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성삼재~만복대~고리봉~수정봉~여원재 백두대간 산행...
본문 바로가기
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2

지리산 성삼재~만복대~고리봉~수정봉~여원재 백두대간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12. 7. 8.
백두대간 지리산 성삼재~만복대~고리봉~수정봉~여원재 산행...

 

 

산행일자 : 2012. 7. 7(토)

기상상황 : 구름 조금 낀 맑은 날씨

산행인원 : 빛고을토요산악회(80명) - 회비 33,000원

산행코스 : 지리산 만복대, 고리봉, 수정봉(전남 구례, 전북 남원)

    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고리봉~노치샘~수정봉~입망치~여원재

구간별소요시간 : 약19.5km, 7시간35분소요

   성삼재(08:45)~고리봉(09:17~22)~묘봉치(09:52)~만복대(10:40~45)~산불감시초소(11:25)~정령치(11:30)~마애불(11:42~47)~고리봉

   (12:05~30)~고기리(13:30)~덕치보건진료소(13:47)~노치마을(13:53~58)~구룡치갈림길(14:25)~수정봉(14:47~55)~입망치(15:15)~

   705봉(15:40)~여원재(16:20)

주요 봉우리 : 고리봉(1,248m), 만복대(1,433.4m), 고리봉(1,304.5m), 수정(804.7m)

교통상황

   비엔날레(06:00)~88고속~지리산휴게소(조식)~지리산IC~37번~60번~861번~성삼재(08:30)

   여원재(16:45)~24번~지리산중앙하이츠콘도(17:15~18:15)~도령식당(18:25~18:55)~남원IC~88고속~비엔날레(19:50)

 

 

산행지 소개

   지리산 서쪽 끝자락의 만복대(萬福臺 1,433.4m)는 구례 산동면과 남원의 경계에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오른 봉우리이다.

   성삼재(1,090m)와 정령치(1,172m) 사이 백두대간 구간 가운데 가장 높은 꼭지점을 형성한 곳으로 지리산에서 출발한 많은 백두대간

   종주대가 이곳을 거쳐 멀리 금강산 향로봉까지 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만복대」는 북풍한설에 피어난 설화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지리산 최고의 억새능선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억새의 군무가 저 멀리 병풍처럼 둘러친 지리산 주능선의 웅장함과 어우러져 장쾌한 풍경을 연출하며 만복대

   특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만복대는 이름만큼 복스러운 산으로 산 전체가 부드러운 구릉으로 되어 있다. 만복대란 명칭은 풍수지리설로 볼 때 지리산 10승지

   중의 하나로 인정된 명당으로 많은 사람이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하여 만복대로 칭하였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헐벗은 산 같지만 억새로 뒤덮여 있어 주변의 단풍과는 사뭇 다른 정취를 보여주고 있으며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 100리길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듯 조망이 좋다.

   성삼재는 삼한시대 진한군에게 밀린 마한왕조는 요충지인 이곳에 서로 다른 성씨를 가진 세 장군을 배치해 방어하였다하여 붙여졌다.

   지금은 구례군과 남원시를 잇는 861번 지방도인 지리산 종단도로가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정령치는 지리산 서북능선 중간에 솟아있으며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의하면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을 이곳에 두었다하여「정령치」라 이름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수정봉(水晶峰 804.7)은 남원시 운봉읍, 주천면, 이백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의 맥을 잇고 있다.

   남원지역의 백두대간은 대략 만복대~정령치~고리봉~가재~수정봉~입망치~여원치~고남산으로 이어진다.

   옛날에 산에 수정 광산이 있었다 하여 수정봉(水晶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산의 9부 능선을 둘러싸고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테뫼식 산성인 노치산성(蘆峙山城)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구간개요

   제3구간인 「성삼재~여원재」구간은 지리산 자락에 속하기는 하지만 큰고리봉을 지나 고기리 마을로 내려서면 전혀 산세가 달라진다.

   마치 자그마한 마을 뒷산을 걷는 듯 굵은 능선에서 벗어나 있다.

  「큰고리봉」에서 세걸산~팔랑치~바래봉 쪽 능선이 뚜렷하지만 그리로 빠지면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유의해야 한다.

   줄곧 굵고 뚜렷한 능선을 따라오다가 전혀 상황의 가파른 내리막길로 가야 하는 힘든 산행이다.

   백두대간은 그 이름처럼 반드시 크고 뚜렷한 산줄기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기리를 내려서면 평지가 산이 곡중분수계로 이어진다.

