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36구간(마산), 기나긴 백두대간의 막을 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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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백두대간

백두대간 제36구간(마산), 기나긴 백두대간의 막을 내리며...

by 정산 돌구름 2010. 3. 29.
백두대간 제36구간(마산), 기나긴 백두대간의 막을 내리며..

(미시령~상봉~신선봉~대간령~마산~진부령)


산행일시 : 2008. 9. 27() - 9.26.22:00 출발

기상상황 : 맑음(설악산 날씨가 2~9로 예보하였으나 생각보다는 맑고 포근한 날씨)

산행구간 : 15.6Km(미시령~3.45km~신선봉~2.85km~대간령~3.55km~마산~5.75km~진부령) - 강원 고성, 인제)

소요시간 : 7시간 10

  미시령(04:10)~샘터(04:51)~상봉(05:24~30)~화암재(06:00)~신선봉(06:10~25)~대간령(07:21)~암봉(07:45~

  08:20)~1058(08:58~09:10)~마산봉(09:32~38)~리프트철망(10:12)~군부대(10:30)~시멘트임도(10:35~50)~

  포장도로(11:14)~진부령(11:20)

주요봉우리 : 상봉(1,244m), 신선봉(1,204m), 마산봉(1,052m)

산행팀 : 30(광주아침산악회) - 60,000

교통

  문예회관(22:00)~호남~중부~영동~여주휴게소~중앙고속~홍천IC~44~내설악광장~46~56~미시령터널(03:40)

  진부령(12:50)~46~56~미시령(13:10~30)~척산온천(13:50~14:50)~속초돌섬횟집(15:10~16:40)~7~현남IC

      ~영동~중부~호남고속~정읍휴게소~문예회관(23:35)

구간소개

  이번 구간은 사실상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인 미시령~진부령구간으로써 출입금지구간이다.

  간성과 인제의 경계를 이루며 미시령과 진부령이 있으며 지금은 사람의 발걸음이 끊어 졌지만 미시령과 진부령이 개통되기전

  사람의 왕래가 빈번했던 대간령(새이령)이 있다.

  미시령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예전에 길이 있었으나 폐지하여 다니지 않다가 성종24년에 다시 길을 열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오며, 당시 기록에는 미시파령(彌矢坡領)으로 쓰고 있는데 가파르고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미시파령은 조선후기부터 미시령이라 부르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방 후 이승만대통령이 직접 쓴 미시령 표지석 비문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6.25 때 폐쇄하였던 도로가 1989년 재개통 되었

  는데 현재는 미시령 아래 4차선 터널이 개통되어 차량의 출입이 드물어 또 다시 역사속으로 묻혀가는 고개가 되어가고 있다.

  대간령인 새이령은신증동국여지승람등 문헌에는소파령또는석파령이란 이름으로 기록되고 일제시대 대간령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인근 주민들은 샛령으로 부르고 공식 지명은새이령이다.

  「샛령,새이령,대간령등으로 불려지는 이 고개는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는 고개란 뜻으로 사이 간()자를 넣은

  지명을 사용 하였고, 1970년대 진부령과 미시령 고개가 포장되기전까지는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또, 새이령은 간성 사람들이 가져온 소금과 인제 사람들의 감자를 서로 물물교환 하였던 곳이었으며 지금도 집터의 흔적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곳곳에 남아있는 움막터, 마장터 방향의 샘터를 비롯한 민가터는 이승복사건 때 화전민촌 철거작업으로 모두 폐허가 되었으나

  지금도 남아 있는 두 가구는 산나물과 약초로 생계를 꾸려가며 살아가고 있다.

  진부령은 간성과 인제를 이어주는 오솔길이었으나 1632년 간성 현감이었던 택당 이식이 인근 승려들을 동원해 좁은 길을

  넓혔다는 기록과 1930년대 신작로를 내면서 차가 다니기 시작하고 19872차선 포장도로가 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진부령은 또다른 이름으로 조쟁이라 부르는데 영서의 곡식과 영동의 해산물이 진부령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장이 서게되고

  그 장터를 조쟁이라 불렀다 한다.

  진부령은 6,25전쟁 전까지는 북쪽의 땅이었으며, 많은 마을사람들이 노동당원이었다.

  전쟁당시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은 북으로 넘어가거나 경찰의 눈을 피해 뿔뿔이 흩어져갔고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진부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가고 있다.

