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주능선(성삼재~노고단~천왕봉~중산리) 당일 종주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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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8

지리산 주능선(성삼재~노고단~천왕봉~중산리) 당일 종주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18. 11. 5.

 

지리산 주능선(성삼재~노고단~천왕봉~중산리) 당일 종주 산행..


맑고 화창한 날씨의 11월 첫째주 일요일이다.

지난 2014년 9월 이후 4년만에 지리산 당일종주를 위해 산악회를 따라 이른 새벽 집을 나서 새벽 2시30분 광주를 출발한다.

지리산휴게소에서 이른 새벽 아침식사를 하고 4시30분에 성삼재주차장에 도착하여 헤드랜턴을 켜고 어둠속에 산행을 시작한다.

어둠 속에 별빛이 총총하고 수그러져가는 조그만 그믐달이 동녁하늘을 지켜보고 있다.

노고단고개에 이르러 지리산 주능선 25.5km의 종주 산행이 시작되지만 잠을 자지 못하고 하는 산행이라 몸이 무겁다.

노루목을 지나 삼도봉 이르기 전 동녁에 해가 떠오르고 삼도봉에 오르니 맑은 날씨에 멀리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장터목대피소 도착 목표를 1시로 하였는데 시간이 늦어쟈 1시50분에 도착하였다.

장터목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제석봉으로 오르는 길은 항상 느끼지만 너무나 괴로운 오름길이다.

제석봉을 지나 정상에 오르니 3시가 되어 정상의 인파는 20여명도 채 되지 않았다.

주말 정상에서 이렇게 적은 인파는 처음으로 보는 것 같다.

대원사 방향으로 내려설까하다가 시간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중산리 방향으로 내려선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지친 몸과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한다.

중산리 주차장에 내려서니 17시40분, 14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에 산행을 마무리한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지리산 당일종주,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도전의 성공이었다.

 

○ 산행일자 : 2018년 11월 4일 (일)

○ 기상상황 : 맑음(새벽 별이 총총하고 구름 한점없이 맑고 화창한 가을 날씨 7~20℃, 정상은 2~8℃)

○ 산행인원 : 광주요산회(33명) - 회비 45,000원

○ 산행코스 : 성삼재~노고단~삼도봉~연하천~벽소령~세석~장터목~천왕봉~중산리(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산청, 함양)

○ 구간별소요시간 : 33.06km(트랭글GPS), 14시간 5분 소요

성삼재(04:35)~노고단대피소(05:10)~노고단고개(05:20~25)~돼지령(06:00)~피아골삼거리(06:07)~임걸령(06:15~20)~노루목(06:45~50)~삼도봉(07:00~10)~화개재(07:25~30)~토끼봉(07:55)~1,463m봉(08:50)~연하천 대피소(08:55~09:05)~삼각고지(09:15)~형제봉(09:40~45)~벽소령 대피소(10:15~20)~선비샘(11:07)~1,564m봉(11:30~35)~칠선봉(11:45)~영신봉(12:20)~세석대피소(12:30~40)~촛대봉(12:55)~삼신봉(13:10)~1,678m봉(13:30)~연하봉(13:40)~장터목 대피소(13:50~14:00)~점심(14:10~20)~제석봉(14:30)~통천문(14:45)~천왕봉(15:00~15)~개선문(15:30)~로타리 대피소(16:00)~망바위(16:25)~장터목갈림길(16:50)~칼바위(16:55)~공원관리사무소(17:20)~중산리 주차장(17:40)

 <성삼재~2.5km~노고단~5.5km~삼도봉~8.6km~벽소령~6.3km~세석~5.1km~천왕봉~5.4km~관리사무소~1.6km~주차장>

○ 교통상황

- 각화동 농산물시장(02:40)~광주-대구고속~지리산휴게소~지리산IC~37번~60번~861번지방도~성삼재(04:30)

- 중산리(18:30)~유평주차장(17:00~10)~59번국도~산청IC~35번고속~광주-대구고속~지리산IC~인월황토사우나&한식뷔페

            (20:15~21:30)~지리산IC~대구광주고속~각화동 농산물시장(22:15) 

○ 산행지 소개

지리산(智異山 1,915.4m)은 1967년12월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산으로 둘레가 800여 리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총면적이 약 440.4㎢로 전북에 107.7㎢, 전남에 87.9㎢, 경남에 244.7㎢ 분포하며, 계룡산의 7배, 여의도의 52배쯤 된다.

