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 4국 8박10일(제3일) - 1.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 아침을..
- 3일차 (7월 9일, 월) - 기상 후 인근 산책 ⇨ 호텔식으로 조식 ⇨ 호텔 출발 ⇨ 루브르 박물관 관광 ⇨ 에펠탑 관광(2F 전망대 포함) ⇨ 개선문 관광 ⇨ 콩코르드 광장 ⇨ 샹젤리제 거리 ⇨ 알렉산더 3세 다리 ⇨ 세느강 유람선 투어 ⇨ 호텔 투숙 |
와인의 나라, 프랑스(France)
정식명칭은 프랑스공화국(La République de France)이며, 수도는 파리(Paris)이다.
면적은 64만 3801㎢(세계 43위 CIA 기준)로 한반도의 2.5배이고, 유럽연합(EU)의 5분의 1의 넓이다.
인구는 67,106,161명(세계 21위 2017.07.est.CIA 기준)이며, GDP는 2조5,748억$(세계 5위 2017 IMF기준)이다. 인종은 북부·중부 유럽에서 이주해 온 켈트(Gaule족)·게르만·노르만계가 대다수이고 소수의 라틴계가 혼재하며, 피레네산맥 북부의 바스크족 50여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다.
종교는 가톨릭교(81.4%)·이슬람교(6.89%)·신교(1.64%)·유태교(1.29%)·불교(0.68%)·그리스정교(0.34%) 등이다.
동쪽은 이탈리아·스위스·독일, 북동쪽은 룩셈부르크·벨기에와 접하고, 북서쪽은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과 마주하며, 서쪽은 대서양, 남쪽은 지중해와 에스파냐로 이어진다. 육각형 모양의 본토 외에 해외 프랑스령으로는 마르티니크·과들루프·레위니옹·프랑스령(領) 기아나가 있고 그밖에 3개 해외공동체(마요트, 생피에르미클롱, 왈리에푸투나 제도), 1개 특별 공동체(뉴칼레도니아), 1개 해외국가(프랑스령 폴리네시아), 1개 해외영토(프랑스령 남부 지역)가 있다. 중앙아프리카·콩고·가봉·세네갈·차드 등과 프랑스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5개의 해외 속령(Overseas Regions)을 포함한 주 단위의 18개 레지옹(Regions)과 각 주 아래 101개의 데파르트망(Departments)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랑스의 기후는 유럽 기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기후는 보통 해양성·대륙성·지중해성으로 나누어지는데, 프랑스에는 이 세 가지 기후가 모두 나타난다.
BC 2,000년경 북프랑스에 켈트족이 이동해 와 BC 5∼3세기 사이에는 프랑스·영국·스페인 등을 정복하였다. 부족국가간의 대립으로 BC 2세기경부터 로마에 의하여 정복되었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으로 5세기경 서로마제국이 멸망함에 따라 게르만민족 중의 프랑크인이 세력을 확대, 메로빙거왕조의 클로비스 1세(Clovis I, 481∼511 재임)가 프랑크왕이 되어 가톨릭교로 개종하고 프랑크인 교화에 착수하였다.
그가 죽은 뒤 8세기경에는 카롤링거의 샤를마뉴(Charlemagne)가 뒤에 대제(大帝)가 되었다(768∼814 재임). 그는 프랑스·독일·이탈리아에 걸치는 왕국을 건설, 그리스도교를 보급하였다.
800년 로마교황으로부터 서로마황제로 대관되었으나, 샤를마뉴 대제의 사후 분열되어 843년 베르덩조약으로 동프랑크(독일)·서프랑크(프랑스)·이탈리아로 3분되어 현재와 같은 프랑스의 판도가 정립되었다.
