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기행] 아홉마리 용의 전설, 치악산 구룡사(龜龍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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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기행] 아홉마리 용의 전설, 치악산 구룡사(龜龍寺)..

by 정산 돌구름 2007. 1. 8.
아홉마리 용의 전설, 치악산 구룡사(龜龍寺)..

 

탐방일 : 2007년 1월 7일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구룡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8년(668) 의상(義湘)대사가 세운 절로, 창건 당시의 절 이름은 구룡사(九龍寺)이다.  이름에 얽힌 9마리용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며, 창건 이후 계속하여 도선(道詵) ·자초(自超) ·휴정(休靜) 등이 거쳐 가면서 영서(嶺西) 수찰(首刹)로서의 구실을 다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절 입구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 때문에 절이름도 ‘아홉 九’자를 ‘거북 龜’자로 고쳐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절 입구의 ‘황장금표(黃腸禁標)’는 조선시대 이 일대에서의 무단벌목(無斷伐木)을 금한다는 방으로, 전국에서 유일한 역사적 자료이다.

  현존 당우는 대웅전·보광루(普光樓)·삼성각(三聖閣)·심검당(尋劍堂)·설선당(說禪堂) 등이 있는데, 수차례 대웅전을 중수하였음에도

  그 안에 있는 닫집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정면 3간, 측면 2간의 평면으로 구성되었으며 어간을 통해 상부로 진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좌우 협간에는 사천왕의 상을 2구씩 나누어 봉안했다. 초석은 원형초석을 사용했으며 기둥은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다.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다하나 흘림은 그다지 크지않다. 공포는 다포식의 공포를 꾸몄는데 상하층의 모두 외2출목, 내3출목을 하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로 구성했고, 지붕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구룡사는 치악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높은 석축을 쌓아 대지를 조성하고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사찰의 영역을 구분할 수 있는데 상부에는 불전을 위주로 사찰의 주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하부에는 참배객들이 쉴 수 있는 부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하부 공간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사천왕문이 건립되어 있다.

구룡사 사천왕문은 중층으로 건립되었으며 그 규모가 매우 크게 만들어져 있다...

 

사천왕은 원래 한 국가의 왕들로 포악하고 호전적인 이들이었으나 부처님의 교화로 불교에 귀의한 자들이다.

이들은 이후 수미산 하단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게 되었는데 동쪽은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은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은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은 다문천왕(多聞天王:毘沙門天王)이 각각 지키고 있다...

 

사천왕은 각각 독특한 물건을 들고 있는데 지국천왕은 비파(琵琶),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龍), 증장천왕은 검(劍),

다문천왕(多聞天王)은 탑(塔)을 들고 있다..

 

미륵불상(彌勒佛像)..

천왕문이 위치한 구룡사 하단의 공간에는 여러 성보가 건립되어 있는데 사천왕문 왼쪽 편에 미륵불이 모셔져 있다..

 

미륵불은 연화대좌위에 모셔져 있는데, 하대석은 매우 크게 만들어져 있으며 외부에는 복련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중대석은 방형의 평면형을 갖고 있는데 네면에는 각각 사천왕의 모습을 조각했다.

상대석은 두 단으로 구성했는데 하부는 복련의 모습을, 상부는 앙련의 모습을 조각했으며, 대좌 상부에는 미륵불이 봉안되었다.

입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미륵불의 복식은 통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옷주름은 흘러내릴 듯이 세세하게 조각되었다.

상호는 원만한 모습을 하고 있고 머리에 육계와 나발이 세세하게 표현되었다..

 

보광공덕탑(普光功德塔)..

구룡사에는 두개의 삼층석탑이 건립되어 있는데 사찰의 중앙 마당에 한 기의 삼층석탑이 건립되어 있고,

중심영역 바깥에 또 하나의 삼층석탑이 건립되어 있다.

주불전이 위치한 영역에 오르기 이전에 천왕문이 건립되어 있으며 천왕문 오른쪽에 삼층석탑이 건립되어 있다.