지리산은 한국 8, 5대 명산 중의 하나로써 경남 산청∙함양∙하동 3개 군과 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 5개 시군, 그리고 15개 면의 행정단위로 그 구역을 구분짓고 있다.

서쪽으로는 전남 구례군에, 북쪽으로는 전북 남원에, 동북쪽으로 경남 함양과 산청군, 동남쪽으로는 경남 하동군에 접한다.

지리산은 백두대간 남쪽 끝자락에서 훨훨 일어난 거대한 산괴로 단일산으로는 우리나라 최장 최대를 자랑하는 장엄한 넓이와 깊이를 지니고 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활처럼 굽은 25.5km 주능선은 서남서쪽에서 동북동쪽으로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제석봉(帝釋峰 1,806m), 연하봉(煙霞峰 1,730m), 촛대봉(1,703.7m), 영신봉(靈神峰 1,651.9m), 칠선봉(七仙峰1,576m), 덕평봉(德坪峰 1,521.9m), 명선봉(明善峰 1,586.3m), 토끼봉(1,533.7m), 삼도봉(1,550m), 반야봉(般若峰 1,732m), 노고단(老姑壇 1,507m) 등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중봉(中峰 1,875m), 하봉(下峰 1,781m), 싸리봉(1,640m) 등이 이어진다.

, 지리산은 110여개의 우뚝 솟은 준봉을 거느리고 그 아래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크고작은 봉우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는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과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개 하천은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룬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수없는 아름답고 검푸른 담과 소, 비폭을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또한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 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73개의 골, 혹은 99개의 골이라 할 정도의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은 예부터 봉래산( 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속의 삼신산(三神山)  하나였으며, 일명 방장산(方丈山)이라 일컬어왔다.

또한, 백두산에서 산맥이 뻗어 내렸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는데, 간혹 남해바다에 이르기 전에 잠시 멈추었다 해서 두류산(頭留山)으로 적기도 한다.

이와 달리 두류산이란 명칭에 관해서는 전체적인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고 두루뭉술하며, 또 사방으로 산들이 첩첩이 둘러쳐 있기 때문에 이를 뜻하는 우리말 ‘두루’, ‘둘러’가 한자로 표기, 전착되는 과정에서 두류(頭流)되었다는 새로운 주장도 있다.

전설에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려 할 때에 전국의 명산에 기도를 올려 자신이 갖고 있는 창업의 뜻을 물었는데 유독 지리산만이 반기를 들어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하여 반역산(反逆山), 불복산(不伏山)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또한, 지리산을 전라도로 귀속시킴은 물론 역적을 지리산록의 전라도 지방으로 귀양 보냈다고 전한다.

때때로 이 전설에 맞춰서 지리산(智異山)을 ‘지혜롭고 기이한 산’, ‘지혜와 다른 산’ 등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지리산은 또, 두류산(頭流山), 남악산(南岳山), 방호산(方壺山) 등의 이름을 갖기도 했다.

행정구역상 경남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이 경계를 이루는 해발 1,915.4m, 지리영봉의 제1봉 천왕봉은 함양 방면으로 칠선계곡을 빚어내 물줄기를 토해내며, 산청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상봉골)을 이뤄 중산리계곡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세갈래로 갈라져 진양호에서 다시 한데 모여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흐르면서 경남의 젖줄이 된다.

정상 표지석은 1.5m높이로 전면에는 <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천왕봉은 정상의 신비함과 수려함을 만천하에 자랑하기라도 하듯 뭇 인간들을 보내지를 않는다.

