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기행] 아담한 산내 암자 추월산 보리암(菩提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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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기행] 아담한 산내 암자 추월산 보리암(菩提庵)

by 정산 돌구름 2011. 6. 26.
담양 추월산 보리암(菩提庵)..

○ 탐방일 : 2011년 6월 25일

○ 소재지 : 전남 담양군 용면 추월산 중턱

○ 보리암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인 보리암은 1984년2월29일 전남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었다.

  보리사라고도 불리는데, 고려 신종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창건하였다.

  정유재란으로 불탔고, 선조40년(1607년) 승려 신찬이 중수하였으며, 그후 효종1년(1650년) 스님들이 힘을 모아 재건하였다.

  법당 안에 1694년 쓰여진 <보리암 중수기>가 전해오는데, 보리암의 창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보조국사 지눌이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있을 때, 나무로 3마리의 매를 만들어 날려 보낸 뒤 매가 내려앉자 불좌복전이라 여기고,

  이 자리에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절이 바로 순천 송광사, 장성 백양사, 그리고 추월산의 보리암이라고 한다.

  그 뒤 이름있는 기도 및 수도처로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하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건물에 법당인 대웅전요사채가 있다. 법당은 규모가 큰 편으로 1980년 주지인 진공(眞空)이 신도 묘월화와 법계성 등의

  도움을 받아 2억원의 공사비로 완공하였는데, 당시 목재의 운반은 미 공군의 헬리콥터 지원을 받아서 옮겨왔다고 한다.

  이 절에는 지름 1.2m, 깊이 0.7m의 큰 솥이 있다. 순창에 살았던 기생이 사람들을 동원하여 절 아래에 있는 굴까지는 운반하였으나,

  그 앞의 절벽 때문에 더 이상 옮길 수 없어 애를 태웠는데, 이튿날 보니 불력(佛力)으로 솥이 절에 옮겨져 있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또 바위 꼭대기 가까운 절벽인데도 이 절에는 많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이 샘은 부정을 타면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파계승이 샘가에서 닭을 잡아먹은 일이 있는데 석 달 동안 물줄기가 끊어져 물이 나오지 않아 아랫동네에서 길어 와서 먹은

  일이 있었다고 전한다.

 

 

인법당(대웅전)...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부연을 단 겹처마 건물이다. 전퇴(前退)를 두고 마루를 깔았으며, 우측 한칸은 방으로 사용한다.

기둥은 원형인데 위쪽은 창방과 장혀도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공포는 기둥 위에만 쇠서를 단 초익공식이다.

벽은 벽돌로 쌓았으며, 일반법당과 달리 정면 양쪽의 좌우 2칸은 아래를 벽돌담으로 쌓은 뒤 위쪽에 작은 여닫이창문을 설치하였다....

 

1983년 완전 해체한 후 주지 성묵(聖默)스님이 지금의 법당을 신축하였다.

6층의 나지막한 시멘트계단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계단 아래에는 석등과 무쇠솥ㆍ돌연지 등이 있다...

 

인법당의 목조아미타삼존상(木造阿彌陀三尊像)...

아미타불좌상과 좌우에 관음보살입상,대세지보살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불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데 상호가 원만하며 정적감을 주고 있다.

나발의 머리에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적당히 솟아 있으며, 법의는 양어깨에 걸친 통견의 형식이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며 가슴에는 승각기가 표현되었고, 수인은 하품중생인을 하고 있는데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좌우에 시립해 있는 두 보살입상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상호는 길쭉한 편이다.

관음보살도 아미타불과 같이 하품중생인의 수인을 하였는데,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내리고 있다.

대세지보살도 관음보살과 같으나 손의 방향이 반대로, 왼손을 들고 오른손을 내렸다.

현재 이 두 보살의 손에 아무런 지물이 없으나 원래는 연꽃가지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살상도 여래상과 같이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인법당 삼존불 뒤의 후불탱...

좌로부터 독성탱, 산신탱, 중앙의 석가모니후불탱, 칠성탱이 보인다.

독성탱(獨聖幀)..

깊은 산속 폭포를 배경으로 바위에 걸터앉은 나반존자(那畔尊者)를 그렸으며, 곁에는 제자인 듯한 젊은 스님이 찻잔을 받치고 있다.

배경이 되는 산수와 바위 등은 유화적인 기법으로 그린 듯하다. 나반존자는 구부린 오른쪽 무릎 위에 팔을 얹고 손에 염주를 든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데, 소매를 걷어 팔을 반쯤 드러낸 모습과 맨발 등에서 자유롭게 선정에 든 도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비해 스님은 머리를 스승 쪽으로 약간 숙인 채 매우 공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스승과 제자의 대조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산신탱(山神幀)...

깊은 계곡 노송 아래에서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을 묘사했다.

산신은 탐스럽게 긴 흰수염을 휘날리며 부채를 들고 있고, 그 곁에는 동자가 표주박이 달린 나뭇가지를 들고 있다.

호랑이는 용맹스럽거나 무서운 모습이 아니라 앞 발바닥을 혀로 핥고 있는 듯 무엇을 먹고 있는 듯 표현하고 있어 매우 해학적이다..

석가모니후불탱(釋迦牟尼後佛幀)...

구품인 가운데 하품중생인의 수인을 취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하여 상하 2단으로 6대 보살과 10대 제자, 사천왕이 배치된 구도이다.

석가모니불 좌측에 문수, 관음, 금강장보살, 우측에 보현, 지장, 제장애보살이 자리잡고 있으며, 상단에 좌우 각각 5위씩 배치되었다.

사천왕은 바깥쪽으로 각각 2위씩 배치되었으나, 현재는 벽면에 맞추기 위해 탱화를 접은 상태라서 부분적으로만 보인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후불탱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아미타불의 수인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후불탱은 신중탱과 같이 1971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칠성탱(七星幀)...

대좌 위 연화좌에 앉아 있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중심으로 하단과 좌우에 칠원성군(七元星君)이 배치된 형식이다.

치성광여래는 결가부좌로 앉아 왼손에 법륜을 들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연화좌대의 상부를 연밥으로 표현한 점이다.

그리고 치성광여래 두광 좌우에는 칠성을 상징하는 별을 7개 그렸다. 전체적인 표현을 보면 허공에서 구름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이다..

 

보리암 바로 아래는 선조김덕령장군의 부인 흥양이씨의 순절처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흥양이씨는 왜적에게 쫓기자 이곳 절벽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1840년(헌종 6) 담양부사 조철영이 흥양이씨의 순절을 기리는 비문을 바위에 새겨놓았다.

지금도 이 암벽에는 ‘김충장공 덕령부인흥양이씨만력정유매담양추월산왜적순절처

(金忠壯公德齡夫人興陽李氏萬曆丁酉罵潭陽秋月山倭賊殉節處)’라는 명문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