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기행] 모후산 유마사(維摩寺)와 보물 제1116호 혜련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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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기행] 모후산 유마사(維摩寺)와 보물 제1116호 혜련부도

by 정산 돌구름 2012. 4. 12.
[화순기행] 모후산 유마사(維摩寺)

 

탐방일 : 2012. 4. 11(수)

탐방지 : 모후산 유마사(전남 화순군 남면 유마리)

유마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백제 무왕 28년(627년)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다. 보안은 이서면 보산 뒤에 보안사(普安寺)라는 절도 지었다고 한다.

  고려 때에는 귀정암(歸靜庵)과 금릉암(金陵庵) 등 8개의 암자를 거느려 당시 호남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

  17세기에 경헌(敬軒)이 중건하였고, 가안(可安)이 나한상을 모셨다.

  1889년(고종 26) 전라도 관찰사 김규홍이 중수하였고, 그 뒤로도 오호연·김해연 등이 중수한 바 있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근래에 주지 박상규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산신각·백운당·종각·일주문요사채 2동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내부에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삼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약사불상과 영산후불탱화, 지장·칠성·산신탱화, 제석천룡도 등도 함께 모셔져 있다.

  종각에는 범종이 없는데, 지리산 화엄사로 옮겼다고 한다. 

  유물로는 보물 제1116호로 지정된 유마사해련부도(維摩寺海蓮浮屠)가 유명하다.

  절을 창건한 유마운의 부도로 전해지는데, 높이 2.54m이며 상륜부는 사라졌다.

  그밖에 1.7m의 경헌대로사리탑(敬軒大老舍利塔)이 절 입구에 서 있다.

  해련부도와 함께 1981년에 복원된 것으로 대석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또 근처에 1861년(철종 12)에 조성된 현감 정원필의 영세불망비가 남아 있다.

  한편 절 서쪽 계곡에는 길이 5m, 너비 3m의 보안교(普安橋)가 놓여 있다. 이 다리에는 ‘유마동천 보안교(維摩洞川普安橋)’라는 글자와

  시주자로 여겨지는‘백운거사 양연법(白雲居士梁蓮法)’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리를 놓기 위해 여러 명이 모후산 중턱에 있던

  이 바위를 옮기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자 보안이 치마폭에 싸서 이곳에 옮겨 놓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주차장을 올라서면 거대한 유마사표지석...

 

바로 위에 일주문, 편액이 걸려있지 않다...

 

일주문 옆의 보안교(普安橋)...

길이 5m, 폭 3m 정도의 돌다리로 계곡 양 끝에 축대를 쌓고 하나의 납작한 돌로 상판을 걸쳐놓은 구조이다.

이 다리의 윗면 왼쪽에 ‘유마동천보안교(維摩洞天普安橋)’라 쓰여 있어 예전에는 이 계곡을 절이름에서 빌어 ‘유마동천’이라 하였으며,

다리의 이름이 보안교임을 알 수 있다. 다리의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량련호(觀世音菩薩梁蓮浩)'라 쓰여 있고,

 ‘백운거사 양연법(白雲居士 梁蓮法)’을 새겨 놓았다...

 

이 보안교는 유마사의 창건주인 유마운의 딸 보안(普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안은 불교에 귀의한 도통한 비구니로, 적벽 근처에 보안사를 창건하였으며 유마사에 있는 제월천(濟月泉)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한 이 다리를 놓기 위해 모후산 중턱에서 많은 인부를 동원해 석재를 운반하였으나 험한 산길이라 작업의 진척이 느려지자,

보안이 치마폭에 바위를 담아와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보물 제1116호로 지정되어 있는 해련부도(海蓮浮屠)...

원래 유마사지 서쪽 산기슭에 무너져 방치되던 것을 1981년에 현 위치로 옮겨온 것으로, 현재 상륜부는 잃어버린 상태이다.

모든 부재의 평면은 팔각으로 되어 있으며, 세부양식을 보면 지대석은 하나의 돌로 깎은 팔각의 윗면에 각호각형 3단의 괴임대를

마련하고 안상을 새긴 하대받침을 놓았다. 하대석은 8각의 각 면에 안상을 새기고 그 위로는 측면에 8각의 돌출대를 돌렸으며,

윗면 역시 각호각형의 3단 괴임대를 조출하여 하대를 삼았다. 중석 받침의 복련은 8각의 각 면에 귀꽃을 조각하여 화문을 장식하였고,

그 위로는 16엽 중판을 양각으로 새겨 각호각형의 3단 괴임대와 연결하였다.

