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필암서원, 박수량 백비, 그리고 홍길동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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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필암서원, 박수량 백비, 그리고 홍길동 생가...

by 정산 돌구름 2012. 2. 22.
[장성기행] 필암서원, 박수량 백비, 그리고 홍길동 생가..

 

 

장성에는 많은 문화재와 사적이 있지만 오늘 둘러본 필암서원, 박수량 백비, 그리고 홍길동 생가를 소개합니다.

 

< 필암서원(筆巖書院) >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서원으로 사적 제242호.

1590년(선조 23) 호남 유림들이 하서 김인후(金麟厚)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장성읍 기산리에 사우(祠宇)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24년(인조24)에 복원하였으며, 1662년(현종 3) 지방 유림들의 청액소(請額疏)에 의해 필암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어 임금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 보내 주셨다.

167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786년에는 양자징(梁子澂)을 추가 배향(配享)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시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신문(神門), 동서 협문(夾門), 전사청(典祀廳), 장서각(藏書閣), 경장각(經藏閣), 진덕재(進德齋), 숭의재(崇義齋),

청절당(淸節堂), 곽연루(廓然樓), 장판각(藏板閣), 한장사(汗掌舍), 고직사(雇直舍), 행랑, 창고, 홍살문, 계생비(繫牲碑)와 하마석(下馬石)

2개 등이 있다.

사우의 중앙에는 김인후의 위패가, 왼쪽에는 양자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전사청은 향례 때 제수를 마련해 두는 곳이다.

경장각에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판각(墨竹板刻)이 보관되어 있고, 진덕재와 숭의재는 동재,서재로 수학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청절당은 서원의 강당으로 원내의 모든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었다.

장판각에는 <하서집(河西集)> 구본 261판과 신본 311판을 비롯한 637판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으며,

장서각에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과 <하서집> 등 1,300여 권의 책과 보물 제587호인 노비보(奴婢譜) 외에 문서 69점이 소장되어 있다.

계생비는 향사에 제물로 쓸 가축을 매어 놓는 비로, 제관들이 그 주위를 돌면서 제물로 쓸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한다.

1957년 사우를 우동사라 현액 하였으며, 1975년에 사적 제242호로 지정되었다. 유물로는 벼루와 기준이 방문 기념으로 기증한 붓 등이

있으며, 재산은 전답 1만 2700평과 임야 10정보가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이 서원은 남북 자오선을 중심축으로 하여 중요 전각들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남북이 길게 장방형으로 담장을 쌓고 정면 중앙에 누문인 곽연루를 두었으며, 그 중심축선상 북쪽에 청절당을 배치하였다.

강당 뒤쪽 좌우 대칭되는 곳에 동재와 서재를, 그 북쪽 따로 쌓은 담장 중앙에 내삼문을 두고 안쪽으로 사당을 건립함으로써 전학후묘

(前學後廟)의 배치수법을 이루고 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또한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곽연루는 정면3칸, 측면3칸의 중층 팔작기와집으로,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주두,첨차,소로(접시받침),

쇠서(소의 혀 모양으로 된 장식)로 결구한 이익공식(二翼工式)을 이루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된 청절당은 중앙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청을 두고 이의 좌우에 정면 1칸, 측면 3칸의 온돌방을 하나씩 둔

것으로 보아, 본래 이 건물은 진원현(珍原縣)의 객사였던 것을 1672년에 옮겨 온 것이라는 기록을 입증하고 있다.

이 청절당은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쇠서 하나를

내어 초익공식(初翼工式)으로 꾸몄다.

가구(架構)는 오량(五樑)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걸고,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친 일반적인 가구수법을 이루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우동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전면 반 칸은 툇간(退間)으로 개방하였고 나머지는 통간(通間)으로 하였다.

이들 중요 전각 외에 진덕재, 숭의재는 단순한 민도리집양식으로 되어 있고, 목판고는 이익공식의 팔작기와집이다.

