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 그리고 유달산과 목포대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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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아름다운 길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 그리고 유달산과 목포대교 풍경..

by 정산 돌구름 2013. 1. 3.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 그리고 유달산과 목포대교 풍경...


일자 : 2013. 1. 2(수)

기상 : 구름 많음

인원 : 나홀로

코스 : 고하도 복지회관~탕건바위~말바우~뫼막개~국기봉~용머리~이충무공유적지~복지회관

구간별소요시간 : 약6.5km, 2시간30분 소요

   복지회관(14:55)~탕건바위(15:05)~말바우(15:15)~뫼막개(15:25)~공생원갈림길(15:43)~용머리(15:55~16:05)~

   말바위(16:47)~안부(16:52)~충무공기념비(17:05~15)~조선육지면발상지비(17:20)~복지회관(17:25)

 

 

고하도(高下島) 소개

  최고점이 77m로 섬 전체가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고하도(高下島)는 목포시의 유달동에 속하는 섬으로 면적 1.78㎢,

  해안선 길이 10.7㎞, 인구는 약 360여명이다.

  목포 남서쪽에 위치한 반달모양의 섬으로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하여 ‘고하도(高下島)’라 불렸다.

  예전에는 보화도(寶化島), 고하도(高霞島), 고하도(孤下島), 비노도(悲露島), 칼섬 등으로도 불려왔다.

  목포 유달산 밑 건너편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그 고하도는 그곳에 ‘보물이 숨겨 있다’고 해서 ‘보화도'(寶和島)’,

  ‘슬픔과 애탄’이 서려 있어서 ‘비하도(悲霞島)’로도 불렸다.

  또, 섬 모양이 바다로 나아가는 용의 형상을 닮았대서 ‘용섬’이라고도 불린다.

  북동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고, 남서 사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해안에 이어진다.

  해안은 곳곳에 소규모의 갑과 만이 발달하여 드나듦이 심하며, 만 안의 간석지는 방조제를 쌓아 농경지와 염전이 이루어져있다.

  기후가 온난습윤하고 무상기일이 200일이 넘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육지면(陸地棉)이 재배되기도 하었다.

  섬의 남서쪽에 비교적 넓은 평지가 있어서 목화 재배 외에 논농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감자·쌀·보리·콩 등의 농산물이 생산되고, 농어·아나고·숭어 등의 잡어류가 잡힌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분교 1개교, 경찰출장소, 교회 1개소가 있었다.

  탕건바위놀이와 강강술래 등이 전해지며, 해송림과 낚시터가 있어 관광객이 자주 찾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나오며, <여지도서>(나주)에 “둘레는 12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호는 55호이다.”고 기록

  하고 있다. <호구총수>와 <호남읍지>에 섬의 이름과 인구가 기록되어 있고, <청구도>와 <대동여지도>에도 기재되어 있다.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진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1963년 무안군 이로면이 목포시로 편입되면서 달리도, 외달도 등과 함께 충무동에 편성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가 있어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을 이충무공유적지(전라남도 기념물 제10호)로 지정하여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예전엔 넘실대는 물살을 가로질러 배로 갈 수밖에 없었던 외로운 섬, 고하도...

2012년 6월에 목포대교가 개통돼 지금은 누구라도 손쉽게 육로로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고하도는 이순신장군이 일본 수군을 물리친 뒤 함대 정비를 위해 108일간 주둔한 곳이기도 하다.

목포 앞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부분이 용머리처럼 생겨서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여 인근 다도해 섬들을 여럿 끼고 있어서

잠시 숨을 고르기에도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 쓴 고하도는,

서북풍을 막아주고, 전선을 감추기에 아주 적합하다. 섬 안을 둘러보니 지형이 대단히 좋다. 그래서 머물기로 했다”고 하였다.
섬의 둘레는 비록 12㎞에 불과하지만 ‘명량대첩’의 현장 울돌목으로 가는 길목엔 둘 도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을 것이다.

 

고하도는 개항이후 끊임없이 제국주의자들에게 토지를 침탈 당했던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고하도에는 이 충무공의 유적도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흔적도 남아 있다.

개항장이었던 목포와 마주하고 있는 고하도를 거점지역으로 삼기 위해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이때 러시아는 고하도 주민들에게 1만 원도 채 안된 땅값으로 토지를 매입했다고 한다...


고하도 복지회관에서 도로를 따라 10여m오르면 용오름 둘레숲길 안내도 앞 주차공간이 있다..

 

잔등에 오르면 용머리2.8km이정표가 있고 우측으로는 이충무공유적지로 내려선다..

 

아늑한 소나무숲길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고도차가 거의 없는 오솔길...

