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1년 6월 9일
○ 오충정려(五忠旌閭) 소개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위치한 오충정려는 1974년 12월 26일 전남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위치는 대전면 평장리 화암마을 뒤편에 있었으나 정조24년(1800)에 불타 고종23년(1886) 지금의 자리에 다시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趙憲)의 종사관으로 참전하여 승장 영규와 함께 왜적과 싸우다 청주에서 순절한 박천붕과 그뒤 병자호란 때
선친의 뜻을 이어 싸우다 순사한 네 아들, 즉 큰아들 박원겸, 둘째아들 박인겸, 셋째아들 박례겸, 넷째아들 박의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24년(1748)에 명정되어 건립되었다.
정면3칸, 측면1칸의 정각 안에는 새로 세운 비와 원래의 비 2기가 있는데, 구비는 높이 1.37m로 1886년 건물을 다시 지으면서 세웠다.
사각형의 낮은 기단에 비신을 세우고 위에는 팔작지붕돌을 갖추었다.
앞면에 ‘밀양박씨오충기실비(密陽朴氏五忠紀實碑)’라고 해서체로 씌어 있고 뒷면에는 아무런 글씨가 없다.
원래는 뒷면에 오충정려에 대한 내용을 기록해 두었으나 1938년 일본 경찰에 의해 글자가 훼손되어 없어졌다.
일제가 물러난 뒤 새로 비를 건립하였는데, 전면에 ‘밀양박씨오충기실비(密陽朴氏五忠紀實碑)’라 새기고 뒷면과 좌우면에 5부자의
순절내용을 기록하였다. 비문은 한말 의병장이었던 송사 기우만이 지었다.
새로 세운 비는 전체 높이 1.82m로 낮은 네모 기단에 비신(높이 140cm, 너비 54.5cm, 두께 27cm)과 팔작지붕돌을 갖추었다.
○ 척서정(滌暑亭)
2005년2월26일 전남유형문화재 제270호로 지정된 조선후기에 건립된 누정으로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에 소재해 있다.
내부에 보관되어 있는 야은 이정태(李鼎泰 1595~1669)의 시(詩) 2수, 원운으로 전하는 이인(李璘, 1657~?)의 시, 1849년에 지은 이동욱
(李東勖, 1789~1849)의 기문(記文) 등으로 미루어 보아 척서정은 17세기에 건립의 유서가 마련되었고 1827년과 그후 몇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79년에 제작된 <광주읍지>에는 원래 강호정이라 했다가 후에 척서정이라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건립된 많은 정자들이 선비들의 시문학과 원림문화의 본거지로서의 역할을 하며 강변 등 경승지에 세워진 것에 반해
척서정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어 일종의 종회소 겸 교류공간으로 이용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정면 3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정으로 방은 들이지 않았다. 한 단의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원주 위에는 보아지와 단여를 십자형으로 걸치고 그 위에 대량과 납도리를 얹었다.
일반적으로 보이는 주두·소로·장혀 등은 보이지 않으며, 대량 위에 판대공을 얹고 종도리를 걸쳤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여러 곳에
기문이 걸려 있으며 마루는 우물마루이고, 지붕은 팔작지붕 홑처마이다.
미세한 변형이 가해지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옛 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충량을 비롯한 서까래 등에서 자연스러운 건축미가 돋보인다.
영천이씨 대치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길따라 트레킹 > 역사, 문화, 그리고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禪)과 차(茶), 범패(梵唄)의 근본도량 삼신산 쌍계사(雙磎寺) (0) | 2011.06.12 |
---|---|
[담양기행] 전남 유형문화재 제270호, 담양 척서정(滌暑亭).. (0) | 2011.06.09 |
[곡성기행] 전남유형문화재 제160호, 함허정(涵虛亭).. (0) | 2011.06.08 |
[곡성기행] 중요민속자료 제155호, 곡성 군지촌정사(君池村精舍).. (0) | 2011.06.08 |
[담양기행] 향토문화유산 제6호, 소산정(小山亭).. (0) | 2011.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