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기행] 가사문학의 산실, 정송강유적 담양 송강정(松江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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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기행] 가사문학의 산실, 정송강유적 담양 송강정(松江亭)

by 정산 돌구름 2012. 7. 2.
[담양기행] 가사문학의 산실, 담양 송강정(松江亭)...

 

탐방일 : 2012년 7월 1일

소재지 : 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송강정 소개

  1972년1월29일 전남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환벽당, 식영정과 함께 정송강유적이라고 불린다.

  서인 정철은 선조17년(1584년) 대사헌이 되었으나,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음해에 대사헌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이곳 창평(昌平)으로 돌아와 4년 동안 조용히 은거생활을 했다.

  여기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는데 당시에는 이 초막을 죽록정(竹綠亭)이라 불렀다 한다.

  지금의 정자는 1770년에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그때 이름을 송강정이라 하였다.

  정철은 이곳에 머물면서 식영정(息影亭)을 왕래하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많은 시가와 가사(歌辭)를 지었다.

 「송강별집」권7〈기옹소록〉에 따르면, <사미인곡>을 제작한 연대는 창평으로 돌아온 해인 1585년으로부터 2∼3년 뒤가 된다.

  <사미인곡>은 제명 그대로 연군지정을 읊은 노래이다.  임금을 사모하는 심경을 남편과 이별하고 사는 부인의 심사에 비겨 자신의

  충정을 고백한 내용으로 아름다운 가사문학의 정취가 배어나는 글이다.

  이 시기에 정철은 실의에 빠져 세상을 비관하고 음주와 영탄으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정철의 은거와 관련된 송강정은 동남향으로 앉아 있으며,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단층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중재실(中齋室)이 있는 구조로, 전면과 양쪽이 마루이고 가운데 칸에 방을 배치하였다. 정각 바로 옆에는 1955년에 건립한 <사미인곡>

  시비가 있으며, 현재의 건물 역시 그때 중수한 것이다.

  정자의 정면에 ‘송강정(松江亭)’이라고 새겨진 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죽록정(竹綠亭)’이라는 편액이 있다. 둘레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고 앞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으여, 멀리 무등산이 바라보인다.

  정자 앞으로 흐르는 증암천(甑岩川)은 송강(松江) 또는 죽록천이라고도 한다.

  정철은 4년간의 은거생활을 한 뒤 다시 중앙 정계로 진출하여 서인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았으며, 58세로 강화도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우의정 등 높은 관직과 유배생활을 반복하는 험난한 인생을 살아갔다.

  반대세력을 철저히 추방하는 매서운 세도가의 모습과 자연을 벗삼아 노래하던 풍류가의 삶을 오갔던 그의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