삼층석탑의 주위에는 석난간이 둘러쳐져 있는데 이 석난간 중 하나에 보광공덕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형적인 신라계 석탑의 모습을 본 따 만든 현대 석탑이다.

석탑은 두 단의 기단을 갖고 있으며 최하단에는 2단의 지대석을 두었는데 최하단의 지대석은 매우 넓게 만들어져있다.

각층을 구성하는 탑신은 네 모서리에 기둥의 모습을 양각으로 표현했으며 따로 조각을 하지는 않았다.

옥개석은 5단의 층급을 표현했으며 모서리를 곡선지게 들어올려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하층에서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탑신의 높이를 현저하게 줄여 체감이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층 옥개석 상부에는 노반을 두고 하나의 연봉 모양을 닮은 석재를 얹어 매우 단순하게 만들었다..

 

보광루(普光樓)..

2004년1월17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5호로 지정되었으며, 이 누각은 보광루(普光樓)라는 현판을 달았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평면을 하고 있고 중층의 모습으로, 막돌초석 상부에 거대한 기둥을 얹었으며, 공포는 익공식의 공포로 구성했다.

공포는 이익공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처마는 부연을 달지 않은 홑처마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상층 내부는 우물마루로 바닥을 만들었고, 천장은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혼용해 사용했다.

상층의 내부는 대웅전 전면 마당을 통해 진입할 수 있게 만들어졌고, 마당과 루 사이에 창호는 달지 않았다...

 

구룡사는 치악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높은 석축을 쌓아 대지를 조성하고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사찰의 영역을 구분할 수 있는데 상부에는 불전을 위주로 사찰의 주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하부에는 천왕문을 비롯해 참배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상부의 영역과 하부의 영역은 높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영역을 서로 연결해주는 건물로 사찰의 누각이 건립되어 있다. 

구룡사의 경우 사찰의 주영역에 진입하기 위해 보광루의 하부를 지나게 만들어져 루하진입이라는 방식으로 사찰을 구성하였다..

 

대웅전(大雄殿)..

구룡사의 주불전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었으나 2003년 화재가 발생해 전소되었다.

현재의 대웅전은 화재 후 이전 모습 그대로 복원한 건물이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평면형을 하고 있는데 정면 어간을 협간에 비해 크게 간살이 했다.

높은 기단을 쌓아 대웅전의 높이를 높였는데 기단은 막돌을 이용해 바른층으로 쌓아 정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계단은 대웅전 정면에 배치하지 않아 대웅전의 좌우측 전면에 만들어져 있는 계단을 통해 진입하도록 했다.

초석도 기단과 마찬가지로 막돌을 사용했다. 초석 상부의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했으며 민흘림을 갖게 만들어졌다.

민흘림기둥은 기둥의 하부 직경이 상부의 직경 보다 크게 만들어진 기둥이며, 기둥의 전면에는 주련을 달았다.

공포는 다포식의 공포로 외2출목, 내3출목으로 구성했는데 조선시대 전형적인 다포의 결구 방법을 따랐다.

서까래 끝에는 부연을 덧달아 겹처마로 구성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대웅전의 정면은 창호를 달아 개방했으며 좌우 측면에는 출입이 가능하도록 하나의 문을 달았다.

정면 창호는 양 협간에 정자살을 갖는 창호를, 어간에 빗살의 창호를 달아 어간에만 다른 무늬의 창살을 달아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대웅전 바닥은 우물마루로 구성했고, 천장은 우물천장과 빗천장을 혼용해 꾸몄다..

 

대웅전은 1고주 5량의 구조로 건립되었는데 고주 전면에 불단을 만들어 검은 옻칠로 마감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불단 상부에는 삼세불(三世佛)을 봉안하여, 가운데에는 현재불의 상징인 석가모니불을 모셨고, 우측에는 과거불인 약사여래불,

좌측에는 미래불인 아미타불을 모셨으며, 불상 뒤편으로는 커다란 탱화를 걸었는데 삼세불의 모습을 중심으로 묘사한 탱화이다.

