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기행] 정묘호란 때 순절한 전상의장군 사당, 광주 충민사(忠愍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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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행] 정묘호란 때 순절한 전상의장군 사당, 광주 충민사(忠愍祠)..

by 정산 돌구름 2012. 3. 5.
정묘호란 때 순절한 전상의장군 사당, 광주 충민사(忠愍祠)..


탐방일 : 2012년 3월 3일 (토)

소재지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산133 

 충민사(忠愍祠) 소개

 정묘호란 당시 안주성에서 청나라군과 싸우다 순절한 전상의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정묘호란이 끝난 뒤 시신을 출생지인 광주로 옮겨 예장하였는데, 1977년 묘소가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1979년8월24일 전상의장군 유적보존회가 장군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화암동 입구에 신도비를 세웠으며,

 1985년10월21일 유적정화사업으로 현재의 사당을 건립하였다.

 경내에는 전상의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된 사당과 수의문, 정려각, 유물관 등이 있으며, 유물관에는 장군의 유품인 갑옷, 투구, 활,

 검과 교지, 완문(完文), 완약(完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상의(全尙毅, 1575~1627)는 1603년(선조 36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등의 내외관직을 역임하였다.

 1617년(광해군 9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끌려간 백성 300여 명을 귀국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1625년(인조 3년)에는 구성도호부사 겸 좌영장으로 일하였다.

 1627년(인조 5년) 1 청나라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침략해오자 안주성에서 닷새 동안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

 

충민사 입구..

 

외삼문인 창절문...

 

전면의 내삼문인 수의문, 좌측의 유물관, 우측의 정려각...

 

유물관...

 

유물관 내부...

 

 

 

정려각..

 

충민사의 사당...

 

전상의장군 영정..

 

전상의(毅)장군은 본관이 천안()으로 아버지는 용()이다.

1603년(선조 36년)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지냈고, 1627년(인조 5년) 구성부사로서 좌영장을 겸하였다.

이 때 건주()의 야인이 침입하여 안주성을 포위하자 평안도병마절도사 남이흥(), 안주목사 김준()과 더불어 야인의

격퇴를 위하여 안주성의 백상루() 밑에 군졸로 포진하였다.

이 때 적병이 점점 가까이 옴에 일시에 적을 공격하니 포성은 천지를 진동하였다. 야인이 크게 패하여 일시 후퇴하였다가 전열을

가다듬어 대군으로 다시 침범함에 장병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으나, 진영이 적에게 함락되어 남이흥과 김준이 전사하였다.

더욱이, 군량이 고갈되고 원병이 오지 않자 전장병과 함께 죽기를 결의하고 누상에 올라 적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684년(숙종 10년) 안주의 민충사(), 광주()의 경렬사(), 제주의 귤림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수의문을 나서면서...

 

창절문에서 본 유물관, 수의문, 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