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2. 7. 15(일)
○ 기상상황 : 흐림(흐리고 후텁지근한 날씨, 어제 내린 비로 계곡에는 많은 물)
○ 산행인원 : 나홀로
○ 산행코스 : 금성산성, 구장군폭포, 광덕산(전남 담양, 전북 순창)
담양온천~남문~보국사터~송낙바위~구장군폭포~강천사~광덕산~시루봉~남문~담양온천
○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 약14.5Km, 6시간30분소요
담양온천(10:00)~주능선(10:26)~보국문(10:36)~충용문(10:40)~보국사터(10:55)~북문(11:17~27)~송낙바위(11:37)~비룡폭포(12:10~25)~
구장군폭포(12:35~53)~강천사(13:05~30)~황우제골(13:37)~신선봉(14:00~10)~광덕산(14:30~35)~헬기장(14:48)~전망바위(15:02)~
시루봉(15:40)~충용문(16:05)~담양온천(16:30)
○ 주요봉우리 : 시루봉(526m), 광덕산(564m)
○ 산행지 소개
담양 금성산성은 산성산 위에 축조된 포곡식 산성으로 산성산은 최고 해발 603m의 높이로 깎아지른 바위 벼랑이 이어진 산이며,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게다가 부근에는 이보다 높은 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산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널찍한 분지 형태로 되어
있어 이곳에 성을 쌓아 두면 나는 새가 아닌 이상 바깥에서는 결코 성안을 볼 수 없는 지형으로 된 천혜 요새지이다. 또한 성안에는
샘이 풍부하여 충분한 식량만 쌓아 놓는다면 매우 오랜 시간동안 성을 지키며 적군을 붙잡아 둘 수 있는 훌륭한 조건까지 갖추었다.
과거 조선은 지역을 지키기 위해 평지에는 읍성, 배후 산에는 산성을 동시에 축조했으며, 평시에는 읍성에서 관리와 백성들이 생활을
하다가 적이 쳐들어오면 산성으로 옮겨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단단히 지키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담양에는 읍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금성산성은 평시 읍성의 역할도 상당부분 맡았으리라 짐작된다.
현재 금성산성에는 관아와 민가터가 많이 남아있어 옛날 이곳에 많은 병사들이 주둔하여 주변을 경계했다.
금성산성의 최초 축조 시기는 길게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하지만 실제 역사 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고려사절요의
기록이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에 왜구에 대비하며 개축했는데 '금성(金城)'이라 했다 한다.
비록 성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이보다 이전인 고려 고종 43년(1256년)에는 몽고의 차라대군이 담양에 주둔했다는 기록도 있다.
금성산성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태종 때로 1410년 전라, 경상도의 12개 산성이 수축된 기록에 나온다고 하며,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추월산에 석벽이 사방을 둘러 둘레가 9,018척, 13천(샘)이 있고, 연동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이 가까워 오자 조선은 국가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입보농성의 최적지인 산성의 보수를 서두르는데, 이때 담양 금성산성 역시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했으며 계속적인 보강이 이루어져 이때부터 금성산성은 장성 입암산성, 무주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
으로 불리게 된다. 금성산성은 그 훌륭한 지정학적 위치만큼이나 역사적으로 전화를 겪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몽고군에 맞서는 항몽의
전적지로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의 거점으로 노령을 넘어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군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특히 정유재란 때의 전투는 피로 피를 씻는 치열한 격전으로 전투가 끝난 후 외남문인 보국문 오른편 깊은 골짜기로 전사자를 치우고
보니 시신이 무려 2,000여구에 달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골짜기의 이름을 이천골(二千骨)이라 부른다고 한다.
개화기에도 녹두장군 전봉준의 동학군이 이 곳을 거점으로 삼아 진압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전봉준이 잡혀 죽음을 당한 이후
이곳 금성산성도 결국 관군에게 점령되어 성 내의 전각과 모든 시설들이 불에 타버리는 참화를 겪게 된다.
금성산성은 돌로 쌓여진 석성이며, 내성과 외성의 2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길이는 7,345m로 외성이 6,486m, 내성이 859m이며, 연면적은 1,197,478㎡(362,237평), 내성의 면적은 54,474㎡(16,478평)이다.
성의 전체 크기를 판가름하는 외성은 연대봉과 철마봉, 시루봉 등의 바위로 된 산봉우리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구간이
아찔한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방어력을 한껏 높이는 한국의 산성답게 가끔씩 바위 벼랑을 그대로 자연성벽
으로 이용한 곳들도 있다. 바위 능선이 매우 험준한 곳이 많아 지정된 문이 아닌 곳으로는 통행이 어려우며, 심지어 병사 한명 없이도
능히 지켜지는 구간이 전체 외성의 약 30%에 이른다고 하니 방어요새로서 금성산성의 가치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1991년 사적 제35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지금의 모습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다.
광덕산(廣德山 564m)은 전라북도 순창군의 팔덕면 청계리에 위치하고 담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고시지명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강천산으로 주로 부르며, 한때 용천산으로도 불렀다.
이는 산세가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 하여 유래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광덕산은 군의 서쪽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유래가 오래된 지명임을 보여 준다.
『대동지지』에는 "강천산(剛泉山)의 다른 이름을 갖는다."고 묘사되어, 하나의 산이면서 둘의 이름을 붙인 모습이다.
『청구도』에는 '광성산(廣城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산록에 강천사(剛泉寺)가 세워졌는데, 예전에는 복천사(福泉寺)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다소 기복(祈福)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강천산은 1981년1월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산벚꽃으로 유명해 4월초 피기 시작해 10일경이면 만개하는데 자연생 산벚꽃으로 꽃이 잘고 빛깔이 희고 맑다.