천하제일경이라는 ‘천왕일출(天王日出)’과 ‘석양낙조(夕陽落照)’를 빚어내는 천왕봉은 3대에 걸쳐 적선을 하지 않은 이에게는 천지개벽을 연상케 하는 일출광경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는 속설과 함께 반드시 관문을 거쳐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 등산지도를 처음 제작했던 지리산산악회는 1972년 가장 대표적인 자연경관 10곳을 들어 “지리산 10경”으로 발표하였다.

제1경으로 천왕일출(天王日出)을 꼽았으며, 제2경 노고운해(老姑雲海), 제3경 반야낙조(般若落照), 제4경 벽소명월(碧宵明月), 제5경 연하선경(烟霞仙景), 제6경 불일현폭(佛日顯瀑), 제7경 직전단풍(稷田丹楓), 제8경 세석(細石)철쭉, 제9경 칠선계곡(七仙溪谷), 제10경 섬진청류(蟾津淸流) 등이다.

지리산은 신라 5악중 남악으로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주봉으로 노고단, 반야봉 등 동서로 100여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이루어 ‘지리산 12동천’을 형성하는 등 경관이 뛰어나고,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생태계 보고이며,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다.

또한, 지리산은 산세가 수려한 명산이기도 하지만 어머니 품속처럼 푸근한 산으로 사계절 두루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 1위에 랭크되어 있다.

최근에는 블랙야크 100대 명산으로도 선정되어 더욱 인기가 있는 산이다.

~^^~ 

 

 

 

 

 

밤하늘에 별이 총총한 새벽 2시30분,광주 각화동농산물시장을 출발한 출발한 버스는 지리산 휴게소에서 새벽 아침을 먹고 성삼재로 향한다.어둠을 뚫고 구불구불 861번 지방도를 따라 4시30분 성삼재 주차장에 올라선다.

구례에 위치한 성삼재(性三峙)는 지리산 능선 서쪽 끝에 있는 고개로 높이 1,102m이다.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어둠 속에 산행 채비를 하고 헤드렌턴을 켜고 4시35분 드디어 지리산 종주 산행길이 시작된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며 도로를 따라 도착한 노고단 대피소, 이른 새벽이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다시 대피소에서 가파른 오름길을 따라 노고단 고개에 올라선다..

 

인증샷을 날리고 드디어 천왕봉까지의 25.5km 주능선 종주가 시작된다..

 

멀리 동녘 하늘에 서서히 여명이 떠오른다.. 

 

비교적 완만한 길을 따라 돼지령에 이른다. 임걸령 샘터까지는 지리산 주능선 종주 코스 중 가장 완만하고 편안한 길이다..

 

피아골 삼거리, 우측으로는 피아골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어둠속에 시원한 바람이 능선을 타고넘는 임걸령에 도착한다..

 

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3.2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320m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옛날 의적이나 도적들의 은거지였던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의적 임걸(林傑)의 본거지라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샘터에서 피아골쪽 암벽 밑에 막(幕)터가 있는데 이곳을 <황(黃)호랑이 막터>라고 부른다.

옛날에 약초를 캐는 황장사가 눈 내리는 겨울밤에 이곳에 천막을 치고 자다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6.25동란 때 빨치산들이 수없이 죽어 그 피로 골짜기가 붉게 물들었다하여 이름 붙여진 피아골로 내리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동녘 하늘을 밝히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노루목..

좌측으로는 반야봉으로 으로는 길이며, 삼도봉은 반야봉 산허리를 따라 직진한다..

 

노루목에서 바라본 동녘 하늘..

 

지나온 능선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

 

인증샷을 날려본다..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허리를 감아 일부 너덜지대를 지나고 우측의 소금자수 묘를 지나 오르면 삼도봉이 다가온다..

 

삼도봉 정상에는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를 구분 짓는 삼각뿔이 세워져 있었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낫날봉」으로 불렸다고 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에 이정표를 세우면서부터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기점이라 해 ‘삼도봉’으로 명명되고 정착된 것이다.

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 가운데 특이할 만하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다.

