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기행] 변산 8경의 월명암과 낙조대, 그리고 직소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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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기행] 변산 8경의 월명암과 낙조대, 그리고 직소폭포...

by 정산 돌구름 2010. 2. 1.
[변산기행] 변산 8경의 월명암과 낙조대, 그리고 직소폭포...

 

탐방일 : 2010년 1월 30일(토)

탐방지 : 월명암~낙조대~선녀탕~직소폭포

 <월명암(月明菴)>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91년(신문왕 11) 고승 부설(浮雪)거사가 창건한 유서싶은 사찰이다.

  조선 선조 때의 고승 진묵(震默)이 중창하여 17년 동안 머물면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1863년(철종 14) 성암(性庵)이 중건하였다.

  1908년에 불탄 것을 1915년에 학명(鶴鳴)이 중건하였고, 1956년에는 원경(圓鏡)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국에서 몇 안되는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의 한 곳으로 대둔산 태고사(太古寺), 백암산 운문암(雲門庵)과 함께 호남지방의 3대 영지

  (靈地)로 손꼽히는 곳이며, 봉래선원(鳳萊禪院)이 있어서 근대의 고승인 행암(行庵)·용성(龍城)·고암(古庵)·해안(海眼)·소공(簫空) 등이

  수도한 참선도량으로 유명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인법당(因法堂)을 비롯하여 산신각(山神閣)·운해당(雲海堂)·수각(水閣)·요사채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쌍선봉 쪽으로 약 100m 거리에 있는 묘적암(妙寂庵)이 있다.

  이 중 운해당과 묘적암, 요사채는 최근에 주지 종흥(宗興)이 신축 또는 중수한 것이다.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없으나 묘적암 위쪽에 있는 2기의 부도(浮屠)가 주목된다.

  사찰측에서는 이부도 중 왼쪽에 있는 석종형 부도가 부설의 사리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부설전(浮雪傳)」에는 그가 죽은 뒤에 다비하여 사리를 묘적봉 남쪽 기슭에 묻었다는 기록이 있다.

  절의 앞쪽으로는 의상봉과 가인관음봉 등의 암봉들이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고, 법왕봉(法王峰)에 올라 바라보는 일몰 광경이 빼어나다.

  낙조대의 서해낙조... 변산8경의 하나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낙조가 가히 일품이라고 한다.

 

월명암 대웅전...

 

쌍선봉에서 바라본 월명암...

 

월명암에 얽힌 수많은 전설 속에서 부설전에 전해지는 전설을 살펴본다.

월명은 오빠 등운과 함께 발심하여 수도하고 있을 때 월명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린 부목이 월명에게 정을 품고 접근하였다.

월명은 그 부목의 간절한 요구를 물리쳐야 할 것인가 어떤가를 오빠 등운에게 의논하였다.

등운은 부목이 그렇게 소원하는 것이라면 한번쯤 허락해도 좋다고 했다.

월명은 부목에게 자기 몸을 주어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등운은 그 일에 대하여 누이 월명에게 소감을 물었다.

월명은 “허공에 대고 장대를 휘두르는 것 같다”고 하였다.

얼마 뒤 부목은 다시 월명에게 관계를 요구해 왔다. 월명은 다시 오빠 등운에게 의견을 물었다.

등운은 한 번 더 들어주어도 무방할 것이라 하였다.

두 번째의 소감을 물으니, 월명은 “진흙탕에서 장대를 휘젓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 뒤 부목은 다시 세 번째로 월명에게 관계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월명은 오빠 승낙을 받고 부목에게 자기 몸을 허락하였다.

세 번째로 오빠가 소감을 물으니, 월명은 “굳은 땅에 장대가 부딪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등운은 월명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운은 월명에게 “깨치지 않으면 죽는다”고 결단을 요구했다.

오빠는 동생에게 “깨치는 길은 오직 부목을 죽이는 것뿐이다”고 했다.

애욕과 견성의 두 갈래 길에서 월명은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했다.

부목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숯불이 새빨갛게 피어오를 무렵, 월명은 부목에게 숯불을 골라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월명의 부탁을 받은 부목은 무심코 허리를 굽혀 아궁이 안에 반신을 들여 밀고 숯불을 고르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 월명이 그의 몸을 힘껏 아궁이 안으로 밀어 넣고 부목이 아궁이에서 나오려고 하자 등운이 발로 차서 못 나오게 밀어 넣었다.

부목은 그만 죽고 말았다. 등운은 월명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살인자다. 살인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법이니 우리가 지옥으로 가지 않으려면 깨치는 것뿐이다.

지옥이냐, 깨치느냐의 두 길 밖에 없다.”

두사람은 그 날부터 용맹 정진하여 드디어 이레 만에 깨달았다. 한편 불의의 화를 입어 저승으로 간 부목의 영혼은 염라대왕에게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여 등운과 월명을 처벌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염라대왕은 차사를 보내어 월명과 등운을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입선 중이어서 못 잡아갔다. 등운은 부목을 죽인 전후의 사연을 자세히 써서 염라대왕에게 보내며 나를 잡으려면

모래로 밧줄을 꼬아서 해를 묶어오는 재주가 없다면 나를 잡지 못할 것이다. 라고 이르니 염라대왕은 그의 구도심에 감동하여

그를 용서하고 잡아가지 않았다. 그 후 두 남매는 성불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변산8경의 낙조대...

 

선녀들의 목욕탕이었다고 하는 선녀탕...

 

 

 

<직소폭포(直沼瀑布)>

소폭포는 변산의 명산인 옥녀봉, 선인봉, 쌍선봉등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일대는 층암절벽 기기묘묘한 봉우리와 계곡에 흐르는 백옥 같은 맑은 물, 산곡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달래와 철쭉, 온 산을 붉게

태우는 가을단풍과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설경(雪景)등 사계절의 절묘한 풍치를 한 곳에 응집시켜 놓은 듯하다.

직소폭포의 높이는 30m 이며 예리한 칼날로 잘라낸 듯 육중한 암벽단애이다. 

흰 포말을 일으키며 뇌성같은 소리를 내면서 쉴새없이 쏟아지는 물은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고 소(沼)를 만들면서 떨어지는

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대자연의 신비에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예로부터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의 선경을 보지 않고는 변산을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직소폭포와 부안 3절...

박연폭포, 황진이, 서경덕을 송도3절이라 부르듯이 직소폭포, 이매창, 유희경을 부안 3절이라고 한다.

부안이 자랑하는 조선의중기의 시인 이매창은 비록 기생이라는 천한신분의 노류장화였으나 매창의 시재는 조선500년을 통하여 황진이,

허난설헌을 오히려 능가하는 시재를 갖춘 탁월한 시인이었다고 한다.

이매창과 유희경 그리고 허균과의 로맨스는 시공을 넘어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유명한 연애담으로 통한다.

매창이 유희경을 그리워한 시로 유명한“이화우 흩날릴 제”는 매창의 시 중에서도 절창 중 절창으로 손꼽는 시이기도 하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