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기행]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磨崖如來三尊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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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기행]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磨崖如來三尊像)..

by 정산 돌구름 2018. 9. 5.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磨崖如來三尊像)..


 

2018년 9월 2일 일요일, 아라메길에서 만난 국보 제84호 서산용현리 미애여래삼존상..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磨崖如來三尊像)..

충남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로 65-13(용현리)에 위치한 백제 말기의 불상으로 국보 제84호(1962년12월20일)로 지정되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이 배치된 특이한 삼존형식이다.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묵중하고 중후한 체구의 입상인 본존은 머리에는 보주형(寶珠形) 두광(頭光)이 있으며,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는 작다.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는 미소가 있고 눈은 행인형(杏仁形)으로 뜨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고 법의(法衣)는 두꺼워서 거의 몸이 나타나 있지 않다.

옷주름은 앞에서 U자형이 되고 옷자락에는 형의 주름이 나있다.

수인(手印)은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으로 왼손의 끝 두 손가락을 꼬부리고 있다.

발밑에는 큼직한 복련연화좌(覆蓮蓮華座)가 있고, 광배 중심에는 연꽃이, 둘레에는 화염문이 양각되었다.

이에 대하여 우협시보살(右脇侍菩薩)은 머리에 높은 관을 쓰고 상호(相好)는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으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목에는 짧은 목걸이가 있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보주(寶珠)를 잡고 있다.

천의는 두 팔을 거쳐 앞에서 U자형으로 늘어졌으나 교차되지는 않았다.

상체는 나형(裸形)이고 하체의 법의는 발등까지 내려와 있다.

발밑에는 복련연화좌가 있다. 머리 뒤에는 보주형 광배가 있는데, 중심에 연꽃이 있을 뿐 화염문은 없다.

좌협시보살은 통식(通式)에서 벗어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배치하였다.

이 보살상은 두 팔에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전체의 형태는 충분히 볼 수 있다.

머리에는 관을 썼고 상호는 다른 상들과 같이 원만형(圓滿形)으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상체는 나형이고 목에는 짧은 목걸이를 걸쳤다. 허리 밑으로 내려온 옷자락에는 고식의 옷주름이 나 있다.

발밑에는 큰 꽃잎으로 나타낸 복련대좌(覆蓮臺座)가 있다.

머리 뒤에는 큰 보주형 광배가 있는데, 그 형식은 우협시보살의 광배 형식과 같다.

이 삼존상은 법화경의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 즉 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법화경사상이 백제 사회에 유행한 사실을 입증해 주는 가장 중요한 사료이다.

충남 서산에 있는 가야산은 백제시대부터 많은 사찰들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서산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 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부여로 가던 행로상에 있다.

즉 태안반도에서 서산마애불이 있는 가야산 계곡을 따라 계속 전진하면 부여로 가는 지름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은 예로부터

중국과 교통하던 길이었다.

이 옛길의 어귀가 되는 지점에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데, 이곳은 산세가 유수하고 천하의 경승지여서 600년 당시 중국

불교 문화의 자극을 받아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