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기행] 전남 유형문화재 제108호 고흥향교와 흥양현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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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기행] 전남 유형문화재 제108호 고흥향교와 흥양현읍성

by 정산 돌구름 2012. 10. 28.
전남 유형문화재 제108호 고흥향교와 흥양현읍성..

 

○ 탐방일 : 2012년 10월 25일

○ 소재지 : 전남 고흥군 고흥읍 행정리 149

○ 고흥향교 소개

  고흥향교는 전남유형문화재 제108호(1985년2월25일)로 지정되었으며, 향교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다.

  1441년(세종 23년)에 처음 세웠으나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으로 불에 타버렸다.

  그 뒤 한때 성동촌으로 옮겼다가 1695년(숙종 2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서재, 내·외삼문, 제기고(祭器庫), 교직사 등이 있다.

  건물은 외삼문, 명륜당, 동재·서재, 내삼문, 대성전 순으로 배치된 전학후묘의 경사지 건축이다.

  전체적으로는 남향이며 동재·서재와 제기고는 좌우대칭의 배치를 보여준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높이 90㎝ 정도인 기단을 놓고 자연석 덤벙주춧돌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2고주 5량, 공포는 초익공양식이며,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에 바람막이 판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높이 135㎝ 정도인 허튼층쌓기의 기단에 원형기둥을 세운 누형식의 건물이다.

  가구는 평5량, 공포가 없는 무익공식이며,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에 바람막이 판이 있다.

  평면을 보면 왼쪽의 툇간은 온돌방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특이하게 남쪽 판벽과의 사이에 공간을 남겼다.

  명륜당 양옆에 있는 은행나무는 창건 당시에 심은 것으로 보이는데, 수령은 350여 년 정도이다.

  동재·서재는 높이 약 100㎝의 석축 위에 놓여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전퇴로, 정면 2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툇간은 전면의 툇마루보다 약간 높은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다.

  계자난간(鷄子欄干)과 궁판의 바람구멍 등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로 팔작지붕이며 천장의 중앙 부분은 우물천장이고 나머지는 연등천장이다.

  대성전의 좌우에 있는 제기고는 동재·서재의 배치형식에 따라 최근에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3량집으로 맞배지붕이다..

 

 

 

 

 

 

 

 

 

 

 

 

 

 

 

 

 

 

흥양현읍성(興陽縣邑城)은 전남기념물 제35호(1978년9월22일)로 지정되었다.

이 성은 조선시대 흥양현의 읍성으로 1395년(태조 4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다.

원래는 여장(女墻), 옹성(甕城), 곡성(曲城)을 갖춘 것이었으나 많이 퇴락되었고 현존하는 성벽은 조선 후기에 수축(修築)된 것이다.

배후의 추월산과 구릉을 연결하여 축성된 평산성(平山城)으로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읍성 형식이다.

성벽의 축성 방법은 먼저 지표면을 고른 후 그 위에 1단의 판석형 석재를 놓고 15~20㎝ 뒤로 물러나 2단부터 수직으로 쌓아올렸다.

바깥쪽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을 섞어 쌓았고 하단은 1m가 넘는 대형 석재로 쌓고 위로 올라갈수록 소형 석재를 이용하였다.

현재는 하중 때문인지 외벽쪽으로 배가 부른 형태이다.

현재 성벽과 치성 3개소, 홍교 2개소가 남아 있고 세개의 문지(門址)도 확인되었다.

성벽은 옥상마을에 있는 읍성의 북벽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데 크기는 높이 5.7m, 너비 4m이다.

치성은 서북우에서 북문지 사이의 중간부분에 한 개, 동북우에 한 개, 동벽 중간에 한 개가 남아 있는데 대략 직경 7m, 높이 3.15m

정도 규모로 사각형이다. 홍교는 교량식 홍교로서 서벽과 남벽에 각각 한 개씩 남아 있는데, 전남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홍교는 흥양읍성의 서벽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개천물이 남벽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설치된 것이다.

세 개의 문지는 남문지, 북문지, 서문지로서 옥하리 235번지의 도로상에, 옥상마을 145번지, 서문리 140번지에 각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