단풍나무가 유난히 많아 매년 11월 초순께 절정을 이루는데 애기단풍이 곱게 물들면 장관을 이루어 인기명산 100산중 49위(한국의산하
1년간 접속통계)이며 군립공원으로 강천계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100명산에 선정되어 있다.
담양온천 도로상에 주차하고 출발..
담양온천 잔디구장 너머로 바라보이는 담양댐과 추월산..
담양온천 뒤편에서 바라본 금성산성..
어제 내린 비로 연못에는 물이 가득..
높은 습도.. 담양산성 첫 관문인 보국문..
보국문을 지나 충용문..
갈림길에서 보국사터로 가기로..
갈림길에 있는 동자암.. 고요하기만 하다..
보국사터 가는 길에 바라본 동자암 뒤편..
사랑나무 연리목..
어제 내린 많은 비로 등산로인지 계곡인지 알 수 가 없다..
쓰러져 길을 막아선 고목..
보국사터의 모습..
고요하기만 하다..
보국사터 뒤편으로 오르는 길..
가파르게 올라 안개 자욱한 북문지...
강천산 형제봉으로 가는 호남정맥길...
북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강천저수지 갈림길... 동문으로 산성은 이어지지만 구장군폭포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
강천사 저수지로 내려서는 길은 통제되어 우측으로 내려서면 북바위에서 내려서는 길과 만나고..
선녀계곡은 넘쳐흘러 길을 건너기가 위험하고..
비룡폭포 갈림길...
50m가량 우측 지계곡을 따라 올라서면 비룡폭포..
평소 수량이 많지 않았던 비룡폭포의 모습도 장관이다..
거대한 물줄기...
그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잠시 무더위를 식히며..
단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비룡폭포 하단..
선녀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우측으로는 광덕산으로 이어지는 지능선길..
불어난 물로 그냥 건널수가 없어 신을 벗고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
구장군폭포 공원쉼터..
바로 위 거북바위의 인공폭포..
천년사랑 거북바위의 전설이 깃든 곳..
거북바위 인공폭포는 시간대별로 물을 내려보내고...
강천산 성테마공원..
구장군폭포..
비온 후이지만 물줄기는..
길게 이어지는 물줄기...
두갈래의 물줄기가 선명하게..
바로 옆 산수정..
구장군폭포 물줄기를 배경으로 한 컷하고 내려선다..
강천사로 내려가는 길..
강천산 현수교...
연장 75m, 높이 50m, 폭 1m로 지난 1980년 설치된 출렁다리..
십장생교를 건너고..
수령 300년 이상된 모과나무... 전북 기념물로 제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년사찰 강천사(剛泉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로..
887년(신라 진성여왕 1)에 도선국사 창건하였다..
오층석탑은 전북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고..
대웅전..
바로 아래의 일주문..
1973년 6월 23일 전북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순창 삼인대(三印臺)...
강천사 앞 하천을 건너 남쪽에 있는 정면 1칸의 비각으로 크기는 높이 157cm, 너비 80cm, 두께 23cm이다..
비각 안에는 높이 157㎝, 너비 80㎝, 두께 23㎝의 삼인대 비(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1744년(영조 20) 4월에 세운 것으로 홍여통(洪汝通), 윤행겸(尹行謙), 유춘항(遊春恒) 등 군의 선비들이 발기하여
대학자인 이재 (李縡)가 비문을 짓고, 민우수(閔遇洙)가 비문의 글씨를 썼으며 유척기(兪拓基)가 전서(篆書)를 썼다...
1506년(연산군 12) 중종반정이 성공한 후 중종반정을 주도하고 성공한 박원종 등 반정공신들은 신수근 일파가 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숙청하고, 이어 신수근의 딸 신씨를 폐비시키고 윤여필의 딸인 숙의 윤씨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새 왕비 장경왕후는 왕후가 된 지 10년 만에 사망하였다. 이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유옥(柳沃)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이곳 강천산 계곡에 모여서 과거 억울하게 폐위된 신씨를 복위시킴이 옳다고 믿어
각자의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하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이들이 소나무 가지에 관인을 걸어놓고 맹세한 곳이 이곳이라 하여 삼인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삼인대 옆 광덕산으로 오르는 길..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계곡..
신선봉고개에서 전망대를 우측에 두고 광덕산으로..
신선봉 정상이라지만..
바로 옆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는 순창 아미산이 바라보이고..
강천산 계곡..
잠시 가파르게 올라 광덕산...
잠시 휴식...
삼발이를 이용하여..
바로 아래로는 순창 팔덕면 서흥리..
구름에 잠긴 금성산성의 산성산..
가야할 능선..
내려서면서 바라본 담양 금성면의 풍경..
임도가 난 헬기장..
헬기장을 지나 오르면 부드러운 능선길...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장애인복지재단 혜림.. 그 뒤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능선..
당겨본 모습..
가는 능선길의 가랭이소나무..
이제 시루봉이 눈앞에 다가오고..
가파르게 올라 시루봉.. 그러나 운무에 쌓여 시야 제로..
금성산성 내성..
여전히 고요속의 동자암..
조용히 지나친다..
등산객들도 찾기가 힘들고..
충용문에서 바라본 보국문..
아름다운 풍경이다..
보국문을 내려서고..
긴 내리막을 따라 다시 담양온천..
당초 3~4시간만 간단히 산행하려고 하였지만 막상 산에 들어서니 그냥 내려설 수가 없어 강천사와 광덕산까지..
점심 준비도 없이 간단한 간식거리 하나로 나홀로...
'돌구름의 산행이야기 > 산행20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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