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덮인 지리산 중북부능선 삼정산~칠암자 순례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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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2

눈덮인 지리산 중북부능선 삼정산~칠암자 순례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12. 12. 24.
눈덮인 지리산 중북부능선, 삼정산~칠암자 순례산행, 그리고 실상사..


산행일자 : 2012. 12. 23(일)

기상상황 : 흐리고 강추위(가끔 눈발이 휘날린 영하의 추운 날씨에 바람, -8~-4℃)

산행인원 : 광주요산회(43명) - 회비 30,000원

산행코스 : 삼정산(전북 남원, 경남 함양)

   음정~도솔암~영원사~빗기재~삼정산~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주차장

구간별 소요시간 : 약16.0km, 6시간10분소요

  음정(08:25)~차량통제선(08:43)~도솔암갈림길(09:02)~도솔암(09:45~55)~영원사(10:30~35)~빗기재(11:00)~

  갈림길(11:25)~삼정산(11:35)~상무주암(11:50)~문수암(12:05~30)~삼불사(12:45)~삼정산 갈림길(13:00)~묘지대

  (13:08)~약수암(13:37~45)~실상사(14:05~30)~주차장(14:35)

교통상황

  홈플러스(06:30)~88고속~지리산휴게소~지리산IC~37번~60번~1023번~음정(08:15)

  실상사(15:05)~60번~37번~인월황토사우나(15:20~16:45)~쌍용식당~지리산IC(17:30)~88고속~홈플러스(18:30)

 

  

산행지 소개

  삼정산(三政山 1,261m)은 지리산 주능선상의 삼각봉(1,462m)에서 북서로 뻗어내린 지리산 중북부능선상의 주봉으로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경남 함양군 마천면의 도계를 이루며 뻗어간다.

  일명 삼정산능선이라고도 하는데, 이 능선이 품고있는 도솔암(兜率庵 1,165m), 영원사(靈源寺 895m), 상무주암(上無住庵

  1,162m), 문수암(文殊庵 1,060m), 삼불사(三佛寺 990m), 약수암(藥水庵 560m), 실상사(實相寺 330m) 등 일곱 곳의

  암자와 사찰을 흔히 지리산 칠암자라 부른다.

  도솔암과 상무주암, 문수암 등은 영원사에 딸린 암자들로 수행정진하는 청정도량답게 고산(高山)지대의 능사면과 기암절벽을

  등지고 천왕봉을 향하고 있어 앞에 막힘이 없어 조망이 뛰어난다.

  삼정산능선 끝자락인 772m봉  아늑한 능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약수암은 보광전의 목조탱화(보물 제421호)가 유명하다.

  지리산 남사면 조망터로 압권인 남부능선상의 삼신봉(1284.5m)과 더불어 지리산 북사면 조망터로는 당연 삼정산 능선이다.

  능선상의 요소요소 조망터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주능선과 북사면 전체가 조망이 되는데「하봉~천왕봉~삼각고지~노고단~

  만복대~바래봉~덕두봉」까지 하염없이 흘러가는 지리 태극문양의 마루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삼정산 능선은 대체로 마루금 코스보다 칠암자 순례코스로 많이들 이용하고 있다.

  실상사와 약수암을 제외한 영원사와 나머지 암자들은 삼정산 동사면으로 위치하고 있어 산객들은 삼정산을 많이 찾고 있는

  반면, 삼정산보다 높은 영원봉(1,289.5m)과 별바위등(1,400m)은 산객들 발길이 뜸한 편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영원령으로 표기 되어있지만, 지리산 마니아들에게는 영원봉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뱀사골의 동쪽 산록에 해당되며, 만수천과 덕전천의 분수계를 이루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산세가 부드럽고, 곳곳에 기암과 고사목·노송들이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함양군지>에는 삼정산(三丁山)이라고 되어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삼정산(三政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삼정산이란 이름은 동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하정, 음정, 양정이란 세 마을의 이름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삼정산 자락 능선엔 영원봉까지 밀생하던 산죽이 삼정산 이후론 각종 활엽수림 무성하고 정성재 이후론 침엽수림이 울창해서

  산색 변화가 다양하고 전망 좋은 조망바위 자주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정상 직전 조망바위에서 바라보는 지리 주능선 북사면 바라보기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다.

