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기행] 백제 고찰 천봉산 대원사(大原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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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기행] 백제 고찰 천봉산 대원사(大原寺)

by 정산 돌구름 2012. 4. 12.
[보성기행] 백제 고찰 보성 천봉산 대원사(大原寺)


탐방일 : 2012. 4. 11(수)

탐방지 : 천봉산 대원사(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교  통 : 광주순환도로~22번국도~15번국도~주암댐 죽산교~대원사

대원사 소개

  천봉산 대원사(大原寺)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백제 무령왕 3년(503년)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창건 당시에는 죽원사(竹原寺)라 불렀다고 한다.

  통일신라때는 오교구산(五敎九山) 중 열반종의 8대 가람에 들었다 하며, 1260년(고려 원종1) 송광사 제5대 자진원오국사 천영(天英)이

  사세를 크게 일으켜 대가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때 산 이름도 중봉산(中鳳山)에서 천봉산으로 바꾸고 절 이름도 죽원사에서 대원사로 바꾸었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하였으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757년(영조 33) 불에 탄 것을 1759년(영조 35) 현정이 중창하면서 건물 16동을 복원하였고, 거느린 암자만도 상원암호적암

  12개나 되었다. 1948년까지만 해도 10여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1948년 여수·순천사건 때 대부분 불에 탔다.

  1990년 선원과 요사·일주문·주지실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과 요사·일주문·주지실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1948년 여수·순천사건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을 때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배흘림을 한 기둥이 주목된다.

  내부에 아미타불본존불로 모셔져 있고, 협시불은 오른쪽에만 있다. 왼쪽 협시불은 1950년 6.25전쟁중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한다.

  1981년10월20일 전남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된 뒤 1982년 해체 복원된 바 있다. 극락전 오른쪽에 있는 부도는 고려 때 이 절을 크게

  일으킨 자진국사 천영의 부도로, 1973년4월21일 전남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총 높이 2.6m이다.

 

 

  백제 무녕왕 3년(50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의 창건설화에 의하면,

  경북 선산군 모레네 집에 숨어 살면서 불법을 전파하던 아도화상은 하룻밤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말하였다.

  “아도!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 나거라, 아도! 아도!”

  하는 봉황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 봉황이 날갯짓 하는 것을 보았다.

  봉황의 인도를 받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는데 그곳에서 봉황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봉황의 인도로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3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매다가 마침내 하늘의 봉황이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내고 기뻐 춤추며 산 이름을 천봉산이라 부르고 대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한 곳인 대원사 왕벚나무 터널을 지나 천봉사 주차장...

오랜만에 다시 찾은 천봉산 대원사...

태아령(胎兒靈)... 부모와 인연은 맺었지만 이 세상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 가엾은 어린 영혼...

이 어린 영혼을 달래는 태아령 천도로 유명한 사찰이다...  

 

주차장에서 오르면 일주문...

기둥 2개를 나란히 세운후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짜올린 다포식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의 문이다.

일주문에 들어설 때는 오직 일심(一心)으로 불법에 귀의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세속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사찰에 들어섬으로써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화문... 일주문 바로 옆으로 나있는 또다른 길에는 우리는 한꽃이라고 쓰인 아름다운 문...

 

비록 새롭게 지었지만 아름답다..

 

조용히 생각하며 걷는 명상과 평화의 길을 따라 오른다...

 

대원사 귀자모신(鬼子母神) ... 하리제(訶利帝)·하리저(訶利底) 등으로 음사(音寫)하고, 악녀(惡女)·천모(天母) 등으로 옮기며,

애자모(愛子母)·환희모(歡喜母)·공덕천(功德天)이라고도 한다.

포악하여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잡아먹는 야차녀(夜叉女)였으나, 후에는 석가의 교화를 받아 불법 및 유아양육의 신이 되었다.

그는 전신이 사악(邪惡)하여 왕사성(王舍城)에 와서는 아이를 잡아먹곤 하였다.

석가가 그를 제도하기 위하여 그의 한 아들을 숨겨 놓자, 야차녀는 비탄에 빠져 슬피 울었다.

이때 다른 부모의 슬픔을 상기시켜 주는 석가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여 안산(安産)과 유아보호의 서원(誓願)을 하였다.

당시 하리티라는 야차귀신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의 아기를 유괴해서 잡아먹으므로 사람들이 부처님께 와서 호소하였다.

부처님은 하리티의 500명 자식 중 막내인 빈가라를 신통력으로 발우 속에 감추었다.

