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 해남 두륜산 노승봉~가련봉~두륜봉, 그리고 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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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2

가을의 끝자락 해남 두륜산 노승봉~가련봉~두륜봉, 그리고 대흥사..

by 정산 돌구름 2012. 11. 18.
가을의 끝자락 두륜산 노승봉~가련봉~두륜봉, 그리고 대흥사...


산행일자 : 2012. 11. 17 (토)

기상상황 : 흐리고 강한 바람(새벽에는 비, 개였다 흐렸다, 쌀쌀함)

산행코스 : 두륜산, 대둔산(전남 해남)

   오소재~오심재~노승봉~가련봉~만일재~두륜봉~진불암~만일암터~북미륵암~대흥사~제1주차장

구간별소요시간 : 약11.5Km, 5시간35분소요(점심 및 사찰답사 시간 포함)

   오소재(09:55)~오심재(10:25)~노승봉(10:57)~가련봉(11:10~15)~만일재(11:35)~두륜봉(11:55~12:00)~진불암(12:30~35)~만일암터

   (12:50~13:15)~북미륵암(13:30~50)~대흥사(14:10~55)~제1주차장(15:30)

주요 봉우리 : 노승봉(능허대 685m), 가련봉(703m), 두륜봉(630m)

 

 

산행지 소개

   한반도의 끝자락 땅끝 해남에 자리잡은 두륜산(頭輪山 703m)은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사찰, 유적지 등이 많고 자연경관이 뛰어난 관광지로써 난대성 상록활엽수와 온대성 낙엽활엽수들이 숲을 이룬 산이다.

   억새가 무성하며, 여덟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 정상에서는 서해안과 남해안 곳곳의 다도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울창한 숲이 이루는 가을 단풍과 푸르른 동백나무가 자랑거리인 두륜산은 보는 멋, 안에 들어가서 걷는 멋 모두 뛰어나다는 점에서

   명산이라 불러 부끄럽지 않은 산이다. 산 곳곳에 기암절벽이 있으나 외양은 두루뭉실 덕스러워 외유내강형 산의 대표격이라 할 만하다.

   두륜산은 특징적인 8개 봉우리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주봉인 가련봉(703m), 능허대(노승봉 685m), 두륜봉(673m), 고계봉(638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병목안봉 613m)이 그것이다.

   명찰 대둔사(대흥사)는 그 원형의 능선 가운데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8봉 중에도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암봉인 가련봉과 능허대, 그리고 두륜봉이며 이 종주산행이 두륜산 최고의 산행로라 할 만하다.

   남쪽 땅끝에 자리한 명산으로 그 옛날 「큰 언덕」이란 뜻에서 「대듬」 또는 「한듬」으로 불렸던 두륜산...

   봄에는 동백, 여름에는 푸른 신록,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 겨울에는 눈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만추의 늦가을에 이르면 대부분 산들이 을씨년스럽게 앙상한 가지만 남고 겨울 준비를 하지만 두륜산은 오히려 절정에 접어들어

   산등성이는 울긋불긋 변해가고, 대흥사로 내려가는 길 장춘리 구림구곡 십리숲길은 더욱 환하게 빛난다.

   장엄하리 만큼 울창한 숲, 그리고 함께 어우러진 맑은 계곡의 단풍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 하고 감탄사를 연발할 것이다.

   또, 만추의 두륜산은 대둔사를 비롯하여 일지암, 북미륵암, 남미륵암, 진불암, 관음암, 청신암 등 골짜기마다 오롯이 자리 잡고 있는

   사찰과 암자들이 부처님의 향기를 내뿜고 있어 산객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정화시켜준다.

   북미륵암 용화전 안에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면 땀을 흘린다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48호)이 있다.

   이 불상 뒤의 암반에서 보는 두륜산 풍광이 압권이다.

   두륜산은 육산이자 골산이다. 부드럽고 덕스러운 산이 바탕을 이룬 가운데 커다란 성채 같은 암봉들이 몇 개 솟아 있다.

   이 암릉 등날을 따르며 만개한 연꽃 형상이라는 두륜산을 조망하는 멋은 아마추어 암릉 애호가들에겐 최상의 것이라 할 만하다.

   등산로의 짜임새가 뛰어나고 전망이 트이는 지점이 많으며, 산행 도중 운치 있는 암자가 곳곳에 자리해 산행 맛이 특히나 좋은 산이다.