  크고 깊은 계곡이 발아래로 펼쳐지고, 함양 독바위가 있는 상내봉에서부터 하봉~중봉~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주능선..

  형제봉과 반야봉은 바로 코앞에 다가서 있고, 정령치~세걸산~바래봉으로 이어가는 북부능선이 선명하다.

  뱀사골과 백무동 물길 합수되는 마천면, 그 뒤 하늘속으로 사라지는 엄천강..

  지리산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 펼쳐져 발길을 옮길 적마다 다가왔다가 사라지고 때론 강물처럼 멀어져가기도 한다.

  천년사찰,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증각대사 홍척이 당나라에 유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를 찾아 2년 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현재의 자리에 발길을 멈추고 창건했다.

  구산선종 가운데 최초로 그의 고향인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절을 세운 것이다.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이 곳에는 신라시대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백장암 3층석탑은 전형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설계를 하고 있어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공예탑이다.

  실상사 문화유적은 보물급에는 수철화상능가보월탑(제33호), 능가보월탑비(제34호), 석등(제35호), 부도(제36호), 삼층

  쌍탑(제37호), 증각대사응료탑(제38호), 증각대사응료탑비(제39호), 백장암석등(제40호), 철제여래좌상(제41호), 청동

  은입사향로(제420호), 약수암목조탱화(제421호) 등 11점이 보존되어 있다.

  지방유형문화재로는 극락전(제45호), 위토개량성책(제88호), 보광전범종(제138호), 백장암보살좌상(제166호), 백장암범종

  (제211호) 등 5점이다.

 

선비의 고장 함양..  양정, 음정, 하정마을을 일컫는 삼정리...

선녀와 나뭇꾼의 전설이 깃든 하정마을을 지나 오르면 길가 주차장에 물레방아골 함양, 백두대간 벽소령의 표지석이 있다... 

 

좌측으로는 1코스가 오르는 음정마을, 우측으로는 2코스가 오르는 양정마을이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산행은 시작되고...  

 

벽소령대피소 6.7km이정표를 따라 오른다..

 

음정마을회관을 지나 오르면 수덕재...

 

양정마을과 다랭이논, 그리고 그 뒤로 삼정산 능선이 바라보인다..

 

잠시 후 길게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나있는 산길을 무찔러 오르면 차량통제 바리케이드가 있는 임도에 올라선다..

 

임도를 따라 한참을 올라서면 음정 2.0km지점 13-05 구조위치표지목...

 

13-05번 표지목에서 200m가량 임도를 따라가면 우측으로 희미하게 능선으로 들어서는 산길이 보인다..

 

아무도 가지않은 희미한 눈길을 가파르게 올라 능선에 이르면 길이 확연히 나타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상당한 깊이를 느끼며 러셀해 나간다..

 

드디어 암자의 초립문이 나타난다...

 

7암자중 첫번째 암자인 도솔암(兜率庵)..

도솔암은 사명대사의 사형인 청매조사께서 수행하시고 열반하신 유명한 도량이다..

 

1982년부터 혜암스님이 천막을 짓고 정진하시다가 1987년 도량을 지었다고 한다..

 

청매인오(靑梅 印悟)조사는 1548년에 출생하여 1623에 입적하였다.

자는 묵계(默契), 호는 청매(靑梅), 청허휴정(淸虛休靜)의 제자이다. 1592년 임진왜란 승병장으로 3년 동안 공적을 세웠다.

왜란 후 부안 요차봉 마천대(摩天臺) 기슭에 월명암(月明庵)을 짓고 살았다고 하며, 지리산 연곡사에서 입적하였다고 전한다..

 

멀리 하봉으로 흘러내린 지리산 자락만 바라보일뿐 운무에 쌓여 조망이 없다...

 

눈덮인 고요한 산사..

 

선방의 스님만이 홀로 계신다.. 

암자를 빠져 나와 영원사로 향한다.. 

 

잣나무숲길을 따라 내려선다..

 

한참을 내려서 계곡을 건너면 영원사로 오르는 임도가 나타난다..

