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0년 2월 20일(토)
○ 탐방지 : 통영 미륵산 미래사, 용화사, 관음암
○ 탐방지 소개
< 미래사(彌來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이다. 1951년 효봉(曉峰)스님의 상좌였던 구산이 석두, 효봉 두 승려의 안거를 위해 2∼3칸의
토굴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1954년에 법당을 낙성하였다. 1975년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1977년6월 토굴 중수의 불사가 이루어졌으며,
1983년 대웅전을 중건하고 1884년 7월에는 미래사 도심포교당 불일회관 여여원을 건립하였다.
1984년 삼성각을 해체하여 도솔영당 재건, 1985년 대웅전과 도솔영당 단청, 1988년 요사채 설매당 창건이 이루어졌다.
1990년에는 부처의 진신치아사를 봉안한 삼층석탑을 건립하였고, 같은 해 10월 석두의 부도를 건립하였다. 1993년 6월 21일 범종루를
창건하였으며, 30여 년 동안 중창을 계속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십자팔작누각의 범종각이 있고, 삼층석탑에는 티베트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
절 입구에는 석두·효봉의 부도탑과 사리탑비가 있고, 그 아래쪽에 효봉이 만년에 머문 토굴이 있다.
미래에 오실 미륵불이 3회(會)에 걸쳐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을 가진 이 문은 다른 사찰의 사천왕문에 해당하는 삼회도인문...
대웅전과 3층석탑인 적광탑...
대웅전에는 석가모니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석가모니본존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미륵보살이 협시보살로 봉안되었다..
적광탑에는 티베트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보기드믄 십자팔작누각인 범종각...
부처님의 젖이라는 우물인 불유정...
요사체인 설매당.... 편액글씨는 구산 수련선사의 필적이라고...
미래사 주위의 편백나무 숲은 전국 사찰 임야로써는 유일한 것으로서 70여 년 전 일본인이 심어 가꾸다가 해방이 되어 돌아가자
미래사에서 매입하여 오늘날의 큰 숲으로 가꾸어 온 것이라고 한다..
< 용화사(龍華寺) >
1983년7월20일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선덕여왕때 은점(恩霑)선사가 미륵산 중턱에 절을 짓고 정수사(淨水寺)라 하였는데 고려 원종1년(1260)에 산사태로 허물어진 것을
3년 뒤 자윤(自允), 성화(性和) 두 화상이 미륵산 제3봉 아래로 자리를 옮겨 짓고 천택사(天澤寺)라고 하였다.
인조6년(1628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28년(1752년)에 벽담(碧潭)선사가 다시 짓고 용화사라 하였다.
경내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집인 보광전(경남 유형문화재 제249호)을 비롯하여, 좌측 1칸에 효봉영각을 차려놓은 명부전
(冥府殿), 미륵불좌상을 봉안한 용화전(龍華殿), 강당(講堂)인 탐진당(探眞堂), 선실(禪室)인 적묵당(寂默堂), 문루(門樓)인 해월루(海月樓)
등 목조건물과 육모정 형태의 종루가 있다. 그 위쪽에 불사리4사자법륜탑과 효봉대종사 5층사리탑이 있다.
불사리4사자법륜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양식의 원주석탑으로 진신사리 7과가 봉안되어 있다.
산내암자로는 고려 태조 26년(943) 도솔선사가 세웠다는 도솔암, 조선 숙종 7년(1681) 청안선사가 세웠다는 관음암이 있다.
보광전.. 아미타삼존불을 모신 다포계 건물로서, 정면 기둥 위에는 어칸에 2구, 퇴칸에 1구씩의 공간포가 배치되어 있다...
종루... 8개의 기둥과 팔각의 지붕...
용화사 경내 풍경...
용화사를 창건한 효봉(曉峰)선사 석조좌상...
속성 이(李), 이름 찬형(燦亨), 호 효봉(曉峰). 일명 학눌(學訥). 평양 출생으로 할아버지에게 사서삼경을 배웠으며,
1913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귀국후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가 되어 법조계에서 일했다.
