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3박4일 - 1. 익산 국화축제, 서동공원, 미륵산, 미륵사지, 왕궁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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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캠핑카

전북 3박4일 - 1. 익산 국화축제, 서동공원, 미륵산, 미륵사지, 왕궁리유적

by 정산 돌구름 2021. 11. 17.

전북 3박4일 - 1. 익산 국화축제, 서동공원, 미륵산, 미륵사지, 왕궁리유적


전북으로 떠난 3박4일 캠핑여행..

○ 1일차(11월 13일) : 광주 - 익산 중앙체육공원(국화축제) - 서동공원(서동축제)

○ 2일차(11월 14일) : 서동공원 - 미륵산 산행 - 미륵사지 - 왕궁리 오층석탑 - 군산 비응공원

○ 3일차(11월 15일) : 비응공원 - 비응마파지길 - 변산해수욕장 - 부안 채석강 - 격포항 

○ 4일차(11월 16일) : 격포항 - 내장산 조각공원 - 담양 - 광주

~^^~

2021년 11월 13일, 익산 천만송이국화축제, 그 향기 속으로..

2021 익산 천만송이국화축제는 코로나19로 취소되고, 시내 곳곳 16개소에 분산 전시한다.

자연친화형 힐링정원으로 조성된 중앙체육공원에는 형형색색의 오색국화가 아름다움을 뽐낸다.

주말이라 많은 인파 속에 묻혀 잠시 머물다가 떠난다.

2021년 11월 13일, 백제의 숨결, 천년의 사랑, 2021서동축제~

백제 무왕의 도시 익산, 금마서동공원에서 열리는 2021 서동축제, 그 아름다운 밤의 유등 불빛 속에 젖어든다.

주말을 맞아 밤이지만 주차장은 차들로 가득하고, 축제장은 인파가 가득하다.

여행 첫날, 오늘밤은 여기에 머문다.

익산은 서동설화와 서동요가 살아있는 천년고도로 서동요를 통해 선화공주의 사랑을 얻고 마침내 백제 30대 무왕으로 등극한 서동의 탄생지이다.

또한, 마한의 도읍지이자 백제 말기의 수도이다.

익산서동축제는 1969년 마한민속제전으로 시작했으며, 국경을 초월한 서동과 선화공주의 세계적인 사랑과 서동요의 본고장임을 알리기 위해 2004년부터 서동축제로 진행되고 있다.

금마저수지를 끼고 있는 시원한 조각공원인 서동공원은 선화공주와 서동왕자의 조각상과 "서동요" 조각을 비롯한 98점의 조각들을 만날 볼 수 있다.

서동공원내에 있는 궁남지 연못은 신라 선화공주(善花公主)와 결혼한 무왕(武王)의 서동요(薯童謠) 전설이 깃든 곳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백제 무왕 35년(634)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 이십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한 것」 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연못은 백제 무왕 때 만든 궁의 정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신선사상(神仙思想)을 표현한 궁남자는 우리나라 정원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백제가 삼국 중에서도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한시대 마한의 역사와 생활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진 마한관이 개관되었다.

전시실은 생활, 무덤 공감으로 구분했으며 삼한시대 관련 유물 30여점 일반인으로부터 기증받은 70여점 등 11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2021년 11월 14일, 미륵사지를 감싸고 있는 익산 미륵산 산행.. 

미륵사지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아름다운 순례길 미륵산 둘레길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사자암터로 내려서 둘레길로 들어서 원점회귀하여 산행을 마무리한다.

맑고 포근한 날씨에 아직도 남아있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걷는 기분좋은 산행길이었다.

○ 산행일자 : 2021년 11월 14일 (일)

○ 기상상황 : 맑음(맑고 포근한 날씨였지만 미세먼지로 조망이 흐림 10~18℃)

○ 산행인원 : 부부

○ 산행코스 : 미륵사지주차장~아흔아홉배미~주능선~암봉~미륵산~사자암~대나무숲길~미륵사지~주차장(전북 익산)

○ 거리 및 소요시간 : 6.6km(트랭글GPS), 2시간55분 소요

주차장(09:20)~구룡마을 갈림길(09:40)~아흔아홉배미(09:50)~기암저수지 갈림길(09:55)~연수원 갈림길(10:30)~암봉(10:35)~미륵산(10:45~11:00)~

사자암(11:20~25)~사자암 입구(11:40)~미륵사지 갈림길(11:50)~화산서원(11:55)~미륵사지(12:10)~주차장(12:15)

○ 산행지 소개

익산시 금마면, 감기면, 낭산면에 걸쳐있는 미륵산(彌勒山 429.6m)은 원래 용화산이었으나 미륵사가 지어진 후부터 미륵산이라고 부른다.

