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주능선(벽소령~칠선봉~영신봉~세석~대성골)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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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2

지리산 주능선(벽소령~칠선봉~영신봉~세석~대성골)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12. 7. 22.
지리산 주능선(벽소령~칠선봉~영신봉~세석~대성골) 산행...

 

 

산행일자 : 2012. 7. 21(토)

기상상황 : 구름 많고 무더운 날씨

산행인원 : 빛고을토요산악회(39명) - 회비 33,000원

산행코수 : 의신마을~삼정~벽소령대피소~칠선봉~영신봉~세석대피소~음양수~대성골~의신

구간별소요시간 : 약22.2km, 8시간25분소요

   의신마을(08:30)~삼정마을(09:03)~작전도로합류점(09:33)~계곡갈림길(10:07)~벽소령대피소(10:50~11:00)~선비샘(11:50~12:12)~

   칠선봉(12:57)~영신봉(13:45~50)~세석대피소(14:00~05)~음양수(14:22)~의신갈림길(14:44)~대성마을(16:15)~의신마을(16:55)

주요 봉우리 : 지리산 칠선봉(1,558m), 영신봉(1,652m)

교통상황

   비엔날레(06:00)~88고속~순천-완주고속~구례화엄사IC~19번~구례장터(조식)~19번~1023번~의신마을(08:20)

   의신(18:20)~온천모텔사우나(18:35~19:20)~1023번~19번~구례화엄사IC~순천-완주고속~88고속~비엔날레(20:50)

 

 

산행지 소개

   민족의 영산 지리산(智異山)은 1967년12월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산으로 그 넓이가 4백84㎢, 1억4천평이 넘는 면적으로 계룡산의

   7배, 여의도의 52배쯤 된다.

   우리나라 단일 산으로는 최장 최대를 자랑하는 장엄한 넓이와 깊이를 지닌 산이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활처럼 굽은 25.5km 주능선은 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칠선봉, 촛대봉, 천왕봉 등 1,500m가 넘는 봉우리만도

   16개나 이어진다.

  「잔돌평전」이라 하는 세석(細石)은 화개 땅의 영신봉과 산청땅의 촛대봉사이의 1,600m 고지대에 있는 평야지대이다.

   이곳에 있는 수만그루의 철쭉이 되는 5월 하순은 요염한 철쭉의 붉은 색과 등산객들의 오색 물결이 장관을 이루는데, 이곳 철쭉은

   지리산 10경중 하나이기도 하다. 철쭉의 아름다움과 함께 영신봉은 화개에서 제일 높은 산이며, 화개동천의 선경을 연출하며 주민의

   젖줄이 되는 화개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이미 이륙선생은 1463년「지리산기」에서,「시내는 영신사의 작은 샘으로부터 근원이 되어

   신흥사 앞에 이르러는 이미 큰 시내가 되어 섬진강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밝혔다.

   또 영신봉은 낙남정맥(落南正脈)의 시작점이다.

   벽소령이 시발점이라 알려졌으나 산이 수계를 가른다는「산자분수령(山者分水嶺)」의 이론에 의하면 그렇다.

   천방봉에서 흐르는 물은 어떤 경우라도 낙동강 수계로 흐르고, 벽소령에서 흐르는 물도 언제나 섬진강수계로만 흐르게 된다.

   그러나 영신봉에서 흐르는 물은 방향에 따라 섬진강으로도, 낙동강으로도 흘러간다. 그러하니 경상도 서남부 일대의 산지를 포함하는

   낙남정맥의 시발점은 영신봉이 되는 것이다.

   낙남정맥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동강남쪽을 가로지르며 김해 분성산(360m)까지 약 300km에 이르는 산줄기로써「영신봉~삼신봉~

   외삼신봉~태봉산~실봉산~와룡산~무선봉~봉대산~양전산~백운산~천황산~대곡산~무랼산~백운산~덕산~필두봉~용암산~깃대봉~

   여항산~서북산~봉화산~광려산~대산~대곡산~무학산~천주산~정병산~대암산~용지봉~신어산~동신어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영신봉은 지리산 불교문화의 중요한 요람이자 삼신동의 제일 끝자리에 내려다보는 맏형같은 산이다. 영신봉은 화개 제1봉으로

   성산(聖山)이자 주산(主山)이라 할 수 있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km에 달하는 지리산 종주 등반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고도가 가장 낮은 산령으로서

   예로부터 화개골과 마천골을 연결하는 산령으로 화개에서 마천까지 38km의 지리산 중앙부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횡단 도로다.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록한 고개로서 그 주위에 높고 푸른 능선들이 겹겹이 쌓여 유적한 산령을 이루고 벽소령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마치 자신이 신선이 된 양 착각을 하게 한다. 산이 낮고 구름이 주위를 뒤덮고 있어 그런 느낌을 받는다.

