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와 명옥헌원림, 그리고 광주호 호수생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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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발길 머무는 곳에

늦가을의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와 명옥헌원림, 그리고 광주호 호수생태원..

by 정산 돌구름 2012. 11. 12.
늦가을의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와 명옥헌원림, 그리고 광주호 호수생태원...


여행일자 : 2012. 11. 11(일)

기상상황 : 오전까지 흐리고 비 후 오후에 개임(바람이 매우 강함)

여행코스 : 담양온천~후산리 은행나무~명옥헌원림~광주호 호수생태원~경열사

Prologue

  어제부터 강풍이 계속되고 밤부터는 비까지 내렸다.

  주말에 친구들과 라운딩을 하고 밤에 거나하게 마신 탓도 있지만 비까지 내려 오늘은 휴식을 취할겸 광주 인근에 바람 쐬러 나섰다.

  담양온천에서 뜨근뜨근한 온천욕, 거센 바람이 불지만 노천탕의 또다른 맛.. 

  담양맛집의 하나인 승일식당에서 숯불돼지갈비로 점심식사를 하고, 담양 고서면의 은행나무, 그리고 명옥헌원림을 찾았다.

  광주호 호수생태원을 둘러보지만 거센 바람에 몸이 움추려진다.

  잔뜩이나 흐렸던 날씨도 점차 맑아지는듯 하였지만 여전히 바람이 거세다.

  오늘길에 노란 은행나무가 물든 길을 기대하고 경열사를 찾랐지만 앙상한 가지만 남고 은행잎은 모두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모처럼 부부가 함께 한 하루였다...

 

붉게 타들어가는 담양온천의 늦가을 풍경...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메타쉐콰이어는 어느새 황금빛으로..

 

 

 

 

완연한 남산의 가을 풍경..

 

담양의 맛집, 승일식당 담양 숯불돼지갈비..

 

알바생들을 포함 20여명의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맛집답게 맛도 좋고 손님들도 많다..

 

고서면의 후산리 은행나무...

 

전남도기념물 제45호(1980년6월2일)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는 키가 30m에 달하며 흉고지름 7.7m, 수관폭이 동으로 10m, 서로 10m,

남으로 14m, 북으로 9.5m의 노거수이다. 확실한 나무의 나이는 알 수 없으나 300년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호남지방을 둘러보던 중 후산에 살고 있던 선비인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라는 사람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때 명곡의 북쪽 정원에는 은행나무가 있었고 명옥헌 뒤에는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인조는 타고 온 말을 이 은행나무에 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은행나무를 일명 ‘인조대왕(仁祖大王)의 계마행(繫馬杏)’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오동나무는 고사하여 없어졌고 은행나무만 남아 있다...

 

은행나무의 오른쪽으로는 민간 정원으로 손꼽히는 오희도의 생가 터가 있다.

조선 중기 오희도가 이곳에 자연을 벗삼아 살았는데 그 후손들이 이 장소에 명옥헌을 지었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가 자연을 벗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이 명옥헌을 짓고,

건물 앞뒤에는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던 정원이다..

 

건물 뒤의 연못 주위에는 배롱나무가 있으며 오른편에는 소나무 군락이 있다.

명옥헌 뒤에는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 지내던 도장사(道藏祠)의 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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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산수 경관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명옥헌에서 내려다보며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여 자연에 순응한 조상들의 지혜를

잘 반영한 전통원림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경승지이다...

 

우리나라의 옛 연못이 모두 원형이 아니라 네모 형태를 한 것은 세상이 네모지다고 여긴 선조들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계곡의

물을 받아 연못을 꾸미고 주변을 조성한 솜씨가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그대로 담아낸 조상들의 소담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시냇물이 흘러 한 연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히는 것만 같다고 하여

연못 앞에 세워진 정자 이름을 명옥헌(鳴玉軒)이라고 한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로 소쇄원과 같은 아름다운 민간 정원으로 꼽힌다...

 

교육을 하기 위한 적절한 형태로 건물이 지어져 있다..

 

건물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개울을 타고 오르면 조그마한 바위 벽면에 ‘명옥헌 계축(鳴玉軒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건물에는 명옥헌 계축이라는 현판과 더불어 삼고(三顧)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담양 명옥헌 원림은 전남도 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으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58호(2009년9월18일)로 승격 지정되어 지정되었다..

