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각부도가 있는 완주 모악산 대원사(大院寺)..
2019년 1월 14일(월), 전북 완주 모악산 등산길에 만난 대원사..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산 997번지 모악산 동쪽 산중턱에 위치한 사찰, 대원사(大院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670년(신라 문무왕 10년) 일승(一乘)이 심정(心正)·대원(大原) 등과 함께 창건하였다.
일승 등은 고구려 보장왕(재위 642∼668) 때 백제에 귀화한 보덕(普德)의 제자들이다.
이들 모두 열반종 교리를 익힌 뒤 보덕이 머물고 있는 고대산 경복사(景福寺)가 보이는 곳에 절을 짓고 대원사(大原寺)라 하였다.
한때는 대원사(大圓寺)로 표기하였으나, 현재는 대원사(大院寺)라고 한다.
1066년(고려 문종 20년) 원명국사(圓明國師) 징엄(澄嚴 1090∼1141)이 중창하였는데, 이 때를 창건한 때로 보기도 한다.
1374년(공민왕 23)에는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중창하였고, 1415년(태종 15)년에도 중창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606년(선조 39년) 진묵(震默) 일옥(一玉)이 중창하였다.
1733년(영조 9년) 동명(東明) 천조(千照)가, 1886년(고종 23년)에는 건봉사(乾鳳寺) 승려 금곡(錦谷)이 중창하였다.
금곡은 함수산거사와 함께 대웅전과 명부전을 중건하였으며, 칠성각을 짓고 산내 암자 내원암에 있던 염불당을 옮겨왔다.
조선 말기 종교사상가로 유명했던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이 이 절에서 도를 깨우쳤다.
1950년 6.25전쟁으로 불에 탔으며, 1959년 덕운이 요사를 다시 세우며 불사를 일으켜 1960년 칠성각, 1962년 산신각을 세웠다.
1993년에는 칠성각을 헐어 요사채를 짓고 1990년 장마로 무너진 산신각을 삼성각으로 다시 세웠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나한전·응향각·삼성각·봉익루·범종각·구요사·객실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협시하는 삼존불이 있다.
불산 뒤에는 삼신후불탱화와 칠성탱화·신중탱화가 있으며, 탱화 옆에는 진묵대사 일옥의 진영이 걸려 있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887년(고종 24년) 금곡과 수산거사가 세웠다.
내부에 지장보살상과 도명존자·무독귀왕의 지장삼존상을 비롯하여 시왕·판관·녹사·사자·인왕·동자 등 지장보살 권속을 모셨다.
유물로는 2기의 오층석탑과 6기의 부도 등이 있다.
오층석탑은 대웅전 앞과 뒤에 각 1기씩 서 있다.
뒤에 있는 석탑은 높이 238cm로 고려 시대 유물이고,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은 높이 420cm로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부도는 모두 9기 있었으나 대웅전 남쪽 아래에 있던 3기는 소재가 불분명하다.
남아 있는 6기의 부도 중 가장 뛰어난 유물은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각(龍刻) 부도이다.
옥개석 가운데에 두 마리의 용이 뒤엉켜 여의주를 잡으려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맨 위에 구름을, 가운데에는 두마리의 큰 용이 서로 휘어감으면서 여의주를 빼앗으려는 모습을, 맨 밑에는 연꽃을 새겼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놓여 있는데 원래의 것이 아니다.
전체 높이 187cm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대웅전 안에 있던 목각사자상은 1606년 이 절을 중창한 일옥이 만든 것으로, 북을 올려놓는 북대이다.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되었다가 도난 되면서 지정해제 되었다.
대원사 목조삼세불좌상(木造三世佛坐像)은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15호(2008년8월1일)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석가모니불상과 아미타불상, 약사불상으로 이루어진 삼세불상으로 대웅전에 주불로 봉안되어 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약사불, 오른쪽(향좌)에는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좌고는 116~130cm에 이른다.
세 불상 모두 비교적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삼세불이란 원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세 불상을 함께 일컫는 개념으로 인도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중국에서는
불상 유입 초기부터 유행하여 이미 북위시대의 운강석굴 등에서 보이기 시작하지만 초기에는 삼세불에 명확한 부처의 이름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6세기에 이르러 노사나불, 미륵불, 아미타불로 구성된 삼세불이 나타난다.
