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가득한 천년고찰 부안 능가산 개암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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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가득한 천년고찰 부안 능가산 개암사 가는 길..

by 정산 돌구름 2020. 4. 17.

벚꽃 가득한 천년고찰 부안 능가산 개암사 가는 길..


 

2020년 4월16일, 여행 셋째날은 변산해수욕장을 출발하여 고창으로 향한다.

가는 길목에 벚꽃이 가득한 부안 개암사를 둘러본다.

천년고찰 개암사는 부터님오신날을 앞두고 연등이 화려하다.

해마다 벚꽃 축제가 열리지만 코로나로 취소된 개암사 벚꽃길,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꽃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길이다.

 

개암사(開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로 백제 무왕 35년(634년) 묘련()이 창건하였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BC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와 진()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 이르러 우금암() 밑의 굴 속에 머물면서 중수하였다.

교려 충렬왕 2년(1276년) 원감국사()는 조계산 송광사에서 이곳 원효방(우금굴)으로 와서 지금의 자리에 절을

중창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황금전(殿)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청련각(), 남쪽에 청허루(), 북쪽에 팔상전(殿), 서쪽에 응진당()과

명부전(殿)을 지었으며, 총 30여 동의 건물을 세워 『능가경()』을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하였다.

이 때문에 산의 이름을 ‘능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1414년(태종 14년) 폐허가 된 것을 선탄()이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황금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다.

그 뒤 1636년(인조 14년)계호()가, 1658년 밀영()과 혜징()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1728년(영조 4년) 법천()·찬견()이 명부전을 중건하고, 1733년 하서암(西)·석주암()·월정암()을 중건,

1737년 시왕상과 16나한상을 조성하였으며, 1783년 승담()이 중수하였다.

1913년 화은()이 선당()을 짓고, 1960년 대웅보전을 해체 복원하였다.

1993년 응향각을 복원하였고, 이듬해 일주문을 짓고 응진전을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인등전·응향각·응진전·일주문과 월성대 및 요사가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보물 제292호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대표적인 조선 중기 건물이다.

예전의 황금전이 바로 지금의 대웅보전이다.

이 절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울금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고, 이 바위에는 모두 3개의 동굴이 있다.

그 가운데 원효방이라는 굴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물이 괸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물이 없었으나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해 오면서부터 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또한, 이 바위를 중심으로 한 주류성은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 풍()을 옹립하고, 3년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로도 유명하다.

유물로는 1689년(숙종 5년)에 조성한 전북 유형문화재 제126호인 동종()과 「중건사적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