   대둔사(大芚寺)라고도 불리는 대흥사(大興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이다. 

   대흥사의 기원은 426년 신라의 승려 정관이 창건한 만일암이라고도 하고, 또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아도가 창건했다고도 하며,

   일설에는 신라 무열왕 8년(508년)에 이름이 전하지 않는 비구승이 중창하였다는 등 여러 설이 있으나 모두 확인할 길이 없다.

   그후의 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사찰의 규모를 갖추지 못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1604년 서산대사가 자신의 의발을 이곳에 전한 후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의 탄압 속에서도 많은 인재를 길러 내어 13인의 대종사(大宗師)와 13인의 대강사(大講師)를 배출시킨 명찰이다.

   두륜산은 산중 암자가 많으며 이 암자간을 잇는 길만도 여러 가닥이나 표지판이 있고 길도 뚜렷하므로 별 무리 없이 산행이 가능하다.

   아기자기한 암봉과 대흥사 주변의 동백군락지,  한반도의 남쪽에 위치하여 봄맞이 산행으로 많이 찾지만 가을 단풍으로도 많은 인기가

   있어 인기명산 100산중 62위(한국의 산하 2010~11년 접속통계)에 랭크되어 있고, 산림청 100명산에도 선정되어 있다.

교통상황

   비엔날레(08:05)~공항로~13번~49번~13번~2번~18번~55번~827번~오소재(09:50)

   대흥사주차장(15:55)~806번~18번~814번~설성식당(16:45~17:25)~835번~13번~49번~서광산IC~12번고속~비엔날레(18:50)

 

만추의 오소재 풍경..

 

해남군 삼산면과 북일면의 경계가 되는 오소재약수터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간밤에 내린 비로 직퍽거리는 오름길을 오르면 헬기장이 있는 오심재...

 

노승봉을 향하여 오른다..

 

뒤돌아본 오심재와 그 위로 고계봉...

 

헬기장에 이르면 바로 위에 노승봉이 솟아있고..

 

노승봉으로 오르는 통천문 암벽은 비온 후라 미끄럽기 그지없다..

 

강풍에 날아갈듯 휘청거리며 노승봉에서 바라본 고계봉 능선..

 

바로 건너편에는 두륜산 최고봉인 가련봉..

 

두륜봉 너머로 MBC와 KBS송신탑이 있는 도솔봉 능선도 바라보인다..

 

노승봉은 능허대로도 불린다....

 

잠시 가파른 직벽을 내려섰다 다시 오르면 가련봉...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다..

 

바람이 너무나 거세다..

 

지나온 노승봉과 그 뒤로 고계봉도 바라보인다..

 

위봉으로 뻗어내린 능선..  그리고 바다건너 완도 상왕봉도 아른거린다..

 

멀리 강진의 신전들과 강진만..

 

만일재로 내려서는 암봉위의 원앙바위..

 

건너편으로 두륜봉...

 

만일재와 두륜봉..

 

만일재의 억새, 그리고 위봉능선의 투구봉..

 

우측으로는 천년수를 지나 대흥사로 내려선다..

 

두륜봉에 오르면서 뒤돌아본 가련봉...

 

가파르게 철계단을 올라서면 무지개다리로 불리는 구름다리..

 

아름다운 풍경이다...

 

구름다리를 지나 올라서면 두륜봉..

 

지나온 능선들이 일렬로 서있다..

 

가련봉과 노승봉..

 

 

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남해바다, 그리고 완도대교와 상왕봉..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다리에서 흔적을 남기고  내려선다..

 

진불암과 산내암자를 둘러보기 위해 오늘은 진불암 방향으로 내려선다..

 

한참을 내려서 진불암 입구 도로에서 진불암으로 올라선다..

 

아담한 진불암..

 

진불암 응진당..

 

응진전의 나한상과 시왕...

 

진불암에서 만일암터로 향한다..

 

가파르게 올라 진불암능선을 넘어서고..

 

천년수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만일암터..

 

만일암터 5층석탑(挽日庵址 五層石塔)...

 

가련봉 아래 만일암 터에 위치한 고려시대 석탑으로 높이는 약 5.4m 정도이다. 

초층에서 5층까지의 체감률이 급하여 고준한 느낌을 주며, 석재의 짜임방식이나 세부수법에서 고려 중기이후의 석탑양식을 볼 수 있다..

