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내금강 고창 선운산 수리봉~낙조대, 그리고 천년고찰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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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2

호남의 내금강 고창 선운산 수리봉~낙조대, 그리고 천년고찰 선운사...

by 정산 돌구름 2012. 6. 17.
호남의 내금강 고창 선운산 수리봉~낙조대, 그리고 천년고찰 선운사...


산행일자 : 2012. 6. 16(토)

기상상황 : 구름 조금 낀 맑고 무더운 날씨

산 행 지 : 선운산 수리봉, 철마봉(전북 고창)

산행코스 : 주차장~마이재~도솔봉~참당암~소리재~천마봉~도솔암~선운사~주차장

 

 

산행지 소개

  선운산도립공원은 경수산,개이빨산,구황봉,청룡산,비학산 등 3~400m급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악공원이다.

  그리 높지 않고 규모는 작지만 기암괴봉으로 이루어지고 솟구쳐 올라 "호남의 내금강" 이라고 불린다.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의 뜻으로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다.  곳곳에 기암괴석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고 곳곳에 암장이 있어서 암벽

  등반 클라이머들이 자주 찾고 있으며 전국 암벽 등반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북으로부터 경수산(444.3m), 선운산(수리봉 336m), 개이빨산(349m), 천왕봉(303m), 청룡산(314m), 국기봉(337.8m), 비학산(307.4m),

  구황봉(297m), 형제봉(248m)이 타원형을 그리고 가운데로 선운사계곡을 깊게 파놓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북동쪽 끝자락에

  살짝 열어 놓은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주자천과 합류하여 서해바다 곰소만으로 흘러들어간다.

  이들 산이 둘러싼 골짜기에는 석상암, 선운사, 도솔암, 진흥암, 참당암, 동운암 등 사찰과 암자들이 자리 잡고 있고, 골짜기 초입부터

  석당기, 무학비공원, 일주문, 부도전, 포갠바위, 장사송, 마애불, 낙조대, 평풍바위, 배멘바위, 사자바위, 낙타바위, 안장바위, 선바위,

  투구바위, 용문굴, 탕건바위, 벌바위, 형제바위 등 볼거리를 많이 품고 있다.

  또, 해질 무렵 서해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해넘이 풍경은 선운산을 통 채로 안고 바다 속으로 스며든다.

  봄이면 동백, 여름에는 울창한 숲, 가을에는 단풍으로 유명하여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선운산은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린 채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입산수도하였다는 전설의 천연동굴인 진흥굴이 있다.

  1707년 쓰인 '도솔산선운사 창수승적기(創修勝蹟記)'에 다음과 같은 선운사의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진흥왕은 왕위를 버린 첫 날밤에 좌변굴(左邊窟, 진흥굴)에서 잠을 잤다. 꿈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

  하여 중애사를 창건하고 다시 이를 크게 일으켰는데, 이것이 선운사의 시초라고 한다. 한창 때는 암자 89개, 당우 189채, 수행처 24개소

  그리고 승려 3,000여명을 거느린 대찰이었다 한다.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선운사 대웅전뒤편 동백 숲은 5천여평의 면적에 수령이 약 500년 정도로 3천 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3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 꽃을 피운다. 동백은 절에서 불을 키기 위한 동백기름을 얻기 위하여 심었다고 한다.

  또, 선운사는 위덕왕 24년(577년) 백제의 승려 검단선사와 신라의 국사이자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러지는 선운산은 노령산맥의 지맥으로 서해안과 접하고 있으며 선운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대한불교 조계종의

  전북 2대 본사로 한국의 명승고찰로 유명하다.

  현재 선운사에는 보물 5점, 천연기념물 3점, 전라북도유형문화재 9점, 전라북도문화재자료 2점 등 총 19점이 있다.

  선운산은 인기명산 100산중 41위(한국의 산하 1년간 접속통계)로 경관도 수려하지만 선운사 주변 동백군락지는 국내 제일을 자랑한다.

  또한, 산세는 크지 않지만 숲이 울창하고 곳곳에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도 포함된다.