7일 동안 미친듯 제자식을 찾아 헤매던 야차귀신이 부처님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였다.

“너는 500명의 자식을 두고도 마음이 아픈데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생각해 봤느나?”하면서

사람의 아기를 잡아먹고 사는 야차귀신을 깨우쳐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불제자가 되게 하였다.

그후 하리티는 어린 유아들을 보호하고 산모들의 출산을 돕는 사랑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유아양육과 해산의 신“귀자모신”을 참배하면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미와 양초, 향을 준비하는 곳이다...

 

부모공덕불(父功德佛)

"집안에 부처님이 계시니 바로 부모님입니다"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에 이 부모공덕불을 만든 의미가 깃들어있다.

부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부모님이라는 것.

나무한테 뿌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렇듯 사람의 뿌리를 부모님과 조상으로 보는 것이다.

부모공덕불은 그런 부모님에 대한 불효를 뉘우치고 은혜에 눈뜨게 하는 지혜를 가르치는 부처님인 것이다.

운주사에 있는 석조불감의 형태로 만들어진 이 불의 앞면은 눈물 흘리는 아버지불이고 뒷면은 가슴에 맺힌 것이 많은 어머니불이다..

 

부모은중경에서 말하는 부모님의 열가지 은혜는...

1. 회탐수호은(懷眈守護恩)/잉태하여 품에 품고 지켜주시는 은혜

2.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해산함에 고통을 이기시는 은혜

3.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

4. 연고토감은(咽苦吐甘恩)/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이시는 은혜

5.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마른자리 아기 뉘고 젖은 자리 누우신 은혜

6.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7.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은혜

8.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멀리 떠나면 염려해 주시는 은혜

9.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자식을 위해서 나쁜 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은혜

10.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끝없이 사랑해 주시는 은혜...

 

염주와 목탁..

통일신라시대 원효가 널리 퍼뜨린 염불선은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과 달리 어려운 교리나 경전을 모르더라도

"나무아미타불"을 지극정성으로 외면 성불할 수 있다는 희망을 대중들에게 안겨준 수행방법이었다...

 

일상 속에 염불을 생활화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나뭇가지에 걸린 염주와 목탁이다...

 

연지문 옆으로 연못과 금종루...

 

연지문(蓮池門)...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건립되어 있는 한칸의 문...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공포는 익공형식으로 짜올렸으며, 문을 달지 않고 둥근 원을 만들어 미적감각을 주었고 연못과 어울려 아름답다..

 

금종이 걸려 봉안되어 있는 금종루(金鐘樓)...

기둥을 세워 겹처마로 사각지붕을 올린 정자(亭子) 형식이며, 주위에는 난간을 둘렀다...

 

또 다른 방향은 백제고찰..

금종은 항아리모양의 종신부에는 화려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으며, 하대(下帶)에는 시주자의 이름이 주조되고, 

꼭대기에는 음통과 용뉴가 조각되어 있다. 범종의 장엄한 소리는 중생을 착한 길로 인도하며 해탈의 길로 승화시켜주는 의식구이다.

또한,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조성된 것이다...

 

 

아름다운 북도 함께 걸려있다..

 

다른 방향은 연화불국(蓮華佛國)...

 

곳곳에 아름다운 모습들...

 

빨간 모자를 쓴 어린 불상...

 

극락전앞의 불족... 부처님의 발바닥이 새겨진 연화석이 있는데 커다란 둥근 돌 주위에는 16잎의 복련(伏蓮)이 새겨져 있다.

평평한 윗면에는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족(佛足) 즉, 부처님의 발바닥을 파내어 조각하였다.

불상이 없던 무불상시대에는 부처의 족적이 가장 큰 예배대상이었다고 한다..

 

대원사 극락전(極樂殿)... 1981년10월20일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되었다.

지금의 극락전은 영조 33년(1757)의 대화재로 불타 없어진 것을 4년에 걸쳐서 다시 지은 것이다.

한국전쟁 때 대원사의 대부분 전각이 불탔으나 극락전은 보존되었으며, 1982년에 해체하여 복원하였다.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 전·후면에만 주심포, 중간에 공간포 2조씩을 배치한 다포식이면서 맞배지붕으로 특이한 건축양식을 보인다...

공포는 비교적 복잡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연꽃봉우리 등이 조각되어 있어 화려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포식 건물이 일반적으로 팔작지붕집인데 반해, 이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어서 특이하다.

기단은 전면에 1m 이상의 잡석 축대를 쌓고 양면 및 배면은 얕은데 전면 가운데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초석은 자연석으로 덤벙주초식이며 약간 배흘림기둥이고 귀기둥에는 미세한 귀솟음이 보인다... 

