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기행] 가락국 마지막왕의 석총, 산청 전 구형왕릉(山淸 傳 仇衡王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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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기행] 가락국 마지막왕의 석총, 산청 전 구형왕릉(山淸 傳 仇衡王陵)..

by 정산 돌구름 2012. 12. 2.
가락국 마지막왕 구형왕의 석총, 산청 전 구형왕릉(山淸 傳 仇衡王陵)..

 

탐방일 : 2012년 12월 1일

소재지 :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16

산청 전 구형왕릉(山淸 傳 仇衡王陵) 소개

  1971년2월9일에 사적 제214호로 지정된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가락국(駕洛國) 제10대 구형왕의 돌무덤[石塚]이다.

  구형왕은 신라 김유신(金庾信)의 증조부로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고도 한다.

  521년 가야의 마지막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가야의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이 무덤은 석탑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2가지 설이 있었다.

  석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것이 안동과 의성지방에 분포하고 있는데 근거를 두고있다.

  왕릉이라는 근거는 <동국여지승람> 권31, 산음현(山陰縣) 산천조(山川條)에 “왕산(王山)”이 있고 그 각주(脚註)에 “현(縣)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구릉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구형왕릉이라고 왕명(王名)을 붙인 기록은 홍의영의 <왕산심릉기(王山尋陵記)>에 비로소 보이고 있다.

  이 돌무덤에 대해 설명하고 근처에 있는 왕산사에 전해져 오고 있는 <산사기권(山寺記卷)>에 구형왕릉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였다.

  한편 <산청현읍지(山淸縣邑誌)>에 의하면 1798년(정조22년)에 처음으로 왕릉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홍의영의 <왕산심릉기>도 이 “왕릉이 처음 나타났다”고 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왕산사는 없어지고, 구형왕의 후손들이 정조 17년(1793년)에는 왕산사에서 전해오던 목궤에서 발견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와

  활과 검 등의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德讓殿)’이라는 전각을 짓고,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돌무덤은 일반 분묘들과 달리 각 층이 단을 이루고 있는 방형으로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내리는 경사면에 잡석으로 축조하였다.

  전면은 7단을 이루고, 후면은 갈수록 경사가 커져서 각 층의 높이에 따라 체감되고 있다.

  석렬은 전면에서조차 직선이 아닌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모퉁이도 뚜렷하지 않고 정상은 봉분과 같이 타원의 반구형을 이루고 있다.

  꼭대기는 타원형으로 되었고 전면 중앙에서의 전체 높이 7.15m이며, 제4단 동면에 너비 0.4m 내외, 높이 0.4m 내외, 깊이 0.68m

  내외의 감실이 개설되어 있으나 무엇을 위한 시설인지 알 수 없다.

  돌무덤을 중심으로 높이 1m 내외의 잡석으로 담을 쌓고 전면 중앙에〈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이라고 새긴 석비가 있다.

  그 앞에 상석(床石)과 장명등(長明燈)이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석수(石獸)가 각각 1쌍씩 있으나

  이 석물들은 최근의 시설물들로 돌무덤과는 시대적인 차이가 많다..

 

 

입구의 비각..

 

가락국시조왕묘유지비가 있다..

 

안에는 가락구기 비문이 새겨져 있고..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왕 김유신비..

 

구형왕의 증손자였던 김유신이 무예를 연습하였다는 자리이기에 김유신의 비가 있다...

 

잠시 오르면 홍교...

 

돌담너머로..

 

홍교를 건너면..

 

입구의 홍살문..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다는 구형왕릉 해설..

 

들어서는 전각..

 

왕릉의 모습..

 

전면 중앙에〈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이라고 새긴 석비가 있다...

 

비 앞에 상석이 있고..

 

장명등(長明燈)도 세워져 있다..

 

좌우에는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석수(石獸)가 각각 1쌍씩 있으나...

 

이 석물들은 최근의 시설물들이다...

 

꼭대기는 타원형으로 되었고 전면 중앙에서의 전체 높이 7.15m이며, 제4단 동면에 너비 40cm 내외, 높이 40cm 내외,

무엇을 위한 시설인지 알 수 없는 깊이 68cm 내외의 감실이 개설되어 있다..

 

화려한 철기문화의 꽃을 피우고 고대일본과 백제, 신라의 중계무역으로 낙동강 유역의 최대 세력으로 자리하였던

가야국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진 구형왕...

 

무덤가에 흥무왕시릉사우지유지.. 김유신이 이곳에서 증조부의 묘역에서 시릉을 하였다고..

 

양릉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