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기행] 금전산 금둔사(金芚寺), 보물 제945호 3층석탑과 제946호 석조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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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기행] 금전산 금둔사(金芚寺), 보물 제945호 3층석탑과 제946호 석조불비상

by 정산 돌구름 2012. 10. 22.
금전산 금둔사(金芚寺), 보물 제945호 3층석탑과 제946호 석조불비상..

 

탐방일 : 2012년 10월 20일

소재지 : 전남 순천시 낙안읍 상송리 금전산

금둔사 소개

  태고종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로 금전산(金錢山)을 주산으로 입지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金錢山 在郡北一里鎭山” 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 고장의 풍수지리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산이다.

  한자를 뜻풀이하면 쇠금과 돈전이 되어 금돈으로 이루어진 산 이라는 뜻이나, 부처의 오백비구(오백나한) 중 금전비구의 이름에서

  산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금둔사(金芚寺)와 관련된 최초의 공식기록 역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찾아볼 수 있다.

   “金芚寺 在金錢山”이라는 기록으로 이를 통해 조선 초까지 이곳에 금둔사라는 사찰이 계속 지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사찰은 폐사가 되고, 1984년 이후 지허선사가 대웅전, 일주문, 선원, 약사전, 요사채, 홍교 등을 중창하였다.

   현재 금둔사 내에는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과 석불비상이 한편에 따로 영역을 이루며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찰이 그러하듯이 금둔사에 대한 문헌적 역사자료는 의외로 알려진 바가 없다.

   누구에 의해 초창되었는지, 언제쯤 폐사가 됐는지, 어떤 종파의 사찰이었는지 문헌적으로 전혀 알려진바 없으며 다만 조선 초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낙안편에 “金芚寺 在金錢山”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 당시까지는 사찰이 존재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금둔사에 전하는 연혁에 의하면 금둔사의 초창은 백제 위덕왕 30년(583년)에 담혜화상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담혜화상이 다른 8분의 스님과 함께 일본에 파견하여(554년) 처음으로 10여명의 승려를 양성시킨 뒤 귀국해 이곳 금전산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곳에 주석한 것이 금둔사의 시초라고 한다.

   다음으로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금전산내에 금강암(金剛庵)을 지으시고 주석하셨다. 또한 사자산문을 개창하신 철감국사와

   제자 징효대사가 이곳에서 금둔사를 중창하셨으며 이때 현재의 삼층석탑과 석불비상을 건립하셨고 동림선원을 세웠다고 전한다.

   1385년 고봉화상이 금둔사를 중창하였고, 산내에 수정암을 짓고 주석하셨으며 후에 송광사로 가셔서 16번째 국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찰이 지속되다가 언제인지 폐사가 되었으며, 근래에 선암사 칠전선원에 계시던 지허(指墟)스님께서

   폐사되어 논밭으로 바뀌어 있던 사찰을 1983년부터 복원 불사를 시작해 현재와 같은 규모의 대찰이 조성되었다.

   사찰은 대웅전·태고선원·유리광전·약사전·설선당·산신각·범종각·일주문·요사 등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불단에는 협시불 없이 석가모니불만 단독으로 모셨다.

   외벽에는 십우도(十牛圖)가 그려져 있는데 이 벽화는 동양화가 우현 송영방(宋榮邦)의 작품이다...

 

금둔사 일주문(一柱門)...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외5출목의 다포형식으로 조성되었다.

소암 현중화선생의 필체로  '金錢山 金芚寺'라는 현판을 정면에 걸려있다.

일주문은 사찰의 입구를 표시하며 이곳부터 사찰의 본 영역 안이니 심신을 깨끗이 하고 세속의 번뇌를 모두 떨치고 도솔천에 들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문이기도 하다.. 

 

일주문 뒷면에는 '世界一花 祖宗六葉'라는 현판을 걸었는데 이는 추사의 글씨로 세계는 하나의 꽃이고,

조사는 6분의 잎으로 피어있다는 뜻인데 세계는 부처를 의미하고, 6엽은 달마로부터 6조 혜능스님까지를 의미한다고 한다고 한다...

 

금전사 금둔사의 연현..

 

 금둔사 대웅전(大雄殿)...

금둔사의 주불전이며 폐사가 되어 있던 금전산 금둔사를 재건하면서 영건한 건축물로 정면 5간, 측면 3간의 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서향에 가까운 좌향을 하고 대웅전 영역을 이루는 거대한 기단은 거대한 막돌을 허튼층쌓기로 쌓아 만들었는데, 크기가 매우 거대한

돌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그 조형이 매우 뛰어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웅전의 주기단은 다듬은 돌로 마무리 했고, 초석은 막돌초석을 사용하고 있다...