 

잠시 후 암봉인 큰산에 올라선다...

 

조망이 트여 바로 앞 등대섬과 멀리 대불항, 멀리 영산강 하구득...

 

탕건바위.. 생김새가 마치 옛날 상투머리에 쓰는 탕건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는 폭이 150㎝, 높이가170㎝로 생김새가 옛날 상투머리에 쓰는 탕건형이며 이 바위 3m밑에 샘이 있다.

이 탕건바위에서는 고하도에 가뭄이 심해지면 기우제를 지내는 탕건바위 놀이가 벌어진다.

양반이 쓴 탕건처럼 생긴 이 바위에 돼지를 잡아 제물로 바쳐 큰 줄로 탕건바위를 끌어당기면서 남도특유의 설소리와 농악을 울린다.

탕건바위 밑에는 옛날 힘센 장수가 많은 금은 보화를 숨겨둔 곳이 있다 한다. 일설로는 궁녀가 숨겼다고 하는 전설도 있다.

'양반의 탕건에 돼지의 생피가 흐르는 것을 하나님이어 큰 비를 내려 그 빗물로 말끔히 씻어주사이다' 라는 기원과 비를 내리지 않으면

탕건바위 밑에 숨겨져 있는 금은 보화를 파내겠다는 위협의무격적인 주술성을 가진 놀이로 간절한 기원과 순박한 유형이 담겨져 있다.

탕건바위 기우제는 탕건바위를 돌며 농악을 울린 뒤 제상이 나오면 산 돼지를 탕건바위 위에 얹어놓는다.

제주가 절을 올리면 모든 줄꾼과 농악대가 함께 절을 올리고, 제주가 크게 외치면서 기원을 한다.

'천지지신은 화위동심하사 이 땅에 큰 비를 내리게 하소서. 비를 내리소서. 만일 비를 내리시지 않는다면 바위밑의 금은보화를 모두

파겠습니다. '이 때에 농악이 울리면서 탕건바위에 줄을 걸어 끌며 매김소리를 받아 줄꾼들이 설소리에 맞춰 줄을 끄는 것이다.

「얼얼러 상사듸여/ 비야 비야 내려라 얼얼러 상사듸여/ 비가 오지 않는다면 금도 캐고 보화도 캐네/ 얼얼러 상사듸여/

   나랏님이 숨겨놓은 금은보화 찾아가세 장군님이 숨겨놓은 금칼보화 찾아다가/ 얼얼러 상사듸여/ 우리목숨 부지하세. 금 나온다.

   금 나온다. / 얼얼러 상사듸여/ 이것저것 찾아다가/ 우리목숨 이어가세. 탕건 바위 헐어분다. / 얼얼러 상사듸여」

이렇게 노래로 위협하고 탕건바위 위에서 돼지를 잡아 생피를 뿌리고 제주가 발원하면

「양반탕건에 무슨 피가/얼얼러 상사듸여/비내려서 저피 닦소/얼얼러 상사듸여/저 비내려 농사지면/부모공양하며 처자식을 교육하세」

하며 노래를 부르고 모닥불을 놓아 탕건바위를 묶었던 밧줄을 태우고 농악을 울리며 춤을 추고 놀다가 꺼진 모닥불의 재를 담이 논밭에

뿌리고 놀이는 끝이난다. 탕건바위를 묶었던 밧줄재는 풍년들게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목포시가지와 삼학도, 영산강 하구둑...

 

건너편으로 가야할 말바위, 해발 77m의 가장 높은 곳..

 

잠시 내려섰다가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

 

바다건너로 유달산과 서산동...

 

당겨본 유달산...

 

아름다운 풍경이다...

 

목포시가지도 바라보이고..

 

유달산 바당바위와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외국인이 올라와 사진 한 컷 부탁한다..

 

용머리로 이어지는 해안선과 목포대교...

 

목포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고하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얼어붙은 암릉을 내려선다..

 

로프를 설치하였지만 미끄럽다..

거대한 건들바위... 

 

뫼막개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알수가 없다..

 

곳곳에 조망이 트여 유달산과 목포 앞바다가 한눈에...

 

목포대교와 목포해양대학교, 그리고 유달산 아래 신안비치호텔...

 

볼수록 아름다운 풍경...

 

당겨본 유달산과 신안비치호텔...

 

용머리와 목포대교...

 

공생원갈림길... 

공생재활원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전국의 불량아동을 수용하기 위해 건립된 감화원으로 시작되었다.

감화원은 국립목포학원으로 개칭되고, 다시 재생원으로 개칭, 고아들을 수용하다가 1960년대 폐원, 1984년 공생재활원이 건립되었다.

대도 조세형도 이곳 감화원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유달산과 목포해양대학교..