불단 상부에는 닫집이 만들어져있는데, 보궁형의 닫집으로 매우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웅전 내부 좌측 벽면에는 영단을 만들었는데 이 위에 감로탱화를 걸어놓았다. 감로탱화는 크게 상, 중, 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에는 칠불의 모습이 그려졌고 중앙에는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하단에는 여러 지옥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화기에 의하면 이 탱화는 2004년에 그려졌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 우측 벽면에는 신중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신중단 상부에는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중앙에는 제석을 배치했고 좌우로 무인과 문인의 모습을 한 신중들을 빼곡히 그려 넣었다. 이 신중탱화도 2004년에 제작한 것이다..

 

범종각(梵鐘閣)..

평면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장방형 평면으로 중층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대웅전 전면 마당을 통해서만 진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축대 상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대지가 경사져 조성되었기 때문에 건물의 초석 역시 위치에 따라 그 높이를 달리하고 있다.

초석은 방주형으로 일정한 높이를 만든 후, 이 위에 원형기둥을 이용했는데 흘림을 두지는 않았다.

공포는 익공식의 공포를 만들었는데 이익공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주간의 경우는 화반을 두어 상부 도리의 처짐을 지지하고 있다.

어간에 “梵鐘閣”이라는 현판을 달았고 협간 상부에도 “佛音閣”이라는 현판을 달았는데, 기존에는 불음각 현판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바닥은 우물마루로 구성했고 높이를 대웅전 마당과 같게 만들었으며 추락 방지를 위해 계자난간을 달았다.

내부 중앙에는 범종을 매달았고 왼쪽 협간에는 법고를 두었으며 오른쪽 협간에는 운판과 목어를 걸어 놓았다..

 

삼층석탑(三層石塔)..

대웅전 전면 마당 오른쪽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전형적인 신라계 석탑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만든 석탑이다.

탑의 하단에는 2단의 기단을 두고 기단 상부에 3단의 탑신과 옥개석을 얹었다.

최상층의 옥개석 상부에는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연, 용차, 보주 등 상륜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부재를 모두 사용해 화려하게

만들었으며, 석탑의 주위에는 석난간을 둘러 외부와 구분하고 있다...

 

상층의 기단에는 기둥의 모습을 양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각층의 탑신에는 네 모서리에 기둥의 모습을 표현했다.

특히, 1층 탑신에는 네면의 모서리에 사천왕의 모습을 양각으로 표현한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옥개석의 경우 5단의 층급을 표현했다...

 

천불전(千佛殿)

정면과 측면 각 3간의 평면을 하고 있는데 어간과 협간의 크기를 같게 설정했다.

대웅전 왼편의 높게 쌓은 축대 상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막돌을 바른층으로 정연하게 쌓은 모습이다.

축대 전면 중앙에는 상부로 오르는 계단을 놓았고, 상부에는 기단을 낮게 쌓았는데 막돌을 사용해 한 단만 쌓은 외벌대로 조성했다.

초석도 막돌을 사용하여 원기둥을 사용했으며 따로 흘림을 두지는 않았고, 기둥 전면에는 주련을 달았다.

기둥 상부에만 공포를 구성한 주심포식으로 꾸몄으며 기둥과 기둥사이에는 화반을 두어 도리가 처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공포의 출목은 외부에만 1출목으로 만들었고 내부출목은 두지 않았으며, 겹처마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지붕의 좌우 측면에는 커다란 풍판을 달아 외부로부터 벽체를 보호하고, 바닥은 우물마루, 우물천장과 연등천장을 혼용해 구성했다.. 

 

천불전 내부 중앙에는 불단을 구성하고 삼존불을 봉안했다.

중앙에는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을 모셨고 좌측에는 보현보살, 우측에는 문수보살을 모셨다.

삼존불 뒤편으로는 후불탱화를 걸었으며 불단 상부에는 닫집을 달았다. 닫집은 간이형의 닫집을 달아 소박한 모습이다.

불단을 제외한 다른 벽면에는 많은 감실을 만들고 이곳에 작은 천불을 모셨다..

