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타들어가는 장성 백양사의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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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들어가는 장성 백양사의 가을 풍경..

by 정산 돌구름 2019. 11. 13.

붉게 타들어가는 장성 백양사의 가을 풍경..


 

2019년 11월 12일, 맑은 날씨의 화요일 아침이다.

가을 단풍이 물들어가는 장성 백암산 산행길에 만난 백양사의 풍경은 환상적이다.

백양계곡의 단풍은 물론 쌍계루와 백학봉이 물에 비춰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白羊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다.

백제 무왕 33년(632년) 여환()이 창건하여 백양사라고 하였다.

고려 덕종 3년(1034년) 중연()이 중창하면서 정토사()라 개칭하였고, 충정왕 2년 각진국사()가 3창하였다.

15세기에 백암사()로 바뀌었다가 16∼19세기 중반에 다시 정토사로 고쳤다.

다시 백양사로 개액()한 것은 1574년(선조 7년) 환양()이 중건하면서부터이다.

환양이 백양사에 주석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니 백양이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일이 많아 절 이름을 백양사라

개칭하고 승려의 법명도 환양이라 하였다.

그 뒤 1786년(정조 10년) 환성()이 중건하였고 1864년(고종 1년) 도암()이 중건하였다.

1917년 송만암()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암은 45세 때부터 백양사 주지직을 맡아 30년 가까이 주석하면서 불사에 진력하는 한편, 강원()을 개설하고 중앙불교전문

학교장을 겸임하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백양사는 일제강점기 31본산 중 하나 였으며, 현재 부속 말사 26개 소를 관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殿)을 비롯하여 극락보전(殿), 명부전(殿), 칠성각(), 진영각(), 천왕문

(), 선실(), 요사채와 범종·법고·목어·운판 등의 사물()을 소장하고 있는 범종각()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인 대웅전은 1917년 송만암이 백양사를 중건할 때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 석가여래삼존불과 1979년

보각행()이 조성하여 새로 모신 10척 높이의 불상, 그 왼편에 용두관음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또한 대웅전 내 오른쪽으로 바늘귀를 꿰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 등 해학적인 모습을 한 나한상 23체가 봉안되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인 극락보전은 400여 년 전에 지은 것으로서 백양사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영,정조 대에

지은 건물인데 건평 50㎡에 세워진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1973년 단청하였으며 1976년 보수하였다.

명부전은 1896년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각 주두()마다 공포가 장식되어 있다.

전내에는 흙으로 조성한 시왕()과 목조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인 사천왕문()은 백양사 정문으로 1917년 건립되었으며 오른쪽에는 지국천왕()과

증장천왕(), 왼쪽에는 광목천왕()과 다문천왕()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대웅전 뒤편의 팔정도()를 상징한 팔층탑()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3과가 안치되어 있으며,

부도전에는 백양사에서 배출, 주석하였던 휴정()·유정()·모운()·태능()·범해() 등 18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석종() 모양의 탑과 비()가 있다.

이 중 소요대사 부도()는 백양사 재흥에 힘쓴 태능의 유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탑으로, 그 둘레에는 용이

구름을 감고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조각이 되어 있고, 좌대에는 연잎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부도는 석종형으로서 상대()·유곽()·하대() 등에 양각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었으며, 기단은 복련()으로 덮은

위에 2단의 몰딩을 두어 종신()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이 소요대사 부도는 2002년 9월에 보물 제1346호로 지정되었다.

산내암자로는 약사암()과 영천굴(), 1351년에 창건한 청류암(), 1981년에 지은 수도도량 물외암(),

천진암() 등이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부터 있어 온 운문암() 등 많은 암자들이 6·25전쟁 때 불타버렸다.

이 중 운문암은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백양사 8개 암자 중 대표암자였으며, 백양사 뒤 계곡을 끼고 3.5㎞ 위에 있다.

고려 때 각진이 창건했다는 운문암은 백양사 수도도량 중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있으며, 조선시대의 신승 진묵()의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진묵이 임진왜란 직전 이 암자에서 차를 달이는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체 대중이 차를 달이는 운문암

중을 조사()로 모시라는 현몽을 한 뒤 진묵을 조실()로 앉혔다.

어느 날 진묵은 “내가 올 때까지는 이 불상을 도금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으므로 지금도 거뭇한 그늘색을 띤 채

진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백양사 오른쪽 계곡 상부에 있는 국제기()는 천신께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서 호남일대에 재난이 있을 때에는 나라의

명을 받아 이곳에서 천제()를 올렸다.

조선시대 영조 때 호남지방에 대유행병()이 나돌아 호남 감사가 영조에게 상소를 올리자 영지를 택하여 크게 기도를

드리라고 하였으므로, 이곳 바위에다 ‘’를 음각()하여 새기고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 그 유래이다.

또 영천굴은 20평 남짓한 천연석굴로 단칸의 영천암이 있는 곳이다.

굴 속의 바위틈에서 샘이 솟아나오는데 이를 영천이라 한다.

장마 때나 가뭄 때나 항상 일정한 물이 흐르는 이 샘에는 옛날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는데, 하루는 어떤 손님이 와서

더 많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쑤셨더니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 백양십이경의 하나인 일광정()에서는 해마다 사월초파일에 불가()의 시련법식()이 거행되며, 백양사 뒤의

학바위는 고려 때부터 조선 중종 때까지 천제를 지낸 곳이라 한다. 절 일대의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있고

약 3만 그루가 밀집하고 있어 춘백양() 추내장()이란 칭호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