중석은 하단에 8각 돌출대를 두르고 각 면에다 큼직한 안상을 새겨 하면에 3단의 각형받침과 8판의 연화문이 각출된 앙련의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탑신 역시 8각으로 각 면에 우주를 모방하였고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표현하였다...

 

앞면에는 문의 형태를 조각하고 그 안에 귀면과 문고리를 장식하였으며, 뒷면에도 문의 형태를 조각하였으나 그 안의 장식은 자물쇠와

문고리로서 앞면과는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탑신의 상단에 ‘해련지탑(海蓮之塔)’이라는 명문을 세로 두 줄로 음각하여 부도에 모신 주인공을 알려주고 있으나,

아쉽게도 스님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옥개석은 넓고 평박한 편으로 윗면에 기왓골이 없고 우동이 뚜렷하며, 두툼한 우동마루 끝에는 귀꽃을 장식하였다.

수평으로 된 아랫면은 엷은 3단의 받침을 마련하고 빗물의 침수를 막기 위한 넓은 홈을 팠다.

이 부도는 통일신라 9세기경에 발달한 8각 원당형의 전형양식을 그대로 고수한 예로서, 인근에 있는 쌍봉사 철감선사부도와 함께

나말여초의 석조물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며, 조성연대는 고려시대 전반기로 추정된다.

잃어버린 상륜부를 제외한 현재 높이는 249cm이며, 기단부와 탑신부의 높이는 각각 79cm, 170cm이다...

 

가안선자탑(可安禪子塔)과 경헌선사탑(敬軒禪師塔)..

가안선자탑은 사찰 입구 왼편에 있는 부도로서, 가안선자(可安禪子)의 사리를 모신 곳이다.

탑의 옥개석을 사용하여 부도의 지대석과 옥개석으로 삼았다. 지대석은 층급 받침이 3단인 옥개석(屋蓋石)을 뒤집어 이용하였고

그 위에는 11엽의 앙련(仰蓮)을 양각한 높이 22㎝인 원형의 탑신(塔身) 괴임을 받치고 있다.

부도의 옥개석은 층급 받침이 3단인 탑의 1매를 올리고 그 위로 층급 받침이 3단인 작은 옥개석 1매를 거꾸로 올렸다. 부도의 석재로

이용된 옥개석은 모두 3매이며, 지대석으로 이용된 옥개석은 현재 거꾸로 놓여 있고 낙수면은 묻혀 있어서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다.

옥개석의 너비는 113㎝로 탑신 위에 올려져 있는 옥개석은 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합각의 반전은 보이지 않고 거의 일직선을 이룬다.

탑신은 세장하고 배흘림이 표현되었으며, 중앙에 '가안선자지탑(可安禪子之塔)'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탑신받침의 연꽃잎 안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겼는데, 그 가운에 토끼인지 다람쥐인지 모를 동물조각이 눈길을 끈다.

이 부도의 위아래에 있는 석탑의 옥개석은 옥개받침의 크기가 고르지 못한 3단이며, 우동마루가 희미하게 표현되었다.

부도의 전체 높이는 160㎝, 탑신의 높이는 63㎝, 너비 53㎝이다.

가안이란 스님의 행적은 현재 자료가 없어 파악할 수 없다. 이 탑재들로 보아 유마사에 석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헌선사탑은 사찰 입구 오른편에 있는 석종형(石鐘形)의 부도로 방형의 지대석과 하대석은 단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대석의 4면에는 복련(伏蓮)이 2엽씩 조식되어 있으며, 네 모서리의 서쪽에는 멧돼지, 남쪽과 북쪽은 사자, 동쪽에는 호랑이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이는 대구 부인사 입구의 부도나 광주 원효사 동부도 등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탑신부(塔身部)은 종형으로 상륜부(相輪部)와 탑신이 한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부드럽게 다듬은 탑신의 곡선은 완만하다.

표면에는 유곽(乳廓)이 2개 배치되어 있고, 그 내부에 9개의 유두(乳頭)가 돌출되어 있다.

9개의 유두는 선에 의해 구분되어지며, 선의 교차점에 지름 약 1㎝의 작은 원이 조식되어 있다.

탑신부의 중앙에는 '경헌장로지탑(敬軒丈老之塔)'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부도의 주인공을 알 수 있다.

상단부에는 3㎝ 두께의 띠를 두르고, 그 위에 넓직하고 낮은 입상형의 판권을 두르고 있다...

 

새롭게 단장한 건축물...

 

유마사 대웅전(大雄殿) ...

자연돌을 높게 쌓은 석축에 둥근 초석을 두어 원주(圓柱)를 세운 정면과 측면 각 3간의 규모 건물이다.