 

충효동 정려비각(忠孝洞 旌閭碑閣).. 

 

광주기념물 제4호(1985년2월25일)로 지정된 이 비는 정조13년(1789년)에 세워졌으며 높이는 220㎝이다.

앞면에는 <朝鮮國贈左贊成忠壯公金德齡 贈貞敬夫人 興陽李氏 忠孝之里(조선국증좌찬성충장공김덕령 증정경부인 흥양이씨 충효지리)>

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김덕령 일가의 애국충절에 대한 찬양과 정조(正祖)가 이름을 지어준 충효리의 유래가 쓰여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충효동 왕버들..

광주기념물 제16호(1985년2월25일)로 지정되었다가 천연기념물 제539호(2012년10월5일)로 지정되었다.

충효동 마을에서 인공호수 광주호(光州湖)에 이르는 도로변에 있다...

 

왕버들버드나무과낙엽교목으로 기념물로 지정된 왕버들은 3그루로써 추정수령은 약 400년이다...

 

첫번째 것은 높이 9m, 둘레 6.25m, 수관(水冠) 너비 동서 11.5m, 남북 18.9m이고, 두번째 것은 높이 10m, 둘레 5.95m,

수관 너비 사방 14m이며, 세번째 것은 높이 12m, 둘레 6.3m, 수관 너비 동서 16.6m, 남북27m이다...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원래는 마을을 상징하던 소나무 1그루, 매화 1그루, 왕버들 5그루가 있었다... 

 

매화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 죽었으며, 1그루의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앞 도로를 확장때 잘라버려 지금은 왕버들 3그루만 남아있다.. 

 

광주호 호수생태원.. 

 

광주호(光州湖)의 호숫가에 있는 생태공원으로 2006년 3월에 개장한 후 아이들의 자연생태학습장이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

수생식물원·생태연못·야생화테마원·목재탐방로·전망대·수변관찰대 등이 있으며, 호수 안에는 버드나무군락지와 습지보전지역이 있다.

매자기·애기부들을 비롯한 수많은 수생식물과 다양한 종의 조류·파충류·양서류관찰할 수 있다...

 

 

 

 

 

 

 

 

 

 

 

 

 

 

 

분청사기 박물관 앞길...

 

아름다운 단풍과 장승봉...

 

무등산의병길과 이어지는 풍암제...

 

윤필봉과 장승봉이 아름다운 단풍과 어울어지고...

 

저수지 옆 무등산장으로 오르는 의병길..

 

풍암제 옆의 돌탐과 윤필봉, 장승봉..

 

먹구름 가득...

 

무르익은 단풍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무등산의 만추...

 

경열사(景烈祠)..

고려 말의 무신 정지(鄭地)를 비롯하여 정충신, 유사, 고중영 등 8현의 위패를 봉안한 광주 망월동에 있는 사당이다...

 

경열사에 이르는 길은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물들 것을 예상하였으나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사당 입구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고..

 

경내에 사우, 내삼문, 외삼문과 유물관, 관리실, 경렬사 유허비, 유적정화 기념비 등이 세워져 있다..

 

인조22년(1644년) 광주 동명동에 창건되었으며 고종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1년 철거되어 유허비만 남았다.

지금의 경렬사는 '정지장군 유적보존회'에서 1979년부터 현재의 위치에 복원을 시작하여 1981년 완공하였다...

 

사당 뒤쪽 언덕 위에는 정지의 묘가 있는데, 전형적인 고려시대 방식의 예장석묘(禮葬石墓)로서 광주시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지(鄭地 1347~1391)는 본관 하동(河東), 시호는 경렬(景烈)로서 공민왕23년(1374년) 중랑장 거쳐 전라도 안무사가 되어

왜구 토벌과 수군 창설에 이바지하였다...

 

이후 전라도 순문사, 해도원수(海道元帥)를 역임하였고 양광·전라·경상·강릉도 도지휘처치사(都指揮處置使)를 지냈다.

그 뒤 김저(金佇)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나 위화도회군의 공으로 2등 공신이 되었다.

말년에 개성부판사(開城府判事)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나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