   수정봉은 운봉과 주천, 이백의 삼 개 읍면에 걸쳐 있으며 백두대간의 맥에서 가장 극적인 분수계를 만나는 봉우리로 남원에 들어선

   백두대간은 매요리~고남산~여원치~입망치를 지나면 수정봉에 다다른다. 수정봉에서 바라보면 벌판 너머에 지리산 자락이 펼쳐진다.

  『산경표』에서 말하는 백두대간을 비롯한 1정간 13정맥 모두는 하천을 둘러싼 하천의 유역분지 분수령을 체계화시킨 것이다.

   가장 큰 백두에서 지리산까지의 백두대간은 한반도 물줄기를 동서로 가르는 주맥으로서 가장 큰 분수령 맥이다.

   이런 백두대간이 수정봉에 다다르면 더 이상 능선을 타고 지리산으로 갈 수가 없다. 수정봉에서 좌,우 즉, 덕산저수지로 빠지는 낙동강

   물줄기와 노치마을에서 왼쪽으로 빠지는 요천, 섬진강 물줄기를 건널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이 좌우 물줄기가 나누어지는 노치마을 길을 따라서만이 지리산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즉 평지가 산이 된 셈이다. 그러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이 길을 따라 정확하게 산길을 이어 놓았다.

   그리고 이런 분수계를 따라 운봉읍과 주천면의 경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평지가 산이 되는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정확히 지키는 구간인 것이다.

   이런 극적인 구간이 있는 이곳은 조상들의 정확한 분수계 설정과 백두대간의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날 하천이 흐르지 않는 구간이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계가 된 것이며 이를 백두대간을 이어주는 곡중분수계로 보는 것이다.

 

 

성삼재..

굽이굽이 넘어가는 861번 지방도 상의 성삼재는 대간의 마루금이 사람의 편의를 위해 동강난 첫 현장이다.

정령치 고갯길과 함께 군사목적으로 만들어진 도로는 확장과 포장을 거쳐 관광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환경단체에서는 끊어진 생태 축을 연결하기 위해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만 구례와 남원 사람들에게는 스러져가는 농촌현실에서

관광은 지역경제가 지탱할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기 힘들게 한다...

 

성삼재 주차장 앞에서 도로를 따라가는데 자욱한 안개때문에 시야는 제로...

 

성삼재에서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심원마을 쪽으로 100여m를 가면 좌측으로 능선이 시작되는 곳이 산행기점...

철망이 있지만 산화경방기간만 통제한다..

 

철망 문안으로 들어서면 약간 날카로운 능선길로 접어든다...

 

참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능선을 따라 고도를 높여 가파르게 오르면 고리봉 정상....

 

검은 표지석「고리봉 1,248m/구례군」이 있는 일명 작은고리봉....

 

조망이 트여 건너편의 지리산 주능선과 멀리 무등산까지 선명하게 조망되지만 안개속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서쪽 사면길은 급경사의 심마니길로 산동면으로 내려서고 우측으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면 헬기장을 지나면 이정표..

 

질퍽거리는 기나긴 산죽길을 내려서면 헬기장이 있는 묘봉치... 좌측은 상위마을로 내려서는 길...

 

계단길을 가파르게 오르면 돌탑과 정상표지석이 우뚝 선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만복대...

 

만복대에 오르는 길목은 지리산에서 가장 큰 억새 군락지로 가을철이면 봉우리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반야봉은 지리산의 웅장함을 실감케 해주는데 안개속에 주능선은 모두 모습을 감추었다..

 

지리산 서쪽끝 만복대는 전남의 구례군 산동면과 전북의 남원시 경계에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오른 봉우리다...

성삼재(1,090m)와 정령치(1,172m) 사이 백두대간 구간 가운데 가장 높은 꼭지점을 형성한 곳이다...

만복대북풍한설에 피어난 설화가 아름답기로도 유명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지리산 최고의 억새능선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린다..

가을이면 금빛으로 출렁이는 억새의 군무가 저 멀리 병풍처럼 둘러친 지리산 주능선의 웅장함과 어우러져 장쾌한 풍경을 연출한다..

 

우측으로는 도계능선을 따라 반야봉~삼도봉으로 이어지고.... 

 

대간길을 따라 잠시 전라남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이어간다...

 

잠시 내려서면 조망이 트이는데 삼도봉에서 반야봉~중봉~두루봉~달궁삼거리~만복대로 이어지는 전남과 전북의 도계능선이 선명하고..