반야봉의 그늘에 가려 이름없고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산세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

 

삼도봉에서 바라본 반야봉..

 

‘삼도봉~불무장등~통꼭봉~촛대봉~섬진강’으로 이어지는 불무장등능선을 경계로 전남과 경남이 구분되며,

‘삼도봉~토끼봉~명선봉~삼각고지~영원령~삼정산’을 연결하는 능선을 경계로 전북과 경남이 구분된다.

전남과 전북의 경계는 ‘삼도봉~반야봉~도계삼거리~만복대~다름재’로 이어간다..

 

 

 

삼도봉에서 천왕봉은 아직도 20km가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전남 구례땅을 벋어나 주능선은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이루며 삼각봉까지 이어간다..

 

삼도봉에서 화개재 내리막길에는 탐방객 안전과 자연보호를 위해 목재데크가 정갈하게 설치되어 있는데

지난 99년 설치된 이 목재데크는 600계단이라고 하는데 폭 1.5m에 길이 240m로 543개 계단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어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가면 지리산 종주구간 안부중 가장 저지대인 화개재(1,315m)에 이른다..

 

화개재는 지리산 능선상에 있었던 장터로 경남에서 연동골(목통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좌측으로는 뱀사골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화개재에서 인증샷을 날리고 토끼봉으로 오른다..

 

화개재에서 계속 고도를 높이며 올라야하는데 주능선 중 가장 길게 오르는 오르막이다.

지루한 오름 끝에 헬기장이 있는 토끼봉에 올라선다..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거나 봉우리가 토끼모양이 아니라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토끼봉은 정상 초원에 지보초가 군생하고 있어 일명 ‘지보등’이라고도 불린다..

 

 가파른 계단을 넘어서...

 

 능선상의 1,463m봉을 지난다..

 

명선봉을 우회하여 내려선다..

 

긴 나무계단과 데크를 내려서면 한창 공사중인 연하천대피소이다..

 

본래 연하천대피소는 사설 위탁산장이었으나 지금은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영 운영체제로 바뀌었다..

 

연하천대피소는 지붕에 집광판을 설치하여 태양광 발전시스템으로 전환함으로써 기존의 석유발전 조명을

100% 태양광 발전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시설을 확장하는지 한창 공사중으로 어수선하다..

 

지리산 주능선 샘 중 수량이 가장 풍부한 연하천..

 

연하천대피소를 지나면  잠시 후 갈림길, 좌측은 음정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잠시 올라서면 삼각봉..

지금까지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이루는 도계는 삼정산 능선을 따라 좌측으로 보내고 경남으로 들어선다..

 

가야할 능선도 아름답게 바라보인다..

 

 

잠시 올라서면 형제봉 정상..

 

맑은 날씨에 조망이 뚜렷하다..

 

 

멀리 지리산 남부능선이 뚜렷하다..

 

벽소령 대피소가 바로 앞에 있고 가야할 능선과 멀리 천왕봉이 바라보인다..

 

멀리 하동 너머로 광양 백운산 능선도 바라보인다..

 

잠시 내려서면 형제바위..

 

지나온 형제봉.. 

 

맑은 날씨에 능선 파노라마, 우측으로 오리정골은 빗점골로 합류되어 의신을 지나 화개천으로 스며든다..

 

벽소령이 다가오고..

 

바위 협곡을 넘어 내려서면..

 

음정마을 갈림길이 있는 벽소령에 이른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5km에 달하는 지리산 주능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고도가 낮은 고개이다..

 

벽소령은 예로부터 화개골과 마천골을 연결하는 산령으로 유명하거니와 화개에서 마천까지 38km의 남북을 연결하는

횡단 군사도로가 있었다..

벽소령에서 우측은 덕평골을 지나 빗점골로 이어져 의신으로 내려서고, 좌측은 광대골을 지나 음정에 이른다..

 

지리산 10경 중 제4경, 벽소명월(碧宵明月)..

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하여 예로부터 이곳을 벽소령(碧宵嶺)이라

하였다고 한다..