 

중앙간을 가장 넓게 설정해 이곳에 사분합문을 두었으며, 그 외 다른 간은 일정한 간격으로 간을 설정했고, 여기에는 삼분합문을 두었다.

외벽에는 십우도를 그렸는데 우현 송영방 화백의 역작이라 한다. 전면 중앙 2개의 기둥 상부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기둥에 꽂아 놓았다.

그 외 다른 부분에서는 화려함 보다 소박함을 선택하였고 창호도 비교적 단순한 빗살 창호를 사용하였다.

공포는 전형적인 다포건축에 외2출목, 내2출목을 구성하고 있어 다른 다포건축에 비해 매우 수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주불로 석가모니불 단독으로 모시고 있으며 협시불은 두지 않았다..

 

대웅전 석가모니불과 후불탱(大雄殿 釋迦牟尼佛 後佛幀)...

내부 중앙에는 수미단을 두고 이곳에 목조 석가모니불을 단독으로 모셨고, 그 상부에는 중층의 보궁형 닷집을 설치했다...

 

후불벽은 영산회상탱을 모셨는데 손연칠교수의 작품이라고 ..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전면에 깔았으며, 또한 천장은 우물천장을 기본으로 층단을 두어 만들었다...

 

우측에는 역대 조사들의 초상이 있다..  

 

비로자나불과 후불탱(毘盧遮那佛 後佛幀)..

내부 좌측면에는 따로 단이 조성되어 이곳에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비로자나불 후불탱화의 화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順天市 民禪院 本尊幀畵 ……禪院長畵主 釋指墟 畵師 金素雲'

따라서 원래 이 자리에 봉안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지장보살과 지장탱(地藏菩薩과 地藏幀)..

대웅전 오른편에는 따로 불단을 조성해서 이곳에 지장보살과 지장보살탱을 모셔 지장단을 꾸며 놓았다...

 

신중탱 및 제석탱(神衆幀 帝釋幀)

대웅전 좌측벽면에 따로 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곳에 신중탱과 제석탱을 모셔 신중단을 꾸몄다...

 

제석탱의 기록에는 불기 252년에 이를 조생했다고 하는데('帝釋幀 佛紀 二五二年 戊寅……') 중간에 '四'자가 누락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중탱의 기록은 '神衆幀畵秩 佛紀二五四二 戊寅……' 으로 보아 제석탱과 신중탱은 모두 1998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 금고(金鼓)

좌측 입구에는 놓은 금고로 '順天市樂安面上松里 金錢山金芚寺 大雄殿金鼓 佛紀二五四二年 戊寅 四月 日 化主 時 住持 釋指墟'라는

명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역시 이 금고도 산신탱, 제석탱과 마찬가지로 1998년에 조성되었다...

 

대웅전을 둘러보고... 

 

범종각(梵鐘閣)은 대웅전 전면 마당 한쪽 면에 육각형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지붕은 겹처마에 육모지붕을 형성하고 있다.

내부에는 범종과 목어를 걸어 놓았다. 사각형 평면위에 원형으로 다듬어 올린 초석을 사용했고, 공포는 초익공을 채택해 건축했다.

상량문에 따르면 '佛紀二五三四年 庚午' 즉 1990년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며, 여기에 걸려있는 종 역시 이때에 같이 조성되었다... 

 

범종은 전형적인 한국 종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성종사에서 1990년에 주조한 것이다.

종신에는 비천상을 새겨 놓았으며, 곳곳을 보상화문 무늬로 장식해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는 범종이다.

또 종신 상부에는 용뉴를 만들었고,  한국종의 특징인 음통을 갖추고 있다.

종신 상부의 보상화문 띠에 면한 아래에는 네 곳에 보상화문의 띠를 이용한 유곽을 두르고, 그 속에 9개의 연꽃형 유두를 두었다..

 

감로수 위의 불상..

 

불조마애여래좌상(佛祖磨崖如來坐像)..

태고선원의 서쪽 바위에 양각으로 과거칠불과 미래억겁부처 53불, 총 60불의 부처님을 조각해 만들었다...

 

과거칠불과 미래53불을 모신 곳은 조성한 금강산 유점사의 금동불과 1698년 호암대사에 의하여 조성된 선암사의 목불뿐인데

이중 유점사의 부처님은 6.25때 소실되어 없어지고 현재는 선암사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따라서 마애불로 60분을 조각한 불상은 금둔사가 유일하다고 한다...

 

석조마애비로자나불(石造磨崖毘盧遮那佛)

대웅전 뒤편 따로 조성된 영역에 연꽃봉오리처럼 생긴 높이 5m쯤 된 바위에 새긴 양각의 비로자나불상이다.

1983년 복원 이전의 폐사지 시절 절터는 모두 아랫마을 사람들 논밭이었고 길마저 없을 때 이 바위가 금둔사의 옛 역사를 말해주듯

묵묵히 서 있었기에 중창주 지허스님이 복원하면서 법신 비로자나불을 새겨 모셨다고 한다...

