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옛길 3구간 나무꾼길, 그리고 역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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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무등산길

무등산 옛길 3구간 나무꾼길, 그리고 역사길...

by 정산 돌구름 2012. 12. 31.
무등산 옛길 3구간 나무꾼길, 그리고 역사길...


산행일자 : 2012. 12. 29(토)

기상상황 : 흐리고 추운 날씨

산 행  팀 : 부부

산행코스 : 장원3거리~장원정~4수원지위~덕봉~충장사~풍암정~도요지~호수생태원~환벽당

구간별소요시간 : 약 11.3km, 4간55분 소요

  수지사 입구(10:10)~장원3거리(10:15)~잣고개 장원봉 갈림길(11:36)~장원정(10:47)~4수원지위(11:19)~1구간 갈림길

  (11:23)~나무꾼 쉼터(11:55~12:05)~덕봉(12:22~30)~점심(12:40~13:05)~충장사(13:20)~김윤제재실(13:40)~풍암정

  (13:50)~풍암제(14:02)~도요지(14:10)~삼괴정(14:20)~충효분교(14:45)~정려비각(14:58)~환벽당(15:05)

 

무등산옛길 3구간 소개

  2012년12월27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

  대한민국 21번째 국립공원이며 1988년 변산반도ㆍ월출산 이후 24년 만의 신규 지정이었다.

  무등산 옛길은 광주 도심에서 원효사를 거쳐 서석대까지 옛사람들이 오르던 길, 그리고 장원삼거리에서 환벽당에 이르는 길이다.

  잃어버린 옛길과 또 그 길과 함께 사라졌던 옛이야기들을 찾아 무등산 옛길이 복원되었다..

  옛길은 현재까지 총 3구간으로 1구간은 광주 도심인 산수동과 무등산 산행을 시작하는 원효사를 잇는다.

  2구간은 원효사에서 서석대에 오르는 등산로이며, 3구간은 광주 도심에서 충장사를 거쳐 멀리 담양까지 길게 이어진다.

  3구간은 장원삼거리~장원정~4수원지~덕봉~충장사~풍암정~도요지~호수생태원~환벽당 등을 잇는 11.3km에 이른다.

  무등산 자락의 낮은 능선을 따라 난 숲길인 나무꾼 길(장원삼거리~충장사 5.6km), 유적과 가사문화권으로 걸어가는 역사길(충장사~

  환벽당 5.7km)로 불린다.

  해발 386m인 장원봉, 448m인 덕봉을 넘으며 무등산 북부권의 경관을 조망하고, 충장사·풍암정·환벽당·식영정·소쇄원 등 가사문화권

  의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옛길의 흔적을 찾아내 표지판 50여개를 설치하고, 작은 도랑과 나뭇가지 등을 정비했다.

  이로써 무등산 옛길은 2009년5월15일 개통한 수지사~청풍쉼터~원효사를 잇는 7.75km의 1구간, 같은해 10월10일 개설한 원효사

  ~제철지~서석대까지 4.12km의 2구간, 2010년7월24일 장원삼거리~덕봉~충장사~풍암정~환벽당을 잇는 11.3km의 3구간이

  개통함으로써 모두 3개 구간 23.17km로 늘어났다.

 

무등산 옛길 1구간이 시작되는 산수동 수지사 입구... 건너편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3구간 초입으로 걸어오른다.. 

 

장원삼거리에서 팔각정 방향으로 조금 오르면 무등산 옛길 3구간의 시작점이 나타나고..

 

무등산옛길 3구간 11.3km 표지...

 

숲길로 이어지는 오솔길...

 

능선에 올라선다..

 

장원봉과 충장사 갈림길..

 

장원봉을 우측에 두고 산허리를 따라가면 잣고개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곳..

 

장원봉을 오르지 않고 다시 산허리를 따라 부드러운 길을 택한다...

 

잠시 후 장원정이 바라보인다...

 

십자안부..  장원봉, 깻재, 장원삼거리, 충장사로 이어지는 길이 만나는 곳...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3구간을 따라 충장사 방향으로 가면서 뒤돌아 본 장원정.. 

