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남해 충렬사
2025년 1월 22일, 남해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충렬사에서~
금강산도 식후경, 남해대교 아래 맛집에서 생선구이로 점심식사를 하고 충렬사를 둘러본다.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관음포에서 순국한 이순신장군의 영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다.
남해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충렬사는 삭막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다.
충렬사를 끝으로 남해를 떠난다.
남해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 때 관음포에서 순국한 이순신장군의 영(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다.
당시 노량은 여수를 떠나 충무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연안수로의 요충지였다.
선조 31년(1598년) 이순신장군이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하자 처음에는 이곳에 유구(遺軀)를 안치하였다.
유구는이 곳에 가장(假葬)되었다가 이듬해인 1599년2월11일 아산으로 이장했고, 이후 가분묘(假墳墓)만 남게 되었다.
그가 죽은 지 34년째 되던 1633년(인조 11년)에 이곳 선비들이 유지(遺址)에 작은 초사(草舍)를 지어 제향을 올리고 추모하기 시작하였다.
또 1658년(효종 9년)에 초사를 헐고 비로소 사당을 건립하여 봄, 가을로 제향을 지냈다.
1663년(현종 4년)에 충무 충렬사와 함께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곳에 있는 4기의 비 가운데에는 이러한 중건사유를 자세히 기록한 비석이 있는데 비문은 송시열이 썼다.
이 사당이 세워진 그 당시에는 사당 옆에 호충암(護忠菴)이라는 암자가 있어 화방사(花芳寺) 승려 10여 명과 승장(僧將) 1명이 교대로 수직(守直)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사당을 비롯하여 비각, 내삼문, 외삼문, 재실, 강당 그리고 일각문, 부속건물, 가묘소 등이 있다.
1965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충렬사’와 ‘보천욕일(補天浴日)’ 현판을 다시 썼고, 1973년 6월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보수, 정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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