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명산] 양평의 영봉 용문산 가섭봉~장군봉~함왕봉, 그리고 용문사와 사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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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2

[100대명산] 양평의 영봉 용문산 가섭봉~장군봉~함왕봉, 그리고 용문사와 사나사

by 정산 돌구름 2012. 7. 30.
[100대명산]양평 용문산 가섭봉~장군봉~함왕봉, 그리고 용문사와 사나사..

 

산행일자 : 2012. 7. 28(토)

기상상황 : 맑았지만 습하고 무더운 날씨(바람도 없고 운무에 잠겨 시계 불량)

산 행 팀 : 토요산악회 - 회비 40,000원

산행코스 : 용문산 가섭봉, 장군봉, 함왕봉, 백운봉(경기 양평)

    주차장~용문사~마당바위~용문산~장군봉~함왕봉~함왕골~사나사~주차장

거리 및 구간별소요시간 : 약12.5km, 6시간25분소요

   주차장(10:05)~용문사(10:30~45)~마당바위(11:27)~능선합류점(11:54)~용문산(12:40~13:20)~가엽치(13:45)~장군봉(14:00)~함왕봉

   (14:12)~계곡욕(15:08~27)~사나사(15:57~16:08)~함왕혈(16:22)~주차장(16:30)

주요 봉우리 : 용문산(1,157m), 장군봉(1,055m), 함왕봉(947m)

교통상황

   비엔날레(06:00)~호남고속~경부~남이JC~35번고속~호법JC~50번고속~여주JC~45번고속~북여주IC~70번~37번~6번~용문단지(10:00)

   사나사(17:30)~37번~세종휴게소(18:15~19:00)~여주IC~50번고속~호법JC~35번고속~경부~호남~비엔날레(22:20)

 

 

산행지 소개

  경기 양평의 영산 용문산(龍門山 1,157m)은 기암괴석과 고산준령을 고루 갖추고 있는 산으로 신라 때 용문사(龍門寺)가 창건된 이후

  본래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었다. 그런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등극한 이후 용문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전해진다.

  용문산은 그 나름대로 사계의 풍광을 자랑하지만 가을에는 수려한 산세와 계곡이 어울려 산자수명의 정취를 자아낸다.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3m), 명지산(1,253m), 국망봉(1,167.2m)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용문산은 양평군 노랫말 첫 머리가 ‘용문산

  높은 메에 흰 구름 가고 / 남한강 굽이쳐서 기름진 땅은…·’으로 시작될 정도로 양평을 대표하는 영봉(靈峰)이다.

  신증여지동국여지승람에는 ‘양평이 용문에 의지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두대간 두로봉(1,422m)에서 갈라진 한강기맥은 오대산을 넘어 계방산~삼계봉~대학산~금물산~갈기산~싸리봉~폭산으로 이어진다.

  폭산에서 북으로 봉미산을 분가시키고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꾼 한강기맥이 2.5km 거리에다 들어올린 산이 용문산이다.

  용문산에서 약1km 이어진 한강기맥은 1,150m봉에서 남쪽으로 백운봉을 분가시키고, 방향을 서쪽으로 잡아 배너머고개~대부산~유명산

   ~소구니산~청계산~두물머리(양수리)에 이르러 여맥들을 북한강과 남한강에 가라앉힌다.

  용문산은 노송군락 어우러진 암릉들 사이로 제법 깊고 긴 협곡들이 발달되어 있다.

  여기에다 산 전체가 울창한 천연수림으로 뒤덮여 산세가 웅장하다.  또, 이 산은 명산이 갖추어야할 겨울 설경, 봄 철쭉, 여름 계곡,

  가을 억새와 단풍 등 철따라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다 산자락에는 용문사, 사나사, 상원사, 윤필암터 등 천년 고찰들을 품고 있으며, 특히 수령 1,100년이 넘고 동양에서 유실수로는

  가장 오래된 용문산 은행나무로 이름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또, 용문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1937년 신자 300여 명을 살해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백백교 사건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이 산에서는 한강기맥 북쪽 북한강과 남쪽 남한강은 물론, 인천 앞바다가 보일 정도로 사방 100km 거리가 막힘없이 조망되는 천혜의

  요새로도 유명하다.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 때 몽고군 침입 당시 이곳 주민들이 숨어 살았고, 6.25 때에도 피아간에 군단 병력이 목숨을

  건 밀고밀리는 격전을 치룬 전략요충지다. 6.25 이후 지금까지 정상에는 군부대가 상주하고 있다.