   벽소령에서 가장 뛰어난 볼거리라면 밤하늘의 달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벽소명월(碧霄明月)....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하였다고 하며

   벽소령의 달은 지리 10경 중의 하나다.

   반란의 산, 지리산..  지리산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빨치산과 반란군이다.

   1948년 여순사건이후 한달 이상 노고단의 외국인 별장촌은 반란군 김지회의 근거지였다.

   반란군이 물러가고 난 후 국군 토벌대가 다시 들어와 이곳이 또다시 빨치산 거점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불태워 버렸다.

   노고단고원이 황폐해진 직접적인 이유이다.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 노고단 산장 서측은 흉물스런 별장촌 잔해가 남아있고,

   외국인 별장촌은 노고단 남쪽 왕시루봉 기슭으로 옮겨져 다시 세워졌다.

   6.25 이후 빨치산 잔당들은 또다시 지리산으로 모여 들었고, 이는 국군 토벌대의 무차별 포격, 방화로 이어지고 만다.

   피아골산장 터에서 한 트럭분 이상의 인골(빨치산의 것 추정)이 나왔다는 사실은 얼마나 토벌작전이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에 불과하다.

   1952년 빨치산 대몰살의 현장이었던 대성골, 거림골, 빗점골, 의신부락 등은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오늘날까지도 대성골의 숨은

   골짜기에서 인골이 종종 목격되곤 한다. 당시 빨치산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죄없는 양민이 국군토벌대에 의해 학살되었던 것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역사로 남아있다.

산행후기

  초복이 지난 7월의 무더위..  태풍과 폭우가 지나간 지리산 계곡은 폭포수처럼 물줄기를 뿜어내고 잔뜩 찌푸린 무더운 날씨에 산행

  초입부터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 장거리 산행을 한 탓인지 몸도 마음도 무겁다.

  그러나 함께 하면 즐거운 사람들이 있어 오늘도 이렇게 다시 산을 찾게 된다..

 

잔뜩 흐리고 안개가 끼었지만 초입지에 도착하였을 때는 구름도 걷히고 조금은 맑은 날씨..

모두 한자리에 모여 단체사진 한 컷을 하고 준비운동을 합니다..

 

선유산방이라...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서면 세찬 계곡의 물소리..

 

멀리 삼정마을이 다가오고..

 

삼정마을에서 도로를 벗어나 마을 뒤편으로 들어서 오르면 다시 희미한 작전도로가 나타나고..

그러나 수십년동안 폐쇄되어 도로라기보다는 희미한 등산로입니다..

 

쓰러진 고목들...

 

이제 벽소령까지는 1.3km..

 

비오듯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계곡물에 몸을 적시고..

 

목교를 건너 가파른 오르막..

 

1,00m가 넘는 고지이지만 세찬 물줄기...

 

가파르게 올라 벽소령대피소..

 

의신에서 6.8km를 올라왔습니다..

 

잠시 휴식..

 

가야할 산줄기를 가늠해 봅니다..

 

야생화 천지... 비비추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습니다..

 

벽소령을 뒤로하고...

 

길게 이어지는 의신계곡..

 

벽소령에서 이어진 작전도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능선을 따라 오릅니다..

 

무더위속에 도착한 선비샘...

 

 

 

선비샘과 박복한 노인의 이야기..

널따란 공간의 이곳 샘터가 지금은 서서 물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물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수량은 비록 적으나 마르는 일이 없고 그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야영하기에 적합하다.

그 샘터 위에 초라한 고분이 하나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무덤과 샘에 얽힌 한 화전민의 서글픈 사연은..

옛날 덕평골 아랫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화전민의 자손으로서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가난에 쪼달리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박복한 사람이었다.

러다보니 배우지 못하여 무식한 데다 얼굴마저 못 생겨서 그 인품이 몹시 초라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노인은 평생에 한번이라도 사람들에게 선비 대접을 받아 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늙어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죽거든 그 시체를 상덕평 샘터위에 묻어 달라고 아들 형제에게 유언을 했다.

