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과 목포대교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목포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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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8

유달산과 목포대교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목포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

by 정산 돌구름 2018. 1. 14.

 

유달산과 목포대교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목포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


금년들어 두번째 토요일, 맑은 날씨지만 엊그제 내린 많은 눈으로 아직은 곳곳이 눈으로 덮혀있다.

아침에 나주운전면허시험장을 들렀다가 12시에 목포에서 선배 자녀결혼식장에 가서 점심식사를 한다.

오후에 목포대교를 지나 고하도에서 용오름 둘레숲길을 걷기로 한다.

맑고 포근한 겨울날씨에 능선을 따라 가는데 추위를 느끼지 않고 건너편으로 보이는 목포 유달산과 해안도로가 선명하다.

목포대교가 가까워지며 용머리에 이르러 다시 되돌아나와 이충무공유적지를 둘러보고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행일자 : 2018113()

기상상황 : 많음(구름 조금 맑고 화창한 겨울 날씨 -1~5)

인원 : 부부

산행코스 : 고하도 복지회관~탕건바위~말바우~뫼막개~용머리~둘레숲길~이충무공유적지~복지회관(전남 목포)

구간별소요시간 : 7.15km(트랭글GPS), 2시간50분 소요

복지회관위(13:50)~탕건바위(14:00~05)~말바우(14:20~30)~뫼막개(15:40)~케이블카공사장(14:50)~큰덕골저수지갈림길(14:55)~용머리(15:15~25)~저수지 갈림길(15:42)~공생원 도로(15:50)~말바우갈림길(16:00)~큰골저수지(16:02)~도로(16:12)~복지회관위(16:17)~충무공사당(16:20~25)~선착장(16:30)~복지회관위(16:40)

고하도(高下島) 소개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은 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승천하는 등허리를 타고 걷는 걷과 같은 지형으로 산행할 때 용의 기운을 잔뜩 받는 느낌으로 걸을 수 있다.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최고점이 77m로 섬 전체가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고하도(高下島)는 목포시 달동에 속하는 섬으로 면적 1.78, 해안선 길이 10.7, 인구는 약 360여명에 불과 했었다.

목포 남서쪽에 위치한 반달모양의 섬으로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하여 고하도(高下島)’라 불렸다.

예전에는 보화도(寶化島), 고하도(高霞島), 고하도(孤下島), 비노도(悲露島), 칼섬 등으로도 불려왔다.

목포 유달산 밑 건너편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그 고하도는 그곳에 보물이 숨겨 있다고 해서 보화도'(寶和島)’, ‘슬픔과 애탄이 서려 있어서 비하도(悲霞島)’로도 불렸다.

, 섬 모양이 바다로 나아가는 용의 형상을 닮았대서 용섬이라고도 불린다.

북동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고, 남서 사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해안에 이어진다.

해안은 곳곳에 소규모 갑과 만이 발달하여 드나듦이 심하며, 만 안의 간석지는 방조제를 쌓아 농경지와 염전이 이루어져있다.

기후가 온난습윤하고 무상기일이 200일이 넘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육지면(陸地棉)이 재배되기도 하었다.

섬의 남서쪽에 비교적 넓은 평지가 있어서 목화 재배 외에 논농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감자··보리·콩 등의 농산물이 생산되고, 농어·아나고·숭어 등의 잡어류가 잡힌다.

탕건바위놀이와 강강술래 등이 전해지며, 해송림과 낚시터가 있어 관광객이 자주 찾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나오며, <여지도서>둘레는 12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호는 55호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호구총수><호남읍지>에 섬의 이름과 인구가 기록되어 있고, <청구도><대동여지도>에도 기재되어 있다.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진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1963년 무안군 이로면이 목포시로 편입되면서 달리도, 외달도 등과 함께 충무동에 편성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9)가 있어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을 이충무공유적지(전라남도 기념물 제10)로 지정하여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난중일기>에 쓴 고하도는 서북풍을 막아주고, 전선을 감추기에 아주 적합하다. 섬 안을 둘러보니 지형이 대단히 좋다. 그래서 머물기로 했다고 하였다.

섬의 둘레는 비록 12에 불과하지만 명량대첩의 현장 울돌목으로 가는 길목엔 둘 도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을 것이다.

고하도는 개항이후 끊임없이 제국주의자들에게 토지를 침탈당했던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고하도에는 이 충무공의 유적도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흔적도 남아 있다.

개항장이었던 목포와 마주하고 있는 고하도를 거점지역으로 삼기 위해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이때 러시아는 고하도 주민들에게 1만 원도 채 안된 땅값으로 토지를 매입했다고 한다..

예전엔 넘실대는 물살을 가로질러 배로 갈 수밖에 없었던 외로운 섬, 고하도..

20126월에 목포대교가 개통돼 지금은 누구라도 손쉽게 육로로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고하도는 이순신장군이 일본 수군을 물리친 뒤 함대 정비를 위해 108일간 주둔한 곳이기도 하다.

목포 앞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부분이 용머리처럼 생겨서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여 인근 다도해 섬들을 여럿 끼고있어서 잠시 숨을 고르기에도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

 

 

 

 

 


용오름둘레숲길이 시작되는 마을회관 위 도로..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 안내도가 서있다..