둥근서까래에 네모난 서가래를 올린 겹처마이며, 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창호는 빗살창으로 짜아 4분합의 문을 달았다.

내부에는 합성수지로 조성된 아미타삼존불상과 석가모니후불탱, 지장탱, 칠성탱, 신중탱 등 4점의 탱화와 범종 1구가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편액을 비롯하여 청동시루 등 예전의 유물들은 모두 송광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대웅전에는 근래에 조성된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의 재질은 합성수지로, 본존불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아미타 수인을 취하고 있으며, 법의(法衣)는 통견이다.

좌우 협시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관음보살의 보관(寶冠)에는 화불(化佛)이 표현되어 있다...

 

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大雄殿 釋迦牟尼後佛幀)...

대웅전에는 원래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지만 유마사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후불탱화는 대웅전에 맞게 석가모니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후불탱의 구도를 살펴보면, 중앙의 본존불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채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그 옆으로 문수,보현,관음,

지장보살이 시립하고, 그 좌우에 사천왕이 각 2구씩 배치되어 있으며, 상단에는 아난, 가섭을 위시한 10대 제자가 둘러싸고 있다.

본존불의 광배는 키형이며, 보살과 사천왕에는 원형의 두광으로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이 후불탱은 2000년에 조성한 것으로 화사 고영을(高永乙)의 작품이라고 한다...

 

대웅전 아미타삼존 왼편 벽에 봉안되어 있는 칠성탱(七星幀)...  .

중앙의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월광보살이 있고, 그뒤에 칠여래(七如來)가 있으며, 아래에는 삼태육성(三台六星)이 서있다..

그밖의 여백은 서운(瑞雲)으로 처리하였다. 

칠성탱의 주불인 치성광여래는 연화좌 위에 앉아 설법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으며, 법의는 편단우견이다.

원형의 두광과 신광이 있으며, 신광에는 화염문을 표현하였다.

일광,월광보살과 칠여래에도 원형의 두광이 표현되어 있는데, 색조는 모두 녹색을 띠고 있다. 

화기가 없어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근래의 작품이라고 한다...

 

대웅전 오른쪽 벽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탱(地藏幀)...

중심에는 깍은 머리에 스님 모습인 지장보살이 한 손에는 육환장(六環杖), 한 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다.

앞에는 젊은 수도승인 도명존자(道明尊子)와 문인의 모습을 한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그 양쪽에는 시왕(十王)과 판관, 인왕 등이 배치되어 있다. 지장보살은 원래 인도의 지신(地神)에서 유래한 보살이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사람, 하늘 등 육도(六道)의 윤회에서 끝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서원을 세운 분이다.

지장보살은 민머리의 승형(僧形)으로 왼손에는 보주를, 오른손에는 석장을 들고 있다.

탱화의 하단의 좌우에 적혀 있는 화기를 통해 그림을 그린 금어(金魚)는 구봉(龜峰) 스님이며, 1986년에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 왼쪽 벽에 봉안되어 있는 신중탱(神衆幀)...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을 도상화한 그림을 신중탱이라 하는데 중앙의 한 가운데 위태천이 금강저 모양의 검을 들고 서 있으며,

그 주위를 검과 창 등의 무기를 든 무장이 시립해 있다.

많은 신들을 배치하여 그리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를 보이는 신중탱은 일반적으로 제석(帝釋)과 하늘의 군사인 위태천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무장을 한 신중들을 배치한다. 이것은 구봉스님의 1986년 작품으로 지장탱과 함께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 한 단 아래의 대지 양쪽에 2개씩 1조를 이루어 괘불석주(掛佛石柱)가 있다.

상부는 각을 없애고 호형으로 다듬어 모나지 않게 마무리하였다. 상부와 하부의 께가 거의 일정하며 단면의 형태는 세장한 방형이다.

각각 상하에 구멍이 뚫려 있고 문양이나 명문은 없으며 면이 매우 거친 편이다.

조성시기는 조선시대로 추정되며, 이를 통해 유마사에도 괘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과 활짝 핀 동백...

 

조그만 석불들...

 

대웅전 외벽 탱화...

 

대웅전 뒤편에 자리한 산신각(山神閣)...

정면과 측면 각 1간의 맞배지붕으로 된 단촐한 건물로 산신각 주위를 돌담으로 둘렀다..

전면에는 띠살창으로 짠 2분합의 문을 달았으며, 내부에는 산신탱 1점이 봉안되어 있다...

 

유마사 풍경...

 

 

근처에 1861년(철종 12)에 조성된 현감 정원필의 영세불망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