 

 

구간별소요시간 : 약12km, 5시간15분소요

  주차장(10:05)~주능선(10:38)~339봉(10:49)~마이재(10:58)~수리봉(11:10~18)~견치산갈림길(11:22)~포갠바위(11:29)~참당암(11:48~55)~소리재(12:16)~천상봉(12:22)~용문굴(12:30~43)~낙조대(12:53)~천마봉(13:00~10)~마애불(13:27)~내원궁(13:39~47)~도솔암(13:52~55)~진흥굴(14:04)~선운사(14:40~15:00)~주차장(15:20)

교통상황 : 동광주IC~호남고속~장성JC~14번고속~15번고속~선운산IC~22번~선운산주차장

 

더위 탓인지 텅빈 선운사 주차장...

 

산행채비를 끝내고 주차장 뒤편의 시설지구로 들어선다..

 

부드러운 계곡을 지나 가파르게 올라서면 주능선...

 

부드러운 능선인가 싶더니 잠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능선봉인 339m봉...

 

다시 내려서면 마이재.. 좌측으로는 석상암에서 오르는 길, 우측은 심원면으로 내려선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수리봉...

 

 

 수리봉은 선운산 또는 도솔산으로도 불리며...

 

바로 아래 바위전망대에 서면 선운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평상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잠시 능선을 따라면 전망이 트이는 암봉... 건너편으로는 견치산(개이빨산) 능선...

 

그리고 지나온 능선봉과 멀리 경수산 줄기...

 

견치산 갈림길에서 참당암을 보기위해 참당암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어지는 능선암릉은 조망이 트여 선운사가 한눈에...

 

포갠바위를 지나고...

 

전망이 좋은 암릉에 서면 바로 앞 천왕봉, 천마봉, 청룡산으로 이어지는 선운산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로는 참당암, 그리고 견치산 능선...

 

임도에 내려서 잠시 참당암으로...

 

선운사(禪雲寺)의 산내암자인 참당암(懺堂庵)... 

이전에는 대참사(大懺寺), 참당사(懺堂寺) 등으로 불렸으며, 규모가 상당히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신라 진평왕 49년(627)에서 진덕여왕3년(649) 사이에 의운조사(義雲祖師)가 창건하였고,

고려 충숙완 16년(1329)에 상량(上良)이 대웅전을 중수하였으며, 조선 중종25년(1530) 일헌(一軒)이 중수하였다.

인조1년(1623) 익순(益順)이 정문을 중수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으로 불타자 1642년 숭인(崇印)이 중건하였다.

숙종39년(1713) 회징(會澄)이 부속암자인 몽성암(夢醒庵)을 중창하였고, 1730년 배극(倍極)이 안양암(安養庵)을 중창하였다.

1754년 청원(淸元)과 삼익(三益)이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삼익과 찬명(贊明)이 정문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803호인 대웅전과 약사전, 산신각 등이 있다..

 

 

보물 제803호(1984년)로 지정된 대웅전...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과 협시보살로 고통을 없애준다는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셨다.

참당암(懺堂庵)은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뒤편의 지장전...

 

대웅전 옆의 응진전과 명부전이 한 건물에...

 

참당암을 두루 둘러보고 다시 나온다..

 

100m가량 되동아와 소리재로...

 

부드러운 숲길을 따라 오르면 소리재.. 뎐치산에서 오는 능선과 이어진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천상봉에 올라서면 바로 앞 천마봉...

 

건너편으로는 사자바위, 멀리 솟아오른 안장바위까지...

 

용문굴 바로 위에서 잠시 휴식...

 

그리 바로 아래 용문굴로 내려선다...

 

문굴은 의운국사가 우전국에서 보내온 나한상을 모실 절을 지으려는데 그곳에 이무기가 살면서 방해하므로 사자를 시켜 매질하여

내쫓으니 쏜살같이 달아나면서 이곳 바위를 뚫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검단리에서 소금을 들여오면 이무기가 장난을 쳐서 비를 내려 소금을 녹게 하므로 검단선사가 내쫓은 것으로도 전한다.