 

기단부는 단층기단으로 4매의 중석과 2대의 갑석으로 짜고 우주와 탱주를 얕게 모각하였으며, 갑석 상면에는 2단의 각형 괴임을 새겨

탑신주를 받쳤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가 한 매의 석재인데, 초층 옥신만은 두 매의 석재로 포개 놓았다.

이러한 수법은 전남지방에 전하는 고려시대 석탑과 동일하다...

 

만일암터 바로 아래에 있는 천년수...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옛날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에 천동과 천녀가 살고있었는데 이들은 어느날 천상의 계율을 어겨 하늘에서 쫒겨나게

되는 무서운 벌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하루만에 바위에다 불상을 조각하는 일이었다.

천동과 천녀는 하루만에 불상을 조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해가지지 못하도록 만일암(해를 당기는 암자)터 앞 천년수에 끈으로

해를 달아매 놓고 천녀는 북쪽바위인 북미륵암에 좌상의 불상을 천동은 남쪽바위인 남미륵암에 입상의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천녀는 앉은 모습을 조각하였기 때문에 입상을 조각한 천동보다 먼저 불상을 조각하였다. 미륵불을 완성해 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완성하지 못한 천동을 기다리지 못해 천녀는 빨리 올라가고 싶은 욕심에 그만 해를 매달아 놓은 끈을 자르고 혼자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로 인해 천동은 영원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 미륵은 미완성으로 남게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수목이다...

 

북미륵암 조성시기가 고려전기인 11세기경이며 여러 구전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 천년수의 수령은 1,200~1,500년으로 추정된다...

 

북미륵암으로 오르는 너덜지대를 지나면 바라본 풍경..

 

북미륵암 갈림길..

 

북미륵암 용화전..

 

국보 제308호로 지정되어 있는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두륜산 노승봉 아래에 1985년 중수된 용화전 내부에 신라 하대에 조성된 마애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높이 4.2m의 거대한 마애불로, 보물 제4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국보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노승봉 아래에는 북미륵과 남미륵이 있었으며, 북미륵은 볼록하게 돋을새김한 양각불상임에 비해 남미륵은 평평한 곳에

선을 이용한 음각불상으로 그 모습이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양각의 북미륵은 여자가 조성하고 음각의 남미륵은 남자가 조성한 것으로,

이들은 모두 제석천이 하강하여 남북에 음양의 조화를 기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 전한다.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은 연화대좌 상부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으며, 상체에 비해 하체가 왜소한 모습이다.

상호는 풍만하면서 원만한 모습으로 소발의 머리 위에는육계가뚜렷하게 솟아 있으며, 짧은 목에는 형식적인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북미륵암 앞 3층석탑..

보물 제301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이중기단의 삼층석탑으로, 일반형에 속하는 고려 초기의 석탑이다.

기단은 지대석 위에 귀기둥(隅柱)와 탱주(撑柱)를 새긴 하대석과 중석을 갖추고 있고, 갑석(甲石)은 4매로 되어 있다.

상층기단의 중석과 갑석은 1매석으로 되어 있는데 갑석에는 부연(副椽)이 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으로 되어 있고 각 탑신에는 네 개의 귀기둥을 본떠 새겼다.

외관상으로 볼 때 이 석탑은 비교적 정제된 석탑으로서 양식적으로는 약화된 점도 있으나,

신라석탑의 형식과 양식을 일부 따르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조성연대는 고려시대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용화전과 3층석탑..

 

북미륵암의 산신각..

 

산신각 안의 산신탱화..

 

산신각 옆 암반에서 바라본 가련봉..

 

아름다운 단풍과 두륜봉..

 

북미륵암 동삼층석탑..

2004년2월13일 전남도문화재자료 제245호로 지정된 10∼11세기에 조성한 신라양식의 3층석탑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큰 암반 위에 단층 기단부를 설치하고 그 위에 탑신부를 얹었다...

 

동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북미륵암 용화전과 3층석탑...

 

동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대흥사..

 

대흥사로 내려서는 길목의 아름다운 단풍 풍경..

 

대흥사 경내에 들어서다..

 

초의선사가 1852년 역대조사들의 진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는 보련각..

 

조사전(祖師殿)..

천불전 일곽의 돌담길을 따라 표충사 영역에 들어서면 표충사당 우측편에 조사전(祖師殿)이 있다.

