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9일, 압해도를 출발하여 도초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산과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비금도로 향한다.
신안군의 중앙에 위치한 비금도(飛禽島)는 동쪽으로 암태·팔금·안좌면과 서쪽으로는 흑산면, 남쪽으로는 연도교가 가설된 도초면,
북쪽으로는 자은면과 이웃하고 있다.
국토의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다도해의 일부로서 목포로부터 54.5km의 지점(동경 125。45", 북위 34。45")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으로는 성치산맥과 서쪽으로는 선왕산맥이 뻗어 있다.
선왕산(255m)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산으로서 전국 최초로 도서등산로가 개설되어
제2회 도서등산대회가 열렸으며 등산로가 안전하고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숲과 암벽, 능선이 적절히 조화되어 오르는 재미가 있어 주민들은 물론 등산을 즐겨 하는 외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산이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얼음처럼 잔잔한 바다 위로 떠있는 작은 섬들, 하얀 염전과 푸른 들이 뒤섞인 풍광이 아름답다.
중서부에 평야가 펼쳐 있고, 북쪽은 서해에서 밀려온 모래로 모래사장을 이루고 있으며, 유인도 4개와 무인도 79개로 구성되어 있다.본래 십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었으나 조선시대부터 수십여회의 방조제사업(80여회)를 거쳐 지금의 하나의 섬을 만든 곳이다.
면의 중심이 되는 비금도와 수치도(水雉島), 노대도 등 부속도서가 있다.
논농사를 주로 하며 김·미역 양식과 천일제염이 활발하고, 섬 주변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삼국시대에는 자은·암태면과 함께 백제의 아노현에 속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압해군의 영속인 갈도현에 속하였다.
고려시대 육창현에 편입되었으며, 조선초에는 영광군에 속하였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러 나주목의 관할로 이속되었다.
그 뒤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896년(고종1년) 지도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광대·용소·수치 등 13개 리로 개편되어 무안군에
편입되었다가 1969년 신안군에 속하게 되었다.
섬의 모양이 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날 '비(飛)', 새 '금(禽)'을 쓴다.
『호남읍지』(나주)에 면의 명칭을 따온 비금도에 관한 기록이 있다.
섬이 아름다워 세바위가 바다를 향해 다리를 뻗고있는 모습이나 바위위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줄사다리, 색의 조화가 오묘한 바위들이
홍도의 비경에 버금간다고들 하는데 그 사이에 동서부 평야가 펼쳐있고, 북쪽은 황해에서 밀려온 모래로 명사십리를 이루고 있다.
비금의 민속으로는 밤달애놀이가 유명하다. 밤달애놀이는 망자의 혼을 달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례로 호상을 당한 상가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밤샘을 하며 치룬다.
하누넘해수욕장은 비금면 내월리에 위치하며, 길이 1Km, 폭 50m(간조시)에 이른다.
다도해해상 국립공원내에 위치하며 해변의 모습이 하트를 형상하고 있어, 하트해변, 또는 사랑의 해변으로 불리고 있고,
SBS 드라마 『봄의왈츠』의 촬영지로 피서객이 연간 2만명 이상 찾고 있다.
특히, 하누넘 낙조는 천연기념물332호인 칠발도와 어울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비금도 수대와 도초도 화도를 잇는 서남문대교는 1996년8월29일 완공된 길이 937m로 우리나라 연도교 중에서 가장 길다.
아치형으로 가늘게 뻗은 다리가 웅장하다기보다 우아하며, 조용히 해풍을 맞으며 사색하기에 좋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연도교인 서남문대교는 우리나라의 서남단쪽에서 들어오는 첫 관문의 교량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금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비금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천일염을 생산해 낸 곳으로 이곳에 염전이 생긴 것은 1946년이다.
본래 강우량이 많은 신안은 일제때부터 천일염을 만들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평안남도 용강군 주을염전으로 징용갔던
박삼만씨가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개펄을 막아 '구림염전'을 개척한 것이 시초이다.
그 이전까지 바닷물을 커다란 솥에 끓이는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구림염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림염전에 의한 소금제조방법은 주변 신안군 다른 섬까지 전해졌다.
비금도에서는 그 이듬해인 1948년, 450세대의 주민들이 '대동염전조합'을 결성하고 보리개떡과 나물죽을 먹으며, 1백여 ha가 넘는
광활한 염전을 조성해 냈다.
5.16쿠테타 직후에는 화폐개혁과 더불어 소금값이 한가마에 8백원까지 뛰어 염전 인부들까지 돈지갑 실밥이 터질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옛 경기를 다 잃었지만 한때는 "돈이 날아다닌다"라는 뜻의 비금도(飛金島)라고 불릴 정도로 염전사업이 호황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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