주위 일대의 노거수원림을 기념물로 지정하였으나 정자는 1972년에 허물고 새로 건립하였기에 지정을 받지 못하였다..

 

독수정을 지나 시멘트도로를 따라 오른다..

 

이내 흙길 임도로 이어져 가파르게 올라서면 조망이 확 트인다..

 

봄이 왔음인지 길가에 야생화가 만발하였다..

 

호젓한 소나무 숲길...

 

함충이재를 지나 내려선다..

 

함충이재..

 

무돌길 편백랜드로 불리는 편백조림지를 지나고..

 

대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정곡리가 가까워졌다..

 

무언지 알 수 없지만 금줄이 쳐 있다..

 

정곡리 마을 뒤편에는 노란 산수유가 활짝 피어있다..

 

파란 하늘에 매화도..

 

멀리 무등산 자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곡리 마을..

 

마을 앞 평촌교..

 

정곡리(鼎谷里)는 북산의 기슭에 자리한 산촌마을로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하였다.

예부터 안골짜기가 되므로 속골 또는 정곡이라 불리어졌으며, 자연마을로는 사봉실, 새터, 절골, 안마을 등이 있다.

사봉실마을은 마을 주위에 향로봉, 건망봉, 독봉, 상봉의 네 개의 산이 자리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새터마을은 사봉실 서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절골마을은 과거에 서봉사라는 절이 있었다하여 칭해지는 이름이며, 안마을은 골짜기 안에 자리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뒤돌아본 정곡리..

 

길가의 갓바위(?)..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정곡마을 하천 옆에는 높이가 15m, 둘레가 4m, 수령 150년된 보로수 버드나무...

 

갈림길에서 경상리로..

 

아름다운 돌담과 고가옥..

 

정곡마을에서 경상리로 넘어가는 길은 예전 무등산 아래 쪽에 '서봉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서 '절골'이라고 불리는데,

마을 뒤 켠 분지에 있었던 서봉사는 고려 명종때 황주서기와 충주판관을 지낸 이지명이라는 사람이 창건했는데 정유재란때 불이 나 규모가

줄었다가 1852년(철종) 폐사됐다고 전해진다. 서봉사는 또 '빈대절'이라고도 불렸는데 약 300년전에 빈대가 많아서 없어졌다고 한다..

 

경상리마을은 조선 인조때 영암에서 온 김해인 김명오에 의하여 개척된 환암촌(環岩村) 경상동(京相洞)으로 불러왔으며,

1914년 담양군과 창평군이 통합됨에 따라 환암촌을 병합 경상리로 불려오고 있다.

6.25전쟁으로 환암촌이 전소되자 지금의 봉암촌, 모산촌, 경상골로 이주하였으며, 경상마을은 경상제(京相堤)가 1960년 착공되어

현 마을로 이주하여 형성되었다.

마을 북쪽에는 재상이 나온다는 왕당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정기가 서린 무등산, 남쪽에는 무등금광이, 동쪽에는 유둔재가 자리잡고 있다.

뒷산 왕당골은 풍수지리적으로 이름있는 곳이며, 두뭇골 경상제 위에는 두동촌을 넘어가는 고개의 숲이 컴컴하여 장정 100명이 넘어간다는

백남정재가 있는데, 옛날에는 그곳이 바다여서 배의 잣줄을 댄 곳이라는 설도 있다.

향로봉 서쪽에 있는 골짜기에 와우명당이 있는데 그 꼬리에 해당한다하여 샛꼬리골이라 불려오고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어사천의 경상보는 전에 물레방아가 있어다하여 물레방아보라고도 불린다.

이 마을회관은 정부지원과 출향각계인사와 리민의 성금으로 2000년 12월에 건립하여 비를 세웠다..

 

 

무돌길 5구간 끝자락.. 좌측 100m거리에 경상리 느티나무가 있어 잠시 올라선다..

 

 

전남도기념물 제141호로 지정된 보호수 경상리 느티나무..

마을 남쪽의 왕대나무숲 한쪽에서 자라고 있는 담양 경상리의 느티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35m, 둘레 7.89m, 수관 폭 40m 크기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오래 전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져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나무의 북동쪽에는 나무로부터 약 7m의 거리에 높이 1.3m의 석축의 단이 마련되어 있고 줄기에 근접해서 널따란 돌을 배치하여

상석(床石)으로 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 대밭 주변에 있던 마을이 6·25 당시 소각되어 지금의 낮은 곳으로 옮겨졌다고 하며,

이 느티나무는 지난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목(神木)으로서의 기능이 부여되어 해마다 정월 보름날 밤이면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이며,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아름다운 돌담길..

 

남면사무소까지 걸어서 가기로..

 

증암천을 따라간다..

 

오페라하우스..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름다운 찻집들..

 

 

무돌길 옆 쉼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