  민족의 비극이 그대로 남아 있는 향로봉 전투 전적비와 진부령의 전적비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진부령은 행정상 홀3리이며 간성읍에 속한다.

  미시령과 새이령 사이에 상봉과 신선봉이 우뚝하고 새이령과 진부령사이에 마산봉이 솟아있다.

  마산봉은 금강산의 12,000중 남한에 속한 제2봉이다

 

 

산행후기

  드디어 대간의 사실상 마지막 구간..

  진부령~향로봉 구간도 있지만 대간의 마지막을 진부령으로 꼽는다.

  계속되는 금요 무박산행도 이제는 끝이 나고 오늘은 출발시간이 늦춰져 조금은 여유가 있다.

  문예회관 후문에서 22:00에 30명이 출발하여 미시령으로 향하였다.

  여주휴게소에 잠시 휴식후 중앙고속도로에서 홍천IC를 빠져나와 44번국도를 달려 내설악광장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강풍과 함께 추운 날씨라고 예보하였으나 바람도 거의 없고 추위도 그리 심하지는 않다.

  내설악광장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시간에 맞추어 미시령 옛길로 오르는 길목에서 봉고차를 타고 정상으로 이동하였다.

  정상 조금 못 미쳐 철망이 없는 곳에서 차고 오른다.

  미시령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예전에 길이 있었으나 폐지하여 다니지 않다가 성종24년에 다시 길을 열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오며 당시 기록에는 미시파령(彌矢坡領)으로 쓰고 있는데 가파르고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미시파령은 조선후기부터 「미시령」이라 부르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방 후 이승만대통령이 직접 쓴 미시령 표지석 비문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6.25때 폐쇄하였던 도로를 1989년 재개통 되었

  는데 현재는 미시령 아래 4차선 터널이 개통되어 차량 출입이 드물어 또 다시 역사 속으로 묻혀가는 고개가 되어가고 있다..

 


04:10, 미시령 출발

둠속에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가드레일을 넘어 희미한 길로 접어든다.

달빛이 어렴풋이 남아있어래도 오르는데 큰 지장은 없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오르면 우측에서 오르는 뚜렷한 능선길과 만나는데 이 길이 미시령에서 오르는 대간길이다..

 

한참을 오르면 암릉 갈림길에서 우측길로 우회하여 오르니 메마른 샘터에 도착한다.(04:51)

예전 같으면 물이 제법 흘러내릴 터인데 가을 가뭄 탓인지 메말라 있다..

 

계속되는 오름길에 전망바위가 나타나며 좌측으로 꺾어지는데 멀리 고성군 토성면의 어느 곳인가 불빛이 보이고..

 

초생달이 바위위에 걸쳐있다.(05:04)

 

시가지의 불빛은 아련하고...

 

암봉을 우회하면 너덜길로 이어지고 빼곡한 관목사이를 지나 암릉의 1230m봉을 넘어서면 헬기장이 있다.(05:17)  

 

05:24, 상봉

헬기장을 지나 잠시 오르면 「상봉 1,241m」정상석과 돌탑이 있는 상봉에 올라선다..

 

멀리 시가지 불빛이 보이고 동녘에 여명이 붉게 물들어 온다.

 

어둠속에 잠시 사진을 찍고 내려서는데 우측으로 꺾이어 급경사 암릉 암벽구간을 로프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계속되는 위험지대인 암릉구간이 이어진다..

 

06:10, 신선봉(1,241m)

로프를 타고 내려서면 잡목지대를 지나 화암재로 내려서는데 날이 밝아오고 있다.

화암재의 원래 이름은 석파령으로 돌무더기(너덜)가 파도처럼 춤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출을 보려고 속도를 내어 달리다시피하여 고도를 높여 오르면 신선봉 갈림길에 이른다.

신선봉은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어 신선봉에 오르려면 우측길로 올라야 한다.

잡목사이로 나있는 길을 따라 오르니 너덜지대가 나타나고 너덜지대를 지나면 신선봉 정상이다..

 

통제구간이라지만 많은 인파들이 일출을 보려고 대기하고 있다.

06:15, 드디어 동해바다 위의 구름사이로 태양이 떠오른다.. 

 

찬란한 태양이 동해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우리나라에는 신선봉이 약 40개가 있으나 그 중에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신선봉은 북설악의 신선봉이라 한다..

 

미시령을 경계로 하여 상봉과 함께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에 속했으나 지금은 설악산 국립공원에 들어 있다.

