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질마재길 따라 병바위와 전좌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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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발길 머무는 곳에

고인돌질마재길 따라 병바위와 전좌바위..

by 정산 돌구름 2022. 3. 5.

고인돌질마재길 따라 병바위와 전좌바위..


2022년 3월 4일, 고인돌질마재길 따라 병바위와 전좌바위~

고창 아산면 주진천변 병바위와 소반바위, 전좌바위가 있는 이곳은 고인돌질마재따라 100리길 2코스 복분자풍천장어길이 지난다.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호암마을에 있는 병바위는 높이가 35m에 이르며, 한자화하여 호암(壺巖)이라고 한다.

1억5천만년 전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기암괴석으로 오랜 시간동안 침식풍화되면서 생성되었다.

보는 위치에 따라 호리병, 사람머리, 북두칠성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여지도서』(흥덕)에 "관아의 서쪽 20리에 장연(長淵) 가에 있다. 병[壺] 모양으로 서 있기 때문에 호암이라고 불린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바위의 모습에서 지명이 유래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대동지지』, 『호남읍지』 등에 "호암(壺岩)은 서쪽 20리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호남지도』 에 인천(仁川)이 흐르는 흥덕과 고창의 경계부에 호암이 묘사되어 있으며 『해동지도』, 『1872년지방지도』에도 '호암'이 표기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잔치집에서 술에 취한 신선이 쓰러지면서 소반을 걷어차자 소반 위 술병이 굴러 떨어져 주진천에 거꾸로 꽂힌 것이 병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선동(仙洞) 뒤 선인봉에 사는 신선이 반암(盤岩) 뒤의 채일봉에서 잔치를 하여 몹시 취했다.

취하여 자다가 잠결에 소반을 걷어차서 술병이 거꾸로 선 것이 지금의 병바위이고, 반암에 있던 소반이 굴러 영모정 뒤 지금의 자리에 놓이니 바로 소반바위이다.

그래서 이곳에 반암, 호암의 마을 이름이 생기고 금반옥호(金盤玉壺), 혹은 선인취와(仙人醉臥)라고 하여 명당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 병바위 위에 금복개(금 술잔)가 있는 것으로 전하나 워낙 가팔라서 아무도 오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근년에 산악인 김효영이 등반하였으나 금복개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전좌바위에 있는 암굴식 누정 두암초당(斗巖草堂)은 시묘살이를 했던 조선 중기 유학자 변성온, 변성진 형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2평 남짓한 공간에 지어진 조그마한 정자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두암초당상량문」은 “용공부자 2486년 을해 3월 24일 임자 임신 진시 상량 자좌 구(龍孔夫子 2486년 乙亥 3月 24日 壬子 壬申 辰時 上樑 子坐 龜)”이다.

하서 김인후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 이황과 교류한 호암의 인품이 곡식을 되는 말이나 저울추같이 평평하여 치우치지 않았다고 하여 ‘두암’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호암 변성온과 아우 인천 변성진이 학문을 닦던 것을 기려 고을 사림들이 창건하였는데 훼손되어 5대손인 변동빈이 초당을 중건하였다.

1815년 10월 영모정에 호암의 5대손 변동빈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나 오랜 세월에 유실되었다가 1954년 현 위치에 재건립하였다.

같은 시기에 영모당 재실도 건립되었다고 한다.

또한 만정 김소희 명창이 15세 때 득음한 곳이기도 하지만 풍경이 아름다운 이곳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