 

바로 앞 낙타봉 능선, 그 너머로 중봉.. 멀리 천왕봉은 운무에 잠기고... 

 

부드러운 소나무숲 능선길을 따라간다.. 

 

제4수원지로 이어지는 계곡을 건너고.. 

 

지나온 길... 

 

도로를 건너 오르면 1구간과 교차되는 지점..

 

가파르게 대나무숲길을 올라서면 다시 능선에 이른다.. 우측으로는 1구간이 지나는 화암마을 주막터로 내려서고... 

 

묘지가 있는 좌측으로는 지나온 능선과 제4수원지, 그너머로 장원봉에서 군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무등산옛길 3구간인 나무꾼길..

 

오르는 길목마다 표지는 잘 정비되어 있다..

 

덕봉 바로 전위봉인 능선봉에 이르면 4수원지 전망지점이라지만 잡목에 가려 조망은 없다..

 

다시 올라서면 묘지가 있는 나무꾼쉼터...

 

바로 앞 원효봉에서 청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리고 천왕봉은 신비의 베일속에..

 

청심봉에서 내려서 바람재와 낙타봉도...

 

잠시 바람이 없는 무덤가에서 쉬어간다..

 

십자안부.. 좌측으로는 청풍쉼터, 우측은 옛길 1구간으로 내려서는 길..

 

가파르게 올라 덕봉...

 

 

 

 

 

 

 

잠시 머물러 사진 몇 컷을 한다..

 

 

암릉을 내려섰다가 오르면 능선 갈림길... 우측으로 꺾어 충장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바람을 피하여 바위틈에서 점심식사... 뜨끈한 라면 국물이 그만이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내려서면 원효사 갈림길 도로.. 1구간과 3구간이 만나는 지점이다..

 

갈림길 도로 사이로 나있는 길이 3구간... 좌측으로 충장사가 바라보인다..

 

거대한 무등산역사길 표지석이 있다..

 

지금까지의 나무꾼길을 지나 이제 역사길이 시작된다..

 

아무도 가지않은 새하얀 눈길을 가는 기분..

 

사촌 김윤제재실로 내려서는 길...

 

사촌 김윤제 재실...

 

사촌 김윤제(1501∼1572년)는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공로(恭老), 호는 사촌(沙村)이다.

1528년(중종 23)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 7위에 합격하고, 1531년(중종 26) 식년시 병과 23위로 급제했다.

직강홍문관교리‧전중어사겸 춘추관 편수관을 역임하였고, 전주진영 병마절도사, 부안군수, 나주목사 등 13개 고을 지방관으로 나갔다.

나주목사로 있을 때, 기대승이 엮은 <주자문록(朱子文錄)> 4책을 간행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을 하였는데, 송강 정철과 종질인 서하당 김성원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

그리고 “환벽당(環碧堂)”이라는 정자를 짓고는 술잔을 들고 시를 읊으며 스스로 즐겼는데, 당시 호남의 이름난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단을 형성하였다. 김윤제(金允悌)가 교유한 사람들은 송순, 임억령, 김인후, 소세양, 양산보 부자, 양응정, 기대승, 김성원, 정철,

고경명, 삼당시인으로 이름난 백광훈 등으로, 이들 대부분은 호남사림으로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거치면서 시대의식을 함께 했다...

 

원효계곡으로 내려서는 길...

 

잠시 후 무등산 의병길과 만나 도로를 따라간다...

 

쉼터...

 

도로에 내려서면 무등산지진관측소...

 

무등산의병길..

 

원효계곡 하류에 자리한 풍암정(楓岩亭)..

1990년11월15일 광주광역시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으며, 정면과 측면이 각 2칸으로 좌우에 1칸씩의 온돌방을 두었다.

지붕은 팔작기와이고 처마는 홑처마, 큰 덤벙주초를 놓고 배흘림을 보이는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중앙에만 팔각의 기둥을 세웠다.

문은 띠살문이며 우물마루를 구성하였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중앙은 우물천장으로 처리하였다.

우측에 거실 1칸을 두고 앞면과 좌측은 판자마루로 돌렸다..