 

정상은 커다란 암릉으로 금강산은 물론이고 설악산 대청봉과 동해바다를 굽어볼 수 있다.

 

일출을 감상한 후 신선봉 정상석(정상석이라야 누군가 조그만 돌탑에 한얀 페인트로 글씨를 써 놓았다.)에서 사진 한컷..

 

신선봉 바로 아래의 헬기장으로 내려서 단체로 기념 사진촬영도 하였다.

 

헬기장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다시 신선봉 갈림길로 되돌아갔다.(06:29)

 

대간길로 돌아와 진행하면 군작전물자가 검은 포장으로 쌓여있고 철조망이 쳐있다..

 

잠시 후 암봉에 이르러 대간길은 우회하여 가지만 잠시 암봉에 오르면 멀리까지 내려다보이고, 

로 위로는 신선봉의 너덜지대가 빤히 바라보인다.(06:32) 

 

가야할 능선..

 

고요한 골짜기의 풍경..

 

다시 내려와 가파르게 내려가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너덜길로 한참을 우회하여 능선에 이르면 1094m봉 능선갈림길에서

하얀 화살표 표시를 따라 우측 길로 내려간다.

드럽게 이어지는 내리막을 따라 안부에 내려섰다가 잡목사이로 완만하게 올라서면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있는 869.5봉이다.

삼각점(설악415/2007재설)이 있다. 869.5봉에서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멀리 가야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07:11)

 

07:21, 대간령(새이령)

고도를 낮추어 내리막길을 따르면 2008.3.1~2017.2.28까지 출입을 금하는「출입금지 표지판」이 세워진 대간령에

내려서는데 좌우로 내려서는 길이 뚜렷하다..

 

간령은 대동여지도에는「흘리령(屹里嶺)」이라 적혀 있으며, 해방 전까지만 해도 인제군수와 양양군수가 이곳에 있었던

서낭당에서 서낭제를 올렸는데 황소를 잡아 제를 올릴 만큼 큰 행사였다고 한다.

10여분 내려가면 샘터가 있고 마장터가 있으며 현재 두가구에 주민2명이 약초와 산나물로 생계수단을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여기부터 국립공원이 끝나는 지점이다..

 

07:45, 암봉

대간령에서 직진의 마루금을 따르면 계속되는 경사지대를 오르는데 상당히 가파르다.

20여분을 쉴새없이 오르니 지나온 능선길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암봉을 우회하여 오르면 널따란 평지가 나타나고 암봉 정상에 오른다..

 

지나온 능선이 아침햇살을 받으며 선명하게 바라보인다.

아침식사를 위하여 자리를 잡고 식사를 마치고 한참동안 사진을 찍다가 다시 출발한다.(08:20)

 

08:58, 1,058봉

봉을 지나 내려섰다가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서 완만하게 오르다가 급경사를 오르는데 가끔씩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있다.

한참동안 오름 끝에 능선분기점인 1058봉(병풍바위)에 오른다..

 

대간의 마루금은 봉우리 20m 전방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려서지만 잠시 봉우리에 오른다.

확 트인 조망에 멀리 향로봉의 주능선과 장쾌하게 바라보인다.

 

좌측으로는 설악의 주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가야할 향로봉을 향하여 한 컷하고...

 

여러갈래의 가지능선들...

 

한참 동안 휴식을 취하며 가야할 길을 가늠해 본다.

 

10여분간 조망을 마치고 돌아선다.(09:11)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대간 마루금을 따라 우측으로 꺾어 급경사로 고도를 낮추면 잠시 부드럽고 굴곡이 없는 펑퍼짐한

안부에 이르러 한참동안만한 오르막을 따라간다.

오래된 듯한 이정표「알프스스키장2km/신선봉6km/마산봉정상 해발고1,052m」가 세워진 마산봉 갈림길이다.(09:31) 

 

09:32, 마산봉(1,051.8m)

갈림길에서 대간은 좌측으로 꺾어지나 마산봉에 오르기 위해 우측길로 30m 정도를 오르니 공터에 조그만 암봉인 마산봉이다. 

나무로 된「마산봉(1,052m) 사각 표지판」이 있다.

「이곳은 과거 군 주둔 시설물 철거지로서 백두대간 보호 법률 제정 이후 최초 복원지입니다.」라 쓰여 있다..

 

마산봉 너머로 바라보이는 향로봉 줄기..

 

바로 아래 가야할 방향으로는 알프스스키장이 바라보이고..

