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2년 12월 23일
○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산32
○ 약수암과 아미타목각탱(阿彌陀木刻幀) 소개
실상사의 산내암자로 1724년(경종 4)에 천은스님이 처음으로 세웠고, 서영대사가 중수하였다.
1901년(광무 5)에 지월대사는 일당을 중수하였고, 1918년에 예암대유 스님이 개인 재산을 모아 보광전을 다시 세웠다.
1937년에는 함양의 불자 한정희의 시주금으로 중수하였으며, 1974년에 운영 비구니 스님이 두 번에 걸쳐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약수샘이 있어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기 때문에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약수암에는 목조 팔작지붕으로 된 보광전과 목조 요사채가 있다.
보광전 안에는 정조 6년(1782년)에 만든 보물 제421호인 아미타목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가로 183㎝, 세로 181㎝인 이 목각탱화는 불화의 내용을 부조 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조각기법과 불화기법이 혼용된 것이다.
이러한 목각 탱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것으로 현재 문경 대승사, 상주 남장사, 예천 용문사, 서울 경국사에도 남아 있다.
약수암의 목각탱은 하단부에 "건륭사십칠년임인십일월방장산실상사"라는 기록이 있어 1782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목조탱화는 현존하는 6점의 조선 후기 목조탱화 중에서 가장 간략한 배치 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
나무에 불상을 조각해서 만든 탱화인데, 탱화는 대개 천이나 종이에 그린 그림을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불화를 말하지만
나무로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비교적 작은 직사각형의 목판 1매에 높은 돋을새김〔高浮彫〕으로 조각하였다.
아미타불(阿彌陀佛)과 8보살, 2비구가 표현되었다.
즉, 화면을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하단 중앙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4보살과 2비구를 배치하였다.
불격에 따른 크기의 차이가 거의 없는 반면, 본존불인 아미타불만은 타원형을 반으로 자른 듯한 거신광배(擧身光背)를 지니고 있다.
직사각형의 넓적한 얼굴에 도식적인 눈·코·입이 묘사되었다.
치켜 올라간 좁은 어깨는 목 위에 올라붙어 마치 등을 굽혀 머리를 앞으로 숙인 듯한 특징적인 자세이다.
위축된 신체에 비하여 얼굴이 크게 표현되어 그 비례가 전혀 맞지 않는다.
두 손은 따로 조각하여 끼워 놓았는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인(阿彌陀印)을 결하고 있다.
통견(通肩)의 불의(佛衣) 안에는 군의(裙衣)의 띠 매듭이 가슴 위에까지 올라오고 옷자락은 대좌 밑으로 형식화되어 흘러내렸다.
이러한 본존불의 위축된 자세라든가 두 손의 모양, 불의의 표현 등은 조선 후기 목조탱화의 본존불들과 거의 비슷하다.
주위에 시립한 8보살 중 관음보살(觀音菩薩)은 보관(寶冠)에 화불(化佛)을 모시고 보병(寶甁)을 들었으며,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승려의 머리에 석장(錫杖)을 짚고 있다.
합장한 2인의 비구는 아난(阿難)·가섭(迦葉)으로 생각되는데 배경에는 연화생(蓮華生)의 무리가 묘사된 연꽃으로 장엄하였다.
이 목조탱화는 원만한 상들의 단순한 배치 구도라든가 정교한 세부 조각 등 당시 성행하던 목조불감의 불상들과 비교되는 작품으로서,
조선 후기 목조탱화의 기준 작품이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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