 

벽소령대피소는 약 25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지금은 휴대전화가 보편화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전화가 설치되지 않아

비상시에는 무전기로 지리산국립공원동부관리소와 연락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전면 수리중으로 영업을 중단하고 있다..

 

예전의 군사도로는 돌길로 깨끗하게 단장하였다.. 

 

군사도로가 끝나고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다시 부드러운 능선을 지나 덕평봉을 우회하여 넘어서면 선비샘에 이른다..

 

널따란 공간의 이곳 샘터가 지금은 서서 물을 받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물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수량은 비록 적으나 마르는 일이 없고 그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쉬어가기에 적합하다.

그 샘터 위에는 초라한 고분이 하나가 있었다 하는데 이 무덤과 샘에 얽힌 한 화전민의 서글픈 사연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옛날 덕평골 아랫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화전민 자손으로서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가난에 쪼달려 평생을 살아야 하는 박복한 사람이었다.

러다보니 배우지 못해 무식한 데다 얼굴마저 못 생겨서 그 인품이 몹시 초라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노인은 평생에 한번이라도 사람들에게 선비 대접을 받아 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늙어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죽거든 그 시체를 상덕평 샘터위에 묻어 달라고 아들 형제에게 유언을 했다.

성스런 아들들은 훗날 그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위에 매장했다.

그로부터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이곳을 지날 때 꼭 샘터에서 물을 마시게 되고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게 되어 노인은 생전에 그리고 한이 되었던 선비 대접을 무덤 속에서 받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리라.

후일 이 동네사람들이 노인의 불우했던 생전을 위로해 주기 위하여 이 샘을 선비샘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러나 지금은 무덤도 없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하였기 때문에 이 씁쓸한 전설은 잊혀진 얘기로 되고 있다..

 

졸졸 흐르는 샘물을 받아 한모금 하고 길을 이어간다..

 

잠시 후 전망데크를 만나게 된다..

 

바로 뒤의 덕평봉..

 

잠시 가파르게 올라선 1,564봉..

 

이곳은 지리산 주능선을 따라 천왕봉이 조망되는 망바위이다..

 

 

멀리 천왕봉에서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가야할 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 파노라마..

 

해발 1,576m의 칠선봉(七仙峰)..

 

선비샘을 지나 남쪽으로 대성골과 북쪽으로 한신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위치한 7개의 암봉이 높은 능선위에 자리잡고

있어 마치 일곱선녀가 한자리에 모여서 노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선봉을 넘어서면 건너편으로 우람한 암봉이 다가온다..

 

긴 계단이 있는 능선봉을 지나 뒤돌아보면 지나온 능선, 멀리 반야봉..

 

낙남정맥의 시작점 영신봉(靈神峰)..

영신봉의 이름은 영신사(靈神寺)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신사(靈神寺)는 지리산에 있다. 절 뒤 봉우리에 깎은 듯한 돌이 섰고, 그 꼭대기에 작은 돌이 평상처럼

놓여 있는데 좌고대(坐高臺)라 부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1472년 지리산을 유람한 김종직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영신봉과 좌고대를 바라보니 여전히 멀리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세석대피소와 세석평전 뒤로 촛대봉이 바라보인다..

 

잔돌평전이라 하는 세석(細石)은 화개 땅의 영신봉과 산청 땅의 촛대봉사이의 1,600m 고지대에 있는 평야지대이다.

이곳에 있는 수만 그루의 철쭉이 되는 5월 하순은 요염한 철쭉의 붉은 색과 등산객들의 오색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석대피소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3억원을 투입 96년1월1일 완공, 개장한 통나무식 대피소이다.

수용인원이 300명으로 지리산내 대피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운치가 뛰어난다.

2층 앞쪽으로는 주능선 남사면의 설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겸 휴게소가 있다..

 

 

세석대피소 아래의 샘터에서 물을 보충하고 촛대봉으로 향한다..

 

세석대피소를 지나면 세석갈림길, 좌측은 한신계곡을 지나 백무동으로, 우측은 삼신봉으로 가거나 거림으로 내려선다..