 

또다른 도계능선인 만복대~다름재~영제봉~솔재~밤재~견두산~천마산~깃대봉~형제봉~천왕봉~갈미봉~깃대봉~월암마을~섬진강으로

이어지는 견두~천마지맥 능선도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중봉~반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구름속에 바라보이고...

 

잠시 내려섰다가 올라서면 산불감시초소...

 

가파른 나무데크를 따라 내려서면 정령치((鄭嶺峙)...

 

737번 지방도가 지나는 해발1,172m의 정령치는 성삼재와 함께 지리산을 관통하는 도로가 지나는 곳이자 마한의 마지막을 담고 있다.

서산대사의「황령암기」에 의하면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장군(鄭將軍)을 이곳에 파견하여 지키게 한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기원전 78년 마한은 진한에 밀려 뱀사골 달궁계곡 별궁으로 쫓겨 왔다고 한다...

 

달궁이 전설에서 역사로 드러난 것은 1928년7월 대홍수가 지리산을 휩쓸면서 달궁터를 덮고 있던 흙을 씻어냈고

그때 지금의 주춧돌과 지름 1.5m에 이르는 질그릇 시루, 청동제 수저 수십 벌, 구리거울, 활촉 등도 출토되었으나

그 유물들은 일본 순사들이 어디론가 가져가버린 뒤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달궁을 지키던 성이「정령치」와「성삼재」, 그리고 바래봉으로 이어지던 「팔랑치」라고 한다.

세명의 서로다른 성을 가진 장수들이 적을 막아「성삼재」이고, 정장군이 성을 쌓고 나라의 마지막을 호위해「정령치」라고...

 

안개속에 빗줄기까지 쏟아지지만 갈림길에서 개령암지 마애불상으로한다..

 

보물 제1123호로 지정된 개령암지 마애불상...

 

개령암지마애불상군은 절벽을 이루는 바위에 여러 부처의 모습을 돋을새김한 이 불상들은 모두 12구에 달한다.

가장 큰 불상은 높이가 4m로 조각솜씨도 뛰어나 으뜸으로 모셔진 것이라 여겨진다...

 

타원형의 얼굴, 다소 과장된 큼직한 코, 간략하게 처리한 옷주름, 듬직한 체구 등에서 고려시대 유행하던 불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 불상 아래에 <명월지불(明月智佛)>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어 진리의 화신인 비로자나불을 뜻하는 듯하다...

 

1~2m 크기의 작은 불상들 역시 비슷한 양식으로 모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주위를 감싼 산자락의 적막함이 헐어진 불상의 무상함을 더해 준다..

 

다시 갈림길오 돌아와 가파르게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잠시 조망이 트이고..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의 갈림길 고리봉..

 

잠시 조망이 트여 지나온 능선이 선명하게 바라보인다...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지리산 주능선은 아직도 베일속에 신비롭기만 하고...

 

세걸산~팔랑치~바래봉~덕두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고리봉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단체...

 

점차 조망이 트여 맑은 하늘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고리봉을 담아두고 좌측으로 꺾어 대간길을 따라 내려선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지고...

 

소나무숲이 우거진 한적한 능선길의 모습...

 

경주이씨 효행비...

 

잠시 대간길을 벗어나 답사하고...

 

고기리..

행정구역상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고기리는 고촌리와 내기리를 병합하여 고촌과 내기의 이름을 따서 고기리라 하였다.

고촌리는 마을이 산중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서 유래된 것이며, 내기리는 깊은 산중의 안쪽에 있는 안터마을에서 유래되었다.

내기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정씨와 이씨가 피난와서 정착하여 형성되었고, 고촌마을은 경주이씨, 밀양박씨 등이 이주하면서 형성되었다.

1995.1.1 남원시와 남원군의 통폐합에 따라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가 되었고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여 매우 높고 깊은 산중 마을이다.

해발 500~600m에 이르는 고산지대로 정령치에서 발원하는 원천천의 상류지역으로 물이 매우 맑고 마을 앞으로는 지리산 자락의 높은

산이 펼쳐져 있어 산수경관이 수려하다..

 

도로를 따라 끊어질듯  이어지는 대간길...

주천면 덕치리와 운봉읍 주촌리 사이 지방도 60호선은 운봉분지의 곡중분수계로서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이다...

 

지리산 서북능선이 한없이 하늘금을 긋고...

 

노치마을로 들어서면...

 

덕치보건진료소 앞을 지난다...

 

노치마을 뒤편으로 수정봉 능선...

 

노치마을...

해발 500m고랭지로 서쪽에는 구룡폭포와 구룡치(九龍峙)가 있으며 뒤에는 덕음산이 있다.