조사전은 3단의 바른층쌓기한 장대한 기단 위에 단촐하게 세워져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주심포계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3폭의 조사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진영은 창건주 아도조사(阿度祖師)를 비롯하여 대흥사 13대 종사와 강사의 진영을 모신 3폭으로 구분되는데,

6명(1폭)ㆍ5명(2폭)으로 2단 구성 아래 진영을 배치하고 있다...

 

서산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액사우인 표충사(表忠祠).. 전남도기념물 제19호..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고 그의 선풍이 대흥사에 뿌리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기 위해 1669년(현종 10)에 건립되었다.

표충사 일곽의 풍제문인 내삼문 정면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맞배건물로 장대석 기단 위에 자리한다.

어칸 상부에는 1789년에 정조대왕이 하사한 ‘표충사(表忠祠)’ 편액과 ‘어서각(御書閣)’이란 편액 두 기가 있다.

특히 표충사 사액(賜額)은 1788년 천묵ㆍ계홍스님이 서산과 유정ㆍ처영의 영정을 모실 사우의 건립을 모색하면서,

당시 호조판서 서유린이 서산대사의 사적과 사우건립의 정당성을 왕에게 주청하여 건립허가와 함께 ‘표충’이라는 사액을 받게 되었다..

 

내부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활동한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유정ㆍ처영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현재 이곳은 부처의 삼보도량 가운데 승보(僧寶)를 존중하고 받들어 불가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도량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유가(儒家) 형식의 사당을 꾸며 매년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받드는 제례와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표충비각에는 서산대사표충사사적비(西山大師表忠祠寺蹟碑, 1791년)와 표충사건사사적비(表忠祠建祠寺蹟碑, 1792년)가 있는데,

2기 중 서산대사표충사사적비명은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던 서유린(徐有隣)이 글을 지었다...

 

붉게 물든 단풍과 어울어진 부도 하나..

 

단풍과 어울어진 초의대선사상도 아름답다..

 

대흥사 남원에 위치한 사리탑...

 

대흥사 성보박물관...

1978년 박정희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서산대사 유물관’으로 건립되었다.

그 이후 1998년 좌우측에 각각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 2동을 지어 대흥사 성보박물관으로 확장하였다.

현재 성보박물관에는 금란가사(襴袈裟), 옥발(玉鉢), 신발, 수저(匙箸), 교지(敎旨) 등 서산대사의 유품류와 대둔사지, 대둔사사적,

만일암지 등의 사적류, 탑산사 동종과 진불암대종 등의 범종류, 준제관음도, 11면40비관음보살도, 대양문 범왕탱 등의 불화류가 있다..

 

사찰풍경..

 

가허루(駕虛樓)..

천불전으로 들어가는 남원의 출입문으로, 해탈문에서 침계루로 이어지는 주 진입로 남쪽에 자리한다.

가람의 중심에 자리하여 남원 일곽을 수호하듯 일주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허루 내부에는 천불전을 비롯하여 용화당, 동국선원, 봉향각 등 몇 채의 승방이 자리한다..

 

출입문 상부에는 호남의 명필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이 쓴 편액이 걸려 있으며, 내부 천장에는 청룡과 황룡을 단청하고 있다.

특히 타원형 문턱에 있는 가허루 편액은 투병 중에도 하루 천 자씩 글을 쓰며 평생 벼루 3개를 구멍내겠다는 창암의 의지가 드러나며,

독특한 짜임새와 획법에서 그의 개성을 엿볼 수 있다. 편액은 흑지에 백서로 양각되어 있으며, 세로 60㎝, 가로 140㎝이다..

 

전남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는 천불전(千佛殿)...

북원의 대웅보전을 나와 남원 중심곽에 자리잡은 유일한 법당이다.

내부의 천불상은 그 영험을 통해 대흥사를 찾는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곳이기도 하다.

천불전에 자리한 남원은 대둔사지의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초에 일어난 큰 화재로 극락전, 대장전, 약사전, 지장전 등 불ㆍ보살전이

소실된 곳이며, 현재 천불전이 자리한 곳이 극락전 등의 중심건물이 자리했던 법당지로 추정된다.

1813년 초의대사의 전법스승인 완호스님에 의해 중건되었으며, 내부에는 풍계스님에 의해 조성된 천불의 옥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천불전에서 본 가련봉...

 

북원의 대웅보전과 응진당 사이에 있던 범종각을 근래에 들어 천불전 가허루앞으로 새로이 지어 이전 하였다..

