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기행]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호, 환벽당(環碧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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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행]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호, 환벽당(環碧堂)

by 정산 돌구름 2012. 3. 5.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호,  환벽당(環碧堂)..

 

○ 탐방일 : 2012년 3월 3일 (토)

○ 소재지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

○ 환벽당(環碧堂) 소개

 1972년1월29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金允悌)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와가이며, 당호는 신잠이 었다.

 송시열이 쓴 제액(題額)이 걸려 있고, 임억령·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김윤제는 광주광역시 충효리 태생으로, 호는 사촌(沙村)이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간 후 나주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으며, 그의 제자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철과 김성원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 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김윤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정철은 16세 때부터 27세에 관계에 나갈 때까지 환벽당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환벽당 아래에 있는 조대와 용소는 김윤제가 어린 정철을 처음 만난 사연이 전하는 곳이다.

 조부의 묘가 있는 고향 담양에 내려와 살고 있던 당시 14살의 정철이 순천에 사는 형을 만나기 위하여 길을 가던 도중에 환벽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때마침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 창계천의 용소에서 용 한마리가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꿈을 깬 후 용소로 내려가 보니 용모가 비범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었다.

 김윤제는 소년을 데려다가 여러 가지 문답을 하는 사이에 그의 영특함을 알게 되었다.

 그는 순천에 가는 것을 만류하고 슬하에 두어 학문을 닦게 하였다.

 정철은 이곳에서 김인후, 기대승 등 명현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학문과 시를 배웠다.

 후에 김윤제는 그를 외손녀와 혼인을 하게하고 그가 27세로 관계에 진출할 때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환벽당은 정철의 4대손 정수환이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현재 연일 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환벽당 전경...

 

 

 

 

 

환벽당 아래의 무등산옛길(3구간) 마지막 지점...

 

 

 

 

취가정 주차장에서 바라본 무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