바위가 훤히 뚫리어 문을 이루고 그 안에 암자가 있어 용문암이라 했는데, 암자는 없어지고 용문굴만 남았다...

 

문굴은 2004년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MBC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어머니 돌무덤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문굴에서 올라서 능선을 따르면 바로 위 낙조대가 바라보인다... 

 

선운산 최고의 절경이라는 낙조대..

암봉에서 바라보는 칠산 앞바다 낙조는 천마봉에서 내려다보는 도솔천계곡의 경관과 더불어 선운산 경관의 쌍벽을 이룰 만큼 좋다.

낙조대는 몇 개의 집채 만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개의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저녁 해를 보면 최고의 절경이라 한다.

이곳 역시 MBC드라마 ‘대장금’에서 최상궁이 자살하는 배경이 선운산 천마봉의 낙조대였다고 한다..

 

낙조대에서 바라본 병풍바위... 

 

바로 앞의 천마봉...

 

천마봉에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도솔암과 마애불... 멀리 경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들... 

 

도솔암이 한가롭다..

 

천마봉에서 바라본 마애불과 도솔암 내원궁...

 

병풍방위와 철계단...

 

지나온 낙조대...

 

바로 앞 건너편의 사자바위...

 

긴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앞 내원궁과 마애불이 아름답다..

 

보물 제1200호(1994년)로 지정된 도솔암 마애불(磨崖佛)..

몸체는 사각형으로 평판적이고 양감(量感)없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일자로 도드라진 입과 함께 얼굴에는 파격적인 미소를 띠고 있다.

결가부좌한 하체에 손이 유난히 크고 투박하며, 상현좌(옷주름으로 대좌 위를 가린 것)와 함께 연화대좌(蓮華臺座)를 갖추고 있는데,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과 비슷한 고려 초기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백제의 위덕왕이 선사 검단(黔丹)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조각하고,

그 위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명치끝에는 검단선사가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 있다.

조선말에 전라도관찰사로 있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글이 쓰여있었다고 전한다. 이 비결록은 19세기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고 한다...

 

조선말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나한전(전북 문화재자료 제110호)...

 

도솔암 용문굴에 살던 이무기가 마을주민들을 괴롭히자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인도에서 나한상을 들여와 안치하였더니

이무기가 사라졌으며, 이후 이무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건물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도솔천 내원궁...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고, 그 산의 꼭대기에서 12만 유순 위에 있는 욕계(欲界) 6천 중 제4천인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원은 수많은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내원궁(內院宮)이라고 부른다.

 

내원궁은 석가모니가 인도에 태어나기 직전까지 머무르면서 중생교화를 위한 하생(下生)의 때를 기다렸던 곳이다.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보살은 현재 이 내원궁에서 설법하면서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하생하여 성불(成佛)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미륵상생도솔천경 彌勒上生兜率天經>에 의하면,

바라나시국의 칼파리촌에서 태어난 한 브라흐만계급의 아들인 미륵은 부처의 제자가 되어 교화를 받고 마침내 도솔천에 태어나는

영광을 얻는다. 여기서 미륵은 4,000세, 인간의 나이로 56억6700만 년을 보낸 뒤 지상으로 내려와 성불한다.

그 때 이 지상의 국토는 풍요롭고 청정하며 모든 복덕을 갖추고 있어, 미륵불은 첫 모임에서 96억의 사람을 제도하고,

두번째 모임에서는 94억, 세번째 모임에서는 92억의 사람을 제도하여 그들을 모두 성자(聖者)가 되게 하고

8만4000세를 살다가 열반에 든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원궁 뒤편의 산신각..

 

산신각내의 입체적인 탱화...

 

도솔궁에서 바라본 철마봉..

 

도솔궁을 내려와 도솔암에 이르면 도솔암 극락보전...

 

극락보전 삼존불...

 

스님들의 거처인 동당..

 

그리고 서당..

 

도솔암 경내를 벗어나면 아담한 도솔암 찻집..

 

오! 자네 왔는가.. 이 무정한 사람아..