 

그러나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거대한 영원사 표지석..

 

잠시 오르면 두류선림 영원사가 고개를 내민다..

 

두번째 암자 영원사(靈源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진덕여왕 때 영원(靈源)이 창건하였다..

 

뒤편의 산령각..

 

절 이름은 창건자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2가지 창건 설화가 전한다.

그중 하나는 영원이 범어사에서 수행하다가 욕심 많은 스승을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가 10년 후에 다시 돌아와 보니

스승은 흑구렁이로 변해 있었다.

영원은 불쌍한 스승의 영혼을 인도하여 지리산으로 돌아가다가 만난 한 부부에게 ˝열달 후 아들이 태어날 것이니 7세가 되거든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하였다.

원은 이후 절을 짓기 시작하여 7년 만에 완성하였고, 그곳으로 찾아온 동자를 제자로 삼았다.

그는 동자를 방 안에 가두고 문에 작은 구멍을 낸 후 그 구멍으로 황소가 들어올 때까지 열심히 수행하라고 하였다.

훗날 동자는 문구멍으로 황소가 뛰어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영원이 이곳에서 8년간이나 수도하였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가려고 산을 내려가는데,

한 노인이 물도 없는 산에서 낚시를 하면서 영원을 향하여 혼잣말로 ‘8년간 낚시를 했는데 아직 고기를 낚지 못하였다.

그러나 2년만 있으면 큰 고기를 낚을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영원이 이 말을 듣고 다시 2년간 더 수도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절을 지었는데, 그것이 영원사였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그 노인을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행처로 이름나 고승 109명이 안거하였다고 한다.

이 사찰의 역대 조실들을 기록한 <조실안록(祖室安錄)>에는 영관과 휴정·인오·유정·상언 등의 큰스님이 열거되어 있다..

 

절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며, 1948년 여·순사건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71년 중창되어 오늘에 이른다.

건물은 인법당만 남아 있고, 암자는 도솔암과 상무주암(上無住庵)·문수암 등이 남아 있다..

 

영원사는 한때 내지리에서는 제일 가는 이름있는 사찰이라고 했다.

너와로 된 선방이 9채에 100간이 넘는 방이 있었으며 이 곳에서 도를 닦은 고승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명성만 지닌 채 초라한 절이 되어 스님 한 분만이 폐허가 된 사찰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뒤편으로는 영원령으로 오르는 길이 열려있다.. 

 

한참을 가파르게 올라서면 삼정산 능선에 오른다.. 상무주암으로 가는 길..

 

영원령에서 이어지는 능선...

 

잠시 오르면 영원봉이 눈에 들어온다..

 

조망이 트이는 암릉.. 그리고 아름다운 소나무..

 

쓰러진 고목너머로 양정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삼정산으로 오르는 길목의 암봉.. 역시 운무에 조망이 트이질 않는다..

 

가파르게 올라서면 헬기장..

 

삼정산 정상..

 

차가운 칼바람과 영하의 추운 날씨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

 

서둘러 하산준비..

 

다시 내려서면 상무주암 영역.. 한켠의 선방..

 

세번째 암자인 상무주암(上無住庵)..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약간의 수행승들과 함께 창건하고 일체의 바깥 인연을 끊고 내관(內觀)에만 힘썼다고 한다.

이 때 보조국사는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가운데 “선이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또한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思量分別)하는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고 하는 글귀를 읽고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 1200년에 조계산 송광사로 옮겨 수선사(修禪寺)를 만들었다.

보조국사의 대오 이후 이 절은 성지화 되어 많은 승려들의 수행처가 되었으나 역사는 뚜렷이 전하지 않는다..

 

서산대사가 불제자로 입문할 때 달궁의 황령사에서 삭발하고 그 후 이곳 영원사로 들어와 12년간 도를 닦은 곳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당우는 인법당(因法堂)만이 있으며, 절 왼편에는 작고 불완전한 삼층석탑 1기가 있다..

이 탑은 고려 말의 고승인 각운(覺雲)의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이다.

각운이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30권의 저술을 완료하였을 때 붓통 속에 떨어졌다는 사리를 봉안한 탑으로서

서광을 발하였다고 한다...

 

문수암까지는 1.2km..