  함왕봉(947m)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과 용문면 경계에 솟아있는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 좋은 산으로 고찰 사나사를 끼고 있다.

  용문산의 유명세에 눌려 빛을 못보고 있는 만큼 한적하기까지 하다.

  용문산에서 서남쪽 2km 거리에 있으며 용문산 정상이 출입통제되었을 때는 등산객들이 오를 수 있는 실질적인 제일봉이었다. 서쪽에

  함왕골, 동쪽에 연수천 계곡이 흐르고 있어 정상까지 오르면 고봉에 오른듯한 느낌을 주며 남쪽으로 남한강이 있어 조망 또한 일품이다.

  해발 740m의 함왕성은 산 아래로 막힘이 없어 특히 조망이 좋다. 고려 때 몽고군의 침입 당시 인근주민들의 피난처였다는 기록이 있다.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는 함왕성터에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고산샘터가 있어 함왕성 수비대를 지탱시켜 준 젖줄과 같은 샘물이다.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함왕봉의 모산(母山)인 용문산과 그 옆으로 유명산이 아름다운 자태로 시야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백운봉과 남한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보인다.

  용문산 은행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들 중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며 오래 된 것으로 나이가 약 1,100여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0여미터에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12.3m를 넘어 동양에서는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일설에 의하면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이 그의 스승인 대경대사를 찾아와서 심은 것이라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마의태자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또,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경주 최씨들은 최치원이 꽂은 것이라고도 한다.

 

산행후기

  7월의 마지막 주말, 그리고 중복...  33℃를 웃도는 고온다습한 날씨에 바람도 없어 산행 초입지에 내려서자마자 땀이 흘러내린다.

  도로를 따라 올라 용문사를 두루 둘러보고 나오는데 모두들 떠나버려 빠른 걸음으로 계곡을 따라 오른다.

  바람도 없이 어찌나 덥던지 걸음도 더디고 흘러내리는 땀이 눈에 들어와 따갑기도 하다.

  긴 너덜길을 지나고 암릉을 오르면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긴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용문산 정상... 

  사방으로 조망이 트일 것 같으나 사방이 운무에 잠겨 시야는 제로... 정자 쉼터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정상에서 군부대 때문에 다시 100m 아래 갈림길에서 산허리를 따라 장군봉으로 향하는데 너덜길의 연속이다.

  능선에 이르러 한강기맥을 오른쪽으로 보내고 능선을 따라 가는데 지금까지의 길과는 달리 부드러운 흙길이 나타난다.

  장군봉을 지나면 잡초가 무성한 함왕봉(삼각점)에서는 사나사로 내려서는 길이 있으나 백운봉 방향으로 가다가 길을 잘못들어 우측

  하산길에 내려서 잘못 든 것을 확인하여 다시 오르는데 백운봉까지 다녀오기에는 시간상 무리일 것 같아 포기..

  계곡에서 계곡욕을 하고 내려서 사나사 경내를 둘러보고 내려서는데 주차장까지는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예정시간인 4시가 넘었으나 선두에 몇명만이 내려서고 아직 후미가 까마득하다. 

  무더운 날씨에 5시가 넘너서야 후미가 내려와 여주의 세종휴게소에서 한식뷔페로 뒤풀이하고 광주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어섰다..

 

용문사관광단지 주차장에서 간단히 산행 준비를 하고 도로를 따라 출발.. 

 

무더위 탓인지 아직 주차장은 한가하고 은행나무 가로수에 은행나무 구조물까지..

 

도로를 따라 오르면 다시 나타나는 용문산관광지 표지석..

 

한시수비기(漢詩竪碑記)...

사가정 서거정, 백사 이항복, 화서 이항노, 택당 이식 등 유명인들의 한시들이 주를 이루어 각자(刻字)되어 있는 시비들이 있다...

 

겸재(謙齋) 양창석(梁昌錫)의 용문팔경시..

용문팔경은 용문사 새벽 종소리, 조계골 열두 여울, 윤필암의 돌아가는 구름, 봉황내의 바람, 칠보산의 아지랑이, 중원산 폭포,

흑천의 어부 피리소리, 백운봉의 저녁노을을 일걷는다고..

 

최근에 들어선 시설물들.. 

 

농업박물관 옆의 용화대..

 

친환경농업박물관..

 

잠시 오르면 갈림길 이정표.. 좌우모두 용문사로 가는 길..

 

호국영목은행수제단(護國靈木銀杏樹祭壇)..