 

촛대봉으로 오르면서 뒤돌아본 새석대피소와 영신봉..

 

세석평전의 습지..

 

힘겹게 올라 촛대봉에 이른다.

촛대봉은 정상이 촛대처럼 생겼다하여 촛대봉이라 불리며, 해발 1,703m로 설악산 대청봉(1,708m)보다 5m 낮은 높이다.

 

리 천왕봉이 팔을 뻗치면 손에 잡힐 듯 바라보인다..

 

잠시 내려섰다가 올라선 전망이 좋은 암봉인 삼신봉에서 바라본 촛대봉..

 

좌측으로는 백무동계곡..

 

1678봉을 넘어서면 연하봉과 일출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하봉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곡점능선으로 일명 일출봉능선이라고도 불리며 중산리로 이어진다..

 

연하봉을 넘어선다..

 

지리산 10경, 연하선경(煙霞仙境), 천왕봉 일출광경과 신비한 반야봉 낙조를 영겁의 세월동안 간직한 채 대자연의 섭리를 알듯

말듯 인간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연하봉은 늘 그렇게 변함없이 지리산에 있다..

 

연하봉을 넘어서면 산상의 펜션인양 장터목대피소가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많은 등산객이 모이는 종주 능선의 마지막 산장이다..

 

이곳 장터목은 옛날 천왕봉 남쪽 사천주민과 북쪽 마천주민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 생산품을 물물교환을

하던 곳이다..

 

덕산이나 인월에서 등짐을 지고 올랐던 사람들에게는 그 거리가 더욱 멀고 힘이 들었을 것이다..

 

구 산장건물과 통로로 연결, 새 산장을 건축한 후 구 산장도 통나무로 새로이 장식하고 97년11월3일 준공했다.

세석대피소와 같이 난방이 잘되어 얇은 침낭만으로도 견딜 수 있다..

 

장터목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가파르게 제석봉으로 오른다..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올라서면 제석봉 고사목지대가 나타난다. 예전에는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였다고 한다.

오르는 길목 숲속에서 나홀로 늦은 점심을 한다..

 

탐욕에 눈이 먼 인간이 저지른 자연파괴 행위가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 군락지를 만들어 놓고 있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서는 중봉(1,875m) 다음가는 세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옛날 산신제단인 제석단이 양지에 자리했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시 콸콸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명당임을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이다..

 

10만여평의 완만한 비탈의 초원에 고사목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이 되고 있다.

이곳은 전나무, 구상나무들의 고사목 군락지로 고사목 자체가 귀중한 자연경관이다.

곳 고사목들은 해발 1,700m 이상 높은 곳에서도 재질이 뛰어난 나무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50년대의 지리산의

아픔을 60여년째 침묵의 증언을 하고 있는 것에도 많은 뜻이 있다.

한국전쟁 후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전나무·잣나무·구상나무로 숲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정권말에 권력자의 친척이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리고 거목들을 무단으로 베어냈다고 한다.

이 도벌사건이 문제가 되자 그 증거를 없애려고 불을 질러 현재의 고사목 군락이 생겼다고 한다..

 

제석봉(釋峰 1,806m)은 지리산에서 천왕봉, 중봉에 이어 세 번째로 높으며, 천왕봉에서 서쪽으로 뻗은 첫 봉우리이다.

제석봉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제석봉에 있던 신당이던 제석당()과 관련이 깊다.

제석봉은 제석을 산봉우리에 동일시해 숭배하여 일컬은 지명이다.

제석은 삼신제석(), 천주제석(), 제석천()이라고도 하는 하늘신이며, 도리천()에 살면서 불법을

보호하는 불교의 호법선신이다.

제석은 토속신앙인 천신신앙과 결합하였고,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환인을 제석과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제석봉은 천왕봉과 함께 조선시대의 많은 유학자들이 유람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양대박()은 1586년에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두류산기행록(頭流山紀行錄)’에서 “제석봉을 바라보니 그 형세가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 장엄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라고 형용하였다.

