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행 3박5일(2일차)【3. 앙코르 와트(Angkor W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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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캄보디아

캄보디아 여행 3박5일(2일차)【3. 앙코르 와트(Angkor Wat)】

by 정산 돌구름 2011. 12. 4.

캄보디아 여행 3박5일(2일차)【3. 앙코르 와트(Angkor Wat)

 

 

6) 앙코르 와트(Angkor Wat)

  앙코르톰의 남쪽 약 1.5km에 있으며, 12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한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

  (婆羅門敎) 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부조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바깥벽은 동서 1,500m, 남북 1,300m의 직사각형으로 웅장한 규모이며 정면은 서쪽을 향한다.

  바깥벽 안쪽에서 육교로 너비 190m의 해자(垓字)를 건너면 3기의 탑과 함께 길다란 익랑(翼廊)이 있고 여기서 돌을 깔아

  놓은 참배로를 따라 475m쯤 가면 중앙사원에 다다른다.

  사원의 주요 건축물은 웅대한 방추형 중앙 사당탑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자형으로 뻗은 익랑, 그것을 둘러싼 3중의 회랑과

  회랑의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으로 이루어졌는데, 구성은 입체적이고 중앙은 약간 높다.

  회랑의 높이는 제1회랑(215×187m)이 4m, 제2회랑(115×100m)이 12m, 제3회랑(60×60m)이 25m이다.

  세계의 중심이며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須彌山)은 돌을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쌓아놓았다.

  높이59m의 중앙사당탑의 탑 끝에서 3중으로 둘러싼 회랑의 사각탑 끝은 선으로 연결해보면 사각추의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이 사원의 뛰어난 미술적 건축양식은 인도의 영향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건물의 형태나 석조장식 등 모든 면에서 앙코르

  왕조의 독자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전장 760m에 이르는 제1회랑벽의 부조, 제2회랑 안의 돌로 조형한 샘물, 제3회랑 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주랑과 탑

  등은 뛰어난 구조물이다.

  조형에서는 하늘의 무희 아프사라스, 여러 개의 머리를 마치 부채처럼 치켜든 커다란 뱀, 창문·기둥의 장식조각 등이 돋보인다.

  앙코르왕조는 13세기 말부터 쇠망하기 시작하여 15세기경에는 완전히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 와트도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가 이곳을 발견, 그때부터 다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지역은 1972년부터 외부인에게 폐쇄된 이후 낮이면 베트남군이, 밤에는 크메르루지 게릴라가 번갈아 장악하면서

  전화와 약탈로 훼손되어 수많은 불상이 조각난 채 나뒹굴고 대부분이 외국으로 유출되어, 완전한 복구는 어려운 상태이다.

  1982년 집계를 보면 앙코르와트의 중요 유물 30점 이상이 없어졌고,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불능의 상태로 파괴되었으며,

  사원 근처 왕궁의 유물 약 1,000점이 도난·파괴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1983년 이 유적지의 복원을 위해 조사단의 파견을 캄보디아 당국에 통보한 바 있다.

  앙코르 와트는 현재의 씨엠립에서 북쪽으로 약 5.5km 떨어져 있다.

  이전 수도에서 약간 동남쪽으로 위치해 있으며, 중심에는 바푸욘이 있다.

  이곳에는 캄보디아 주요 고대 건축물들이 다 모여 있다. 앙코르의 주요 유적지의 남쪽 끝부분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초기의 사원 설계와 건축은 12세기 초반인 수르야바르만 2세(재위 1113~1150년)에 의해 시작되었다.

  비슈누에게 봉헌하였는데, 수도에서 왕의 국사로 지어졌다.

  이 사원 건축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서 초기 이름은 알 수가 없지만, 브라비슈누록으로 알려져 있다.

  사원의 기공식은 왕의 사후에 이뤄진 것 같으며, 일부 장식들이 완성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고 있다.

  그의 사후 새로운 왕인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크메르제국이 재건되었다.

  그는 새로운 수도를 약간 북쪽인 앙코르 톰으로 이전하고, 국사도 바욘으로 각각 옮겼다.

  14세기와 15세기에 사원은 소승불교 사원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오늘 날까지 이른다.

  16세기 이후로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는 않았으며, 그렇다고 용도가 폐기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해자가 정글의 침입을 막아줘서 파괴가 최소화 되었던 것이다.

  이곳을 최초로 방문한 서양인은 포르투갈 수도사인 안토니오 다 막달레나로 1586년에 이곳을 방문하고서는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펜으로는 묘사할 수 없는 웅장하고 뛰어난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남기고, 탑과 장식기단 그리고 천재나

  그릴 수 있는 세련됨을 찬사했다.

  이 사원군들이 서양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앙리 무오의 여행기가 출판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크메르 제국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고,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앙코르와트가 완성되었다.

  1431년 크메르 제국이 타이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