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의 명량(鳴梁), 해남 우수영 국민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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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의 명량(鳴梁), 해남 우수영 국민관광지..

by 정산 돌구름 2014. 8. 20.
이순신장군의 명량(鳴梁), 해남 우수영 국민관광지..

 

 

2014년 8월 18일 월요일, 흐리고 가끔 이슬비..

진도 팽목항을 다녀오는 길에 해남 울돌목에 있는 우수영국민관광지를 둘러본다.(입장료 1,000원)

임진왜란 당시 우수영이 있었던 해남은 임진왜란 최대의 전과를 올린 명량대첩이 벌어졌던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86년 해남군에서 해전이 벌어졌던 명량해협을 국민관광지로 지정하고 1990년에 기념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공원 안에는 명량대첩탑·명량대첩비·어록비·충무공유물전시관 등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명량 대첩탑은 이민서가 짓고 김만중이 썼는데, 충무공이 바다의 급류를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상황을 기록해 놓았다.

충무공유물전시관에는 거북선 실제모형, 거북선 절개모형, 판옥선 모형, 여러 가지 무기, 명량대첩비 탑본, 강강술래배경화, 천자총통,

지자총동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의 전투상황을 설명하는 슬라이드도 상영되고 있다.

명량대첩비 탑본이 보물 제503호로 지정되었으며, 명량대첩 당시 작전에 공을 세운 강강수월래는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원 안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는 진도대교와 소용돌이치는 울돌목의 거친 물살을 조망할 수 있다.

객사·토성·전적지 등 당시의 전투 상황을 알 수 있는 상징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2008년 5월에 빠른 물살을 이용한 1000kw급 시험조류발전소가 설치되었다.

해협 위로는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는 진도대교가 가설되어 있다.

 

 

명량대첩(鳴梁大捷)은 1597년(선조 30년)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을 쳐부수고 전열을 재정비한 싸움이다.

이순신이 통제사에서 물러난 뒤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일본 수군과 대전했으나 다대포(多大浦)·칠천곡(漆川谷)에서 대패하여

해상권을 상실하였다. 원균의 패전으로 같은 해 백의종군(白衣從軍) 중인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기용하였다.

이때 이순신은 패전 후 남은 12척의 전선과 수군을 정비하여 닥쳐올 전투에 대비하였다. 왜군에게 대패하여 얼마남지 않은 조선수군의

전력을 우려하자 당시 이순신은 선조에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함이 남아있습니다."라고 비장한 각오의 장계를 올렸다.

8월 왜선 8척이 해남의 어란포(於蘭浦)에 출현하자 이를 격퇴하고, 진(陣)을 진도(珍島) 벽파진(碧波津)으로 옮겼다.

9월 7일에는 서쪽으로 이동하던 왜선 55척 중 호위 적선 13척이 어란포에 나타나자, 한밤중에 이순신이 지휘하여 적선을 격퇴시켰다.

다시 적의 함대가 어란포에 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9월 15일에 벽파진에서 우수영(右水營)으로 진을 옮긴 뒤 장병들에게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말하고 필승의 신념으로 적의 내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9월 16일 왜선 133척이 어란포를 떠나 명량으로 공격해오자, 12척의 전선과 군사를 정비하여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가 지휘하는 왜선 31척을 격퇴하였다. 이 싸움으로 조선은 다시 해상권을 회복하였다.

해남과 진도 사이의 명량해협은 울돌목이라고도 한다.

가장 좁은 부분의 너비는 294m이며, 유속은 수심 평균 5.5m/s, 바다 표층은 최대 6.5m/s 에 달한다.

<여지도서>에 "우수영과 진도 사이에 있다. 병 주둥이처럼 생겼는데, 큰 물결과 커다란 파도가 좁은 협곡과 만나 방망이를 찧는 듯한

격렬한 소리를 내며 운다. 배가 지나갈 때면, 위로 솟구쳤다가 바다 속으로 빠지는 듯하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왜적을 유인하여 이곳에 이르렀다가 큰 승리를 거두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내용은 이곳 앞바다에 흐르는 조수의 격렬한 소리에서 지명이 유래하였음을 시사하고, 다른 이름으로 울돌목이라고도 부른다.

바닷물이 암초에 부딪혀 나는 소리가 매우 커 바위가 우는 것 같다고 한 데서 유래하였으므로 같은 맥락이다.

<여지도서>등에는 명양(鳴洋)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해동여지도>에는 완도 땅에 명량선참(鳴梁船站),

<동여도>에는 명량(鳴梁), <대동여지도>에는 명량항(鳴梁項)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시대에는 명양(鳴洋)과 명량(鳴梁)이 혼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조선지지자료>에 명양리(鳴洋里)에 명양도진(鳴洋渡津)이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20세기 초엽까지도 함께 사용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자료에서는 명량(鳴梁)으로 통일되어 사용하고 있다.

울돌목은 최근 영화 명량으로 유명해 진 곳이기도 하다.

2014년 7월 30일 개봉된 영화, 김한민감독의 명량(鳴粱)..

 

최민식(이순신 역), 류승룡(구루지마), 조진웅(와키자카), 임준영(진구), 이정현(정씨여인), 김명곤(도도 역) 등이 출연하였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 위기에 처하자 누명으로 파면 당했던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이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서는데…

12척의 조선과 330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