 

<주차장 옆>

 

<필암서원 전경>

 

<홍살문과 확연루>

 

<필암서원 배치도>

 

<계생비, 내삼문, 경장각>

 

<청절당>

 

<경장각, 내삼문, 계생비>

 

<장판각>

 

<우동사(祐東祠)>

 

<경장각>

 

<청절당>

 

<확연루>

 

<필암서원 집성전>

 

<필암서원 전시관>

 

 

 

 

 

 

 

 

 

<전시관인 원진각>

 

< 박수량 백비(朴守良 白碑) >

조선 중기 중종·인종·명종 때 문신 박수량(朴守良 1491~1554)의 묘 앞에 놓인 호패형 빗돌 비석으로 글이 써 있지 않은 백비(白碑)이다.

2001년 12월 13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98호로 지정되었으며,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산33-1번지에 소재해 있다.

박수량은 1546년(명종 원년) 청백리에 올랐던 인물로,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장례도 치르지 못할 만큼 빈곤하였기 때문에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이때 그의 청백한 행적을 글로

찬양한다는 것이 누가 될 수 있다 하여 글을 쓰지 않고 상징적으로 백비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당대는 물론 후세에도 귀감이 되는 청백리의 상징적 유물로서 그 의미가 깊다.

박수량은 본관 태인, 자는 군수(君遂), 시호 정혜(貞惠), 장성 출생으로 김개(金漑)의 문인.

1513년(중종 8) 진사가 되고, 151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광주향교의 훈도를 지냈다.

이듬해 부정자를 거쳐 전적, 예조좌랑, 충청도도사를 지내고, 1522년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525년 고부군수로 나갔으며, 그 뒤 헌납, 장령 등을 역임하고, 1531년 보성군수를 거쳐 사예, 군기시정 등에 임명되었다.

1534년 함경도 경차관으로 지방 관아를 순시하고 돌아왔으며, 다시 나주목사로 임명하자 삼공(三公)이 박수량은 대간이나 시종이 될

만한 인재이므로 외직이 아닌 내직에 임명할 것을 청하기도 하였다.

1536년 통정대부에 봉해지고, 의항공사의 찰리사로 파견되었다. 1537년 동부승지로 특진하고, 전위사가 되어 명나라 사신을 전송하였다.

호조참판, 공조참판 등에 이어 1539년 오위도총부부총관, 예조참판를 역임하고, 1546년(명종 1) 춘추관 동지사로서

<중종실록>,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자헌대부에 오르고 또 형조판서, 우참찬을 지냈으며, 이듬해 좌참찬에 올랐다. 그뒤 전라도 관찰사로 전직, 노모를 봉양하였다.

1552년 우참찬에 재임명, 이듬해 한성부판윤, 중추부지사에 이르렀다. 주세붕과 깊이 교유하였고 유림 사이에서 학자로 존경을 받았다.

 

 

 

 

 

 

 

< 홍길동전시관(洪吉童展示館) >

전남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산69-1번지 홍길동테마파크 내에 있는 홍길동전시관은 2004년5월3일 개관하였다.

부지면적 6,248㎡에 602.14㎡의 지하 1층(사무실), 지상1층(전시관) 건물이다. 홍길동 관련 국내외 학술자료 600여 점, 홍길동생가터에서

출토된 유물 10여 점, 생가 모형, 홍길동 캐릭터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홍길동 관련 영상물을 상영하는 영상관이 마련되어 있다.

홍길동은 소설 속 허구의 주인공이 아니라 조선 연산군(1494∼1506) 때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연산군일기>, <중종실록>,

<선조실록> 등에 도적 홍길동이 등장하며, <증보 해동이적>이라는 문헌에는 ‘조선 중엽 이전에 홍길동이 장성 아차곡에 살았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근거로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마을이 홍길동의 출생지로 추정되어 장성군이 아치실 마을 일원(230,409㎡)에

홍길동테마파크를 조성하였다. 홍길동전시관은 홍길동테마파크 내에 있는 전시관으로, 2002년 복원한 홍길동생가 옆에 자리 잡고 있다.

홍길동테마파크에는 홍길동생가터, 산채체험장, 청소년야영장, 분수광장 등도 있다.

 

 

<홍길동전시관>

 

 

 

 

<복원된 홍길동 생가>

 

 

<길 떠나는 홍길동>

 

<홍길동 생모 옥영향(玉英香)>

 

<좌측의 초가가 홍길동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