지리산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들 산줄기의 높은 곳은 갈대로 덮여 있갈재라 하고

노치(蘆峙)라 쓴 것이다. 노치마을에서 지리산둘레길을 따라 가면 회덕마을에는 전북 민속자료 제35호인 덕치리 초가가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커다란 정자나무 옆으로 백두대간 기념석 3개가 있다...

 

대간 기념석은 대한민국 전도, 「백두대간과 14정맥」,「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국내 유일 마을,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라고 적혀 있다..

 

대간길을 기념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며 흔적을 남긴다...

 

노치샘... 이제 여원재까지는 6.7km.. 물 한바가지를 마시고 지나친다..

 

돌담길을 따라 오르면 멋들어진 소나무 다섯그루가 병풍처럼 서 있으며, 바로 나무 밑에는 당산제전이 있다..

수령 500년의 소나무는 높이 17m, 흉고둘레 2.6m, 수관폭 10m, 지하고 2.5m이다.

마을 뒤 동쪽에서 서쪽으로 나란히 서있으며 보는 사람마다 아름다움에 크게 감탄한다.

이 소나무 숲은 조선 초 경주정씨가 터를 잡고 경주이씨가 들어와 노치마을을 형성하면서 지리적 산세가 너무 좋아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기 위해 이 터에 소나무를 심어 정성 드려서 가꾸어 형성되었다고 한다...

 

당산제(堂山祭)는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 마을에서 7월 백중에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였다.

옛날 노치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민씨들이 들어와 살았는데 그들 중에 짚신을 만들어 팔았던 가난한 거지가 있었다.

추운 겨울에 거지가 죽자, 동네 사람들이 그를 묻어 주려고 하였으나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묻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관이

하나 들어갈 정도로 눈이 녹아 있는 땅을 발견하고 그곳에 묻어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이 산에 보답하기 위해서 음력 1월1일 밤 12시에 주산제(主山祭), 곧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노치마을 당산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월 1일에 지냈는데, 몇 년 전 자손이 없던 마을노인 두 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전답을

동네 당산답으로 기증을 하여, 마을주민들이 두 노인을 위해 해마다 7월15일에 제사를 지내다가, 얼마 전부터 당산제를 7월 백중으로

옮겨서 지내게 되었다. 마을 뒷산에 있는 할아버지 당산은 소나무와 토석단이 결합된 형태이고, 할머니 당산은 큰 바위이다...

당산제를 지내기 한 달 전에 제주로 축관, 헌관, 밑주비(음식 장만하는 집)를 선정한다.

이들은 먼저 동네 우물물을 퍼낸 후 대나무와 금줄을 둘러서 외부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당산제를 지낼 때는 오전에 금줄을 쳐놓은 우물물로 음식을 마련하여, 당일 자정에 뒷당산(할아버지 당산)에서 먼저

제를 지내고, 바로 내려와서 우물에 친 금줄을 걷어다가 마을의 조산에 쳤다. 당산제를 지내는 날은 모든 사람이 문밖출입을 삼가고,

비린 것을 먹으면 안된다. 또 상주를 제외한 모든 집 대문에 금줄을 치며, 특히 제주들의 집에는 마당에서 부엌까지 황토를 깔아 놓는다..

옛날에는 정성이 부족하면 호랑이가 동네 개를 물어갔다고 한다.

당산제를 지낼 때 불을 켜놓으면 정월 대보름날까지 그대로 놓되, 한밤중에라도 꺼지면 즉시 다시 켜놓았다고 한다...

 

구룡치 갈림길... 좌측으로는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지리산 둘레길 구룡치에 이르고...

 

이제 수정봉까지는 우측 능선을 따라 1km남았다...

 

수정봉 정상엔 삼각점(운봉308/1981복구)이 있고, 성터 흔적이 있다...

 

수정봉...

남원 운봉읍 행정리, 주천면 덕치리, 이백면 양가리의 경계를 이루는 수려한 산으로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계가 되며 이백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운봉읍 주촌에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입망치를 사이로 양지산성 남쪽에 위치한 수정봉은 운봉읍 주촌리와 이백면 과립리를 경계로 두개의 산봉우리를 포함하여

성의 평면 형태는 표주박 형태를 이루는데 확인된 성의 길이는 150m 정도 된다..