 

삼각점(간성24/2004재설)이 있다.

 

직진하는 길이 제법 뚜렷하게 나있는데 어디로 가는 길인지 알수가 없다. 잠시 후 출발...(09:38)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알프스스키장 방향으로 고도를 낮추어 내려가면 잠시 오르막길로 바꾸면서 살짝 오르면, 

밋밋한 봉우리에 알프스산장에서 세운「백두대간 등산로」란 안내판이 있다.(09:54)

 

10:12, 알프스스키장 철망

다시 내려서면 875m 능선봉에서 우측으로 틀어진 길따라 스키장을 향해 내려가는데 리조트 건물이 바라다보인다.

이어 조금 내려서자 스키장 절개지가 나타나고 가파른 절개지를 따라가면 터진 철망을 끼어 내려가 리프트 쪽으로 진행한다.

철망 옆으로 수풀 사이의 길이 있으나 사람들의 통행이 없어 매우 우거져 있다..

 

잡초가 무성한 철망 옆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스키장을 벗어나 전나무 숲길로 접어든다.. 

 

숲길을 내려서 도로에 서면「대간령(새이령)~미시령」출입금지 표지판이 있는 리조트 건물 뒤편에 내려선다.(10:20)

 

올 겨울맞이를 위해 리모델링 중인 리조트 건물 옆을 지나 포장도로를 건너 임도에 접어든다..

 

한참을 가면 조그만 연못을 지나 건너편 학교와 같은 군부대 건물이 보인다..

 

가까이가보니 「강한 친구 향로봉대대 흘리소대」이다.(10:30) 초병도 없고 한사람도 보이질 않고 조용하다..

 

부대정문을 지나 시멘트길을 따라가다가 군부대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의 철조망을 따라 오르면 숲속으로 이어진다.

 

밋밋한 봉우리에서 철조망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좌측 능선을 따라 소나무 숲길을 내려서면 다시 시멘트도로와 만난다.(10:35)

 

10:51, 외딴집

우측으로는 능선길이 이어지는 것 같지만 군부대와 연결되고 좌측으로는 논밭들이다.

15분간 시멘트길을 따라가니 집 한채가 나타나면서 우측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집 뒤의 길로 이어져 농로를 따라 한참을 간다.

 

텅 빈 축사건물 뒤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별장과도 같은 집 한 채가 나타나는데 여러 마리의 개가 유난히도 짖어댄다.

집 뒤를 지나면 시멘트도로를 만나고(11:04) 잠시 후 우측의 숲길로 이어진다..

 

숲길을 따라가면 절개지를 내려서면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게 된다.(11:14)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백두대간 종주기념 표지석들이 세워져 있는 지점에 이른다.(11:17)

 

11:20, 진부령

다시 도로를 따라가다가 우측으로 내려서면 곰상 아래로 도로가 보이고, 길 건너로는 진부령 미술관이 있는 진부령에 이른다..

 

드디어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순간이다.

 

먼저 도착한 팀원들이 꽃송이와 백두대간 종주기를 들고 대기하고 있다.

거대한 「백두대간 진부령」표지석이 서있다. 표지석 앞에서 연거푸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진부령은 해발 520m의 칠절봉(1,172m)과 마산(1,052m) 사이 안부로써, 

예전부터 관동과 영서지방의 중요한 교통로가 되고있다..

 

남쪽의 대관령, 북쪽의 추가령과 함께 3대 영(嶺)으로 불리며 고개길이는 약 60㎞이다..

 

이곳에 나 있는 도로는 1981년 국도 46호선으로 승격되고, 1984년 10월에 2차선으로 확장 및 포장공사가 완료되었다.

고갯길 굽이굽이에서 바라다 보이는 동해의 모습이 장관이며, 이곳에 안개가 감돌아 봉우리를 덮게 되면 대자연의 장엄한

모습이 연출되며 단풍이 아름답고 겨울에는 강설량이 매우 많다..

 

 

 

 

 

 

흘리 마을에 있는 마산봉 산비탈인 진부령 남쪽 100m 지점에는 특별한 시설이 없어도 훌륭한 스키장의 조건을 갖추었다.

1971년 북설악 스키장으로 개설, 진부령 스키장으로 불리다가 1984년 겨울부터 알프스 스키장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500~1,000m 되는 슬로프와 리프트 시설 등 현대장비가 갖추어져 있다..