9세기에도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다가 요대, 금대에 이르러 연등불, 석가불, 미륵불의 삼세불이, 남송대에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의 삼세불이, 원대에 석가불, 약사불, 아미타불로 구성된 삼세불이 유행하였다.
삼세불의 전통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고려 후기에는 석가불, 미륵불, 아미타불로 구성된 삼세불이 조성되었으며(금강산 삼불암
마애삼세불입상), 조선시대에 이르면 석가불, 약사불, 아미타불로 구성된 삼세불상이 크게 유행하였다.
대원사 불상은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석가불, 아미타불, 약사불로 구성된 삼세불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세 불상은 각기 수인만 다를 뿐 조각수법과 크기는 물론 상호 등이 서로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높이 130cm로서 좌우의 두 불상에 비하여 약 10여cm 가량 크지만 거의 비슷한 규모이다.
자세는 고개를 약간 숙였을 뿐 허리를 곧게 세우고 정면을 향하여 당당하게 결가부좌하였다.
얼굴은 이마부분이 각지게 표현되어 강직한 느낌을 주지만 턱 부분에 살이 많으면서도 둥글게 표현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오똑하면서도 도톰한 코와 미소를 띤 듯한 입술에 둥글면서도 군살이 두툼한 턱 등은 양감이 풍부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나발(螺髮)의 머리에는 반원형의 중간계주(中間髻珠)와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표현되었으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이러한 특징은 1635년 불갑사 대웅전 목조삼세불좌상, 1651년 신흥사 극락보전 아미타불상, 1656년 송광사 석가여래좌상, 고창
문수사 삼세불상 등 17세기 중반경의 불상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17세기 전․중반경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조각승들의 특징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상체는 어깨가 둥글면서도 다소 살이 찐 듯한 모습이다. 하체는 무릎 폭이 넓어 안정된 좌세를 취하고 있는데, 우견편단으로 입은
뒤 오른쪽 어깨에 대의 자락을 살짝 걸친 형태이며, 오른쪽의 대의 아래 옷자락을 넓게 U자형으로 왼쪽 내의 속으로 끼워 넣었다.
가슴에는 넓게 군의와 그것을 묶은 의대가 표현되었는데 군의의 윗부분이 지그재그를 이루며 수평을 이루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은 결가부좌한 무릎 위에 대어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으며 왼손은 왼쪽무릎 위에 올려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다.
안정된 모습으로 결가부좌한 무릎 위로는 길게 대의자락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양 무릎에는 가로 주름을 형성하고 중앙부분에는
대의자락이 마치 나뭇잎처럼 넓게 펴져 내렸다.
좌우에 봉안된 아미타불과 약사불은 착의법과 수인이 약간 다를 뿐 석가모니불과 거의 유사한 양식을 띄고 있다.
석가모니가 우견편단의 착의법인 반면, 약사불과 아미타불은 오른쪽 팔을 돌아 내려온 대의자락을 복부중간 부분에서 왼쪽 대의
아래로 끼워 넣은 형식의 통견식 착의법을 보여준다.
또한, 대원사는 증산교(甑山敎)의 상제(上帝)인 강일순이 이곳에서 수행을 하다가 1901년 도를 이루었다[成道]고 하여 증산교의
성지로도 추앙되고 있기도 하다.
모악산 김제 쪽에는 미륵대불을 봉안한 미륵전이 유명한 금산사가 있고, 완주 쪽의 대원사에는 속설에 부처님의 후신이라는
진묵대사가 한 때 주석했는가 하면 스스로 미륵이라고 한 강일순(姜一淳)이 도통을 한 유서 깊은 절이다.
대원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삼국시대 밀교의 풍도가 크게 떨쳤다는 개성의 천마산 총지사와 더불어 모악의 주석원
(呪錫院)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원사가 신인종(神印宗)의 본산(本山)이라는 구전, 여의주를 입에 문 강일순의 소 울음소리 같은 ‘옴’ 주문이 ‘훔치훔치
(吽哆吽哆) 태을천상원군 훔리치하도래 훔리함리 사바하’로 변용하여 호남 일대를 풍미했던 태을주문의 유래처일 것이라는 것,
또 이곳에서 수련하는 사람들 사이에 은밀히 오가는 아주 강력한 파워의 만뜨라 계시를 받는다는 영험담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절 이름이 ‘대원사(大院寺)’라 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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