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2년 3월 21일(수)
○ 소재지 : 전남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 179
○ 만연사(萬淵寺) 소개
만연사는 고려 희종 4년(1208)에 만연(萬淵)이 창건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만연이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송광사로 돌아가는 길에 현재의 절 부근에서 잠시 쉬다 잠이 들었다.
꿈에 36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시려고 불사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꿈에서 깨어 주위를 돌아보니, 눈이 내려 많이 쌓여 있었으나
자신이 누웠던 자리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를 신비롭게 여겨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하다가 절을 세웠다고 한다.
창건 이후 한때는, 대웅전과 시왕전·나한전 등의 전각을 비롯하여 승당·선당·동상실·서상실·동별실·서별실 등 많은 건물이 있었고,
누각도 설루·사천왕문·삼청각·사리각 등이 있는 큰 사찰이었다. 이 중 사리각은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를 모셔 둔 건물이었다고 한다.
산내 암자도 학암당·침계당·동림암·연혈암 등 4개나 되었다.
『창의일지(倡義日誌)』에 따르면, 병자호란 때는 군사들에게 부식과 종이를 대주던 사찰이었다.
1793년(정조17) 9월 전각 일부가 불에 탔는데, 이때 고려때부터 전해오던 진언집 판각이 불에 탔고, 1794년(정조 18) 경관이 중건하였다.
구한말에는 명창들이 수학하던 곳으로 이름나 당시 국창으로 불리던 이동백과 이날치가 이곳에서 창을 공부하였고, 정광수와 임방울
등 명창들도 여기서 공부하였다. 6·25전쟁 때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없어졌고, 1978년 철안이 중창한 뒤 불사를 계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는 비구 전법도량이며, 산내 암자로 선정암과 성주암이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명부전·한산전·천왕문·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안에는 목조삼존불상과 산신상을 비롯, 칠성탱화·산신탱화·천룡탱화 등의 탱화와 동종이 있다. 유물로는 영산회상도 괘불이 유명하다.
만연사괘불탱(萬淵寺掛佛撑)은 2002년7월2일 보물 제134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인 1783년(정조 7) 3월에 비현화공이 제작하였으며 크기는 821dm, 624cm이다.
괘불함에 보관되어 있는데 해마다 4월 초파일이 되면 이 괘불을 법당 앞에 걸어두고 법회를 연다.
괘불이란 부처를 내어건다는 뜻으로 부처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야외에 거는 불화이다.
국가에 천재지변이 생겼을 때, 기우제, 영산재, 예수재, 수륙재 같은 큰 법회나 의식이 있을 때 괘불석주(掛佛石柱), 지주(支柱) 또는
괘불대에 고정하여 사용한다.
만연사 괘불의 본존불은 아미타여래 입상으로 육계와 나발을 갖추었고 눈은 정안으로 약간 아래를 내려다보는 전형적인 불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옷깃에 화려한 무늬를 더했다.
머리주변은 둥글게 표현했는데 두광(頭光) 안쪽은 녹색으로 칠하고 노랑, 빨강, 청색으로 돌려 문양을 내었으며 신광(身光)은 없다.
비슷한 크기와 형태로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상을, 오른쪽 덕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협시보살(脇侍菩薩)로 표현했다.
이 괘불은 현재까지 조사된 10여점의 전남도 괘불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뒤떨어지나 보존상태나 구도 등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 전기에 제작된 괘불은 현재까지 확인된 바 없고 1622년(광해군 14)에 조성된 나주 죽림사의 세존괘불탱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7세기 말까지 제작된 괘불이 전국적으로 10여점이 있고, 18~19세기 말에 조성된 것이 40여점 있다.
, 봄날처럼 파란하늘의 맑고 화창한 날씨에 화순 만연산 자락의 만연사를 찾았다.
아담한 사찰.... 아직 봄이 무르익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이따금 바로 아래 산으로 오르는 산객들만 오가고 있다.
화순읍에 접어들어 화순전남대병원으로 가다가 교리터널을 지나 등구리로 들어서 길가의 보호수를 지나면 만연저수지가 나타나고,
이어 주차장에 커다란 만연사 표지석...
5.18민중항쟁 당시에 계엄군 학살만행에 항거하는 화순시민군들이 화순경찰서 무기고에서 탈취하여 유사시에 사용하려 했던
총기 300여정을 숨겨둔 곳...