 

풍암 김덕보(金德普)는 김덕령의 동생으로 1571년(선조 5) 광주에서 태어나 인조 때까지 살았다.

임진왜란 때 큰형 덕홍(德弘)이 금산싸움에서 전사하고, 중형 덕령(德齡)이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이를 슬퍼하여 세상을 등졌다. 그후 모든 것을 잊고자 무등산의 수려한 원효계곡을 찾아 터를 잡고 이 정자를 지어 이 곳에서 도학과

경륜을 쌓으며 은둔생활을 하였다. 사후 영조 때가 되어 그의 두 형과 함께 의열사(義烈祠)에 추배(追配)되었다.

정자에는 풍암정사(楓巖亭舍)라고 쓰인 현판과 정홍명이 쓴 풍암기(楓巖記), 그리고 임억령, 고경명, 안방준, 정홍명, 김덕보 등의

제영(題詠)을 새긴 판각이 걸려 있다...

 

무등산 의병길은 우리 선조들이 의병활동을 할 때 다녔던 풍암저수지에서 제철유적지까지의 옛길을 재현한 구간이다..

 

풍암저수지에서 바라본 의상봉과 윤필봉...

 

솟아있는 윤필봉..

 

무등산 분청사기 전시실..

무등산 북쪽 충효동에 자리잡은 가마터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상감청자·분청사기·백자를 굽던 곳이다.

1963년과 1991년 무등산 문화유적보존을 위해 실시한 총 3차례의 발굴조사에 의해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의 조선시대 가마터와

다수의 출토유물이 확인되었다.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는 1964년 사적지(사적 제141호)로 지정되었다...

 

무등산역사길...

 

도로를 따라가면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들어선다...

 

삼거리의 남평문씨 비석..

 

예전에 걸었던 무돌길과 잠시 함께 한다...

 

무돌길을 우측으로 보내고 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좌측으로 들어서는 길을 따른다..

 

계곡 건너의 삼괴정(三愧亭)..

1900년 남평문씨 문병일이 구한말 부농이었던 부친 문유식의 뜻을 받들어  문유식이 생전에 즐겨 찾았던 곳에 건립하였다. 

삼괴정(三愧亭)이라는 이름은 부친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삼괴란 미립(未立 뜻을 세우지 못함), 미현친(未縣親 아버지의 명예를

높이지 못함), 미교자(未敎子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함)의 세 가지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자가 자리한 곳은 무등산 줄기가 좌우로 뻗어 있고, 넓은 평야가 앞뒤로 펼쳐진 곳에 있으며, 왼편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주변이 소나무와 잣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경치가 뛰어나다..

 

삼괴정은 도리기둥을 한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중앙 1칸에는 방을 들였고, 좌우 칸에는 벽이 없으며 마루가 깔려 있다.

건립 이후 1985년에 기와교체 작업을 한 번 했을 뿐 더 이상의 보수를 하지 않았음에도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내부에 기노장(奇老章)의 기문(記文), 양회갑(梁會甲)의 상량문을 비롯해 김희준, 기세구, 박흥규, 정안석, 김희숙, 정운영, 이재풍,

여창현 등이 쓴 시문(詩文)이 걸려 있다..

 

아무도 찾지않은 눈길을 밟으며 다시 숲속으로 들어선다...

 

통신 안테나를 우회하여 돌아선다..

 

조망이 트이는 곳에 우뚝 선 소나무 한그루...

 

환벽당으로 들어서는 길..

 

잘 조림된 측백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숲속을 빠져나오면 건너편으로 장원봉과 우측으로는 호남정맥의 산줄기들이 바라보인다...

 

축사를 지나 논둑길로 들어서고...

 

바로 앞에 광주동초등학교 충효분교장이 바라보인다..

 

이제 환벽당까지는 800m...

 

건너편으로는 수리마을...

 

충효동 왕버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6호(1985년2월25일)로 지정되었다가 천연기념물 제539호(2012년10월5일)로 지정되었다.

충효동 마을에서 인공호수 광주호(光州湖)에 이르는 도로변에 있다....