 

잠시 내려서면 1988년4월30일 천연기념물 제354호로 지정된 도솔암 장사송(長沙松)..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로 높이 23m, 가슴높이 줄기둘레 2.95m, 가지퍼짐은 동서쪽 16.8m, 남북쪽 16.7m이다.

지상 2.2m 높이에서 줄기가 크게 2갈래로 갈라지고 그 위에서 다시 8갈래로 갈라진다.

가지 밑의 줄기높이가 높아서 소나무 같으나 지상 40cm 정도에서 가지가 난 흔적이 있어 반송(盤松)으로 취급한다.

가지가 고루 퍼져서 달걀 모양이 된 수형이 아름답고, 8개의 가지는 한국의 8도를 가리킨다고 한다.

고창사람들은 이 나무를 ‘장사송’ 또는 ‘진흥송’이라고 하는데,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이름이 장사현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며,

진흥송은 옛날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앞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린 채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입산수도하였다는 전설의 천연동굴인 진흥굴...

 

신라 진흥왕이 이곳에서 수도하였고 그의 호가 좌변이었기 때문에 좌변굴로도 불린다고 한다...

 

한참을 내려서면 선운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의 본사인 선운사(禪雲寺)..

<선운사 사적기>에 따르면 백제 위덕왕24년(577)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하였으며, 그후 폐사가 되어 1기(基)의 석탑만 남아 있던

것을 공민왕3년(1354)에 효정선사(孝正禪師)가 중수하였다.

성종3년(1472)부터 10여 년 간 극유(克乳)가 성종의 숙부 덕원군(德源君)의 후원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는데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창건 당시는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건물, 그리고 수도를 위한 24개소의 굴이 있던 대가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광해군5년(1613)에는 무장(茂長)현감 송석조(宋碩祚)가 일관(一寬)·원준(元俊) 등 승려와 함께 재건을 도모, 3년에 걸쳐 대웅전·만세루

(萬歲樓)·영산전(靈山殿)·명부전 등을 건립하였다.

이 절은 불교의 기본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왕성해지고,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던 선종(禪宗)에서도 선리(禪理)를 근본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던 조선 후기에, 조사선(祖師禪)의 본연사상을 임제삼구(臨濟三句)에 입각하여 해결해 보려고 시도한

불교학자 긍선(亘璇)이 처음 입산수도한 절이기도 하다.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79호인 금동보살좌상(金銅菩薩坐像),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地藏菩薩坐像)이 있으며,

대웅전(大雄殿)도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1967년2월11일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선운사 동백나무숲...

 

선운사로 가는 길 오른쪽 경사면 아래 사찰 경계가 시작되는 동백호텔 뒤부터 선운사 뒤까지 폭 30m 정도로 이어진다.

평균 높이 6m, 수관지름 8m 정도이고 큰 것은 밑부분 지름이 80cm이고, 가슴높이 줄기의 지름이 30cm 정도이다..

 

 

 

 

 

 

 

 

 

 

 

 

 

 

 

 

1991년11월27일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된 고창 삼인리 송악...

수령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노거수이다.

송악은 상록활엽수로 보통 따뜻한 곳에서 자라나, 이 나무는 내륙의 분포상 북한지대에 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인정된다.

골짜기를 흐르는 시냇물 주변의 절벽에 뿌리를 내렸는데, 덩굴줄기가 암벽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많은 가지를 낸 신기한 모습이다..

 

 

에필로그

 장거리 산행이 불가한 여건이 되어 가까운 고창 선운산을 찾았다. 

 선운산은 나즈막한 산줄기에 기암괴봉이 서해안 풍경과 어울러져 아름다운 곳이라 언제라도 찾아가도 좋다.

 주능선에 오르면 햇볕이 들지않는 나무그늘 아래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갈 수 있고 언제라도 힘들면 내려설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씨였지만 능선이 좋았고 모처럼 정기산행의 속박에서 벗어나 느긎하게 평소에 지나쳤던 참당암, 도솔암 내원궁, 내소사의

 풍경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