양평문화원에서는 1992년부터 호국영목은행수비(護國靈木銀杏樹碑)를 세우고 해마다 은행제(銀杏祭)를 지내오고 있었는데,

2007년11월16일 호국영목은행수제단을 새로 만들어 제막식을 하였다..

 

용문사 일주문..

 

다시 갈림길...

 

출렁다리...

 

용문사 앞의 호국영목 은행나무...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

 

이 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들 중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며 오래 된 것으로 용문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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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약 1,100여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2m, 가슴높이 줄기둘레 14m, 가지퍼짐은 동쪽 14.1m, 서쪽 13m, 남쪽 12m, 북쪽 16.4m로서,

동양에서는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敬順王)이 그의 스승인 대경 대사를 찾아와서 심은것이라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高僧)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경주 최씨들은 최치원이 꽂은 것이라고도 한다..  

 

많은 전란으로 사찰은 여러번 피해를 입었지만 특히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의병의 본거지라하여 사찰을 불태워 버렸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하여 천왕목(天王木) 이라고도 불렀고 조선 세종(世宗)때에는 정3품(正三品)의 벼슬인

당상직첩(當上職牒)을 하사(下賜)받기도한 명목(名木)이다... 

 

이 나무에는 또한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을 때 톱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일어났기 때문에

중지하였다하며 또한 나라에 큰변이 있을 때 소리를 내었다고 하는데 고종이 승하하였을때에는 커다란 가지가 1개 부러졌고

8.15해방과 6.25사변때에도 이 나무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봉선사에 속해 있는 용문사(龍門寺)..

신라 신덕왕2년(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때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다.

태조4년(1395년) 조안화상이 중창, 세종29년(1447년)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 심씨(沈氏)의 원찰로 삼으면서 보전을 다시 지었다.

세조3년(1457년) 왕명으로 중수하는 등 중 ·개수를 거듭하여, 조선 초기에는 304칸에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하였다.

그후 1907년(융희1)에 왜군의 병화로 모두 소실된 것을 당시 주지 취운(翠雲)이 소규모로 재건하여 유지해 오던 중 그마저 6·25전쟁 때

파괴되어 3칸의 대웅전관음전·산령각(山靈閣)·종각·요사(寮舍) 등만 남게 되었다.

1982년부터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절에서 동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조선 전기의 정지국사(正智國師)부도 및 정지국사탑비가 있다.

 부도와 탑비는 함께 보물 제5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1983년 이종걸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삼존불상을 보시고 있는데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건물로 최근에 지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은 서울 봉은사에 걸려 있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근래에 번각(飜刻)한 것이다..

 

중앙의 불단에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있는데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관음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1984년에 봉안한 것이다.

삼면의 벽에 작은 천불(千佛)을 가득 봉안했르며, 또한 신중탱과 천수관음 불화, 그리고 동종이 있다.. 

 

지장전(地藏殿)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보기 드물게 청기와로 덮었다.

'지장전(地藏殿)' 편액은 1973년에 서예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이 쓴 글씨이다 ..

 

 불화로는 후불탱과 시왕탱 10폭이 있고, 외부에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있는 내용을 벽화로 그렸다.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1912년에 건립되었으며 관음보살상과 천수천안 관세음보살탱화 등을 봉안하고 있다..

 

관음전에는 관음보살좌상과 후불탱이 있는데, 관음상은 조선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는 나무로 된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리본처럼 묶은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고 있다. 

온몸에는 화려한 구슬장식이 드리워져 있어, 당당하면서도 화려한 귀족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보살상이다..

 

뒤편의 삼성각과 산령각..

 

산령각에서 바라본 은행나무..

 

용문사를 빠져나와 오르면 갈림길.. 좌측은 능선길, 우측은 계곡길로 마당바위로 오르는 길..

 

계곡을 따라 오른다..

 

계곡가의 널따란 마당바위..

 

너덜지대를 지나 오르면 능선길과 합류하고..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져 암릉지대를 지난다..

 

암봉을 넘어서면 바로 앞에 용문산 정상이 다가온다..

 

계단을 올라서면 갈림길..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장군봉으로 우회하는 길...

 

다시 이어지는 정상에 오르는 긴 계단길...

 

정상은 여전히 철조망...

 

용문산 정상 개방은 지난 2007년11월17일(토) 08:30분부터 이루어 졌는데 아직도 개방시간은 08:30~17:00까지로 한정된다..

개방통제는 공군제8145부대(용문산 부대)에서 통제한다...

 

용문산 정상...

 

사방이 안개속에 조망이 전혀없다... 

 

 

용문산의 상징인 거대한 은행나무 조형물...