또, 허목(穆)은 ‘지리산기()’에서 “군자사의 남쪽 절벽을 따라 백무동을 거쳐 제석봉에 올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제석봉 아래에는 제석당()이 있었다고 한다.

송광연()은 ‘두류록()’에서 “제석당에 이르렀는데, 모양이 영신당과 흡사했지만 전망이 훨씬 나았다.”라고 하였다..

 

제석봉을 지나 잠시 내려섰다가 오른다..

 

엊그제 눈이 내렸는지 아직도 잔설이 많이 남아있다..

 

제석봉을 지나 잠시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면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데 하늘로 올라가는 ‘통천문(通天門)’이다.

통천문은 자체가 천연암굴로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지날 수 없다.

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못한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는데 지금은 철제사다리를 놓아 등반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통천문의 위용은 시인 고은의 말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신선들조차도 이 관문을 거쳐야 할 정도이니 우리 인간들은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천문(일명 개선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다.

 

들 두 관문 이외에 천왕봉을 향하는 길목은 칠선계곡을 거쳐 마천에서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비탈길이 있지만 통제되고,

대원사에서 치밭목과 중봉을 거쳐 오를 수 있는 길이 있으나 모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주봉에 닿을 수 있으니 천왕봉은

인간들의 오름을 쉽게 허락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통천문에서 바라본 제석봉, 멀리 반야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파른 암벽과 철제계단을 잇따라 올라서면 <국립공원특별보호구 안내>판이 있는 칠선계곡 갈림길에 이른다.

현재 칠선계곡 탐방은 5~6월과 9~10월 2차례에 걸쳐 월·토요일에 하루 60명만 가능하다.

월요일에는 대륙폭포와 삼층폭포~천왕봉까지 올라가기 프로그램(9.7㎞),

토요일에는 삼층폭포까지 탐방하는 되돌아오기 프로그램(13㎞)을 가이드와 함께 운영한다..

 

아! 드디어 그리운 지리산 정상 천왕봉이 눈앞에 다가온다..

 

정상에 이르는 암벽에는 거대한 바위를 예로부터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의미로 천주라 불렀음인지 서쪽암벽에 천주(天柱)라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남명선생이 일찍이 ‘만고천주봉(萬古天王峰) 천명유불명(天鳴猶不鳴)’이라며, ‘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뫼’로 장엄함을 찬탄했듯

그 위용은 아직도 변함없다..

 

민족의 영산, 한민족의 기상이 발원되는 해발 1915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아래로 땅을 누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찾는 이를 알도록 한다..

 

지리산 천왕봉은 언제 찾아도 웅장한 모습을 달리 하고 있다.

때로는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함을 보이면서도 돌풍이 몰아칠 때면 속인들의 분탕질에 분노하듯 준엄함을 보여준다.

천왕봉은 또한 구름바다 속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가 하면 화려한 석양 낙조를 연출해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정상에는 82년 경상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있는데,

전면에는「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표지석을 세우는 날, 천왕봉에서 쓰레기수거작업이 열렸는데 경남도내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되어 천왕봉 일대에서 쓰레기 수거

작업을 했고, 도지사 등 일부인사는 헬기로 천왕봉에 도착했다고 한다.

마침 휴일이어서 일반등산객들도 많았는데 천왕봉에 많은 인파로 일시에 뒤덮은 것으로는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천왕봉은 반야봉과 노고단 등 1백10여개의 우뚝 솟은 준봉을 거느리고 그 아래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중봉에서 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중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가 바로 천왕봉과 마주하며 서있는 중봉이다.

려한 산세와 울창한 원시림을 자랑하며 지리산 제일의 절경을 간직하고 있으나 천왕봉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봉은 천왕봉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려 다시 하봉(下峯)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써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형성한다.

써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다시 국수봉으로 연결돼 구곡산까지 계속된다.

이 능선은 이른바 ‘황금능선’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산세가 매우 험난한데다 울창한 산죽들로 인해 등산로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 일반 등산객들은 잘 찾지 않는다..

