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사(鳩岩寺) 상만사지 오층석탑과 석불좌상, 천연기념물 상만리 비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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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사(鳩岩寺) 상만사지 오층석탑과 석불좌상, 천연기념물 상만리 비자나무

by 정산 돌구름 2023. 6. 18.

구암사(鳩岩寺) 상만사지 오층석탑과 석불좌상, 천연기념물 상만리 비자나무 


2023년 6월 18일, 여귀산 산행길에 찾은 구암사..

전남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675번지에 있는 구암사(鳩岩寺)는 고려시대에 번창하여 여귀산 자락에 여러 암자가 있었는데 이 절터의 절은 상만사였다고 구전되고 있으나 전하는 기록은 없다.

절 이름은 한동안 만흥사(萬興寺)였다가 지금은 구암사가 되었으며, 태고종에 등록되어 있다.

구암사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불좌상(石佛坐像)은 높이 102㎝, 광배 너비 98㎝, 광배 두께 11㎝인데 광배 일부가 파손되고 마모가 심하여 불상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는 넓고 높게 솟아있고, 상호는 눈, 입, 코 등이 양각되었으나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귀는 길게 내려뜨렸고 목에 삼도가 희미하게 음각되었다.

법의는 통견이며 양팔과 앞가슴에 음각으로 된 의문이 표시되어 있으나 지극히 형식적이다.

수인은 오른손을 앞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손바닥을 편 채 대고 있어서 아미타구품인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무릎은 형태만 갖추었을 뿐이다. 전체적인 조각기법으로 보아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상만오층석탑은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0호(1972년1월29일)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11월에 해체하여 보수하였다.

석탑의 각 부분의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백제후기나 고려초기에 지어진 탑으로 보고 있다.

1988년 해체 보수 때 사리를 넣었던 흠이 발견 된 것으로 보아 대웅전의 실내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탑은 원래  동남쪽으로 3㎞ 떨어진 탑리에 세워져 있던 것을 14~15세기 무렵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전체 높이가 3.8m이며 지대석 위에 2중 기단이 있고 그 위에 오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있다.

지대석은 판석으로 결구하고 하층기단의 갑석은 4매 판석으로 결구하였고, 하면 부연이나 상면의 괴임대 같은 기법이 없어 평평하다.

상층기단의 갑석은 1매의 판석이며, 하면에 부연이 없고 상면은 약간 경사를 주면서 2단의 각형괴임을 만들어 탑신석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1석이며, 탑신의 각면에 우주가 희미하게 조각되었다.

1층 탑신석은 전면의 상단에 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어 사리장치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옥개석은 처마가 사선을 이루고 있고 낙수면은 약간 경사져 있으며 전각의 반전을 이루고 있다.

층급받침은 1층 4단, 2층 3단, 3층 4단, 4~5층 3단으로 정형성을 잃고 있느며, 상륜부는 노반과 보주만 있다.

구암사 석불(鳩巖寺 石佛)은 구암사 입구의 자연석 위에 있는 입불로 석불 앞에 새로운 배례석을 놓았다.

상호는 불상이라기보다는 장승과 같은 해학을 풍기는 모습으로 눈은 둥글고 툭 튀어나와 왕방울 눈을 하고 있다.

코는 뭉툭하고 입은 작고 웃는 모습으로, 귀는 아주 작게 형식적으로 처리하였으며, 머리는 민머리이다.

법의는 통견으로 보이나 그 윤곽이 확실하지 않으며, 두 손은 손가락을 펴고 복부에서 일직선상을 이루고 있다.

조각기법이 치졸하여 불상이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조성 시기는 조선 말기이거나 일제강점기로 추정된다.

크기는 높이 92㎝, 너비 46㎝이며, 선돌과 같은 길쭉한 석재에 조각을 하여 조선시대 민불로 불리는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111호(1962년12월3일)로 지정된 상만리 비자나무는 수령 600년으로 추전된다. 

높이는 약 9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약 5.6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가 11.5m, 남북이 12.3m이다.

마을의 정자나무 구실을 하는데, 마을에서는 나무가 사람을 보호해 주고 있어서 나무에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남쪽의 굵은 가지가 20여 년 전에 죽어 상부를 베어내고 밑 부분을 보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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