 

유달산 일등바위와 2등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다가서는 목포대교..

 

드디어 용머리.. 용머리에서 바라본 웅장한 목포대교...

 

용이 날개를 펴고 승천하는 전설을 지닌 고하도 용머리...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홀로 카메라를 세워 흔적을 남긴다..

 

 

 

 

바로 아래 해안선에서 바라본 대교..

목포대교(木浦大橋)는 목포시에 있는 국도 제1호선의 자동차 전용도로 교량으로, 죽교동과 유달동의 고하도, 허사도를 연결한다.

목포신외항과 서해안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목포의 관문으로 2012년6월29일에 개통된 다리이다.

대불산단~고하도~목포신외항(허사도)~목포대교~목포IC~죽림분기점~대불산단으로 이어지는 목포외곽순환도로의 한 주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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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교는 사장교 형식이지만, 세계에서 두번째, 한국에선 최초로 시도된 3웨이 케이블공법이란 고난이도 공법을 사용함으로써

한국의 대교역사의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 일반적인 사장교는 상판 좌우측에 각각 2쌍의 케이블로 지탱하지만 3웨이 케이블공법은

좌우측의 케이블을 1쌍으로 줄이고 이를 상판의 중앙에 옮겨 상판을 고정하는 방식이다..

설계나 시공등에서 고난이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며, 케이블을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사장교 좌우측의 경관을 살릴 수 있는게 장점이다...

 

목포대교는 목포시조이며, 상징인 을 형상화하여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또한 목포는 태풍이나 강풍이 자주 부는 지역이기 때문에 다리의 상판은 초속 67.4m, 주탑은 초속 74.9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고, 또한 상판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시켰다.

북항~고하도 간 총연장 4.129km를 잇는 왕복 4차로로 3,346억 원을 투입, 길이 167.5m짜리 주탑 2개, 교각 36개,

상판 슬라브 36경간이 시공됐다.

사장교 형식은 3경간 연속 유선형강상판 강사장교(200+500+200m)이고, 주탑 모양은 다이아몬드형이다.

그리고, 케이블은 3웨이 120케이블(약 19,500m)이 시공됐다...

 

 

용머리를 뒤로하고 돌아선다..

 

길게 이어지는 해안선..

 

건너편의 목포해양대학교...

 

목포여객선터미널..

 

목포대교의 풍경... 

 

서서히 저물어가는 하루...

 

왔던 길로 되돌아 온다...

 

바로 아래에는 큰덕골 간척지...

 

유달산...

다시 돌아온 뫼막개... 

 

큰덕골 저수지..

 

목포항과 시가지..

 

당겨본 유달산...

 

다시 돌아온 말바위..

 

등대섬에는 거대한 한이 서있다..

 

안부에서 좌측 마을로 내려선다...

 

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갈대와 어울어진 석양의 큰산..

 

고하도항으로 이어지는 수로.. 

 

한적한 어촌의 풍경..

 

고하도 선착장.. 

 

이충무공유적지로 들어서면 소나무숲... 

 

예전의 자연보호신고소 건물...

 

이충무공기념비로 들어서는 홍살문..

 

충무공이 1579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08일 동안 주둔하여 군사를 재정비했던 곳이다...

 

이충무공은 이섬을 전략지로 이용 임진왜란 때 왜적의 육지 침입을 막아낸 곳이다...

 

이순신장군이 진을 쳤던 흔적과 그의 공적을 가리기 위하여 세워진 모충각...

 

 

 

 

 

 

 

이 충무공의 유적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조선육지면발상지비(朝鮮陸地綿發祥之碑)가 있다...

도로에서 떨어진 밭에 서있는 이 비는 얼핏 보기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너비 62cm, 높이 183cm, 폭 33cm의 비...

1899년 일본영사 와카마츠 도사부로(若松兎三郞)가 미국산 육지면을 고하도에서 시험재배를 성공해 만든 것이다.

이에 1904년 육지면의 재배를 시작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36년에 면화재배 삼십년 기념회에서 비를 건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비는 수난을 겪기도 하여, 해방 이후 비는 뽑혀 인근 밭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래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마을 사람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고하도항과 등대섬..

고하도복지회관, 그 앞의 도로는 주정차금지지구라고...

다시 돌아온 뒷도랑 잔등... 차를 회수하여 떠난다..

 

석양의 유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목포대교..

 

어둠에 잠기고 있다..

 

노인과 바다, 카페 레스토랑..

 

그 옆에서 바라본 풍경..

 

이제 어둠이 내렸다..

 

불을 밝히고 있는 목포대교를 뒤로하고 강추위에 해안을 떠난다...

 

추웠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