 

산신각(山神閣)..

금둔사에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2곳에 조성해 모시고 있다.

하나는 석조마애비로자나불 오른편에 있는 산신각이라는 현판이 붙은 전각이다...

 

석조마애비로자나불 부근에 조성한 산신각은 단간 맞배지붕에 막돌초석, 겹처마를 사용했다...

 

안에는 호랑이를 안고 있는 산신을 표현한 산신탱이 모셔져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개울가에 약수를 마실 수 있도록 조성한 작은 전각으로 이곳에 산신탱을 모셔 놓았다.. 

약수전각이라고도 하며, 이곳에서 금전산 약수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 산신탱을 안치해 산신각의 용도를 겸하였다...

 

뒤편의 또 다른 사우..

 

스님들의 선방, 설선당.. 

 

태고선원...

 

보물이 있는 3층석탑으로 가는 아담한 돌담길..

 

금둔사지 삼층석탑(三層石塔)과 석조불비상(石造佛碑象)...

 

금둔사지 삼층석탑(三層石塔)은 1988년4월1일 보물 제945호로 지정되었다.

일반형 석탑으로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을 장식하였는데, 현재 상륜의 부재는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층기단 면석에는 양 우주와 1탱주를 모각하고, 하층기단 갑석에는 상면에 원호와 각형 굄을 마련하여 상층기단 면석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 면석에는 각 면에 양 우주와 1탱주를 모각하고 8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조각하였는데 돋을새김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상층기단 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결구하였으며, 하면에 부연(副椽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있고 상면에는 2단의 굄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을 각기 1석씩으로 조성하여 올려놓았는데, 각 층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초층탑신에는 전·후면에 문비(門扉)가 새겨져 있으며, 이 문비형 안에는 자물통과 문고리 한 쌍을 조각하였다.

좌우 측면에는 공양상 1구씩을 배치하였는데, 연화좌 위에 한 쪽 무릎을 세워 꿇어앉아 양손을 앞에 모아 발형(鉢形)을 받들고 있다..

 

옥개석은 하면의 받침이 5단씩이고 낙수면은 평박하며 네 귀퉁이의 전각(轉角)은 반전이 강하여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각 전각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어 건립 당시의 장식적인 의장을 짐작하게 한다..

 

이 석탑은 기단부의 구성과 탑신부 등 각 부의 양식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건립으로 추정되는데, 그 시기는 9세기로서 당시의

작풍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전체의 짜임이 단아하고 상층기단과 초층탑신석의 조각 등은 주목되어 우수한 석탑에 속한다고 하겠다.

초층탑신석의 자물통이나 문고리의 표현은 다른 석탑에서보다 큼직하여 형식화의 경향이 아님을 느끼게 하여 이 석탑의 건조연대가

떨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금둔사지 석조불비상(石造佛碑象)은 1988년4월1일 보물 제946호로 지정되었다.

일반적인 석불상이 대좌위에 3차원으로 조상되어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비석과 같은 넓은 돌 위에 두꺼운 양각으로 부처를 조각한

2차원적인 부조형으로 석불을 조성한 까닭에 석불비상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 이 불상의 가장 커다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불상도 몸통돌, 보개석, 대좌석이 각각 흩어져 있던 것을 1979년 다시 복원하였다.

대좌는 앙련석, 복련석, 지대석을 갖추고 있는데, 중대석의 존재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보개석은 신라계 석탑에서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옥개석과 유사하게 만들어졌다. 하부 불상과 접하는 부분에 2단의 층급을 두었고,

네모서리는 석탑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선으로 들어올렸다...

 

양손을 가슴부근에 들어올린 전법인을 결하고 있고, 옷주름을 표현하는 주름이 양각되어 있으며,

머리 주위에는 두광을 표시하는 원형이 석재표면에 양각되어 있다...

 

뒷면은 많은 부분이 마모되어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으나, 하부에는 형상을 명확히 예기하기 힘든 동물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전면에는 바닥에 배례석이 놓여 있으며, 배례석 상부에 용도를 알 수 없는 팔각형 석재가 올려져 있다..

 

또한 양쪽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동물 모양의 초석이 각각 한기씩 놓여 있다.

이 석조불상은 그 형식에 있어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비석의 형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매우 특징적이며,

석탑과 더불어 창건당시 금둔사의 모습을 가늠케 해주는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3층석탑과 비상의 다른 모습..

 

뒤편의 약사여래상과 암굴..

 

입구의 수행처..

 

대웅전으로 가는 홍교... 

 

홍교를 지나 대웅전으로 가는 길목..

 

 

 

 

 

 

의상대에서 바라본 금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