성스런 아들들은 훗날 그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위에 매장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이곳을 지날 때 꼭 샘터에서

물을 마시게 되고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앞에 무릎 꿇고 절을 하게 되어 노인은 생전에 그리고 한이 되었던 선비 대접을

무덤 속에서 받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리라.

후일 이 동네 사람들이 이 노인의 불우했던 생전을 위로해주기 위한 소박한 인정으로 이 샘을 선비샘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러나 지금은 무덤도 없고 샘도 관으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하였기 때문에 이 씁쓸한 전설은 잊혀진 얘기로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선비샘을 지나 오르면 조망이 트이는 암봉... 멀리 주능선은 운무에 잠기고...

 

이제 세석까지는 2.7km..

 

능선을 따라 올라서면 멀리 천왕봉까지 조망되는 암봉..

 

오래전 백두대간길을 함께 하였던 동지들을 만났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반가운 얼굴들.. 모두가 대간길을 걸었던 팀원들이었습니다....

 

멀리 구름속에 천왕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방 운무에 잠겨버리고...

 

능선따라 가는 길에 칠선봉이 거만스럽게 비스듬히 서있고 전면과 지나온 능선으로 조망..

 

 

칠선봉은 남쪽으로 대성골과 북쪽으로 한신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위치한 봉우리로 7개의 암봉이 높은 능선위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일곱선녀가 한자리에 모여서 노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입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능선에 구름이 스쳐 지나가면 더욱 운치가 있고...

 

칠선봉을 넘어서면 트이는 조망.. 가야할 영신봉 방향..

 

긴 계단 오르막이 이어져 한참을 올라서야 합니다..

 

오르는 계단에서 바라본 능선은 운무에 잠기고...

 

멀리 지나온 능선은 희미하기만 하고...

 

멋진 암봉...

 

뒤돌아 본 능선..

 

얹혀 놓은 듯한 괴암..

 

영신봉 이정표.. 정상은 아닙니다..

 

좌측으로 나있는 영신봉 오르는 길...

 

목책을 넘어 영신봉에 올라섭니다..

 

맑은 날이면 천왕봉이 선명한데 운무에 보이질 않습니다..

 

낙남정맥이 이어지는 남부능선도 희미하고...

 

다시 돌아내려와 능선을 따라갑니다..

 

바로 아래의 세석평전... 촛대봉은 신비스럽게 운무에 잠겨 있습니다..

세석평전은 각종 희귀한 식물들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식물원을 연상케 하는데,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구상나무..

반야봉주변 구상나무 군락지가 아니라도 지리산 곳곳에 산재해 있어 지리산을 대표할 수 있는 나무가 구상나무..

구상나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 등 높은 지역에서만 자라는 나무라고 합니다.

세석고원은 신라 때 화랑도의 수련장으로 이용됐으나 6.25를 전후해서는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말끔한 대피소..

세석고원의 철쭉꽃이 유별나게 많고 아름다운 것은 「여진」이란 여인의 슬픈 넋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먼 옛날 지리산에 가장 먼저 들어온 호야(乎也)라는 남자와 여진여인은 대성계곡에 보금자리를 열었다.

   그들은 씨족사회의 모든 간섭으로 벗어나 지리산의 대자연속에서 인간적인 자유를 찾은 것...

   이 한쌍의 남녀는 산채와 산과를 따먹으며 원앙처럼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둘 사이에 자녀가 없는 것이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느 날  검정 곰이 나타나 여진에게 「세석평원에는 소원대로 아들딸을 낳게 해주는 음양수라는 신비의 샘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여진은 너무 기뻐 남편과 상의할 틈도 없이 단숨에 음양수 샘터로 찾아가 샘물을 실컷 마셨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호랑이가 곰과 여진이 주고받는 말을 엿듣고 지리산 신령님께 고해 바쳤다.

   지리산 신령은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것에 크게 노하여 곰을 토굴 속에 감금하였고, 호랑이에게 백수의 왕으로 군림하도록

   특별 배려를 했다. 또 음양수 샘물을 훔쳐 마신 여진에게는 무거운 벌을 내려 평생 잔돌밭에서 혼자 외로이 철쭉을 가꾸게 하였다.

   그날부터 여진은 뜻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세석평원에서 날이면 날마다 손발이 닳도록 꽃밭을 가꾸어 철쭉은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꽃이 피고 지게 되었다.