성의 부대시설은 망대와 우물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있었으며, 망대는 성의 중앙부와 서쪽에 원형의 형태로 남았고

동쪽 산봉우리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 우물지는 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재를 이용하여 우물시설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정봉은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두대간의 맥에서 가장 극적인 분수계를 만나는 봉우리로 남원에 들어선 마루금은 고남산~여원치~입망치를 지나 수정봉에 다다른다..

 

수정봉에서 바라보면 벌판 너머에 지리산 자락이 펼쳐진다..

 

관목사이로 뚜렷하게 좋은 길이 이어지면서 지그재그로 내려가는데 좌측 사면에는 죽은 소나무를 간벌한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며...

 

잠시 후 보도블록이 깔려 있는 헬기장을 지나...

 

이백면 과립리와 운봉읍 엄계리를 잇는 입망치...

 

입망치는 예전에 갓바래기재라고도 불리었다...

 

잠시 후 제법 경사가 있는 통나무로 만든 계단길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지나온 능선들이 눈에 들어온다...

 

좌측으로는 멀리 남원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파르게 올라서면 705m봉....

 

다시 내리막길...

 

멀리 다음 구간인 고남산 통신탑이 바라보인다...

 

우측 마을로 내려서는 길을 버리고 임도를 가로지르고 능선을 따른다..

 

운성대장군(雲城大將軍)이 서있는 여원재...

뒷면에 새겨진 글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운봉의 문화유적 / 운봉은 신라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가 은거하면서 거문고를 전수시킨 이래 판소리 동편재의 고장으로써

 가왕 송홍록, 국창 송만갑, 인간문화재 박초월, 낙화의 명인 박항규 등이 터를 이룬 고장으로 많은 문화유적과 민속사료들이 산재해 있어

 민속문화의 보고라 불리운다. 주요문화재로는 황산대첩비지, 서천리 당산, 운봉향교, 행정리 고분, 여원치 마애불, 동학토벌비 등이 있고,

 고성으로 고남산성, 장교리 합민성, 춘향산성, 수정산성, 노치산성, 정령치 순라도가 있다.

 또 명승과 고적으로 옥계동과 피바위, 면왕목장, 정령치 등이 있으며, 서천리 장승, 북천리 장승, 권포리 장승, 임리 당산 등 많은

 민속자료와 황산대첩제, 운봉줄싸움, 목기와 유기 낙곡공예 등은 옛부터 운봉의 특산품으로 알려져 왔다.」..

 

여원재(女院峙)..

기원전 삼한시대 마한의 별궁이 있었다는 전설, 그 궁터가 남아있는 계곡, 여원치 마애여래불에 얽힌 인의 정절에 대한 이야기,

호국혼의 전설을 간직한 아흔아홉 구비의 고개, 정상의 주지봉 산신단에 소원을 빌면 한가지는 들어준다는 등 많은 전설이 전해진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 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이 고개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이곳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개마루 주변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런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결한다.

한편,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자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 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성계는 꿈에 나타난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자결한 주모의 원신이라고

믿고, 고갯마루 암벽에 여상을 암각한 다음 주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을 지어 여원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연으로 여원치라는 명칭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은 이 여원치를 연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필시 여원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여원재에서 바라보는 일몰, 즉 여원낙조는 운봉팔경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아름답다....

 

건너편의 백두대간 다음 구간...

 

여원재 마애불(磨崖佛).. 1998년11월27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여원재 낭떠러지에 병풍처럼 둘러진 바위 가운데 양각되었는데, 높이 230cm, 어깨 너비 120cm이다.

다소 두꺼운 가사, 신체 표현에 육감적인 면이 부족한 점 등으로 미루어 고려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호(相好)는 원형감이 풍부하며 미소를 머금었는데 눈·코·입은 형태가 뚜렷하다.

가사는 통견으로 옷주름은 완만한 원형 형태지만 선이 굵어 무거워 보인다.

가사가 두껍고 광배는 음각으로 형식적으로 표현했으며 상체만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두상과 손목 등 일부는 훼손된 상태이다..

 

불상 위쪽에 양쪽으로 홈을 파서 빗물이 불상 쪽으로 흐르지 않게 배수로 시설을 해놓았다.

불상 옆에 2개의 돌기동이 남아 있어 과거에 보호각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왼쪽에는 가로와 세로 각 150cm 크기의 명문이 있는데 후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산행을 마무리하고 찾은 지리산중앙하이츠콘도에서의 사우나....

 

그리고 남원시가지의 도령식당에서의 뒤풀이...

 

80명의 왁자지껄한 뒤풀이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길가에는 이 고장 출신인 김주열열사 흉상이 있고 이 길을 김주열로로 명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