 


용머리까지는 2.8km, 바로 옆에는 이충무공유적지..

 


용머리길을 따라 오르면 아직은 잔설이 많이 남아있다..

 


잠시 후 큰골저수지 갈림길..

 


하얀 눈길 능선을 따라 오른다..

 


눈길에서..

 


이어 암릉지대를 지나고..

 


등대섬과 용당선착장..

 


가파른 눈길 계단을 내려선다..

 


수북히 쌓인 눈..

 


삼각점이 있는 정상 말바우에 올라선다..

 


건너편으로 유달산과 목포 구시가지..

 


아름다운 풍경이다..

 

 

 


유달산과 온금동..

 

 

 

 

 

 

 


유달산, 그리고 목포 앞바다를 오가는 연락선..

 


유달산과 목포 시가지, 목포항, 멀리 양을산도 바라보인다..

 


한없이 이어가는 용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용머리로 이어지는 능선과 목포대교..

 

 

 

 

 

 

 

 

 

 

 

 

 


다시 계단을 내려선다..

 

 

 


잠시 올라서면 뫼막개(래박개?), 이름이 분명치 않아 혼선..

 

 

 


다시 내려섰다가 오르면 공사장, 유달산 케이블카 공사장이다..

 


공사장에서 바라본 목포대교와 목포해양대학교..

 


유달산과 목포시가지..

 


목포대교, 유달산, 목포시가지 파노라마..

 


잠시 내려서면 갈림길..

 


부드러운 소나무숲 능선길이 이어진다..

 


하얀 눈꽃 세상..

 


소나무숲 사이로 용머리와 목포대교가 바라보인다.

 


용머리와 목포대교..

 


길게 이어지는 해안선..

 


건너편의 유달산과 신안비치호텔, 호남정맥 순창새재에서 이어온 영산기맥이 유달산을 지나 가라앉는 다순금이 바라보인다..

 


파란 하늘의 목포대교..

 

 

 


용머리..

 


용머리는 용이 날개를 펴고 승천하는 모습..

 

 

 

 

 

 

 

 

 

 

 


용머리에서 바라본 유달산..

 


용머리에서 바라본 목포대교와 유달산 파노라마..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 나온다..

 


갈림길에서 큰덕골저수지 방향으로 내려선다..

 


산허리를 감도는 부드러운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공생원으로 내려서는 길..

 


위로는 유달산케이블카 승강장 공사현장..

 


둘레숲길은 용머리에서 큰덕골저수지로 이어진다..

 

 

 


아래서 오르는 임도..

 


길은 임도처럼 널따랗게 이어진다..

 

 

 


대나무숲을 지나고..

 


말바우 갈림길..

 


큰덕골저수지..

 


저수지 아래는 조그만 논들이 있다..

 


메마른 저수지..

 


임도를 따라 밭길로 들어선다..

 


잠시 후 길은 도로에 이른다..

 


도로를 따라간다..

 


고하도 마을과 마을회관이 다가온다..

 


다시 돌아온 입구..

 


바로 옆 이충무공유적지로 가는 길..

 


유적지 옆에는 소나무숲과 쉼터가 있다..

 


이충무공유적비 담장이 눈에 들어온다..

 


홍살문과 소나무숲..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비 모충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 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

 

 

이 기념비는 임진왜란때 충무공 이순신의 군량비축의 탁월한 전략을 기리기 위하여 고하도에 세웠다.

1597년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고하도에 진성을 축성하고 군사를 주둔하였던 터에 1722년(경종2)에 세워졌다.

1722년 통제사로 부임한 오중주(吳重周)와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李鳳祥)이 옛터에 비를 세웠다. 

 


비명은 有明朝鮮國故三道統制使贈左議政忠武李公高下島遺墟記事碑

(유명조선국고삼도통제사증좌의정충무이공고하도유허기사비)며, 남구만(南九萬)이 비문을 지었다.

조태구(趙泰耉)가 글씨를 썻고, 이광자(李光仔)가 비분을 새겼으며, 비문은 17행 48자이다.

주된 내용은 ‘정유재란때 이순신이 군사주둔처로 고하도를 설정하게 된 과정, 진이 1647년(인조25년)에 당곶진(목포 이로동)

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충무공의 유허가 소실됨을 안타깝게 여기던 오중주통제사가 유허비 건립을 주도한 내용, 전쟁시 군량미

의 중요성, 후임 통제사로 하여금 고하도진터임을 알도록 하기위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뒷면에는 崇禎紀元後九十五年壬寅八月(숭정기원후구십오년임인팔월)로 건립연대가 새겨 있다.

몸둘의 높이는 227cm, 너비는 112cm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당초문이 새겨진 네모꼴의 이수와 별다른 조식이 없는 좌대를 갖추었는데, 비는 모충각안에 있고 42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야산에 버려져 있던 것을 광복이 되면서 현위치에 세웠다.

1949년에 비각을 건립하였고 1973면 중수 하였다..

 

 

 

 

 


도로에 내려서면 고하도 용당선착장..

 

 

 

 

 


마을 복지회관, 도로를 따라 오르면 초입지이다..

 


목포 신외항에 있는 세월호..

 


2014년4월16일의 아픔을 간직한 채, 고요히 누워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