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기행]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와 조선육지면발상지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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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기행]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와 조선육지면발상지지비..

by 정산 돌구름 2013. 1. 3.
[목포기행]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와 조선육지면발상지지비...

탐방일 : 2013년 1월 2일

소재지 : 전남 목포시 충무동 산230

기념비 소개

  임진왜란때 충무공 이순신의 군량비축의 탁월한 전략을 기리기 위하여 고하도에 세운 비로써 전남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

  1597년 충무공이순신(1545~1598)이 고하도에 진성을 축성하고 군사를 주둔하였던 터에 1722년(경종2)에 세워졌다.

  1722년 통제사로 부임한 오중주(吳重周)와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李鳳祥)이 옛터에 비를 세웠다.

  비명은 有明朝鮮國故三道統制使贈左議政忠武李公高下島遺墟記事碑(유명조선국고삼도통제사증좌의정충무이공고하도유허기사비)며,

  남구만(南九萬)이 비문을 지었고, 조태구(趙泰耉)가 글씨를 썻으며, 이광자(李光仔)가 비분을 새겼다. 비문은 17행 48자이다.

  주된 내용은 정유란때 이순신이 군사주둔처로 고하도를 설정하게 된 과정, 진이 1647년(인조25)에 당곶진(목포시 이로동 하당)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충무공의 유허가 소실됨을 안타깝게 여기던 오중주통제사가 유허비 건립을 주도한 내용, 전쟁시 군량미의 중요성,

  후임 통제사로 하여금 고하도진터임을 알도록 하기위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뒷면에는 崇禎紀元後九十五年壬寅八月(숭정기원후구십오년임인팔월)로 건립연대가 새겨 있다.

  몸둘의 높이는 227cm, 너비는 112cm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당초문이 새겨진 네모꼴의 이수와 별다른 조식이 없는 좌대를 갖추었는데, 비는 모충각안에 있고 42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야산에 버려져 있던 것을 광복이 되면서 현위치에 세웠다.

  1949년에 비각을 건립하였고 1973면 중수 하였다..

 

 

 

 

 

 

 

 

 

 

 

 

 

 

 

 

 

 

 

 

 

 

 

 

 

 

 

 

 

조선육지면발상지지비(朝鮮陸地綿發祥之地碑)..

  이충무공의 유적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의 밭 가운데에 조선육지면발상지비(朝鮮陸地綿發祥之碑)가 있다.

  육지면 밭에 서있는 너비 62cm, 높이 183cm, 폭 33cm의 이 비는 얼핏 보기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 비는 1899년 일본영사 와카마츠 도사부로(若松兎三郞)가 미국산 육지면을 고하도에서 시험재배를 성공해 만든 것이다.

  이에 1904년 육지면의 재배를 시작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36년에 면화재배 삼십년 기념회에서 비를 건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이 된 이후 이 비는 뽑혀져 인근 밭에 나뒹굴고 있었으나 그래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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