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용장사지(龍藏寺址)와 용장사 석불좌상..
○ 탐방일 : 2014년 7월 21일
○ 소재지 :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52
○ 용장사지와 석불좌상 소개
고려 무신정권 때의 장수 배중손(裵仲孫)이 이끌던 삼별초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여 항쟁을 벌였던 진도 용장산성(龍藏山城 사적 제126호)
내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용장사(龍藏寺)의 터이다.
용장산성의 건물터 초석의 형식 등으로 보아 삼별초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용장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756년 김몽규(金夢奎)가 편찬한 진도군 읍지인 <옥주지(沃州誌)>와 <진도군지>를 근거로 용장사는 고려 태조 때의 후진국(後晋國)
고왕(高王) 때 또는 고려 고종(高宗) 때 초창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용장사지 가까이에 근래에 복원한 한국불교태고종 사찰 용장사가 있다.
이곳 약사전에 고려시대에 제작된 약사삼존불상인 용장사 석불좌상(龍蔣寺石佛坐像)이 모셔져 있다.
이 석불좌상은 전남도유형문화재 제17호(1972년1월29일)로 지정된 높이 1.95m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고려시대 약사불상이다.
옛 용장사의 유물이며, 사각형 대좌 위에 사각형 광배를 등지고 앉아 있다.
광배 일부가 파손되고 동체를 시멘트로 발라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고, 다만 대좌석의 원형이 남아있어 고려시대의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육계가 없는 머리에는 소발의 머리가 두건처럼 표현되었고, 큼직한 사각형 얼굴에 짙은 눈썹, 작은 눈, 긴 코, 알맞은 입 등이 표현되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매우 투박한 모습이며, 가슴은 빈약하게 표현된 반면 어깨와 팔을 두드러지게 표현하였다.
하체는 결가부좌로 앉았는데, 매우 높고 크게 표현하여 고려 불상 특유의 비례 감각을 볼 수 있다.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 약그릇을 들고, 손에 비해 두발은 투박하고 큼직하여 사실성보다는 위압적인 듯한 느낌을 준다.
통견의 법의는 목깃을 U자 모양으로 약간 내리면서 반전시켜 변화를 주었다.
凸형의 옷주름을 빈틈없이 촘촘하게 표현하여 고려 불상 특유의 형식미를 보인다.
사각형의 대좌에는 단판 연화무늬가 소박하게 새겨졌고, 사각형의 광배는 의자의 등처럼 보이는데 도식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다.
밑으로 중석과 부연좌대가 연결되었으나, 밑 부분은 땅속에 매몰되어 형태를 확인할 수 없다.
약사불상 좌우에 서있는 두 보살상은 본존불과 비슷한 인상으로 상체는 벗고 하체에 군의(裙衣)를 입은 신라 말기의 보살 형식을 따랐다.
왼쪽의 보살상은 높이 164cm로, 얼굴은 시멘트로 보수하여 원형을 알 수 없고, 형식적인 부연좌대와 광배를 갖추었다.
머리는 민머리에 목에 삼도가 있으며, 수인은 합장하였다.
오른쪽 보살상은 높이 170cm로 역시 얼굴에 시멘트를 발라 원형을 알 수 없다.
손에는 보병을 쥐고 있으며, 밑에 부연좌대와 광배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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