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기행] 재약산 표충사(表忠寺), 그리고 층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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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기행] 재약산 표충사(表忠寺), 그리고 층층폭포

by 정산 돌구름 2006. 11. 2.
재약산 표충사(表忠寺), 그리고 층층폭포...

 

탐방일 : 2006년 10월 29일

소재지 : 경북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 소개

표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

(四溟大師)의 충훈(忠勳)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는 절이다.

원래 이곳에는 원효가 창건한 죽림사(竹林寺)를 신라 흥덕왕 때 황면이 재건하여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한 절이 있었다.

표충사라는 이름은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을 당시 서원(書院)의 격(格)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편액하고 일반적으로 표충사로

불렀는데, 이 사당을 사찰에서 수호(守護)하여 왔으므로 사(祠)가 사(寺)로 바꾸어진 것이다.

원래의 표충사는 밀양시 영축산에 있던 백하암(白霞庵) 자리에 있었으며, 사명대사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나라에서 사원(祠院)을 세우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그 뒤 병자호란이 일어나 승려들이 흩어지고 폐허가 되었던 것을 1714년(숙종 40)에 밀양군수 김창석이

사명대사의 충훈을 알고 퇴폐된 것을 민망스럽게 여겨 지방유지와 승려를 불러 사우를 다시 세울 것을 의논하였다.

한편으로 관찰사 조태억에게 보고하여 조정에 계(啓)를 올려 나라에서 제수(祭需)를 내릴 것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사당을 다시 세워 사명대사와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기허당(騎虛堂)의 영정을 모셨다.

그리고 한 전각을 사당 왼쪽에 지어 사명대사가 일본에 갈 때 가지고 간 원불(願佛)을 대구 용연사에서 가져 와서 봉안하고, 동서쪽에

요사를 지어 수호하는 승려가 살 수 있도록 하였다.

그뒤 남붕이 크게 중창하고자 1738년(영조 14)에 사명대사의 행적(行蹟)을 갖추어 임금에게 올리니 임금이 교지를 내려 표충사의 잡역을

면제하고, 전답 5결(結)을 내리고 경상도 관찰사에게 중수하도록 명하였다. 이때 남붕이 총책임을 맡고, 연초·취안·최심·상현 등이 도왔다.

사우를 3칸으로 하고 단청을 하였으며, 사명대사의 영정을 중앙에 모시고 동쪽에 서산대사, 서쪽에 기허당을 각각 모셨다.

또한, 원불전·노전·예제문·의중당·자하문·명인루를 세웠다.

사당의 좌우에 선원(禪院)과 교당(敎堂)을 세웠는데, 향교와 서원의 동·서 재실(齋室)과 같은 모양으로 하였다.

1742년 동쪽 10리 되는 곳에 사명대사의 비석(密陽表忠祠松雲大師影堂碑銘幷序)을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이렇게 모든 사우를 정비하여 다시 세웠기 때문에 중흥사(重興寺)라 하였다.

그러나 향례(享禮)를 지낼 때마다 바람과 비를 만나게 되고, 산세가 옹색하고 길이 험하여 살고 있는 자나 제향에 참여하러 다니는 사람

모두 이를 병폐로 생각하여 불편함이 많았다. 이에 남붕이 옮기려고 뜻을 세웠으나 실현하지 못하다가 1838년(헌종 4) 사명대사 8세손인

천유가 예조에 보고하여 부사 심의복의 도움으로 1839년에 영정사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당시 영정사는 이미 승려가 살지 않는 폐사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사원의 배치를 옛날 체제대로 하여 영정사 관음전 자리에 사우를 신축하고 사명대사 원불을 대웅전 대들보 위에 봉안하여

예제문 3칸과 자하문 3칸, 명연루 3칸, 정문을 짓고 의중당 좌우를 동·서 재실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명부전 자리에 영당을 건립하였다.

남계료는 심검당으로, 원통료는 설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나한전 등은 그대로 두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131호인 대광전, 팔상전, 명부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2호인 만일루, 표충서원 등이 있다. 또한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垸)은 1177년(명종 7)에 제작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고려시대 향로이다.

이 밖에도 보물 제467호인 표충사 삼층석탑, 중요민속자료 제29호인 사명대사의 금란가사(錦襴袈裟)와 장삼(長衫),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인 표충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인 표충사비 등이 있다. 절 일원이 경남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표충사 대광전(表忠寺大光殿) - 1974년12월28일 경남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었다.

신라시대 창건했다고 하나 병화 및 실화로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은 다시 지은 것이다. 모양은 단층 팔작지붕에 목조와가로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외3출목(外三出目)·내4출목(內四出目)의 다포식(多包式) 건축이며, 조선시대 후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충사의 주전으로 불단 중앙에는 석가여래좌상, 좌우에 아미타여래좌상과 약사여래좌상 등 삼존불(三尊佛)을 봉안하고 있다.

전면 석계(石階) 소맷돌의 조각, 주춧돌, 용마루 중앙과 추녀마루의 장식돌이 눈길을 끈다.

대광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표충사 삼층석탑(表忠寺三層石塔)  - 1968년12월19일 보물 제467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7.7m, 지대석 1변 길이 2.53m이다.

기단은 단층이며 면석은 5매로 구성되고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1주가 있어 각면을 2구(區)로 구분하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각 1매석으로 되었으며 각 층 옥개석 합각머리에는 풍령공(風鈴孔)이 마련되었고 2층 4우에는 풍령이 달려

있다. 상륜부에는 1m 남짓한 찰주가 있고, 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수연 등이 있으나 그 중에는 후보물이 섞여 있다. 기본적으로 신라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단층기단이라는 점이 특이하며 각부 비례가 적당하여 우수작이지만 초층 옥신이 지나치게 큰 점이 흠이다..

 

 

 

 

 

 

층층폭포...

 

흑룡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