서프랑크에 노르만족이 침입하여 이에 대전한 로베르가의 후손인 카페가 카페왕조를 건설함으로써 프랑스왕국의 역사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 왕조시대는 봉건제가 성립, 변용하는 시대로서 전체 중세사(中世史)를 통하여 영국과 끊임없이 대립·항쟁을 계속하였으며, 가톨릭교와 왕권을 강화하였으나 1328년에 단절되고 발루아(Valois)왕조가 수립되었다.
이 왕조의 수립과 동시에 영국이 프랑스왕위를 노림으로써 백년전쟁을 겪게 되었으며, 또한 봉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여 군비·관료제·재정의 정비 등을 이룩하여 국내의 귀족을 억압함으로써 절대왕정의 기초가 구축되었다.
발루아왕조는 16세기 말 신·구교도의 대립·격화·내란으로 결국 앙리 3세(Henri Ⅲ)를 최후로 단절되고 앙리 4세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부르봉(Bourbon, 1589∼1792)왕조가 시작되었다.
앙리 4세 시대에는 종교적 내란이 종식되고 국력을 회복, 해외진출이 현저하였다. 그 뒤를 이어 루이 13세(Louis ⅩⅢ, 1610∼1643 재임)시대에는 귀족과 신교도를 억압, 30년 전쟁에 개입, 루이 14세 시대에 30년 전쟁을 프랑스에 유리하게 끝맺었다.
루이 15세·루이 16세(1774∼1792 재임)시대에는 빈번한 해외원정, 베르사유궁전의 건축, 궁중의 사치생활 등으로 재정의 악화를 가져와 대혁명을 유발하였다. 18세기의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 舊體制)에 대해서 신흥시민계급이 도전한 것이 프랑스대혁명인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시민혁명으로 절대왕정을 타파하여 봉건제를 일소하고, 입헌의회제와 공화제(제1공화정, 1792∼1802)를 수립하고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였으며, 대혁명의 이념인 자유·평등·박애는 인간 및 민족의 국제적인 해방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프랑스가 유럽에서의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 혁명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낸 나폴레옹(Napoléon,B.)은 군사적 독재를 감행하면서도 혁명의 성과를 보장, 국민의 신망을 얻어 나폴레옹 1세(1804∼1805 재임)로 제위(帝位)에 오르게 되고 제1공화정은 와해되었다.
그는 혁명전쟁을 계승하여 혁명의 이념과 성과를 유럽대륙에 전파하였으나, 프랑스의 침략성의 노정으로 이른바 나폴레옹전쟁을 야기하게 하여 1815년 완전히 몰락하였다.
그 뒤 부르봉왕조에 의한 왕정복고(王政復古, 1814∼1848)가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국제적으로 보수파인 빈체제(Wien體制)의 일환으로서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였으나 반동적인 성격으로 또다시 혁명을 유발하여 1830년 ‘7월 혁명’으로 붕괴되었다. 이어 오를레앙가에 의해 7월 왕정이 성립되었으나, 1848년 ‘2월 혁명’으로 무너지고 제2공화정(1848∼1852)이 수립되었다.
‘2월 혁명’은 혁명세력이 시민적 공화파와 사회주의적 공화파로 분열되어 전자가 승리하였으나, 이러한 대립을 이용, 보수파가 그 세력을 만회하게 되었으며, 또한 이와 같은 정세를 이용하여서 루이 나폴레옹(Louis Napoléon,B., 1808∼1873)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1851년 쿠데타로 그 지위를 굳히더니, 1852년 나폴레옹 3세로 제위에 올랐다. 이로써 제2제정(1852∼1870)이 시작되었다. 1860년대에는 산업혁명의 진전, 크림전쟁에의 참가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함으로써 명성을 얻고, 자유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멕시코원정·보불전쟁에서의 패배로 제2제정은 붕괴되었다.
1870년 제3공화국이 수립됨으로써 19세기 말까지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하고 아시아·아프리카에 식민지를 확대하였다. 1907년 프랑스·영국·러시아의 3국 협상체제를 완성하여 독일과 대립하였고, 1914년 제1차세계대전에 참가, 승리하였다. 베르사유조약에 의하여 독일의 약체화와 안전보장체제를 확립하고자 국제연맹에서 프랑스가 중심이 되었다.