범종루 내부에는 1977년 조성된 ‘호국대범종(護國大梵鐘)’이 봉안되어 있다...

 

파란 하늘, 노승봉과 가련봉아 한눈에 들어온다..

 

해탈문(解脫門)..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는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그곳의 경계에 불이문(不二門)이 있다고 한다.

그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속계를 벗어나 법계에 들어가게 되며 이는 곧 해탈의 경지를 상징한다...

 

내부에는 사자를 탄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천년의 인연, 만남, 약속... 연리근..

 

뿌리가 엉켜 하나가 되었다..

 

침계루(枕溪樓)..

대흥사 북원의 출입문으로 남ㆍ북원을 가로지르는 계류 금당천(金塘川)에 면하여 자리한 2층 누각건물이다.

심진교를 지나 누 아래의 어칸 통로를 통해 중정으로 출입하며,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한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대흥사의 중심법전으로 대흥사 가람 북원에 자리한다.

심진교와 침계루, 대웅전이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며, 여기서 직교하여 좌측에 대향각과 우측에 백설당이 중정을 형성하며 배치된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전각으로 다포계 양식의 팔작건물이다..

어칸 상부에 자리한 2행 종서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는 편액은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로 추사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현재 이 글은 백설당에 걸린 추사의 ‘무량수각’ 편액과 함께 대흥사 명필로 손꼽혀 장성 백양사 및 승주 송광사에서

그 글을 모각할 만큼 뛰어난 필적으로 알려져 있다...

 

목조삼존상(木造三尊像)...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 협시로 약사ㆍ아미타의 목조삼세불이 봉안되어 있다.

삼존은 모두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모습이며 신체가 세장한 건장한 불상으로 조선후기의 대형 불상에 속한다.

후불탱으로 중앙에 영산회상탱(靈山會上幀), 우측에 약사회상탱(藥師會上幀), 좌측에 아미타회상탱(藥師會上幀)이 걸려 있다.

3폭에 각각 나누어져 있지만 3여래와 6보살, 10대 제자, 사천왕이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칭이 되도록 배열되어 있다.

중앙의 영산회상도는 키형 광배를 뒤로 한 석가모니불이 결가부좌한 채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으며, 그 좌우에 문수ㆍ보현보살과 가섭ㆍ아난존자가 협시하고 있다. 우측의 약사회상탱은 중앙에서 약간 좌측으로 벗어난 곳에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를 배치하고

그 아래에 일광ㆍ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천왕 가운데 지국천왕과 증장천왕, 10대 제자 가운데 4위(位)가 배치되었다..

좌측의 아미타회상탱은 약사회상탱과 정반대의 구도를 하고 있는데, 중앙에서 약간 우측으로 벗어난 곳에 아미타불을 배치하고

그 아래에 관음ㆍ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천왕 가운데 광목천왕과 다문천왕, 10대 제자 가운데 4위(位)가 배치되었다...

 

대웅전과 응진당 사이의 윤장대..

 

응진당· 산신각(應眞堂·山神閣)..

대웅보전 좌측에 자리한 이 건물은 왼쪽으로부터 응진당ㆍ산신각을 한 채에 연이어 수용한 점이 특이하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맞배건물로 2벌대의 장대석을 바른층쌓기 한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건물은 응진당이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획되고 산신각이 정면 2칸, 측면 3칸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사이 판장으로 담을 쌓고 출입에 용이하도록 쪽문을 달아 놓았다...

 

산신각은 연등천장 상부에  황룡과 청룡도를 단청하고, 불단 위에 1901년 조성된 산신탱과 독성탱을 봉안하였다...

 

응진당 내부에는 중앙 불단을 중심으로 목조석가삼존상과 좌우 십육나한상, 제석, 범천, 사자, 금강역사, 동자상들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의 석가삼존은 석가를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인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응진당 앞 삼층석탑...

보물 제320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석탑은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조성연대는 신라말기 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침계루에는 원종대가람의 편액이 걸려있다...

 

백설당(白雪堂)...

북원 일곽의 침계루 우측에 자리잡은 승방으로 대흥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요사채이다.

트인 ㅁ자형 건물로 대흥사 사중의 대중방으로 이용되며, 대웅전을 향한 동편이 주건물로 3칸의 고량대실(高樑大室)로 구성되어 있다.