바로 위로는 만연산이 솟아있다...
일주문 앞의 보호수로 지정된 젓나무(전나무)..
수령 300년으로 둘레 3.5m, 높이 29m인 이 나무는 조계산 수선사 주지로 있던 진각국사 혜심이 심었다고 한다...
나한산 만연사 일주문...
나한산은 만연산의 옛이름...
일주문을 들어서면 꽃비가 내리는 하늘, 화우천(華雨天)..
옛날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시려고 삼매에 드셨을 때 하늘에서 4종의 꽃(만다라화, 마하만다라화, 만수사화, 마하만수사화)이
비오듯 쏟아졌다는데서 유래하였다..
만연사 대웅전이 나타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안에는 목조삼존불상과 산신상을 비롯하여..
칠성탱화·산신탱화·천룡탱화 등의 탱화와 동종이 있다..
대웅전 앞의 괘불지주..
높이 1.55m,너비 56cm,두께 23cm 내외 가량의 석조지주 2쌍이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좌우에 위치하고 있다.
향좌의 지주는 46cm의 거리를 두고 있고, 향우의 것은 55cm의 거리를 두고 서 있다.
각 지주에는 약 10cm크기의 간공이 위 아래로 2개가 뚫려있는데 간공 사이는 향좌가 60cm, 향우가 68cm가량이다.
하단부에는 약간의 균열이 나 있으며, 건립 시기는 괘불을 조성한 시기와 일치할 것으로 추정한다..
보물 제1345호로 지정된 만연사 괘불탱..
이 괘불은 조선시대 후기 1783년(건륭 48)년 3월에 영산회상탱으로 조성되어 화순 나한산 만연사에 봉안되었다는 화기를 가지고 있다.
제작에는 비현(丕賢)스님이 참여하였는데 비현스님은 선암사 괘불 봉안에서는 대화주로, 흥국사 괘불 제작에서는 금어로 활약하였다.
괘불의 크기는 가로 586cm, 세로 760cm이고, 괘불함은 길이 674cm, 너비 34 cm, 높이 31cm 이다.
푸른색이 화면 전반을 휩싸고 있는 이 괘불은 천의 일부와 가사를 붉은 색으로 채색했으며 바탕은 삼베이다.
적녹색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임진왜란 이후 강희, 건륭 연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조선후기의 특징이다.
본존불은 아미타여래입상으로 육계와 나발을 갖추었고 눈은 정안으로 약간 아래를 내려다보는 전형적인 불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의 옷깃에 화려한 무늬를 더했으며, 몸 주변에 그리는 신광은 없고, 머리주변은 둥글게 표현했다.
두광 내에는 녹색으로 칠하고 노랑, 빨강, 청색으로 돌려 문양을 내었다.
비슷한 크기의 형태로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상을, 오른쪽에는 덕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표현하였다.
두 협시는 지금까지의 삼존도 양식과는 달리 주존의 크기와 대등한 위치에 배치되어 조선 후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괘불 아랫면에는 제작연대와 괘불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불화를 그리던 화공들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순치명동종(順治銘銅鐘)..
조선 1660년(현종 1)에 조성한 이종은 높이 97cm, 종구 65cm이다.
용뉴는 높이 24cm 이고, 두 마리의 용이 각기 반대쪽을 향하여 머리가 천판에 거의 닿고 있으며 두 발의 발톱은 각기 3개씩인데
일부는 부러진 상태이다. 음통은 파손되고 없으나 지름 4.5cm의 구멍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다..
천판에는 12개의 연잎이 새겨져있고 그 아래에 일단의 띠를 돌렸다.
띠 아래에는 범자 18글자를 돌려가며 새겼고, 범자 아래에는 4개의 유곽이 있는데 유곽 안에는 각기 9개의 종유가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가로 25cm의 보살입상 4구가 새겨져있고 유곽아래에는 하대를 돌렸는데 하대 안에는 당초문이 새겨져있다.
종신에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범종각 앞에서 잠시 명상에 잠겨 범종소리를 상상하면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대웅전 옆 명부전..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있으므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봉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
이 밖에도 판관(判官) 2구, 녹사(錄事) 2구, 문 입구에 장군(將軍) 2구 등 모두 29개의 존상(尊像)을 갖추게 된다.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 도량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또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가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며,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염라대왕도
이 10명의 지옥왕 가운데 다섯번째 왕이다.