독일이 베르사유체제의 타파와 대외침략정책을 계획하자 영국과 같이 유화정책을 채택하였으나 실패, 제2차세계대전을 맞게 되었다.
1940년6월13일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하자, 프랑스정부는 처음에는 투르, 뒤에는 보르도로 수도를 옮겼다. 여기에서 페탱(Pétain,H.P.)이 수상에 지명되고, 22일 휴전협정에 서명, 수도를 비시로 옮겨 독일군이 직접 지배하는 지역 이외의 지역을 통치하는 괴뢰정부화하였다.
이에 앞서 제3공화국 정부가 취한 최후의 행동은 6월 9일 비시에서 열린 양원 합동회의에서 압도적 다수로 비시정부를 지지함으로써 제3공화국은 그 종말을 보게 되었다.
한편, 1940년 6월부터 런던에서 자유프랑스위원회를 조직하여 대독항쟁을 계속 주장한 드골(de Gaulle,C.)은 1944년8월25일 파리가 연합군에 의하여 수복된 뒤부터 14개월 동안 임시정부(1944∼1946) 대통령으로 통치, 1945년 11월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1946년 4월 헌법 의결을 거쳐 9월 새 헌법을 의결하였으며, 10월 국민투표의 승인을 얻어 제4공화국이 성립하였다.
제4공화국(1946∼1958)은 의원내각제의 모순, 군소정당의 난립, 만성적 인플레이션, 식민지에서의 독립운동(베트남·모로코·알제리)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더욱이 알제리문제를 둘러싼 혼란 속에서 난국해결을 위한 인물로 드골장군이 지목되어 1958년 6월 1일 의회는 그를 수상으로, 또한 국민투표에 의한 승인을 거쳐 대통령으로 당선시킴으로써 제5공화국(1958∼현재)이 성립되었다.
1958년10월15일 수립된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드골은 1965년 12월 재선되었으나, 1969년 4월 국민투표(상원개편·지역창설)에서 패배하자 퇴진하였다.
뒤를 이은 퐁피두(Pompidou,G., 1969∼1974 재임)가 1974년 4월 병사하자 지스카르 데스탱(Giscard d'Estaing,V., 1974∼1981 재임)이 정권을 인수받았으며, 1980년 5월 선거에서 야당인 사회당의 후보 미테랑(Mitterrand,F., 1981∼1995)이 당선됨으로써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제5공화국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였으며, 군소 정당의 분립으로 인한 정국불안을 막기 위하여 의회의 권한을 대폭 제한하였다.
대통령은 1962년11월6일 개정된 헌법에 따라 직접보통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7년이다. 대통령은 수상 및 내각의 임면권과 의회해산권을 가진다. 수상과 각료는 국회의원을 겸직할 수 없으며, 하원(국민의회)이 정부에 대하여 불신임을 결의하면 내각은 총사퇴하여야 한다.
의회는 국민의회(577석, 임기 5년)와 상원(321석, 임기 9년)으로 구성되며, 국민의회의원의 임기는 5년이고, 소선거구제로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한다. 단 1회에 과반수를 획득한 후보자가 없을 경우 2차투표에서 최고득점자가 당선된다. 상원은 지방공공단체대표로 임기는 9년이며, 3년마다 3분의 1씩 개선하되,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1995년5월7일 프랑스 대통령선거 제2차 결선투표에서 공화국연합(RPR)의 시라크 후보가 죠스팽 사회당후보를 누르고 프랑스 제5공화국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시라크의 당선으로 14년간 계속된 미테랑 대통령의 사회당 정권이 막을 내리고 보수주의 우파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5월18일 쥐페(Juppé,A.)를 신임 수상으로 하는 쥐페 내각(각료급 장관 26명, 담당장관 및 국무상급 16명)이 출범, 쥐페 내각은 범우파 화합내각으로서 제1당인 공화국연합(RPR)과 프랑스민주연합(UDF), 공화당(PR) 등 우파의 각 계파의 안배가 고르게 이뤄졌다.