   여진의 애처로운 모습을 닮아 유별나게 청초하게 아름답고, 또 여진의 슬픈 넋이 꽃잎마다 서려있어 애련하게 피고 진다는 것이다.

   또, 여진여인은 밤마다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의 산신령을 향하여 죄를 빌다가 그대로 돌이 되었는데, 촛대봉의 앉은

   바위가 바로 가련한 여진의 굳어진 모습이란 전설이다..

 

 

 

세석대피소...

 

벽소령에서 6.3km 왔습니다.. 

 

대피소를 한바퀴 들러보니 회원들이 모두 내려섰는지 아무도 없습니다..

 

회원님들이 없음을 확인하고 내려섭니다..

 

좌측 거림으로 내려서는 갈림길..

 

전설적인 여성 빨치산 김점분과 여성빨치산들이 생을 마감한 음양수 주변....

1953년 여름, 토벌대에 쫒긴 전설적인 여성 빨치산 김점분과 15명의 여성 빨치산들은 음양수에서 포위되어 더 피할 곳이 없자

모두 권총으로 자결하였다고 합니다.

토벌대와 미군 합동군이 대성골 빨치산을 공격하자 대성 마을 뒤에 수많은 시신들이 흩어지고 3일동안 대성골 일대에는 피가 흘렀다고...

음양수는 반란의 역사 격전지였던 곳 중 하나입니다..

세석평전 직전 고사목지대 양지바른 바위숲...

그리고 음양수 위쪽 너른 바위엔 곱게 쌓인 돌제단. 예전에 화전민들이 십여 가구 쯤 살았던 흔적인 돌절구가 화전민 마을..

 

멀리 뻗어나가는 지리산 남부능선...

 

음양수(陰陽水)..

남부능선으로 길목에서 갈증을 달래주는 음양수는 사랑하는 남녀의 애틋한 전설이 전해집니다...

불교에서 인간으로 태어남은 윤회설에 의한 하늘의 뜻이며 하늘의 뜻을 어기고 인간 뜻대로 아기를 갖는 행위는 죄...

그리고 그 천기를 누설했기에 가혹한 천벌을 받는다는 내용의 전설...

 

이곳 샘물을 마시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의 샘...

그 이유만으로도 은밀히 불임 여성들이 찾는 샘이기도 합니다...

 

 

손가락만한 두개의 구멍에서 따로 따로 샘솟아 큰 바위 아래 돌 웅덩이에서 하나로 합치는 샘물...

두줄기 샘물이 하나로 합쳐져 음양수라고 부릅니다..

돌 웅덩이를 넘쳐흘러 작은 실개울을 이루고 그 실개울이 흘러 오랜 세월동안 깎아 빚은 지리산에서 가장 길고 깊은 계곡 대성골..

그 대성골의 발원지인 바로 음양수....

 

빨치산의 흔적.. 책상만한 바위에 원통형의 구멍을 파서 절구로 이용하였고 사람이 살았고 농사를 지었다는 구체적인 증거...

 

조망이 트이는 암봉.. 지나온 능선, 멀리 영신봉이 희미합니다..

 

건너편의 촛대봉과 지능선..

 

멀리 삼신봉은 희미하고..

 

암봉에 흔적을 남기고 내려섭니다..

 

의신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

 

잠시 내려서면 조망이 트이는 암릉... 거대한 대성골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리하게 내려서면 세차게 쏟아지는 계곡을 만나고..

 

이따름 나타나는 철교..

 

시원스런 계곡과 소...

 

드디어 대성마을에 이릅니다..

 

휴게소..

 

그리고 아름다운 소나무, 그 아래 고대와 현대가 마나는 곳..

지게를 지고 열심히 휴대폰을 만지는 사람...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습니다.. 

 

이제 화개천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도로가 바라보이고..

 

의신마을이 눈앞에 들어옵니다..

 

항일투사 17인의총.. 예전에 없었던 모습입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벽소령산장도 여전하고..

 

그 기나긴 산행도 이제 끝이 납니다..

 

선학정과 선학관..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바라만 보아도 더위를 식혀주는듯 합니다..

 

바로 위의 지리산 역사관...

 

화전민의 모습과 빨치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지리산 공비토벌루트..

 

산행 후의 사우나.. 역시 산행의 참맛입니다..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물줄기.. 섬진강으로 흘러가겠지요...

 

무더운 날씨에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