 

아! 백두대간...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었던가?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겪고 여기까지 온 것이 꿈만 같다. 우여곡절을 끝에 한달에 두 번씩 2년이 더 걸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번도 거르지 않고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2006년 나사모와 함께 그저 따라만 다니던 대간길을 2007.4.28 결혼기념일을 시작으로 백두대간 종주길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그 후 1년 6개월....

때로는 10시간이 넘는 기나긴 시간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난 순간들..

2006년, 성삼재에서 천왕봉에 올라 대원사로 내려서는 지리산 당일 종주를 겁없이 달려들어 14시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였고..

지리산권의 수정봉, 고남산, 봉화산을 지나 중재의 구간은 개별산행으로 마무리하였다.

덕유산권인 중재에서 본격적인 대간길을 시작하여 빛고을토요산악회와 육십령, 신풍령, 부항령을 같이 하였고,

새로이 광주아침산악회를 결성하여 부항령 이후의 구간을 함께 하였다..

 

한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추풍령이후 속리산권이 시작되고 영구 출입금지 구간인 늘재~갈령에 이르는 구간은

이른 새벽 8.15 공휴일을 맞아 뒤늦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버리기미재~이화령에 이르는 구간을 2007년에 마무리 하려 하였으나 한겨울 추운 날씨와 기상여건으로 인하여 상당한 진통을

겪어 배너미평전에서 내려섰고 다음해 다시 이어간 배너미평전~이화령 구간은 폭설로 또 한차례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화령을 지나 소백산권은 잦은 출입금지구간 때문에 본격적인 무박산행이 시작되었고,

살을 에는 듯한 영하의 추운 날씨에 많은 고생을 하며 봄을 맞이하였다..

 

꽃피는 5월이 되어 도래기재로부터 시작되는 태백산권에 접어들어 천상의 화원을 연상케 하는 함백산, 금대봉을 지나면서

아름다움에 취해 보기도 하였다.

댓재~백봉령 구간은 유난히도 인연이 없어 3차례에 걸쳐 겨우 성공하였지만 종일 비에 젖은 하루였다.

한여름의 무더위와 함께 오대산권에 접어들었고 출입금지구간 때문에 이른 새벽의 산행을 시작하였지만 목초지를 지나면서

시원스럽고 넓게 펼쳐진 대관령목장과 아름다운 풍력발전소를 볼 수가 있었다.

구룡령을 지나 설악산권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게 과태료 처분을 받았지만 그래도 단 한차례의 적발로 대간을 마무리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미시령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황철봉 너덜길을 지났고

마지막 통제구간인 대간령을 지나 진부령에 이른 감격스러운 대간의 마지막인 오늘...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12:50, 진부령 출발

마지막 팀들이 도착하였고 준비한 음식으로 파티를 하니 술기운이 얼근하다.

진부령을 떠나 다시 미시령으로 올랐다..

 

13:10~30, 미시령

지금까지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미시령을 구경하지 못하여 가는길에 미시령을 들르기로 하였다..

 

 

 

 

 

 

 

 

  

 

 가는 길목의 울산바위...

 

속초로 향하여 척산휴양촌에 있는 온천에서 목욕을 하였다.

척산휴양촌은 예부터 온천수가 자연히 솟아나던 곳으로 이 작은 못의 주변에는 겨울에도 초목이 파랗게 자랐으며,

부락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사용되어 왔다.  

 

조선시대 전설에 의하면 상처입은 암학이 치료되어 날아가고 눈 덮인 겨울에 빨간 뱀 한 쌍이 목욕을 하였으며, 이곳에서

온천을 하고, 동해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일출)을 보고 소원을 기원하면 성취된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상처를 비롯한 피부질환에 고생하는 인근 주민들이 이곳에서 큰 효험을 보자 소문을 듣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그 옛날

에도 전국 도처에서 모여들어 인근 소나무숲에 머물면서 물을 마시고 씻고 하여 쾌유의 몸으로 돌아가곤 하여 유명하여 졌다.

그리고 한 도사가 이 지형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암학이 알을 품은 형국이므로 여성이 이지역을 개발하면 성공한다 하였다.

그 도사의 말과 같이 관과 여러 큰 기업들이 개발하고자 하였으나 다 실패하고 소학 임정희여사가 온천개발에 성공하였다 한다.

 

다시 속초 돌섬횟집에서 푸짐한 뒷풀이를 하였다.

 

한시간반 동안의 긴 뒤풀이를 마치고 오후 늦게서야 속초를 출발하여 광주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