 

희미하게 바라보이는 오송산과 창암산... 조망이 아쉽다..

 

지금껏 왔지만 영원사에서 2.5km.. 약수암까지는 3.2km..

 

문수암이 다가온다..

 

네번째 암자, 문수암(文殊庵)..

 

1965년 혜암스님이 창건한 선학원 소속의 암자로 문수암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84년 문수암에 오셔서 25년째 수행 중이신 도봉스님은 조계종 제10대 종정이신 혜암스님의 제자라고 한다..

 

고요한 문수암.. 최고의 조망처라고 하지만 오늘은...

 

임진왜란때 1천명의 주민이 난을 피했다고하여 ‘천인굴’이란 이름이 붙여진 동굴...

 

팔뚝보다 더 굵은 고드름이 맺혀있다..

 

천인굴에서 추위에 쫒기듯 점심을 해결하고 문수암을 떠난다..

 

다섯번째 암자인 삼불사가 나타난다..

 

눈속에 파묻힌 표지판..

 

깊은 산중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암자..

 

석탑과 공덕비..

 

경내를 나서 약수암으로..

 

담장 너머로 삼불사의 풍경..

 

좌측으로 올라 능선을 따라간다..

 

산허리를 따라가는 길...

 

삼정산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중북부 주능선과 만나는 곳...

 

조망이 트이는 널따란 묘지역이지만 오늘은 전혀 조망이 없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을 따라 약수암으로 이어진다..

 

하얀 설국의 여섯번째 암자, 약수암..

 

약수암은 1724년(경종 4)에 천은스님이 처음으로 세웠고, 서영대사가 중수하였다.

1901년(광무 5)에 지월대사는 일당을 중수하였고, 1918년에 예암대유 스님이 개인 재산을 모아 보광전을 다시 세웠다..

 

1937년에는 함양의 불자 한정희의 시주금으로 중수하였으며, 1974년에 운영 비구니 스님이 두 번에 걸쳐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약수샘이 있어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기 때문에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보광전 안에는 1782년(정조 6)에 만든 보물 제421호인 아미타목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목각탱화는 불화의 내용을 부조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조각기법과 불화기법이 혼용된 것이다.

탱화는 대개 천이나 종이에 그린 그림을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불화를 말하지만 나무로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약수암의 목각탱은 하단부에 "건륭사십칠년임인십일월방장산실상사"라는 기록이 있어 1782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작은 사각형의 목판 1매에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는데 아미타불과 8보살, 2비구가 표현되었다.

즉 화면을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하단 중앙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4보살과 2비구를 배치하였다.

불격에 따른 크기의 차이가 거의 없는 반면 본존불인 아미타불만은 몸 전체를 감싸는 광배를 지니고 있다.

본존불은 사자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따로 조각하여 끼워 놓았다.

주위에 서 있는 8보살중 관음보살은 보관에 화불이 있고 손에는 보병을 들었다.

지장보살은 스님의 머리 모양을 하고 지팡이를 짚고 있다.

합장한 2인의 비구는 아난과 가섭으로 생각되며 그 배경에는 연꽃으로 장엄하였다.

이것은 현존하는 6점의 조선후기 목각탱화 중에서 가장 간략한 배치구도를 하고 있다..

 

약수암 요사채..

 

요사채 중앙에 약수암 편액이 걸려있다..

 

아담한 사찰이다..

 

약수암을 나서며..

 

다시 숲길로 들어 내려서면 임천과 다랭이논..

 

아늑한 소나무 숲길..

 

소나무 숲길을 내려서면 실상사 부도전이 나타난다.

옛 조계암 터에는 편운화상탑(片雲和尙塔),청련사사리탑(靑蓮士舍利塔),용운화상탑(龍雲和尙塔) 등 4기의 부도가 자리한다.

이 가운데 편운화상 부도는 구름과 용이 조각된 원형의 하대에 주발을 올려놓은 듯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앞 금대산과 백운산.. 멀리 삼봉산도 모습을 드러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인 천년고찰 지리산 실상사(實相寺)...

통일신라 흥덕왕3년(828)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데서 비롯된다.

당에서 귀국한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으뜸 사찰로 발전하였다..