 

왕버들버드나무과낙엽교목으로 기념물로 지정된 왕버들은 3그루로써 추정수령은 약 400년이다.

원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 상징이던 소나무 1그루, 매화 1그루, 왕버들 5그루가 있었으나 매화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 죽었으며, 또 1그루의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 앞 도로를 확장하면서 잘라버려 지금은 왕버들 3그루만 남아있다..

 

첫번째 것은 높이 9m, 둘레 6.25m, 수관(水冠) 너비 동서 11.5m, 남북 18.9m이고, 두번째 것은 높이 10m, 둘레 5.95m,

수관 너비 사방 14m이며, 세번째 것은 높이 12m, 둘레 6.3m, 수관 너비 동서 16.6m, 남북27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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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동의 역사는 분명치는 않으나 예부터 성(城)이 있어 성안 또는 석저촌(石低村)이라 불렀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양산보(梁山甫)의 소쇄원(瀟灑苑)을 비롯하여, 김윤제(金允悌)의 환벽당(環碧堂), 김성원(金成遠)의

식영정(息影亭)과 누하당(樓霞堂) 등의 원림(苑林) 정각(亭閣)이 많이 있어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광주광역시기념물 제4호(1985년2월25일)로 지정된 정려비각..

높이는 220㎝의 이 비는 정조13년(1789년)에 세워졌으며, 앞면에 <朝鮮國贈左贊成忠壯公金德齡 贈貞敬夫人 興陽李氏 忠孝之里

(조선국증좌찬성충장공김덕령 증정경부인 흥양이씨 충효지리)> 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김덕령 일가의 애국충절에 대한 찬양과

정조(正祖)가 이름을 지어준 충효리의 유래가 쓰여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는 정조16년(1789년)에, 비각은 1792년에 세운 것인데, 비각은 그 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각 안에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정유재란 때 왜군의 추격을 받고 순절한 김덕령의 부인 흥양이씨,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김덕령의 형 김덕홍, 효성이 지극했던 김덕령의 아우 김덕보를 기리는 비가 있다...

 

무등산옛길 3구간 주변안내도...

 

광주호로 합류되는 증암천..

 

무등산옛길의 마지막 지점...

 

바로 옆의 환벽당...

 

1972년 1월 29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환벽당(環碧堂)...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金允悌)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며, 당호는 신잠(申潛)이 지었다.

송시열이 쓴 제액(題額)이 걸려 있고, 임억령·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김윤제는 이곳 충효동 태생으로 호는 사촌(沙村)이며,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그후 나주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으며,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다.

그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철(鄭徹)과 김성원(金成遠)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김덕보 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김윤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정철은 16세 때부터 27세에 관계에 나갈 때까지 환벽당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환벽당 아래에 있는 조대(釣臺)와 용소(龍沼)는 김윤제가 어린 정철을 처음 만난 사연이 전하는 곳이다...

 

고향 담양에 내려와 살고 있던 당시 14살의 정철이 순천에 사는 형을 만나기 위하여 길을 가던 도중에 환벽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때마침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 창계천의 용소에서 용 한마리가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꿈을 깬 후 용소로 내려가 보니 용모가 비범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었다. 김윤제는 소년을 데려다가 여러 가지 문답을 하는 사이에

그의 영특함을 알게 되었다. 그는 순천에 가는 것을 만류하고 슬하에 두어 학문을 닦게 하였다...

 

정철은 이 곳에서 김인후, 기대승 등 명현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학문과 시를 배웠다. 후에 김윤제는 그를 외손녀와 혼인을 하게 하고

그가 27세로 관계에 진출할 때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환벽당은 정철의 4대손 정수환이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현재 연일 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얼어붙은 증암천...

 

11.3km의 정점.. 

 

성산별곡...

 

광주호 생태공원의 억새를 바라보며 기나긴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영하의 추운 날씨...

11.3km의 무등산옛길 3구간을 마무리하고 충효187번 버스를 타고 1구간의 들머리로 향한다..

추운 날씨에 30여분간을 기다려 버스에 탑승하였지만 한해를 보내기전에 3구간을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