또한 봉우리가 사자의 형상처럼 생겼다고 해서 사자봉이라고도 하며 마한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이곳에는 둘레 1,822m 미륵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미륵산성은 정상인 우제봉에서 동쪽으로 둘러 쌓았으며 성문에는 옹성을 설치하였다.

기름 한 말을 끓일 수 있을 정도의 큰 홈이 패인 등잔암 외에 4m 높이에 구멍이 나있는 투구바위, 안질에 좋다는 약수터, 사자암, 심곡사, 왕궁탑 등 명소와 볼거리가 많다.

이 산은 천호산의 줄기가 동서로 가로질러 이룬 산으로 북으로는 황산벌이 보이고 남으로는 멀리 호남평야를 바라보는 평지에 우뚝 솟아 있다.

미륵산에서 발원하는 도천, 부상천, 궁평천 등은 만경강의 상류를 이루며 서해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최고봉을 운제봉이라 하고 조금 낮은 앞 산봉을 장군봉이라 하는데 장군봉에는 마치 장군이 투구를 쓴 것 같은 모양으로 생긴 까닭에 투구바위라고 불린다.

2021년 11월 14일, 또하나의 국화 향연, 익산 미륵사지 국화 속으로~

익산 천만송이국화전시장인 미륵사지에서 보는 국화 풍경, 석공예 작품과 어우러져 또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2021년 11월 14일, 사적 제150호, 익산 미륵사지와 석탑~

미륵사지는 마한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는 금마면 미륵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백제 최대의 사찰지이다.

백제 무왕 2년(601년)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도 유명하다.

17세기경에 폐사된 뒤 서탑 및 당간지주 등 일부 석물만 남았으며, 사역은 경작지와 민가로 변한 것을 최근 들어 복원하였다.

국보 제11호인 동양 최대석탑인 미륵사지 서석탑과 보물 제236호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얼마전에 개장한 국립익산박물관도 볼거리가 많다.

주말을 맞아 몰려든 인파속에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떠난다.

미륵사(彌勒寺)는 익산시 금마면에 있었던 백제 무왕 당시 창건한 사찰로 삼국시대 절 가운데 백제의 절로는 최대의 규모이다.

백제무왕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獅子寺)에 행차하였을 때 용화산(龍華山) 아래 큰 못가에 이르자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나타났으므로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하였다.

왕비가 왕에게 이곳에 절을 세우기를 청하였으므로 지명법사(知命法師)의 도움으로 못을 메워 절을 창건하였다.

2013년부터 시작된 보수정비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 따르면 절을 창건한 사람이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절에는 미래불인 미륵이 3회의 설법으로 미래의 중생을 모두 제도한다는 용화삼회설(龍華三會說)에 입각하여 전(殿)과 탑과 낭무(廊廡)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미륵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 이 절터는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인 서동(薯童)과 선화공주(善化公主)와의 설화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자세하지 않으나 성덕왕 18년(719년) 9월 금마군의 미륵사탑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전한다.

이는 미륵사의 탑에 벼락이 친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태종 7년(1407년) 나라에서 여러 고을의 자복사찰(資福寺刹)을 정할 때 충북 청주의 보경사(菩慶寺), 전북 임실의 진구사(珍丘寺) 등의 여러 사찰과 함께 자복사찰로 지정된 것으로 보아 이 때까지는 사찰이 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과 보물 제236호인 미륵사지당간지주(彌勒寺址幢竿支柱)가 있으며, 절터 전체는 사적 제150호로 지정되어 있다.

2021년 11월 14일, 사적 제408호, 익산 왕궁리유적과 오층석탑~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는 왕궁리유적은 ‘왕궁리성지’라고도 불리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국보 제289호인 왕궁리 오층석탑은 본래 목탑이었던 것이 현재의 석탑으로 바뀌었다.

익산 문화재 야행에 포함되어 수많은 유등들이 설치되어 있고 역시 주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붐빈다.

밤이 아름답겠지만 왕궁리유적을 끝으로 익산을 떠나 군산으로 이동한다.

익산 왕궁리유적(王宮里 遺蹟)은 백제 후기 궁궐의 구조와 기능, 축조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용화산 남측 끝자락의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삼국사기』, 『관세음응험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대동지지』, 『전라도읍지』, 『금마지』 등에 마한 또는 백제 무왕, 보덕국 안승 또는 후백제 견훤의 왕궁이 있었다는 각기 다른 기록이 전해진다.

하지만 1989년부터 30년 넘게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백제후기 무왕(재위 600∼641) 때 조성된 궁성의 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정기간 궁으로 사용되다 백제 말~신라 초에 그 터에 탑, 부처를 모신 공간인 금당, 강당으로 구성된 사찰이 들어섰던 것으로 보인다.

궁궐을 둘러쌌던 직사각형 담장은 동서 약 230m, 남북 약 495m로 총 길이 1,454m에 달한다.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담장으로 잔존 부분의 최고 높이 1.2m, 폭 3m 내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