 

부도군..

원통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넓은 공간에 총 7기의 부도가 세워져 있다.

6기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기는 근래에 조성한 것이다.

6기의 부도는 기본적으로 석종형의 부도 모양을 하고 있으나 그 세부의 모습은 모두 다양하다.

각 부도 사이에는 3기의 탑비가 건립되어 있는데 “洗梁堂 楚雲大師塔(건륭10년, 1735년) “沖虛堂 ??大師之塔”, “雷波堂 寶□大師 靈珠□

(숭정후삼계사, 1773년)”의 기록이 보이고 있다. 최근에 건립한 부도의 탑신에는 “僧兵長 武總大禪師之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부도 오른편에 탑비가 세워져 있으며 여기에는 무총대사와 관련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부도탑과 탑비는 모두 2005년에 세워진 것이다. 義僧將武總大禪師舍利塔碑奉安記(의승장무총대선사사리탑비봉안기)..

 

원통문(圓通門)..

매표소를 지나 한참을 올라가면 원통문이 나타나게 되는데, 원통문이라고 현판을 달았으나 다른 사찰에서 일주문이라 칭하는 건물이다.

기단은 곱게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해 한 두만 쌓아 낮게 만들었고, 초석도 다듬은 돌을 사용했는데 상부에 연꽃의 모양을 조각했다.

초석의 상부에는 거대한 기둥을 얹었는데 일반적인 목재의 기둥이 아니라 석재를 가공해 얹었다.

주기둥의 경우 구름사이로 용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 조각되었고, 공포는 다포식의 공포를 사용했는데 내외3출목으로 구성되었다.

지붕은 맞배지붕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박공면에는 거대한 풍판을 달았다...

 

구룡사의 아홉 마리 용 전설..

명산 치악산에 큰절을 세우고자 한 스님이 찾아 들었다.

지금의 구룡골에 접어들었는데 동편에는 시루봉을 쳐다보며 아늑한 협곡으로 되어있는 이곳 풍치의 아름다움은 가히 절경이었다.

그러나 명당을 골라 절을 세우려고 주변을 살펴본즉 대웅전을 앉혀야 할 자리가 꼭 연못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스님은 그 연못을 메우려고 했다. 이때 이 연못 속에서는 아홉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용들로서는  큰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살 곳을 메우다니 그런 무자비한 일을 스님이 어떻게 할 수 있소?" 하고 항의 했다.

그러나 스님은 "존엄하신 부처님을 모시려면 너희들이 사는 연못이어야 하는데 어떡하겠나?" 하고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스님과 용들은 메우겠다 못 메운다 한참 실갱이를 벌이다 용 쪽에서의 제의로 내기를 하여 이긴 쪽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용들은 먹구름을 불러일으키며 하늘로 치솟으니 갑자기 뇌성벽력과 함께 장대 같은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삽시간에 계곡이

넘쳐 스님이 서 있는 데까지 잠겨버렸다. 이와 같은 용의 재주를 미리 짐작하고 시루봉과 천지봉 사이에 배를 건너 매어 놓고 태연히

기다리고 있던 스님은 배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용 쪽에서 볼 때는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한 수 부려볼까?"  스님은 부적을 한 장 그려서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 속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연못에서 김이 무럭무럭 오르더니 연못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용들은 견딜 수 없어 하늘로 달아났는데 그 중 눈먼 용 한마리가 달아나지 못하고 근처 연못으로 옮겨 앉았다.

스님은 예정대로 그 연못을 메우고 대웅전을 지음으로써 오늘의 구룡사가 들어앉게 되었다...

 

구룡사에서 보면 동해를 향한 여덟개의 골이 된 봉우리를 볼 수 있는데 그때 여덟 마리의 용이 급히 도망치느라 골이  생긴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이 절을 아홉 마리의 용이 살던 곳이라 하여 "구룡사"라 했다 한다.

지금은 아홉구(九)대신 거북구(龜) 자를 쓰는데 이자를 바꾸게 된 연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