시라크 정권은 실업과 재정적자 등 프랑스 경제·사회의 당면문제 해결을 우선과제로 추진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유럽통합에서 주도적 역할수행 등 프랑스의 독자적인 영역유지를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높은 실업률과 쥐페 내각의 유럽단일통화체제(EMU) 추진을 위한 긴축재정 정책에 국민의 불만이 높아졌다.
1996년 6월 총선에서 사회당의 죠스팽이 수상으로 피선, 우파의 시라크 대통령과 좌파의 죠스팽 수상이 이끄는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 정부가 탄생, 1986년과 1993년(미테랑 대통령 집권시절)에 이어 세 번째 좌·우파 동거정부가 탄생하였다.
6월4일 죠스팽 수상은 각료 26명 중 사회당 18명, 급진 사회당 3명, 시민운동당 1명, 환경당 1명, 공산당 3명 등 좌파의 거의 모든 정당을 망라하여 26명의 작은 정부를 추구하였는데, 여성각료가 8명을 차지하였다.
동거정부하의 죠스팽은 실업난의 해소, 주요 국영기업의 민영화 중단, EMU 정시출범을 위한 긴축정책 추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죠스팽 내각의 당면과제는 실업해결인데, 이와 관련 1997년 12월17일 법정 주간근로시간(35시간)을 단축하는 정부측 안을 확정함에 따라 우파의 비판이 확대되어 동거정부 내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1998년 1월 27일 법정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감축하는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 3월 31일 2차표결을 거쳐 최종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임금수준을 감축하지 않으면서 2002년부터 법정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하고, 그 이전에 자발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주요 원칙을 설정하였다.
외교에 있어서 프랑스는 미·소 등 초강대국에 맞서는 국제적 지위향상을 위한 독자적 외교정책이 드골 대통령 이래 계속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핵확산금지조약 비준서명, 유럽공동체(EC) 경제권 강화, 대러시아 외교 등에서 미국과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는 어느 강대국보다도 아프리카에 대하여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드골 대통령 이래 대소(1992년 대러시아로 변경) 자주성 견지, 유럽통합의 주도적 역할 수행, 제3세계 개발 지원 등을 통하여 미·러에 대응하는 세력권 형성을 추구하며, 국제사회에서 미·영 등 영어사용국의 문화적 주도권을 견제하고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의욕적인 범세계적 프랑스어 보급 확대정책과 프랑스어권의 결속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라인강, 알프스 산맥, 페레네 산맥, 대서양, 지중해 등으로 자연적인 국경이 형성된 국가로 57%의 국토가 경작지이다. 지형과 토양, 기후 등 포도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에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 국가이다. 농산물 중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0%이며 전체 와인 중 레드 와인이 약 60% 비율로 생산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국으로 이탈리아와 더불어 최고의 와인 생산량을 자랑하며 1인당 연간 61리터를 소비하여 룩셈부르크 다음으로 와인을 많이 마시는 나라이다.
프랑스 와인은 BC 600년 경, 그리스인들이 갈리아(프랑스 옛 지역)의 마르세유 지방에 상륙하여 포도를 재배 한 것이 시작이며, 로마시대에 이르러 더욱 부흥기를 맞는다. 로마가 식민지로 지배했던 곳은 유럽전역, 영국 일부, 지중해 연안의 아프리카로 로마 군인에게 와인이 필요하였고, 이를 위하여 1세기경에는 론·랑스독 루시용 지방에, 2~3세기경에는 부르고뉴·보르도·상파뉴 지방에, 5세기경에는 파리 부근으로 와인 재배 지역을 확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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