 

극락전 삼존불(三尊佛)...  

불단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손가짐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상호(相好)를 갖추고 있다.

중앙에 모셔진 아미타불좌상은 길고 살찐 얼굴에 어색하게 보이는 이목구비로 결가부좌하여 아미타구품인을 결하고 있다.

오른쪽에 합장을 하고 있는 대세지보살은 보관에 정병이 새겨져 있고 왼쪽에 모셔진 관음보살은 화불(化佛)이 새겨진 보관을 썼다.

뒤에는 붉은 바탕에 선묘하여 얼굴부분만 밝게 채색한 아미타후불탱이 걸려 있다..

극락전의 향우측에는 칠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하늘의 별인 북두칠성은 늘의 일월성진(日月星辰)을 다스리고 천재지변을 통솔하는 주제신(主帝神)으로 승격하게 된다.

신으로 숭배되어 온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부처님으로 승격시키고 칠성의 주존을 치성광여래로 모시며 그림으로 도상화한 것이

칠성탱(七星幀)이다. 화면의 중심에는 양 손으로 금륜을 들고 있는 치성광여래가 있으며, 좌우에 월광, 일광을 포함한 칠여래가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아름다운 동자불...

 

부모된 사람들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다...

 

조그만 불상들...

 

줄지어 서있는 석불... 그리고 빨간 모자의 작은 석불들...

 

태안 지장보살상(胎安 地藏菩薩像)...

 

낙태된 어린 영혼을 천도하기 위하여 1993년6월에 조성된 석조지장보살상이다.

이 보살상이 조성되어 있는 위치는 조선 중기때 있었던 지장전(地藏殿)의 자리였다고 한다.

또한, 이 자리는 주위 산세로 보아 여성의 자궁에 해당하며 그 중심이라고 한다...

 

지장보살은 깍은 머리에 스님 모습으로 한 손에는 육환장(六環杖)을 잡고 한 팔에는 어린 아이를 안고 서 있다.

앞에는 동자상의 지장보살상이 108분을 모시고 있어 야외 지장전이라고 할 수 있다...

 

1973년4월21일 전남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대원사 자진국사부도(慈眞國師浮屠)....

이 부도는 송광사 제5대 국사로서 고려 원종 1년(1260년)에 대원사를 중건한 자진원오국사의 부도이다.

높이 2.36m로 각 면에는 보살과 사천왕 등이 조각되어 있다.

하대석에는 복판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상대석에는 8엽의 앙련(仰蓮)이 두드러지게 조각되어 아름다운 모양을 갖추고 있다.

6·25전쟁으로 사찰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극락전과 함께 원형이 파손없이 유지되어 온 고려 후기의 부도이다.

대원사 극락전 옆 평평한 대지위에 조성되어 있는 부도로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자진원오국사는 송광사 제5세 국사로서 1286년(충렬왕 12) 72세로 입적하였다. 이 부도는 입적한 후인 고려시대 말경으로 추정된다...

 

아도영각(阿道影閣)...

정면 1간, 측면 1간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조그만 전각으로 대원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아도화상의 조각상과 영정이 봉안되어있다.

 

아도는 고구려의 승려로 아도(我道), 아두(阿頭)라고도 한다.

신라에서 포교를 하려 하나 신라인이 불교를 싫어하여 숨어살다가 신라 공주가 병이 들어 병을 치료하니 왕이 기뻐하며 절을 짓고

불교를 일으켰다고 한다. 초가로 지은 흥륜사(興輪寺)를 처음 짓고 스님께서 설법하니 하늘 꽃이 떨어졌다고 한다...

 

아름다운 홍매와 석불...

 

성모각(聖母閣)..

정면과 측면이 각각 1간인 작은 전각이며, 겹처마에 맞배지붕인데 지붕이 몸에 비하여 큰 편이다.

창호는 전면에 2분합의 여닫이 문을 달았는데, 꽃창살로 장식되어 있는데 안에는 성모상(聖母像)을 모시고 있다.

6·25 당시 불타 없어진 산신각을 199년 복원해 '성모각'이라 이름하였다.

일반적으로 산신각에는 호랑이를 거느린 할아버지상을 모시지만 이곳에선 성모산신이 사슴을 거느리고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는 중생을 어머니 품처럼 감싸주는 혈자리에 성모각이 있는 것은 아버지에게 말하기 어려운 부탁을 어머니에게 하듯이

어머니 산신인 성모에게 마음의 근심과 걱정을 기대라는 의미라고 한다...