 

 

 

 

천왕봉에서 머무르다가 대원사로 내려설까 하다가 시간이 촉박하여 법계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천왕샘으로 내려서는 가파른 내리막길, 아래로 까마득히 중산리계곡이 바라보인다..

 

가파른 내리막 계단길을 내려서면 천왕샘, 곳은 서부 경남지역의 식수원인 남강댐의 발원지이다.

천왕샘물은 중산리계곡에서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르게 된다..

 

지리산의 정기가 서린 천왕샘물 한모금을 마시고 내려선다..

 

우뚝 선 선바위가 파란 하늘과 어울어져 아름답다..

 

통천문과 함께 지리산의 2대 관문을 이루는 개선문에 이른다.

개선문(凱旋門)은 원래 좌우로 두개의 바위기둥이 서있어 위용을 자랑했는데 한쪽은 벼락을 맞아 없어졌다.

하늘을 여는 문이라 하여 개천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선문(개천문), 남서쪽으로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는 곳이다..

 

개선문에서 다시 가파른 내리막이 시작된다..

 

잠시 내려서면 널따란 암반의 전망대에 이르는데 건너편으로 문창대가 아름답게 바라보인다.

문창대(文昌臺)는 고운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법계사에 자주 왕래를 하면서 이곳에 올라 멀리 서편에 있는 향적대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을 쏘기도 하였으므로 이곳을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라고 하였다가 최치원이 사후에 받은

문창후(文昌候)의 시호(諡號)를 따서 문창대로 개칭하였다 한다.

문창대는 1617년 조선 중기 진주 선비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의 유두류산시(遊頭流山詩)에 의해 세간에 알려 졌다고 한다.

최치원의 높은 인품과 학문을 추앙하여 그의 얼을 길이 새기고자 후세에 유생들이 바위에 글을 새김으로써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운은 지리산 산신령이 되어 영생한다는 전설이 있을만큼 지리산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는데 그 족적은 화개동천에 집중돼 있다.

 

잠시 내려서면 하늘하래 첫 사찰 법계사..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緣起)조사가 전국을 두루 다녀 본 후 천하의 승지(勝地)가 이곳이라 하여 천왕봉에서

약2㎞ 떨어진 현재의 터에 법계사를 창건하였다한다.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산세는 좌우로 급박하게 짜여져서 오직 동남쪽으로만 트여 있으니 동틈과 함께 지기와 천기가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는 곳이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이성계에 패배한 왜군에 의해 소실된 법계사는 조선 태종 5년인 1405년에 정심선사가 중창했으나,

1908년 일본군에 의해 다시 소실되어 방치되다 1981년 겨우 절다운 형태를 갖추었다고 한다.

법계사 3층석탑은 보물 제473호로써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바로 아래의 로타리대피소에 이르는데 예전 같으면 사람들로 붐볐지만 늦은 시간이라 한가하기만 하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천왕봉..

 

그 옆으로는 구곡산으로 흘러내리는 황금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을 내려서 망바위에 이르고..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면 장터목대피소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되는 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출렁다리를 지나 3~4분을 가면 칼바위가 나타난다.

칼바위는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 후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지리산 중턱의 큰바위 밑에서 은거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장수에게

그 자를 찾아서 목을 베어 오라고 명한다.

지리산을 헤매다 지금의 칼바위가 위치한 곳에서 약2km 떨어진 곳에 이르러 큰 바위 밑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칼로

내리쳤다. 그런데 바위는 갈라져서 홈바위가 되고 칼날은 부러지면서 이곳까지 날아와 꽂히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형상의 바위로

변하여 이름을 칼바위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길게도 느껴지는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통천길 입구가 나타나 중산리야영장에 이른다..

 

아름다운 단풍이 물든 지리산 야영장의 한가로운 풍경..

 

야영장을 지나면 재난안전관리단이 있는 도로에 내려선다..

 

붉게 타들어가는 중산리계곡의 단풍..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도로를 따라 내려선다..

 

중산리탐방안내소를 지나면 다시 도로를 따라 1.3km를 내려서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