원래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부터 49일까지는 7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소상(小祥)·대상(大祥)까지 열 번에 걸쳐 각 왕에게
살아 있을 때 지은 선악의 업을 심판받게 된다고 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위하여 절에서 재(齋)를 모시게 된다.
이 때 명부전에서 재를 모시는 것은 지장보살의 자비를 빌려 시왕의 인도 아래 저승의 길을 벗어나 좋은 곳에서 태어나게 하고자 한다.
명부전의 후불탱화는 소재회상도(消災會上圖)로, 지장보살 뒤에는 지장탱화를 봉안하고 시왕 뒤편에는 명부시왕탱화를 봉안한다...
장독대, 그리고 멀리 만연산...
화려하거나 크지는 않지만 저마다 깊은 역사와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
세속의 온갖 잡념을 털어내고 고요한 명상에 잠길 수 있으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푸근한 마음이 있는 곳....
우리가 이런 아담한 절을 찾아가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자리한 ‘참된 나’를 발견하려는 여정이기도 하다..
아픈 가슴 달래며 고요한 곳에 자리한 작은 절을 찾아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대웅전 앞 주렁주렁 배롱나무에 매달려있는 연등..
장독대와 어울려 아름답다...
대웅전 앞을 거닐면 어느덧 번뇌는 저만큼 달아나버리고 텅 빈 마음에 무언가 충만해진 느낌...
지금 이순간 만큼은 욕심도 미움도 사랑도 다 버린 무욕의 상태...
파란 하늘과 만연산...
소박한 법당 앞에 무심코 한번 서보거나, 자기 내면에 자리한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법당 마루에 앉아 있으면...
잠시나마 탐욕을 씻고 홀연히 만나야 할 미소짓는 우리 내면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세속에 얽매여 오욕칠정에 사로잡혀 있다가 이렇게 소박한 절 안에 들어서면 종교를 초월하여 마음은 숙연해 지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만연사의 설화..
화순의 진산 만연산의 옛 이름은 나한산으로 많은 암자가 있었다. 그 중의 한 암자에 예쁜 상좌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만연이었다.
한 승려가 이 만연 상좌를 연모하여 그녀를 숲속으로 유인하여 겁탈하자 만연은 목숨을 끊었다.
그날 밤 그 승려의 꿈에 만연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죽었으나 나주목사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다. 너는 지금까지 지은 죄업으로 죄옥을
면치 못할 것이니 하루 속히 너의 잘못을 뉘우치고 나한산을 떠나 다시 착한 불자가 되어라” 라고 하였다.
그는 꿈이 너무 생생하여 주지스님에게 꿈을 말하고 나주목사를 찾아가 속죄를 하며 알아보니 과연 득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기 전 나주목사의 꿈에 어린 사미승이 나타나 “저는 화순 나한산에서 공부하던 몸으로 억울하게 횡사를 당하여
다시 인연 따라 목사님 댁에 환생한 만연이옵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목사는 이상하게 여겨 부인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몽한 상좌의 말대로 이름을 만연이라고 지어서 애지중지 길렀다.
만연이 16살이 되자, 출가할 것을 결심하고 목사로부터 허락을 얻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나주목사는 비명으로 죽은 뒤 환생한 아들의 인연에 따라 산기슭에 절을 세워 아들 만연에게 주어 불도를 닦도록 하였다 한다.
그 후부터 이 절을 만연사라 하였으며, 만연사가 있던 나한산을 만연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절 서쪽 계곡에는 옛날 만연이가 살았다는 작은 암자터가 있는데 이 암자터에는 진각국사가 심었다는 오래된 나무가 있고 부도가 있다.
이 절 터는 스님들이 열반하면 여기에서 다비식을 거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롯이 자리잡은 사찰을 빠져나와 일주문을 나서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바로 아래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고옥...
선정암으로 오르려고 하였지만 병원 시간이 다되어 되돌아오는 길목에서 나무사이로 바라본 만연사....
화순 전대병원 앞에서 바라보니 멀리 만연산과 중머리재, 그리고 천왕봉이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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