1923년 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일 수 있는가'라는 회의에 빠져 법관직을 버리고,
3년 동안 전국을 방랑한 뒤 1925년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출가했다.
출가 후 고승을 찾아 전국을 순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27년 금강산으로 돌아왔다.
이후 밤낮으로 수행을 거듭하였는데, 한번 앉으면 절구통처럼 움직이지 않아 '절구통 수좌(首座)'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법기암 뒤에 토굴을 짓고 들어가 수행하였으며 1931년 도를 깨닫고 1932년 유점사에서 구족계와 보살계를 받았다.
이후 전국의 적멸보궁을 찾아가 한 철씩 보내는 등 정진을 거듭하였다..
1936년에는 당대의 고승 한암(漢巖)과 만공(滿空)으로부터 도를 인가받았다.
1937년부터 10여년간 송광사 삼일암에서 후학을 지도하면서 정혜쌍수(定慧雙修)에 대한 구도관을 확립하였다.
1947년 해인사 가야총림 방장(方丈)으로 추대되었고, 1954년 통영 미륵산에 미래사(彌來寺)를 창건,
1956년 네팔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에 참가하고 돌아와 조계종 종회의장에 취임하였다.
1957년 종무원장이 되었으며 1958년 종정에 추대되고, 1962년 통합종단 초대 종정에 오르는 등 우리나라 불교계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평소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제자들을 엄하게 가르쳐 문하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밀양 표충사 서래각에 머무르던 1966년10월15일 오전에 입적하였다.
다비 후 나온 사리 50과를 송광사와 표충사·용화사·미래사 등에 나누어 모셨다...
효봉선사는 특히 남의 험담을 아주 싫어하셨다고 한다.
어느 한 스님이 여쭈기를 “술마시고 여자를 가까이 하는 스님들을 가려내 엄벌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술 마시는 것이 나쁜 일이란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도 나쁜 짓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럼 남의 험담을 하고 다니는 것은 나쁜 일이냐? 좋은 일이냐?” “.........”
“남의 나쁜 짓을 보고 나쁜 줄 알았으면 너나 잘 할 것이지 어째서 남의 잘못만 캐고 다니는 것이냐? 너나 잘해라.”.....
불사리4사자법륜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양식의 원주석탑으로 진신사리 7과가 봉안되어 있다...
용화사 해월루..
해월루 앞에는 작은 섬이 떠 있는 장방형의 연못이 있다. 이 작은 연못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연못의 장타원형은 자각각타(自覺覺他), 섬은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뜻하며 대승불교에서 수행의 이상을 나타낸 것이다.
자각각타란 스스로 깨달은 뒤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것이요, 자리이타란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더불어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한다는 것.
용화사에는 일주문이 없고, 해월루 옆에 나란히 세운 두 개의 돌기둥이 일주문 역할을 한다...
용화사 부도전...
용화사의 산내암자로 조선 숙종 7년(1681년) 청안선사가 세웠다는 미륵산 관음암의 일주문격인 당래선원...
석조관음보살좌상(石造觀音菩薩坐像)이 있는 관음전...
관음암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조관음보살좌상으로 불상의 높이는 약 42㎝이다.
머리와 상반신을 다소 숙이면서 어깨를 움츠리고 결가부좌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여 가운뎃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을
구부려 첫째 손가락과 맞댄 채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여 가부좌한 발 위에 얹고 있다.
법의는 변형 통견(通絹)이며 오른쪽 어깨를 감싸는 대의는 겨드랑이로 빼내 왼쪽 어깨로 넘겨 바닥까지 늘어져 있다.
승각기(僧脚崎; 내의)는 가슴 부위에서 수평을 이루고 있다.
조성 발원문을 통해 강희 22년, 즉 1683년에 조성되었고 금어(金魚) 색난(色難)와 그 제자들이 참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10월13일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38호로 지정되었다....
석탑...
조용한 사찰...
특이한 이름의 거지전.. 천천히 수레를 굴리다는 뜻으로 지눌의 점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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