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기행] 사적 제141호,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충효동도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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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행] 사적 제141호,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충효동도요지)..

by 정산 돌구름 2012. 3. 5.
사적 제141호, 광주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충효동도요지)..


탐방일 : 2012년 3월 3일 (토)

소재지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179-5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도요지) 소개

 무등산 북쪽 충효동에 자리잡은 가마터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상감청자·분청사기·백자를 굽던 곳이다.

 가마의 구조는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시설·도자기를 집어넣는 번조실·굴뚝실로 이루어져, 둥근 무덤 형태가 연결된 모양으로 되어있다.

 1963년과 1991년 무등산 문화유적보존을 위해 실시한 총 3차례의 발굴조사에 의해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의 조선시대 가마터와

 다수의 출토유물이 확인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과 출토유물의 연도를 통해 1430년을 전후해 만들어지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 약 70∼80년간 자기제작이 지속되다가 16세기 초에 중단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 되어있는 금곡동도요지는 가마의 퇴적층과 완전 파괴된 가마등에서 출토된 것을 보면 상감청자파편, 분청자,

 백자 등 많은 종류의 도자기 파편들이 발견 었다.

 대접, 접시 류가 대부분이며 장군, 마상배, 벼루발, 항아리, 매병, 병,, 제기류 등 주로 분청자와 백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발굴된 청자 중에는 무늬 결이 섬세하고도 정교한 인화문, 상감문, 조화박지문, 귀얄문 등이 파편조각에서 확인되었다.

 인화분청 명문은 도공이름, 지명, 품질 표지, 관청명 등이 새겨져있는데 이는 관에 납품을 하는 관요(官窯)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작시기로 보아 청자 말기부터 분청자를 거쳐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어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운영되었던 곳으로 보아진다.

 명문이 없는 귀알문은 서민용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로 관급 공급용과 서민생활용품의 도자기를 동시에 만들었던 요지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에 따라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는 1964년 사적지(사적 제141호)로 지정되었다.

 무등산 분청사기 전시실은 무등산 일원의 도자문화가 한국 도자발달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무등산 분청사기 전시실 입구...

 

전시실 내부..

 

 

가마터...

 

가마터 내부...

 

 

 

의상봉...

 

무등산 옛길 3구간이 지나는 무등산역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