 

옛기와탑과 종각..

 

보물 제37호로 지정되어 있는 3층석탑..

보광전 앞에 동서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두 탑의 수법과 규모는 거의 동일하다.

높이는 8.4m로 2층 기단 귀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동서 두 탑 모두 머리장식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통일신라의 정형을 보이며,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이 있다.

 

보물 제35호로 지정된 석등..

통일신라 후기 석등으로 높이가 5m나 되는데 머리장식에는 화려한 무늬를 새겨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을 잘 보여준다.

 

보광전(寶光殿).. 고종21년(1884)에 월송(月松)스님이 본래의 넓은 금당 터 기단 위에 다시 작은 기단을 만들어 세운 것이다.

보광전 주변에는 주춧돌이 남아 있어 본래의 금당이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삼존상과 1981년에 조성한 신중탱ㆍ산신탱과 전북유형문화재 제137호인 실상사 범종이 봉안되어 있다.

삼존상 중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시대 조성한 것이고, 좌우 관음ㆍ대세지보살입상은 원래 극락전에 아미타여래좌상과

함께 봉안되었던 것으로 월씨국(베트남)에서 모셔 왔다고도 한다.

좌우의 보살입상은 종이로 만들어진 지불(紙佛)로 보살상 1구가 과거 분실되어 남은 1구를 대칭적으로 복원하여 모신 것이다..

 

명부전..

정면과 측면 각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장육전 동쪽에 있던 것을 1821년(순조 21)에 의암대사가 옮겨 지은 것이다..

 

내부에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ㆍ판관상ㆍ인왕상의 명부 권속이 봉안되어 있고,

지장보살상 뒤에는 1987년 조성한 지장시왕탱이 모셔져 있다..

 

약사전..

1883년의 방화에도 불타지 않았던 유일한 건물이었으며,

현재는 주변발굴과 해체복원 작업을 위해 가건물로 철불을 모셔 놓았다..

 

현재 보물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는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

실상사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고, 정수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아담한 크기로 자리잡고 있다.

귀는 긴 편이며, 목의 삼도(三道)는 겨우 보일 듯이 표현되고 있다.

현재의 두 손은 나무로 만들어 끼워 넣은 것으로, 1987년 복원할 때 나온 철제 손과 같은 모양이다.

대좌는 흙으로 만들었으나 허물어진 곳이 많아 자세한 모습은 알 수 없다..

 

실상사 가장 뒤편에 위치한 극락전..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1684년(숙종 10) 계오대사(戒悟大師)에 의해 부도전으로 지은 것이다..

 

1788년(정조12)에 금파 관오대사가 중수하였고 이후 1832년(순조32)에 의암대사가 기봉ㆍ처윤스님과 함께 중건하면서

극락전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에는 지불(紙佛)인 아미타여래좌상과 1985년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보물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는 증각대사응료탑비(證覺大師凝蓼塔碑)..

 

이 탑비는 비신(碑身)이 없어진 채 현재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있다.

받침돌은 용의 머리를 형상화하지 않고 거북의 머리를 그대로 충실히 따랐다.

앞면 중앙에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비 명칭을 새겨 두었는데,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있는 증각대사응료탑(證覺大師凝蓼塔)..

실상사 개창조인 홍척국사(洪陟國師)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부도이다.

홍척은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로 시호가 증각(證覺)이고, 부도 이름이 응료(應蓼)여서 ’증각대사응료탑‘으로 불린다..

 

8각형의 석재를 여러 층 쌓아 기단(基壇)을 조성한 뒤 연꽃이 피어있는 모양의 돌을 올렸다.

각 면의 조각은 닳아 없어져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고 위 받침돌의 연꽃잎만이 뚜렷하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었는데 비교적 낮은 편이다. 몸돌은 기둥 모양을 새겨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아치형의 문을

새겼으며, 그곳에 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목조건축 처마선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전체 높이는 2.42m이다..

 

보물 제33호로 지정된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높이 3m의 화강암으로 제작되었으며, 실상사의 제2대 조사인 수철화상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이다.

신라 진성여왕 7년(893) 입적하였으며, 왕은 그의 시호를 ‘수철화상’이라 하고, 탑 이름을 ‘능가보월’이라 내렸다..