6칸의 큰방과 큰 부엌, 그 끝자락 서편에 작은 승방들이 헛간과 이어져 있다.

백설당 동편 처마 아래에는 제주도 유배 중에 추사 김정희가 쓴 ‘무량수각(無量壽閣)’이라는 편액과 구한말 명신으로 미불체를 구사한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이 쓴 ‘백설당(白雪堂)’이라는 두 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자연초석을 세우고 두리기둥으로 그 칸을 세분화한 맞배지붕 건물로 공포가 소략한 주심포집이다.

건립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대웅보전보다 후대에 건립된 것으로 1899년10월 서상실의 화재로 2년 뒤인 1901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명부전(冥府殿)..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는 명부전은 대웅보전의 북서쪽에 남향하고 있다.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 한 낮은 기단 위에 초석 없이 두리기둥을 세워서 정면 3칸, 측면 2칸을 구획하고, 상부 맞배지붕을 얹혀 세웠다. 

어칸 상부에 걸려 있는 ‘명부전(冥府殿)’ 편액은 구한말 미불체의 대가인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의 글씨이다..

 

내부에 연등천장을 수장하고, 소조지장보살좌상(塑造地藏菩薩坐像)과 무독귀왕ㆍ도명존자의 삼존을 중앙 불단에 봉안하고 있다.

그외 좌우로 ‘ㄷ’자형의 불단에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十王)과 판관 11구, 동자 13구, 녹사 2구, 사자 2구, 인왕 2구 등 명부의 권속들을

정렬하게 배치하고 있으며, 지장보살 뒷면에는 1901년 금어 경선응석(慶船應釋)이 그린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다...

 

노승봉과 가련봉, 두륜봉이 아름답다...

 

대흥사 부도군(浮屠群).

나지막한 담장 안에 다양한 모습을 갖춘 부도(浮屠)와 탑비(塔碑)가 모두 80여기에 이르고 있다.

일정한 간격을 두지 않고 3~4열을 이루어 무질서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무질서 속에서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의 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이다...

 

부도와 탑비의 주인공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 대흥사를 중흥시키고 크게 빛낸 스님들로서,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풍담, 취여, 월저,

설암, 환성, 호암,  설봉, 연담, 초의 등의 대종사와 만화, 연해, 영파, 운담, 벽담, 완호 등의 대강사, 그밖에 고승대덕들의 부도이다..

 

특히 팔각원당형의 서산대사부도(西山大師浮屠)는 기단부와 상륜부의 독특한 장식과 옥개의 낙수면, 처마의 목조건물 모각은

이 시대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수법으로 고려시대의 양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담장 밖으로 우뚝 솟아 있는 사적비는 그 크기와 규모만큼이나 당시 대흥사의 위상을 나타내주고 있다...

 

일주문(一株門)...

사역으로 들어가는 첫번째문으로서 어칸에는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이라 편액하였다...

 

일주문은 그 이름에서와 같이 기둥 둘이 한 줄로 서서 지붕을 받치고 선 1칸짜리 건물이다.

1975년에 건립되었으며, 지붕을 제외한 콘크리트식 건물로 겹처마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피안교를 지나 경내를 벗어난다..

 

백화암 입구의 부도..

 

등산안내도가 있는 주차장.. 그러나 버스가 있는 곳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한다..

 

아름다운 단풍 숲길...

 

또 다른 일주문을 지나 상가시설지구...

 

주차장의 산책로 안내판..

 

제1주차장에 이르러 산행을 마무리한다..

 

광주로 오는 길에 강진 병영의 맛집 설성식당...

 

푸짐하게 뒤풀이로 마무리한다..

Epilogue

  일요산행을 기획하였으나 갑작스런 일이 생겨 토요일 겨울의 길목에서 한반도의 끝자락인 두륜산을 찾았다.

  매년 두륜산을 찾았지만 주능선 종주나 땅끝지맥을 따라가 대흥사를 비롯한 산내 암자들을 탐방할 수가 없어 이번에는 두륜봉에서

  진불암으로 내려 만일암터, 천년수, 그리고 북미륵암까지 답사한 후 대흥사로 내려 충분한 여유를 두고 대흥사를 답사하였다.

  비록 세찬 바람과 오락가락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산악회를 따라 함께 한 즐거운 산행이었다.

  오는 길에 강진 병영의 설성식당에서의 뒷풀이도 일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