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기행] 충장공 김덕령장군의 사당, 충장사(忠壯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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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행] 충장공 김덕령장군의 사당, 충장사(忠壯祠)

by 정산 돌구름 2012. 3. 5.
충장공 김덕령장군의 사당, 충장사(忠壯祠)..


탐방일 : 2012년 3월 3일 (토)

소재지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1023 

 충장사(忠壯祠) 소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충장공 김덕령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975년2월 건립한 사당이다.

 경내에는 김덕령의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사우 충장사, 동재와 서재, 은륜비각과 해설비, 유물관, 충용문, 익호문 등이 있다.

 유물관에는 중요민속자료 제111호로 지정된 '김덕령장군' 의복과 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관곽, 친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당 뒤쪽 언덕에는 김덕령의 묘와 묘비가 있으며, 가족묘도 조성되어 있다.

 김덕령(金德齡 1567~1596)은 임진왜란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광산, 자는 경수이며 광주출신이다.

 아버지는 붕섭이며, 어머니는 남평반씨로 직장 계종의 딸이다. 20세에 형 덕홍과 함께 성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경명 막하에서 전라도 경내로 침입하는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전주에

 이르렀을 때 돌아가서 어머니를 봉양하라는 형의 권고에 따라 귀향하였다.

 1593년 어머니 상중에 담양부사 이경린, 장성현감 이귀 등의 권유로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그 세력이 크게 떨치자,

 선조로부터 형조좌랑의 직함과 함께 충용장의 군호를 받았다. 1594년 세자의 분조로 세워진 무군사에 지략과 용맹이 알려져

 세자로부터 익호장군의 칭호를 받고 이어서 선조로부터 다시 초승장군의 군호를 받았다.

 그 뒤 최담년을 별장으로 하여 남원에 머물다가 다시 진주로 옮겼는데, 이때 조정에서는 작전상의 통솔과 군량조달의 문제로 각처의

 의병을 통합, 충용군에 속하도록 하였으며, 이로써 의병장이 되어 곽재우와 함께 권율의 막하에서 영남서부지역의 방어임무를 맡았다.

 왜적의 전라도 침입을 막기 위하여 진해·고성 사이에 주둔하며 적과 대치하였으나 이때 강화회담이 진행 중이어서 별다른 전투상황도

 없고, 또 군량의 부족으로 그 예하 3천여명 가운데 호남출신 5백여명만 남기고 모두 귀농시켰다. 그해 10월 거제도의 왜적을 수륙양면

 으로 공격할 선봉장으로 활약하여 이를 크게 무찌르고 이어서 1595년 고성에 상륙하려는 왜적을 기습, 격퇴하였다.

 그뒤 진주에 둔전을 설치하는 등 장기전에 대비하여 출전 차비를 갖추었지만, 강화의 추진으로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울화가 생겨

 과음을 하고 군법을 엄하게 함에 막료·군졸간에 불평의 소리가 높았고, 조정에서도 그에 대한 논의가 빈번히 제기되었다.

 1596년에는 도체찰사 윤근수의 노복을 장살하여 투옥되었으나 영남유생들의 상소와 정탁의 변호로 곧 석방되었다.

 그해 7월 홍산에서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키자 도원수 권율의 명을 받아 진주에서 운봉까지 진군하였다가 난이 이미 평정됐다는 소식

 듣고 광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해 진주로 돌아왔다.

 이때 이몽학과 내통하였다는 충청 체찰사 종사관 신경행과 모속관 한현의 무고로 최담년·곽재우·고언백·홍계남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에 정탁·김응남 등이 그의 무관함을 힘써 변명하였으나 20일 동안에 여섯 차례의 혹독한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체구가 작지만 날래고 민첩하며 신용이 있었다고 하여 용력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다.

 1661년(현종 2년)에 신원되어 관작이 복구되고, 1668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1681년(숙종 7년)에 다시 병조판서로 추증되고 1710년에 봉사손인 수신도 녹용되었다.

 1788년(정조 12년) 의정부좌참찬에 추증되고 부조특명이 내려졌다. 죽기 전에 지었다는 ‘춘산곡’ 시조 한 수가 전한다.

 1678년(숙종 4년) 광주의 벽진서원에 제향되었는데, 이듬해 의열사로 사액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충장사 전경..

 

 

충장사 안내도..

 

외삼문인 충용문..

 

내삼문인 익호문..

 

충장사 사당..

 

사당 내부.. 김덕령장군의 영정...

 

뒤편의 충장공의 묘소, 그리고 가족묘...

 

외삼문에서 바라본 전경...

 

유물관..

 

충장공 김덕령장군의 유물들...

 

사용했던 목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