 

수관정(睡觀亭)... 정면, 측면 각 1간으로 죽음을 관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정자 내에는 죽음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관이 놓여있고, 죽음을 체험하는 순서가 벽에 붙어 있어 체험해 볼 수 있다...

 

수관정 옆에는 정자와 연못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황희영각(黃喜影閣)...

숭유억불정책의 조선시대에 사찰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배경으로 경내에 황희영각을 건립하고 진영을 봉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대에 여순사건으로 대원사가 불타면서 영각마저 소실되자 전라남도의 후원과 황씨 광주 보성 종친회의 협조로

2002년 황희영각을 건립하고 선생의 영정을 모사하여 다시 봉안하였다고 한다..

황희선생은 조선 세종 때 의정부 영의정을 역임하고 청사에 빛나는 위업과 송공이 지대해 역사적 인물로 추앙받는 분이다.

대원사와의 인연은 1419년 남원에서 유배되어 근신하시며 경서와 시운을 탐구하던 중 보성 대원사를 참배한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황희정승의 넷째 아들인 직신공이 보성땅에 내려와 살면서 황희정승의 영당을 대원사에 건립하게 되었다...

 

김지장전으로 내려서는 길목의 조그만 마애삼존불...

 

바르도(Bardo)... 틈새라는 티벳어로 죽음에서 환생까지의 49일간의 중간계를 뜻한다고...

 

김지장전(金地藏殿)..

정면 3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 건물로 2001년에 지어졌는데 신라왕자 김교각스님기념관이 건립되어 그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김지장 성인은 신라의 왕자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가서 중국의 4대 성인으로 추앙받고, 육신불이 되신 인물이다.

중국 구화산 기록에 따르면 ‘김교각이 차 종자를 신라에서 가져와 구화산에 심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씨를 가져온 시기보다 132년이나 앞선 것이다...

 

 

김교각스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김지장전을 건립하고, 김지장전의 3면 벽에는 김지장 스님의 일대기를 벽화로 그렸다고...

 

 

알 수 없는 부도...

 

옥불전(玉佛殿)...

정면과 측면 3간의 맞배지붕 건물로 2001년에 완공되었으며, 안에는 천불이 모셔져 있고, 옥불과 와불도 있다고 한다...

 

묘길상전(妙吉祥殿)..

옥불전 옆 숲에 있는 2000년에 지어진 정면과 측면 각1간의 맞배지붕 건물로 안에는 티벳식의 세분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천봉선원(天鳳禪院)... 정면 5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천봉선원 앞에서 바라본 경내 전경...

 

아름다운 풍경이다..

 

경내를 나선며...

 

 

대원사 티벳박물관...

티벳의 정신문화와 예술세계를 소개하고 한국 불교와 영적인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2001년7월 설립 개관하였다.

이 박물관은 대원사 주차장 위의 터를 닦아 티벳사원 양식으로 지상2층, 지하1층, 옥상 휴게실등 총 건평 300평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이 15년 전부터 모은 1000점이 넘는 티벳 미술품이 전시되고 있다.

히말라야 불교왕국 티벳, 그들이 이룩한 빛나는 예술세계와 뛰어난 정신문화, 그리고 죽음의과학을 한국의 작은티벳을 체험할 수 있다..

 

수미광명탑(須彌光明塔)...

티벳박물관 앞에 2003년에 건립된 티벳식 불탑으로 높이 15m에 달하는 큰 탑이다...

불탑장엄에는 호아동으로 제작된 상륜부 첨탑과 11면천수관음상을 모신 감실 등이 티벳 망명정부의 협조로

인도에서 제작되어 순금으로 옷을 입혔고 불탑의 바닥과 탑신은 백옥으로 장엄하였다고 한다...

 

2001년 박물관 개관시 달라이라마께서 축하메시지를 보냈고, 티벳 신탁승 툽덴 린포체는 가섭불 사리 1과를,

네팔 불안불탑으로 유명한 슈암부사원의 주지스님이 카일라스(수미산) 사리 33과를 보내왔다.

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2003년 5월5일 티벳식 불탑인 수미광명탑을 완성하여 사리를 봉안하였다...

 

수미광명탑을 참배할 때는 자비심을 키우는 「옴 마니 반메 훔」을 염송하며 세바퀴 돌고 들어서야 한다고 한다...

 

안에는 약사여래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내부의 불화는 티벳 망명정부의 궁중화가였던 믹말이 조성한 티벳 전통불화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