 

8각 원당을 기본형으로 한 전형적인 묘탑으로 사각 지대석이 지면에 놓이고 그 위에 하대석은 8각으로 3단을 이루었다.

중대석에는 각 우각에 주형이 있을 뿐 다른 장식은 없고, 상대석은 상하 2단인데 하단은 앙련석이고 상단은 특히 높은 탑신

받침이다. 탑신은 낮은 편으로 우주형이 모각된 상면에는 목조건축의 첨차를 조각하였다.

신부 각면에는 문비형(門扉形)과 사천왕 입상이 각각 양각되었는데 특히 문비형은 상부가 반원형을 이룬 점이 특이하다.

옥개석(屋蓋石:지붕돌)은 추녀 밑의 반곡(反曲)이 심하고 옥상에는 기와골이 있으나 귀꽃은 없다.

상륜(相輪)은 옥개 정상에 꽃무늬가 조각된 편구형(扁球形) 이륜(二輪)을 얹고 그 위에 보주(寶珠)를 놓았다..

 

 

보물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는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實相寺 秀澈和尙楞伽寶月塔碑)..

수철화상(秀澈和尙)은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로, 본래 심원사에 머물다가 뒤에 실상사에 들어가 수도하였다.

진성여왕 7년(893) 5월 77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자 왕이 시호와 탑명을 내렸다고 한다.

비문에는 수철화상의 출생에서 입적까지의 행적과 사리탑을 세우게 된 경위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실상사에서 입적하였으나 심원사의 승려이었기 때문에 비문에는 ‘심원사수철화상’으로 적고 있다.

비문을 짓고 쓴 사람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마멸과 손상이 심한 편이다...

 

당시 일반적인 탑비 형식과는 달리 거북모양 받침돌 대신 안상 6구를 얕게 새긴 직사각형 받침돌을 두어 그위로 비를 세웠다.

비좌에는 큼직한 연꽃을 둘렀고 머릿돌에는 구름속에 용 두마리가 대칭하여 여의주를 다투는 듯한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 앞면 중앙에 ‘능가보월탑비(楞伽寶月塔碑)’라는 전각이 새겨있는데 조각수법이 형식적이고 꾸밈이 약화된 경향이 뚜렷하다.

비의 건립연대는 효공왕대로 추정되고, 글씨는 당대를 전후하여 성행한 구양순체를 따랐으며, 전체 높이는 약 3m이다..

 

급히 경내를 빠져 나온다..

 

현재 중요민속자료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장승(石長生)..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한다.

실상사의 이 장승 역시 경계표시와 함께 경내의 부정을 금하는 뜻에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실상사 초입에는 해탈교를 전후하여 모두 3기의 장승이 서 있다. 먼저 해탈교를 건너기 직전에 석장승 하나가 있는데,

원래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장승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하나 1963년 홍수로 떠내려갔다고 한다..

 

장승의 몸통에는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으며,

수염을 땋아 왼쪽으로 구부리고 벙거지 같은 모자를 썼다.

찌푸린 이맛살과 콧등, 물안경을 쓴 듯 튀어나온 두 눈에 주먹만한 코는 벌름거리는 듯하며,

입술 밖으로 드러난 송곳니는 길게 八자형으로 튀어 나와 매우 해학적인 모습이다..

해탈교 건너에 있는 석장승은 2기인데, 하나는 해탈교 건너 논두렁에 있고 다른 하나는 큰 고목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나무 밑에 있는 석장승은 몸통에 ‘대장군(大將軍)’, 받침돌에 ‘옹정삼년을사삼월입동변(雍正三年乙巳三月立東邊)’이라는

각자가 있어 1725년(영조 1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주보고 있는 장승 역시 몸통에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라는 이름과 ‘신해년오월(辛亥年五月)’이라는 각자가 있어

1731년(영조 7년)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세 장승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머리에 벙거지를 쓰고 있으며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주먹코를 하고 있다.

위 송곳니 두 개가 삐져나와 험상궂은 듯하지만 입가의 미소는 순한 심성을 드러내고 있다..

 

임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

 

실상사 매표소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