 

 

 

잠시 조망이 트이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내려서는데 수많은 시그널의 모임...

 

산허리를 따라 정상을 우회하면 갈림길 이정표..

 

용문산 정상에서 함께 한 한강기맥을 보내고 백운봉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중말나리...

 

잡목이 우거져 조망이 없는 장군봉에 이른다..

 

정상의 흔적을 남기고..

 

백운봉까지는 아직도...

 

삼각점이 있는 함왕봉... 잡목만이 우거져 있다..

 

능선을 따라가다가 우측으로 잘못 내려서 긴 내리막길을 따라 계곡에 이른다.. 계곡욕을 하고 내려선다..

 

사나사까지는 아직도 1.3km..

 

계곡에는 풍부한 수량으로 폭포를 이루고...

 

구름재에서 내려서는 길과 만나는 곳..

 

내려선 사나사.. 사나사 뒤편의 조사전..

 

그 옆으로 삼성각..

 

함씨각과 사나사 중건불사 대공덕주의 공적을 찬양하는 당사대공덕주영월신씨송덕비(當寺大功德主寧越辛氏頌德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원증국사석종(圓證國師石鍾).. 고려 말기에 사나사를 중건했던 원증국사 보우의 부도이다..

 

원증국사석종비(圓證國師石鍾碑)..

원증국사 보우의 탑비로 대적광전 앞마당 동쪽 편에 축대를 쌓아 한 단 높게 조성된 대지 위에 위치하고 있다.

1978년 10월 10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었으며, 현재는 퇴락이 심하여 보호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다...

 

1983년9월19일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1호로 지정된 양평용천리삼층석탑..

대적광전 앞마당 동쪽에 축대를 쌓아 한 단 높게 마련된 대지 위에 서있으며, 전체 높이 1.8m로 상륜부 일부가 파손되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사나사의 주불전으로 사역 중심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과 측면 각 3간으로 내9외5포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된 전각이다...

 

불단 위에는 본존으로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시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좌상을 모셨다..

 

새로 지은듯한 극락전...

 

극락전 내부의 삼존불과 천불..

 

미륵입상(彌勒立像)..

연화대좌 위에 서 있으며, 통견의 법의를 입고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들어올려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앞으로 내려 역시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고 있다. 머리가 큰 편에 속하는데 어린이 같이 해맑은 미소가 인상적이다..

 

2005년에 신축하였다는 범종각(梵鐘閣)..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초익공식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가구는 무고주5량이며, 사방에 계자난간을 설치하고 낙양각을 붙였다.

범종각 안에는 범종을 비롯하여 법고와 운판, 목어의 사물을 걸었다..

 

경내를 벗어나 내려서면..

 

사나사 일주문..

 

계곡가로는 피서객들로 분주하고...

 

함왕성...

용문산 남서쪽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으로 당시 전략적인 요충지로 '함씨 대왕성' 또는 '함공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길이가 2만 9,058척(약 8,800m)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현재는 석축의 일부만 남아 있다...

 

그리고 함왕혈(咸王穴)..

삼한 초 함왕 주악이 태어난 곳이라고 전하는데, 옛날 이 인근에 살던 함씨 무리들이 그들을 이끌 지도자가 없자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함왕혈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그들은 그 아이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성을 쌓고 번창일로를 걷던 함씨 일족들은 외부의 침입을 받아 성이 무너지고 왕이 죽자 결국 망하게 되었다. 후에 성을 쌓을 때 왕이

태어난 함왕혈을 밖에 두고 성을 쌓아서 나라가 망했음을 알게 된 후손들이 바위에 보호책을 치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통일신라 말기의 강력한 호족세력이었던 함규 장군이 함왕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혹은 함왕이 세웠다는 석성과 이 바위굴의 이야기는 주악이 맞는데, 주악 이후가 분명하지 않아 함규 장군을 시조로 삼았다고 한다.

양근(양평) 함씨의 시조인 함규 장군은 이 일대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지만 결국 고려 태조에게 귀부하여 개국공신이 된 인물이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서니 주차장...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광주로 향하는 길에 여주의 세종휴게소에서 한식뷔페로 뒤풀이를 하였다..

에필로그 ..

 오전에는 무더운 날씨에 바람도 없이 구름만 잔뜩 끼고 시야도 좋지 않았으나 점차 맑아져 시야가 트였지만 하산이후 였다.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한  100대 명산 탐방의 또 한페이지를 장식하였지만 함께 하지 못해 아쉬운 이의 모습들이 자꾸만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